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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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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를 '바깥'이라고 달기로 했다.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이라는 의미려니 여겨졌으면 좋겠다. 주류 혹은 집단 가치의 울타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도전적 의미의 아웃사이더도, 세勢에 쫓겨 변두리로 밀려난 주변인도 이 마당의 손님이 될 수 있다. 대개는 사람이겠지만, 공간이나 잊힌 시간, 또 그 시간 속의 이야기도 초대될 것이다.  <'책머리에' 중에서>
  
어느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서 별 10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책이라 평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나도 그 평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은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좋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펴 든 책이었고 꽉차게 마음에 드는 책이다.
 
이 책은 최윤필 기자가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18개월 남짓 목수일을 배우다 신문사에 재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매 주 한 면씩 써야 한다는 조건으로 복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아 부담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그는 스스로를 중심이 아닌 바깥인으로 생각하고 신문사를 그만두었던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어쩌면 관심이 없는)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최윤필 기자가 아니었음 우리가 관심조차 갖지 못했을 대상들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의미가 깊다. 복합상영관의 등장으로 영화관 출입과는 더욱 멀어진 노인들을 위해 고전극장을 사수하려는 젊은 여성대표. 퇴역마 다이와 아라지. 농촌마을을 다니며 마을의 사람들을 배우와 스텝으로 영화를 찍는 떠돌이 영화감독, 연극계의 주연이었지만 하루 아침에 해고당해 택배일을 하는 연극배우, 국가대표지만 박태환 선수의 훈련 파트너로 알려진 수영선수, 절판되는 책, 광고계의 가려진 얼굴 손모델, 프리마 발레리나가 아닌 군무 발레리나, 잊혀져 가는 우표, 잊혀진 가수........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 풍경, 말, 우표..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고 우리 주위의 바깥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대상이 다 주인공이다.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을, 또는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아주 낯익고 친숙한 모습들이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 또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일인자라는 스포트라이트에만  집중하지만 우리가 속한 세상은 일인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일인자든 이인자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우리들의 세상인 것을 깨닫는다.    

책을 읽다보면 내용에 집중하게 되는 책이 있는가하면, 주인공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간혹 책을 쓴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올해 들어서는 『아홉번 째 집 두번째 대문』의 임영태님이 그랬고 이 책의 최윤필 기자님이 그렇다. 이 책을 읽을 땐 소재와 접근이 신선하다 느껴져 내용에 집중하며  읽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이 대상들을 만난,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최윤필 기자에게 집중하게 되고 그가 궁금해진다. 아주 깔끔한 문장들,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그들을 빛나게 하는 태도,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 참 멋진 사람이다. 이 사람이 쓰는 글은 신문이든 책이든 챙겨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괜찮은 책 한 권 읽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추천하고픈 책. 내가 사는 세상에는 힘들지만 이렇게 올곧게 자신의 삶을 날마다 발전시켜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거 하나 깨닫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할테니 언제라도 한번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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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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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꼭 만나야 할 사람,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삶의 고비고비마다 경험했었다. 늘 함께 했으면 하는 그 소중한 사람들은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내 삶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다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 내 삶의 영역에서 사라져 갔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내 삶에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 만남의 끈을 영원으로 생각지 않는 여유가 생겼다. 언젠가는 헤어질 만남인 것을 알기에 끝까지 붙들어두고픈 욕심을, 내려놓는 법도 알게 된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그저 너와 내가 만난 것, 그 자체가 감사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인생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 주인공 '마리오 히메네스'에게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그의 인생에서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었을까.

 

어부로 평생을 살아갔을 마리오는 고기잡이에 정을 못붙인다는 이유로 우연히 우편배달부라는 직업을 갖게 되고 마리오가 맡은 구역의 수신인이 오직 한 사람, 시인 '파블로 네루다' 뿐인 운명을 만나게 된다. 네루다와의 만남으로 인해 마리오의 삶은 점차 변화를 겪게 되고 여자 앞에서는 부끄러워 말 한마디 못하던 그가 네루다의 시를 거의 외우다시피하여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제법 그럴싸한 시적 언어를 구사하여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노동자 모임에서는 시낭송을 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사람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멋진 만남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인 네루다와 진심어린 절친이 되어 가는 그 과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웃게도 하고 애절하게 만들기도 하고 마리오의 입장에서 네루다를 존경어린 눈빛으로 보게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파리에서 머무르던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편지를 보내어 녹음기를 가지고 자신이 머물렀던 섬, 이슬라 네그라의 모든 소리를 녹음해 달라고 하는 부분. 네루다의 편지에선 마리오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어 내가 마리오인 것 마냥 기분이 좋았고 마리오가 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까지 섬세하게 하나씩 녹음하는 부분들은 정말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감동이다.

