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뚝딱뚝딱 누리책 4
미야자와 겐지 시, 야마무라 코지 그림, 엄혜숙 옮김 / 그림책공작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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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 / 바람에도 지지 않고 / 눈에도 /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 튼튼한 몸으로 / 욕심은 없이 /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 하루에 현미 네 홉과 /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 비에도 지지 않고, 가서 돌보아 주고 /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미야자와 겐지)

sns 친구 중에 정갈한 손글씨로 좋은 문장과 시 필사본을, 때로는 클래식을 직접 선곡해서 cd로 보내주시는 분이 있다.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언제 보낸다 말씀도 없이 보내 주시는데 정성어린 선물의 깊이와 귀함을 알게 해주시는 분이다. 이번에 도착한 필사본은 읽으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주 가끔 그런 글을 만난다. 영혼을 울리는 글, 그 글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현재의 나를 자각하게 하는 글, 글쓴이의 마음과 삶의 태도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글… 미야자와 겐지의 시가 그랬다.

며칠 계속 시에 붙들려 있다가 혹시나 하고 미야자와 겐지의 시집이나 책이 있나 검색해보니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제목으로 그림책이 몇 권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고른 그림책은 미야자와 겐지의 시에 야마무라 코지가 시의 정서에 맞게 그림을 그린 그림책 공작소의 책이다. 한 페이지에 시 한 구절. 그리고 마지막 장엔 일어 원문과 번역된 영문본, 그리고 미야자야 겐지에 대한 옮긴이의 글이 실려 있다.

미야자와 겐지에 대해 자료를 계속 찾아보니 시는 그의 삶 자체였다. 37세에 급성 폐렴으로 죽기까지 동화와 농사 관련의 책을 쓰며 아이들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살았던 그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은하철도 999>의 원작을 쓴 사람이기도 했다.

앞서 읽었던 <욕망과 영성>에서도 느꼈지만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게 남의 욕망을 모방하며 유행을 쫓고,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라고 그에 속하지 않을 리 만무한데, 그러한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서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침묵 속에서, 자발적 고독 속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중에 만난 미야자와 겐지의 시는 뭐랄까. 앞으로 침묵과 고독 속에서 이 시 하나만 붙들고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이 시는 시가 아니라 기도문이다. 원문을 찾아보니 불교식 기도문이 한 단락 더 있었다.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는 한 사람의 기도, 염원, 소망… 하루치의 양식에 만족하면서 동서남북의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마음으로 섬기고, 보듬어주고. 그렇게 또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 칭찬도 미움도 받지 않고 그저 멍청이라고 불리우고 싶은 사람. 지금도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되는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알아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삐죽 솟아나와 나를 찌른다.

지금은 직장 안에서 관계와 크고 작은 문제를 통해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가는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말이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지만, 어떤 순간에도 제대로 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때가 되면 정말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칭찬도, 인정도 받지 않고 그렇게 사랑하고 보듬으면서, 같이 울어주고 같이 부대끼면서 살고 싶다. 정말,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이 시는 정말 신기하게도 읽을수록 울림이 깊다. 이 시를, 가볍게 지나치지 않고 마음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선물하면 좋을 책이다. 좋은 시가 담긴 그림책을 선물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인생의 의미를 선물하는 것일 테니까. 내게 찾아온 좋은 시가, 그리고 이 그림책이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려고 매일 애쓰고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계속 흘러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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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7-01 0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로 만든 그림책이 제가 찾은거만 세 권은 되더라구요 한국 작가 그림책도 있고…저는 좀 더 귀여운(?)버전 그림책을 눈독들이다 보게 되네요.

안나 2023-07-01 09:42   좋아요 1 | URL
아, 저는 두 권을 봤는데 한 권 더 있었네요. 한국 작가 그림책도 좋던데 제게는 이 그림책이 좀 더 와닿더라구요. 시도, 그림도 좋아서 선물할 때는 선물받는 사람 성향에 따라 달리 해도 좋을 것 같네요. 행복한 토요일 보내시고요 :)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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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의 <눈부신 안부>, 제목과 표지는 그야말로 참 눈부신 조화가 아닐 수 없다. 늘 단편 위주의 소설을 쓰다가 등단한 지 12년 만의 첫 장편이라 하니 그 사실 만으로도 설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처음을 함께 공유한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니까. 백수린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좋아하는 지인은 그녀를 “다정함의 작가”라 불렀는데, 다정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을 다정한 시선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이겠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제목의 “안부”에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안부, 누군가의 평안과 근황을 궁금해하며 마음을 쓰는 일. 그래서 안부에는 그렇게 기분 좋은 수식어가 많이 붙나 보다. 다정한 안부, 따뜻한 안부, 반가운 안부… 그중에서도 제일 좋은 안부는 기다리는지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던 당신의 안부가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미소가 지어졌던 이유는 우리는 각자, 누군가의 “당신”이라는 것. 문득, 내 안부를 기다리는 사람의 당신이 되어 다정한 안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이에게 내 안부가 눈부신 안부처럼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다면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는 과연 누구에게 도착하는 안부일까. 그리고 어떤 색깔의 안부일까. 표지처럼 정말 쨍하게 파란 빛깔의 안부일까. 궁금증은 더 커져만 갔고 읽을수록 이야기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소리 없이 강합니다." 그만큼, 강력한 흡입력이었다.

