우리는 소설도 진짜라고 생각하며 읽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순되는 상황은 소설의 본질에서 옵니다. 소설 예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 (12쪽)
소설 읽기의 진정한 희열은 세계를 외부가 아니라, 안에서, 그 세계에 속한 등장인물의 눈으로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른 그 어떤 문학 형식도 제공하지 못하는 속도로, 전체 풍경과 찰나의 순간을, 일반적인 생각과 특별한 사건 사이를 오갑니다. (18쪽)
우리는 소설이 사실만큼이나 상상에도 의거한다는 것을 잊기 때문이 아니라, 소설이 독자들에게 이런 착각을 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이것을 위해. 실재와 상상을 혼동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 순간 우리가 느낀 것은 소박하면서도 동시에 성찰적이 되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 읽기는, 마치 소설 쓰기처럼, 이러한 두 가지 정신 상태를 끊임없이 오가는 것입니다. (중략)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관찰로부터 출발하여, 처음에 약속했던 감춰진 진실로, 중심부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48-49쪽)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이 풍경을 소설 주인공의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소설 주인공이 풍부한 풍경의 일부라는 것을 압니다. 이후 주인공은 그가 속해 있었던 풍경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잊지 못할 기호, 일종의 상징으로 변합니다. (중략) 주인공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전체 풍경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대개는 내가 ‘풍경‘이라고 불렀던 소설의 윤곽이나 대략적인 줄거리가 우리 뇌리에 남지만, 우리는 주인공을 기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의 이름은 우리 상상 속에서 소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풍경의 이름이 됩니다. (74쪽)
우리 자신의 감정과 우리 삶의 작고 세부적인 것을 통해 전체 풍경에 들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이해하는 능력과 자유가 생깁니다. (중략) 나에게 소설 쓰기는, 풍경 속에서(세계에서) 소설 캐릭터들의 심리 상태, 감정, 생각 등을 포착해 내는 것입니다. (중략) 만약 우리가 어떤 소설 속에 있다면 사물, 가구, 방, 거리, 나무, 숲, 풍경, 창밖 경치,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주인공의 생각과 느낌의 일부로 보입니다.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는 소설의 전체 ‘풍경‘ 속에서 형성됩니다. (84-85쪽)
주제를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 차이를 일반화시켜 봅시다. 어떤 작가들은 ‘단어적‘이고, 어떤 작가들은 ‘시각적‘입니다. 이 말은 어떤 작가들은 주로 독자의 ‘시각적 상상력‘에 호소하고, 어떤 작가들은 주로 ‘단어적 상상력‘에 호소한다는 의미입니다. (중략) 모든 작가는 시각적 상상력과 단어적 상상력에 동시에 호소합니다. (90-91쪽)
한 편의 소설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단어에서 그림으로 전환해야 하는 수천수만 개의 작은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소실 읽기를 그림 보기보다 더 참여적이며 사적인 일로 만듭니다. (98쪽)
소설 독자들이 느끼는 희열은 박물관 관람객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소설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우리의 지각이 만나는 순간을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색깔, 소리, 말, 풍경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기록하고, 최소한 어느 기간 동안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에게 속한 사물들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삶에 소설에 기록되어 보존된다는 느낌입니다. (130-131쪽)
중심부는 삶에 관한 심오한 관점, 일종의 통찰입니다. 깊은 곳에 있는 실재 또는 상상의 신비로운 어떤 지점입니다. 소설가들은 이 지점을 탐색하고 그곳이 함축하는 바를 찾아내기 위해 소설을 씁니다. (147쪽)
소설 쓰기와 읽기는 우리 삶에서, 상상에서 나오는 모든 재료, 소재, 이야기, 주인공은 물론 사적인 세부 사항까지도 이 빛, 이 중심부와 통합시키는 것입니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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