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1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1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그의 일기에 맞장구 치고 싶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이 세상에 없는 책이다." 라는 머리말 중의 문구가 나에겐 무척이나 강렬했다. 다독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애독가이지 않고서는 감히 할 수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무척이나 기대했던 책이라 더더욱 그 문구가 강렬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문구가 내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거의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어내는 장정일님의 독서량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그의 거친 표현들이 책읽는 자의 오만함이라기 보다는 책읽기를 생활화하는 자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그의 거침없는 표현들에서 왠지 모를 애정이 묻어나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의 독서일기를 읽으면서 장정일님만의 색깔을 인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하며 책을 읽고 자신의 감정과 표현을 아끼지 않는 장정일님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장정일님이 소설가다 보니 아무래도 일반인의 시각과는 많이 달랐고 알려진 대로 책품평이 무척이나 까칠하셨는데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이었다. 그는 책을 읽고서 '이 쓰레기 같은 소설' '오문과 악문으로 가득한 책' ' 엉터리 페미니즘 소설' 등의 거친 표현을 쓰며 아주 냉정한 칼같이 접근하기를 즐겨했고 작가에 대한 비판 또한 서슴지 않았으니 그 중에서도 '공지영'님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책에 대해서는 '아주 재미있고, 가슴을 울린다.' '그것은 읽고 나자마자 곧바로 내 뇌의 한 부분이 될 만큼, 강력했다.' 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도 간간히 만날 수 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내 역량이 장정일님의 다독에 미치지 못해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함께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라는 말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그런 경우와는 다른 듯 하다. 실망이라고 할 것도 없이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소개되는 책들이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이어서 장정일님이, 읽은 책에 대해 때론 신랄하게 비판하고 때론 극찬을 아끼지 않을때도 거기에 장단 맞추질 못하고 그저 글로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7권부터 읽었더라면 장정일님의 일기에 공감도 하고 때론 반대입장도 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든다.

 

요즘은 어느때보다도 서평에 대한 관심이 많은터라 서평쓰는 법에 대해서도 챙겨서 읽어보고 잘 적은 서평들을 찾아 읽어보는 수고 또한 아끼지 않지만 그만큼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책은 내가 읽는 행위지만 서평은 내가 쓴 글을 다른 이가 읽는 것이다 보니 조금

더  신중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부담이 되어 예전처럼 마음으로부터 자유하며 쓰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그런 의미에서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나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었다. 독서일기와 서평의 색깔이 틀리긴 하지만 서평 또한 내가 읽은 것을 그 느낌 그대로 담으면 된다는 것. 책읽기를 즐기는 것처럼 서평 또한 즐기면서 쓰면 된다는 것. 남들과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 또한 나만의 색깔로 다듬어 담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읽는내내 함께 공감도 못해드리고 그 독서의 깊이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장정일님에게 조금 죄송스러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7번째를 읽고자 한다. 물론 내가 읽지 않은 책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읽은 책도 드문드문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아무쪼록 장정일님의 생각에 공감도 하고 그의 거친 비판에 맞장구도 쳐보고 싶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내게 쉬운 책이 아니었지만 내가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한번 더 읽고싶은 책으로 자리잡을 듯 하고 다시 한번 더 읽었을 때는 나의 독서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있게 장정일님의 독서일기를 대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즐기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자라는 즐거운 다짐을 해본다.

  

소설책에 밑줄을 긋는 행위는, 요주의를 위해 밑줄을 그을 때를 제외하고는

독자가 작가 혹은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하게 느낄 때이다.

그리고 그 밑줄은 다른 독자가 그 책을 들었을 때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하느냐는 물음 곧 대화가 된다.

이때 밑줄로 건네는 그 대화는, 소설을 읽으며 밑줄치기에 탐닉하는 사람은,

책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책(고독)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타인(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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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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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방울인 내가 강물인 너와 대화를 나누기를,

순간인 내가 연속적 시간인 너와 대화를 나누기를,

그리고 으레 그러하듯 진솔한 대화가

신들이 사랑하는 의식과 어둠,

또한 시의 고상함에 호소하기를

 