 

또 한 가지, 네루다를 가까이 하면서 마리오의 메타포(시적비유)는 일취월장하게 되고 여자 앞에선 말도 못하던 마리오가 그 메타포로 아름다운 아가씨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빼앗았으니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어쩌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것이다. 여자 때문에 마음이 불타 죽어가던 한 남자를 살렸으니 말이다.

 

하룻밤, 그리고 단숨에 읽어버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변화되어가는 마리오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네루다와 친해지는 과정, 사랑하는 여자 베아트리스와의 이야기. 조금 야한 묘사도 많지만 아주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어서 그마저도 재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훈훈한 감동들.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며 그 만남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인생에 빛이 되어 가는 그 과정이 참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이 내 인생의 꼭지점마다 존재했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되는 시간들이어서 의미가 깊다.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마리오는 손을 가슴에 댔다.

혀까지 치고 올라와 이빨사이로 폭발하려는 환장할 심장 박동을 조절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리오는 걸음을 멈추고 고귀한 수신인의 코앞에 불경스러운 손가락을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선생님은 온 세상이, 즉 바람, 바다, 나무, 산, 불, 동물, 집, 사막, 비……."
"…… 이제 그만 '기타 등등'이라고 해도 되네."
"……기타 등등!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루다의 입은 턱이 빠질 듯이 떡 벌어졌다.
"제 질문이 어리석었나요?"
"아닐세, 아니야."

 

<p.31>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한 '일 포스티노'도 꽤 잘 만들어진 영화이니 함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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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예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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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님의 작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처음 접하고서 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고 유쾌한 문체와 독특한 그의 소설 전개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신선했기에 그의 이름 석자는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 이후에 만난 박민규님의 작품은 <제 9회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의 수상작 [근처]>. 박민규님다운 유쾌한 문체가 이어지리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문체, 전혀 낯선 모습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무척 매력적이었다. 전혀 새로운 모습의 작가라... 그래서 더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번째 작품으로 만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떤 예상조차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를 대할지 사뭇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다.

 

책을 읽으며 한숨을 쉬기를 여러번, 내가 뱉어낸 탄식들은 아... 음... 휴... 역시 박민규님의 또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내용 또한 강렬하다. 끝맺음은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카멜레온같은 작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들의 열아홉, 스무살의 젊은 초상화. 하지만 어느 소설에나 으례히 나오는 미인은 이 소설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한다. 자기 의도와는 무관하게 못생긴 모습으로 태어나 세상의 무관심과 조롱, 멸시로 인한 상처가 가득한 한 여자와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들의 사랑을 이어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어릴 때의 상처 또는 트라우마가 우리의 사랑이라는 감정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는 것...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그 상처가 사랑을 더욱 깊게도 또는 더욱 깊이 파고들지 못하게도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잘생긴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젊은 날을 보내고 끝내 버림받은, 못생긴 엄마를 둔 주인공. 그는 그런 어머니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음이 고스란히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주 못생긴 여자에게 전이된다. 읽는 이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주인공이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 여자를 사랑하고 그녀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엄마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길이고 자신이 조금이라도 엄마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엄마의 불쌍한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픈 마음이 곧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백지연의 <피플>에 김c가 출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생김새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현 시대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잘생기고 이쁜 것만을 손꼽는 것은 단지 대중매체로 인한 유행일 뿐이라고 피력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유행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깊게 뿌리박은 이념이 되지 않았을까. 몇 년전까지만 해도 쉬쉬하던 성형수술도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고등학생들의 졸업 선물이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내가 아는 누군가는 자기의 이상형이 착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예상외라고 했더니 웃으며 하는 말이 가관이다. 얼굴이 이쁘면 착한 거고 몸매가 이뻐야 착한 거고 나이가 어려야 착한 거라는 거다. 착하다는 의미또한 공공연하게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이쁜 여자, 잘생긴 남자만을 우상시하는 이러한 세대에 못생긴 사람들이 갈 곳이 없단 말인가. 소설처럼 그렇게 첫 눈에 심장이 멎을 정도로 마음에 콕 박혀서 사랑하게 되는 일은 드물지 않은가.

 

박민규님은 길고 긴 연서를 쓰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이야기하면서 인류는 단 한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해 주지 않기에 이 소설은 비현실적인 소설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리고 시원하게 한마디 한다.