보르헤스, 「송가 1960」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서 책이 출간되는 사례는 일찍이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그 내용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을 평생에 걸쳐 편지로 마음을 전한 예술가들의 서간집이라든지 반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반고흐, 영혼의 편지』와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처럼 일기형식을 띄는 사색적인 편지글도 있고 『채링크로스 84번지』처럼 헬렌 한퍼라는 작가와 영국의 중고 서적상이 우연한 기회로 의도하지 않게 20년동안 주고받은 서간집도 있다. 하지만 이 서간집들의 특징은 의도되지 않은 순수한 편지라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마종기님과 루시드폴의 편지에세이 『아주 사적인, 긴만남』을 너무도 읽고 싶어서 구입해놓고는 갑자기 심각한 선입견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과연 이 책은 순수한 편지글인가. 아니면 출판사에 의해 철저하게 의도된 것인가.' 책을 펼치기도 전에 그 물음에 발목이 잡혀서 책을 머리맡에 두고서도 한참 후에야 첫 장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분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나의 순수하지 못한 마음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욱 정성들여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생명공학 박사이면서 '루시드폴'이라는 예명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는 조윤석과 의사이면서 시를 쓰는 일흔의 老시인 마종기님이 2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 펴낸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은 영혼의 소통이 묻어나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위해 멀리 타국 북유럽에 도착한 첫 날, 약간의 두려움으로 움츠린 루시드폴이 제일 처음 펼쳐든 책이 바로 마종기님의 「이슬의 눈」이었고 그 이후로 마종기님의 시는 루시드폴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2집 앨범을 만들 때에는 마종기님을 가장 훌륭한 음악 선생님 (p.15)이라고 표현하기에 이른다. 누구에게나 계기가 있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 삶이 변화되어지는 계기. 그러한 계기는 언제나 어떤 극한 상황. 또는 인생의 고독의 시기에 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머나먼 이국 땅에서의 루시드폴에게 전혀 낯선 존재. 마종기 시인이 자신의 음악의 멘토같은 존재로 자리잡는 운명적인 순간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아, 이 시[동생을 위한 조시]를 저는 얼마나 많이도 읽었던가요. 그리고 늘 이 시의 뒷부분을 읽을 때면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있어 전철역에서, 집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전화를 하는 중에 얼마나 읽고 또 읽어주었던지. 보내주신 편지 중에서 무엇보다도 '쉽고 좋은 시'라는 시구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쉽다'라는 것이 저에겐 단어 그대로의 '쉽다'가 아니라, 시인의 가슴에서 독자의 가슴으로 '쉽게' 가는, 그런 시가 '쉽고 좋은 시' 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결심하게 되었지요. 나는 쉽고 좋은 노래를 써야겠구나..  (p.89)
  

 

그렇게 루시드폴이 마종기 시인의 오랜 팬인 것을 알게 된 어느 출판사가 두 분을 소개해 줌으로써 메일을 주고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제대로 이야기하자면 의도된 기획이긴 하지만 출판사의 선한 의도였다고 할 수 있겠다.  

 

루시드폴과 마종기 시인은 같은 나이에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외로운 싸움을 싸우며 공부를 했다라는 동질의식과 생명공학 박사, 의사라는 전문분야에 몸담고 있으면서 또다른 직업, 예술을 한다라는 비슷한 처지에 쉽게 마음을 터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해간다. 마종기 시인은 고향을 떠날 때 느꼈던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이야기하며 루시드폴의 이국 생활을 깊이 이해해 주었고 그 외로움과 소외감을 힘껏 응원해 주었다.아버지와 아들 뻘 되는 36년의 나이차가 무색하리만치 대화는 자연스러웠고 서로의 편지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루시드폴은 마종기 시인에게 더욱 존경과 감탄을, 마종기 시인은 루시드폴에게 더욱 깊은 호감과 반가움을 담으며 편지는 이어지고 있었다. 

 