"저는 아름다움에 대해, 눈에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인간의 얼굴에 대해 말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으며 참 많은 공감을 했다. <작가의 말> 일부분을 이곳에 옮겨 적으며  그의 생각에 강한 공감을 표하며 힘을 싣고자 한다.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 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저는 당신이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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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걷고 싶은 길 - 길은 그리움으로 열린다
진동선 지음 / 예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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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어 했던 시기에 나에게 위로를 주고,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의 기쁨을 맛보게 한 것이 있다. 매일같이 습관처럼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새 나는 그 모든 풍경 속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사진은 그렇게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내 마음을 깊이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포토에세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시간 나는 틈틈이 후루룩 넘겨 읽으며 내 눈길 머무는 곳의 풍경과 작가의 글에 내 마음을 곧바로 투영시키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홍석님의 <몽중인>과 이병률님의 <끌림>은 나의 오랜 친구이다. 이병률님은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오랜 여행의 자취와 그로 인한 잔잔한 기록들이 나의 마음을 많이도 흔들어댔었다. 그리고 내가 참 좋아하는 이홍석님은 사진으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분이시다. <몽중인>에서는 여행의 흔적을 통해 사랑과 인생을 달콤쌉사름하게 읊는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으로 내 마음 속 상처와 그리움을 다독이며 사진을 통한 소통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몽중인>, <끌림>이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통해 인생을 그려낸 포토 에세이라면 <그대와 걷고 싶은 길>은 오직 길을 위한, 길을 이야기하는 포토 에세이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길에서 진동선님은 그리움과 고독을 이야기하며 사진작가로 여러 곳을 다니며 참 많은 길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으로부터 한때, 단 한 번 만난 길이 사진 속의 길이며 렌즈를 통해서 단 둘이, 두 육체가 우연히 하나의 시간과 공간에서 딱 한 번 만난 그때 그곳의 그리움이다 <p.7>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진동선님에게 길은 그리움인 것이다. 

 

길을 통한 고독과 그리움의 풍경은 아무래도 누님과 관련이 깊다. 시집살이를 못 견뎌 친정으로 도망쳐온 누님이 신작로에서 울고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길에 대한 낙인이다....지금도 그런 풍경 앞에서 목이 메는 까닭은 누님이 안긴 유년의 상처이다. <p.6>

 

진동선님의 유년의 상처가 사진감상에 더욱 애잔함을 더해준다. 트라우마는 아닐지라도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누님의 영상이 길을 새로운 이미지로 형상화 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동선님은 크게 두가지 길을 이야기한다. 홀로 걷고 싶은 길과 그대와 걷고 싶은 길..

홀로 걷고 싶은 길이란 낯선 길이 낯선 시선을 통해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하고, 낯선 내가 낯선 곳, 낯선 시선을 통해서 내 안의 나를 새롭게 바라보는 자기성숙의 길이다. <p.15>

 

그대와 걷고 싶은 길은 소중한 사람과 걷고 싶은 길이다.

즉 언젠가 반드시 사랑하는 그대와 걷고 싶은 희망과 염원을 피력하는 미래의 길이기도 하다.

그대와 걷고 싶은 길은 빛나는 길이다.

그대와 걷고 싶은 길은 사랑하기 위한 길이다. 사랑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길이다. <p.100,101>

 

진동선님이 담으신 길을 보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길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그 길에 넋을 놓고 만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드림로드를 걸었던 나는 8km의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처음은 혼자 걷고 싶은 길로 걸어보며 나를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내려놓기도 하고 깊은 사색을 하며 걸어보기도 했다. 되돌아오는 길에서는 그 길은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싶은 길로 바뀌어 행복한 상상으로 미소짓게도 했다. 지금은 그 드림로드가 나에게 그리움이 되었고 그 길을 걷는 동안 의미를 부여하게끔 도와준 진동선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산책이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하면서도 평소에 잘 걷지 않는 나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내가 걷었던 길을 떠올려 보면 비오는 날 한참을 서서 펑펑 울었던 길..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을 이야기하며 걸었던 길..

너와 내가 마주하며 한참을 바라보았던 길...

서울 한복판 무작정 달렸던 그 아픔의 길...

내가 걸은 길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는데 그립고도 아팠던 길들만 아련하게 떠오른다.

 

어떤 길에서는

너무 빛나서 쓰라린 적이 있고,

어떤 길에서는

바람 때문에 이별을 고한 적이 있고.

어떤 길에서는

하염없이 지켜보다 놓쳐버린 적이 있다.

길은 그렇게 채우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떠나지 못한다.