서간집은 두 사람의 은밀하고 깊은 이야기를 몰래 훔쳐 읽는 기분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오가며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고 또한 내가 좋아하는 [소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어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소통의 부재]의 시대를 살아가고 짧은 인사말에 익숙한 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 편지지 분량 2장은 족히 넘어보이는 이메일을 읽을 때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꽉차게 좋은 건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근황과 현재의 마음상태, 또는 계획과 비전을 긴 글로 써내려가며 상대방에게 나의 진심이 전해지도록 전하는 그 정성어린 마음이 무척이나 정다웠고 부러웠고 그리워졌다. 나조차도 그렇게 정성어린 편지를 쓰지 못하고 살고 있음이 돌아보아져서 반성이 되기도 한 시간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깊은 소통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 축복이고 선물이라고 한다면 분명 루시드폴과 마종기 시인은 서로에게 선물임에 틀림없다. 편지는 그렇게 2007년 8월 24일부터 시작해 2009년 3월 27일까지로 끝이 났지만 그 이후에도 평생에 걸친 소통은 계속 될 것이고 서로가 더 깊은 동질애로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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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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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만 상처 입었고 나만 고통스럽고 나만 아픈 듯 하지만 누구랄것도 없이 우리는 모두 상처뿐인 인생 속에서 그 상처를 곱씹으며 살아간다. 그 상처란 것은 대부분 사람에 의한 마음의 스크래치일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한 관계의 깨어짐과 용서 못함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이 책 또한 연쇄 살인범에게 딸을 잃은 ’거대한 슬픔’ 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을 읽고 용서를 경험했고 다시금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고백하는데 그만큼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각자의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첫번째는 ’내가 고통당하고 신음할 때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두번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마음이 슬픔에서 놓여놔 드디어 자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하나님이 나에게도 나와 하나님만이 아는 그 [오두막]으로 초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맥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하나님을 ’파파’라고 부르는 낸을 아내로 둔 가장이다. 어느날, 맥이 아이 셋과 캠핑을 떠나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연쇄 살인범에 의해 막내 ’미시’가 납치되고 급기야 잔인하게 살해된다. 그 이후로 맥은 ’거대한 슬픔’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삶을 산다. 그런 맥에게 오두막으로 초대하는 쪽지가 오게 되고 맥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시’가 살해된 장소 [오두막]으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맥은 하나님 ’파파’와 ’ ’사라유’ ’예수’를 만나게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성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예수님에 대해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랑의 주님으로 인식하는 반면, 하나님에 대해서는 언제나 우리를 감시하시고 우리를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부,성자,성령 되신 각각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오해하는 하나님의 인성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날 것이다. 나또한 하나님에 대한 오해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은 나를 특히 더 징계하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애써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진리를 무시하고 싶어서 주인공 맥처럼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맥과 하나님과의 사이도 벌어졌지만 그는 점점 더 벌어지는 간격을 무시했다. 그는 냉랭하고 무감동한 신앙을 받아들이려 했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위안과 평안을 얻었다." <p97>

 

하지만 『오두막』을 읽으면서 맥에게 온 쪽지는 곧 나에게 보내신 초청장인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속에 잠자고 있던 상처는 모습을 드러내었고 내가 결코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고 잊혀진다는 세상 진리 속에 그 상처들을 묻어 두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맥이 [오두막]에서 만난 하나님이 이제는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기 원하신다는 것을 안다. 내 속의 그 슬픔과 상처를 끌어내어 나에게도 맥에게 주었던 그 자유와 기쁨을 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 을 가진 당신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네가 용서하길 바란다. 용서란 너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야.

또한 완전히 터놓고 사랑할 수 있는 너의 능력과 기쁨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지.

....

어떤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한다는 의미야."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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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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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는 25살의 젊은 나이에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을 하며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김애란의 첫 소설집이다. 처음 그녀의 작품을 만난 건 『2009년 제9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너의 여름은 어떠니]였고 그녀에 대한 소문은 이미 예전부터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들어 왔었다.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그녀의 책 『달려라, 아비』를 펼쳐 들었을 땐 이미 나에겐 그녀에 대한 선입관으로 가득했다. 마냥 발랄한 내용으로만 가득할 것이리라는 생각..심지어 『달려라. 아비』의 '아비'는 사랑스런 여자의 애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얼마나 그녀를 오해하고 있었는지 절절히 느껴야했고 그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호기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총 9편의 단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아버지'이다. 물론, [달려라 아비]의 '아비'는 사랑스런 여자의 애칭이 아니라 말그대로 '아버지'의 낮춤말 '아비'인 것이다. 하지만 등장하는 아버지는 하나같이 현재의 삶을 함께 공유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과거의 아버지, 또는 상상속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머니와 가난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 것에 대한 분노와 상처와 어두움으로 아버지에 대한 처절한 마음과 복수심을 드러낼 듯도 한데 신기하리만치 그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풀어낸다. 