<p. 24>

 

진동선님의 말씀처럼 길은 그리움이다. 그 길을 걸었던 내가 그립고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소중한 사람들이 그립다. 하지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많고 그 길을 어떤 그리움으로 만들어갈 지는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두 손 맞잡고 걸으며 소중한 추억들로 채우고픈 소망하나 가져본다.

 

혹여나 혼자 걸을지라도 고개 숙이며 눈물 뚝뚝 흘리는 길이 아니라 희망에 가득 찬 길을 걸어가고 싶다. 진동선님의 <그대와 걷고 싶은 길>은 사랑하는 이웃님에게 선물받은 책이라 더욱 의미가 깊은 책이라서 참 정성스레 읽었던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게 해준 그 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또 한 권, 후루룩 넘겨 아무곳이나 읽어도 마음이 동하는 책 하나 만나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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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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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만난 선배 격의 많은 여행자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은 소리는

'이제 당신도 사막을 여행해야 할 때'라는 소리였다.

사막에 앉아서 밤을 응시하라는 소리들이었다.

세계 각국의 고수들이 늘어놓는 사막 여행담은 가히 눈시울을 붉힐 만큼,

가슴에 무늬를 만들어놓는 그 무엇이 있었다.

너무 강렬해서 약간은 서글프기도 한 그 무엇.

살아 있는 생명들을 모조리 삼켜버릴 듯한 밤의 푸르름,

별의 느린 동선까지도 잡아챌 수 있는 기적에 가까운 시력,

그리고 절대의 고요, 절대의 침묵, 강박에 의한 외로움-.

그것들이 후배 여행자들에게 들려주었던 수다스런 '사막'이었다.

 

사막에 가자.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곳 또한 사막이지 않겠나며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막에 가서 제대로 울다 오자.

 

이병률 산문집 『끌림』 중 #037. 사막에 가자

 

나에게는 '사막'에 대한 동경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그 고독한 모래 사막 한 가운데 앉아 밤을 응시하는 것.. 그 처절한 고독 안에서 나를 대면하는 것..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면 나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내 자신을 깊이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내 속의 쓴뿌리들을 녹여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막이 좋아 무작정 사막으로 떠난 자유로운 영혼 싼마오를 무척이나 동경하고 좋아한다.

 

싼마오의 '사하라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읽고서 바로 '흐느끼는 낙타'를 구입해 놓고는 한참을 기다렸다. 곧바로 읽지 않았던 이유는 싼마오와의 만남을 한번의 찐한 만남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랄까.. 그렇게 오랜 틈을 두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흐느끼는 낙타'를 펼쳐 들게 되었다.

 

'사하라 이야기'는 싼마오와 호세가 사하라 사막에 정착해 펼쳐가는 알콩달콩한 신혼 이야기와 감당못할 이웃들, 사하라위족과 정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여서 무척이나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흐느끼는 낙타'는 마음이 물컹거릴 정도로 슬픔이 밀려오는 순간을 많이 만나게 되어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감동과 슬픔의 순간을 만나면서 한편으로는, 퍼주기를 좋아하고 도와주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싼마오가 사하라 사막에 정착하는 시간이 깊어지면서 또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그 사랑도 깊이를 더해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따뜻하기도 했다.

   

말을 못하는 벙어리 노예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 줄 아는 그 마음. 사람들에게 창녀라고 손가락질 받는 한 여인을 편견없는 시선으로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으로 품어주었던 그 마음. 홀로 버려져 발이 문드러져도 병원에 갈 수 없어 피고름이 나는 할아버지를 다른 이웃들처럼 모른 체 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처럼 가시는 그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 마음. 그녀에게는 모두가 그 어떤 것도 벽이 될 수 없는 '샤헤이피'[친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무작정 정착하게 된 그 사하라 사막은 결국,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밝음과 어둠, 숨겨 두었던 그 깊은 곳까지 다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녀가 묘사해주는 사막이 참 좋다. 그녀가 사막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면 나는 마치 그 사막 한 가운데 놓여져 그녀가 말하는 사막의 배경이 된 듯 그렇게 빠져들었다.

 

이른 아침의 사막은 물로 씻어 낸 것처럼 깨끗했다. 푸르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부드러운 모래언덕이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때의 사막은 잠든 여인의 거대한 몸뚱이 같았다. 가냘프게 숨 쉬는 듯 물결치는, 침착하고 고요하고 깊은 아름다움은 가슴이 아프도록 감동적이었다. <p.19>

 

맑고 상쾌한 밤이었다. 달빛이 망망대해 같은 모래언덕을 하나하나 비추었다. 초현실파의 꿈처럼 신비로운 그림이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이런 사막의 밤 풍경 속에 있노라면 나는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p.26>

 

이 세상에 제2의 사하라는 없다. 사하라 사막은 단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드러내고, 영원히 변치 않을 하늘과 대지로 그의 사랑에 묵묵히 대답한다. <p.125>

 

내가 사막에 대한 환상이 있다는 것을 안 싼마오는 주저없이, 사막의 황폐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고 사막은 그저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도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사하라 이야기' 때와는 달리 '흐느끼는 낙타'에서는 싼마오마저도 그러한 사막을 힘겨워했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막을 떠나 카나리아 제도로 건너 가 살게 된다.

 

나는 아득한 사막 위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떨림이 그치지 않았다. 사방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며 그들의 모습을 덮어 버렸다. 바람마저 갑자기 소리를 멈추었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도살장에서 들려오는 낙타들의 슬픈 흐느낌만이 점점 크고 높아져 갔다. 온 하늘에 낙타들의 거대한 울음소리가 가득 퍼지며 천둥소리처럼 나를 뒤덮었다. <p.151>

 

사막에서 당한 그 슬픔은 책을 읽는 나로서는 그저 먹먹한 아픔으로 대하면 그만이지만 그 슬픔 가운데 있었던 싼마오에겐 떠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힘듦이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 싼마오.. 그녀에게 사막은 아마도 사랑하는 <호세>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리고 사랑하는 <호세>를 떠올리면 그와 함께 그 아름답고 막막하고도 처절했던 사막이 떠오르지 않을까...

 

중국인 싼마오, 스페인 사람 호세. 참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지만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나는 '사하라 이야기'에서 호세에게 흠뻑 빠졌더랬다. 싼마오가 사막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더니 미리 가서 보금자리와 일자리를 다 마련해두고 기다렸던 남자...

 

하지만 사랑이 깊으면 그만큼 이별도 빨리 오나보다. 신은 당신보다 아담이 이브를..혹은 이브가 아담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시는 걸까. 호세가 떠난 싼마오는 그저 애처로워서 바라보기 힘들었다. 내가 힘들어서 차마 못보겠더라.

 

싼마오 그녀는 여행도...사랑도 그렇게 진실되고도 자유롭게 할 줄 알았던 참 멋진 여자다.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친근한 친구, 싼마오가 나에게도 자유하라 한다.

 

지금은 소심하게 자유로운 영혼을 꿈꿔보지만... 나도 기필코 자유로워지리라... 싼마오, 그녀처럼.

 

황야에 나 있는 단 하나의 아스팔트 길을 나는 날마다 지나간다. 죽은 듯 고요한, 생명도 없고 슬픔이나 즐거움도 없는 듯한 길이지만, 사실 그 길도 세상 어느 길이나 마찬가지로, 좁은 길이나 굽은 길이나 마찬가지로, 자기의 길손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느릿느릿 흐르는 세월을 오고 간다. 내가 그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은 세상 어느 길에서도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다. 특별한 의미도 없고 기록해 둘 만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는 '백년 인연이 쌓이면 배를 같이 타고, 천년 인연이 쌓이면 부부가 된다.' 고 하지 않았던가. 나와 악수를 나눈 손 하나하나, 찬란한 미소 하나하나, 평범한 말 하나하나를, 이렇게 옷깃을 스치는 바람처럼 무심히 흘러 보내고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여기서는 모래 한 알, 돌멩이 한 개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광경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생생한 얼굴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겠는가? <p. 31>

 

이따금 찾아드는 고독은, 나라는 인간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다 열지는 않았다. 호세는 내 마음속의 방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심지어 한자리 차지하기도 했지만, 나는 나만의 구석자리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것,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결혼도 그 구석자리를 없앨 수는 없었고, 나의 동반자에게 전부 열어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가 아무 때나 뛰어들어 소란을 피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었다.

 

많은 부인네들이 내게 말했다. "그렇게 남편을 내버려 두면 위험해요. 손아귀에 꼭 움켜쥐고 있어야지." 그들은 그런 말을 하면서 험악하게 손짓을 하고 주먹을 움켜쥐기까지 했다. 마치 자기 남편이 어린아이인 양 손 안에 쥐고 흔들려는 것 같았다. 내가 대답했다. "자유롭지 못한 건 죽느니만 못하죠. 나는 남편이 죽는 건 결코 바라지 않는데요. 다가 문제는 남을 구속하다 보면 구속하는 사람까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예요. 난 그렇게 되고 싶은 맘은 전혀 없거든요. 하하!"

 

자유라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특히나 마음의 자유는 더욱 견고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넘친다해도 충분하지 않다. <p.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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