 

[달려라, 아비]에서의 아버지는 처녀적 어머니에게 끝없는 구애를 펼쳤을 때 결국 어머니가 허락하면서 단, 지금 당장 피임약을 사와야만 한이불을 덮겠다는 단서를 달았을 때부터 뛰기 시작하여 그녀와 어머니를 버리고 간 이후에도 상상속의 아버지는 늘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으로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루네오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는 긍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십수 년동안 쉬지않고 달린 아버지에게 썬글라스를 씌워드리는 그 재치는 정말 아픈 현실의 상황을 유쾌한 상황으로 웃어넘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스카이 콩콩]에서의 아버지는 고추를 보여주면 스카이 콩콩을 사주겠다는 짖꿎은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집나간 아들의 귀가길을 밝히려 손수 가로등을 고치는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긍정이 빛을 발하는 단편은 단연 [사랑의 인사]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는 공원에서 자기를 버려두고 간 아버지를 실종되었다라고 표현한다.


'순간 나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하고 모호한 문장, 먼 곳에서 수백년 전 출발해 이제 막 내 고막 안에 도착하는 휘파람 소리. '아빠가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아버지는 실종된 것이 틀림없었다.' <p.147>


정말 유쾌하지 않은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실종되었다고 받아들임으로써 정신적 상처를 거부하는 자세. 그러한 긍정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랑의 인사]는 정말 사랑스런 작품이다.

 

그외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녀가 잠 못드는 이유], [영원한 화자], [노크하지 않는 집] 등은 작중 인물들에 대한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우리가 흔히 만나는 배경들과 소재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나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했다. 이 작품들에서도 그녀의 긍정적인 매력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 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p.138>

 

우리는 쉽게 상처 받았다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나는 당신에게 이런이런 상처를 받았습니다.' 라며 부모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기도 하고 삶의 고달픈 삶 속에서는 쉽게 좌절하기를 즐겨하고 언제든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그 부정적인 생각의 늪으로 빠져들기를 즐겨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상처를 거부하는 자세, 상처에서 벗어나 삶을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즐거운 상상(야광 반바지를 입고 세계를 뛰어다니는 아버지를 상상하듯.)을 하며 삶을 유쾌하게 살아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자기긍정적인 삶의 세계로의 초대.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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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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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최규석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작품을 접하고서 나는 '그'에게. 그리고 '최규석의 세계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평범하지 않은 생각들과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짧은 우화들 속에 담겨진 사회비판들. 명랑만화 공룡둘리를 사회의 소외된 계층으로 탈바꿈시켜 우리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여유.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읽으면서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 어쩜 이렇게도 뚜렷한 자기만의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궁금해 했었는데 그 다음으로 읽은 『대한민국 원주민』을 통해서 그리고 『습지생태보고서』를 통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그의 근원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77년생인 그는 시골의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나 가지고 싶은 걸 한번도 맘놓고 가져본 적 없는 그래서 포기를 일찍부터 배우게 되었고 운동화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의 가난 때문에 고무신이 최고라 여기며 살았고 누나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입학하는 중학교를 가난 때문에 공장으로 보내자라고 하는 아버지와 중학교는 졸업해야한다는 어머니의 실랑이로 겨우 입학하는 아주 사치스런 것이었다. 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그는 자신이 도시의 자기 또래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가 자신의 세계관을 짧은 단편, 우화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냈다면  『대한민국 원주민』은 자신의 어린시절과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 형성과정을 보여주고  『습지생태보고서』에서는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습지생태보고서』라는 의미는 1화 [의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하위 종(種)의 남루함을 자랑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딱히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은근히 즐기는 듯도 한 뻔뻔함과 간혹 먹이사슬의 모순을 접할 때면 뒤에서나마 구시렁거릴 줄 아는 비판의식도 갖춘 편이다. 허나...전반적으로 일관된 서식 양태를 보여주는 듯 하다가도 이종(異種)으로서의 의태(擬態)가 가능한 상황하에서는 순간적으로 행동 양식이 돌변하기도 한다."

   

그렇다. 습지는 하위 종이 서식하는 곳. 즉 최규석을 비롯 친구 셋과 상명대를 상징하는 사슴인 녹용이(무척이나 응큼한)가 사는 자취방을 의미하고 그 곳은 그들의 서식양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적합한 곳이므로 그들의 생활보고서 즉, 생태보고서라 하겠다.

 

최규석은 자신을 습지에 사는 하위 종으로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 구석구석에는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쉼없이 고민하고 욕망을 쫓을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최규석을 만난다. 심지어 연애에서조차도 그러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연애비용으로 돈을 많이 쓴 그에게 내면의 자아가 나타나 묻는다. "아버지 한 달 용돈 4만원인 거 알지? " 최규석은 이건 그냥 연애일 뿐이라며..죄 짓는 것이 아니고 남들 다 하는 연애일 뿐 (27화 남들 다 하는 것) 이라며 스스로 위안하려 하지만 고통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아가씨가 자기를 붙들고 하소연을 하며 눈물을 흘릴 때 자신은 어떤 위로의 말도 못해줬음에 자책하며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친해질까봐..그 슬픔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질까 봐 무서웠어." (12화 정답)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품는 따뜻한 마음은 있지만 그 약자들의 세상이 얼마나 가슴시린지 알기에 애써 모른척 하려는 그의 독백에 내 마음이 시큰거렸다.

 

『습지생태보고서』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최규석은 좋은 대학을 나와 멋지게 출세하고 싶지만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케 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한다. 그들은 늘 그러한 현실과 욕망 앞에서 무릎꿇고 만다. 그들의 자취방 이야기는 하나같이 재미난 캐릭터에 재미난 이야기들로 넘쳐나지만 도무지 웃음이 나질 않는다. 그들 편에 서서 <힘내!>라고 도닥이고 있는 내 모습만 보일 뿐이다. 어쩌면 나조차도 그들의 생태를 너무도 잘 아는 하위 종인지도 모를 일이다.

 

최규석은 등장 인물 중에 지극히 객관적인 인물을 하나 설정해 두었는데 그 인물이 바로 사슴 녹용이다. 


"번화가에서 이고지고 걸어다니는 것도 쪽팔리고, 그러고 버스 타는 것도 쪽팔리고, 니네들 구질구질한 차림새도 쪽팔리고...하여튼 다 쪽팔려." "속물 근성이라니! 세상의 가치 기준에서 너 혼자만 비켜 서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 너도 좋은 집에서 멋진 차 타고, 스타일 죽이게 입고 폼 나게 살고 싶잖아!?" <p. 123>


어쩌면 녹용이는 최규석의 내면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최규석이 현실과 욕망앞에 늘 고민할 때 그의 마음을 반영하는 욕망의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녹용이의 대사가 그러한 부분을 많이 반영하고 있고 녹용이의 말에 최규석은 늘 고개를 숙이고 만다.

 

『습지생태보고서』는 젊은 청년들이 등장하는 젊은이들의 만화다. 하지만 등장하는 젊은이들 중 어느 하나 유행과 멋과 세상의 쾌락을 아는 자도, 누리는 자도 없다. 실제로  『습지생태보고서』는 최규석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이다. 그리고 생각했던 액수만큼 모였을 때 과감히 연재를 중단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규석은 이 작품 말미에 『습지생태보고서』는 자신에게 전세금을 마련해주었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변했다고 느껴지면 그것이 통장의 잔액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라며 끝을 맺는다. 그는 결국 『습지』로 습지를 탈출한 것이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세상의 욕망 앞에서 맞설 줄도 알고 고민할 줄도 아는 작가. 최규석. 

비록 자신을 습지에서 서식한 하위 종이라 표현하였지만 지금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시각을 간직한 채 세상을 바라본다면 앞으로의 그의 작품들은 더욱 빛을 낼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그것이 싫은 논리적인 이유를 백 가지는 더 댈 수 있는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도망이 아닌.. 선택일 수는 없는 걸까?

패배할 것이 두려워서 출발선에 서기를 피하고 있는 걸까?

혹은 어른이 되는 날을 자꾸만 미루고 있는 것일까?

불안한 눈빛으로 친구의 연봉을 묻거나 부동산 정보를 뒤적거릴 어쩜 슬픈 그 날에

한 때는 이렇게 되지 않으리 노력했노라 자위할 기억을 만들고 있는 것뿐일까?

세상 안으로 성큼 들어서지도 발을 빼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지금

그래도 조금씩은 자라고 있는 것일까?

자기 안의 수많은 모순과 세상에의 두려움을 한가득 품고도

영문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기분 좋은 외침은....

 

단지 어리석음 때문만은 아니겠지?

 

제 54화 그렇겠지? <p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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