소설을 읽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소설 읽기란 사람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것과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에 대한 이해가 되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저 읽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소설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환경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내 삶에서 녹여내는 것, 그것이 소설을 읽은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눈부신 안부>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참사 유가족의 삶과 독일 파견 간호 노동자의 삶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해미의 눈으로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특별한 시간이었다. 파독 간호사(책의 표현) 중에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떠난 사람도 있지만 자유를 찾아서, 그리고 좋아하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 깊은 영향을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독일에 간 사람도 있었음을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한 가지 사건의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가장 불행한 이야기로 뭉뚱그려 생각하며 산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106쪽)

열두 살이 되던 해에 가스 폭발 사고로 언니를 잃은 해미는 그 사건을 통해 사이가 멀어진 부모님이 잠시 떨어져 있게 되면서 독일로 유학을 떠나는 엄마를 따라 동생 해나와 함께 가게 된다. 그곳에서 친이모인 행자 이모를 만나게 되면서 파독 간호사로 고국을 떠났던 마리아 이모, 선자 이모 등 여러 이모를 만나게 되고 그녀들의 딸과 아들인 레나, 한수와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언니를 잃은 아픔과 죄책감의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암에 걸린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주기 위해 그녀의 아들 한수는 해미, 레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그들은 선자 이모의 일기를 훔쳐 읽으며 K.H. 라는 이니셜의 단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파독 간호사인 이모들의 삶을 취재하게 된다.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거짓말을 거듭하면서 내가 무엇을 거짓으로 말했는지가 헷갈리기 시작한다는 사실뿐이었다." (34쪽)

해미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이 힘들어 독일 생활을 하면서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거짓말”은 내가 주의깊게 본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의 주요 키워드이다.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 해미가 선택한 것이 거짓말이었고, 그것은 해미 자신이 살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었다. 거짓말 덕분에 모두가 편안하고, 해미도 거짓말에 숨어 보호받는 듯 보였지만 결국 그것이 해미 인생의 덫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미는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레나와 한수에게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잊힌 사람처럼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나도 어릴 적부터 내 삶을 위협하거나 불안에 빠뜨리게 하는 많은 요소를 핑계와 거짓말, 책임 전가 등으로 나를 보호하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만 알면 그만인, 가장 쉬운 선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 알고 남은 모르지만 가장 쉬운 선택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인생에서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씨앗임을 안다. 자신의 거짓말을 기억하기 위해 자물쇠 달린 일기장에 매일 기록하며 불안하게 살았던 해미처럼 그러한 선택은 삶의 평안을 앗아가는 것임을.

"생각해야 해. 내 안의 누군가가 다시 속삭였다. 생각해야만 해.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더이상 도망치기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264쪽)

<눈부신 안부>에서 특히 집중해서 본 부분은 참사 유가족이라는 환경 안에서 아픔을 이겨내고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한 사람, 주인공 해미의 성장이었다. 해미는 자신이 살기 위해 선택한 거짓말의 덫에서 또한 살기 위해 지난 시간을 바로잡으려고 용기를 내었고, 그 용기는 자신을 끝까지 기다려 주며 다정하게 곁을 지켜준 행자 이모와 우재 덕분이었다. 우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더이상 도망치기만 하면서" 살아서는 안 되겠기에 해미는 다시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 찾기에 나서게 되면서 선자 이모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삶 또한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304쪽)

언젠가 읽은 책에서 "나의 실존은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표현에서 위안을 얻은 적이 있다. 해미는 그 실존의 불안과 두려움 위에 참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두려움까지 덧대어졌다. 얼마나 불안한 삶이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래서 해미는 거짓말을 통해 자신을 그토록 보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해미가 비로소 과거의 자신에게서 놓여놔 제주로 향할 때, 해미에게서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눈부신 안부"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삶을 구원한 그녀의 용기, 그리고 거짓말 또한 어쩌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해미의 방법이었겠구나. 해미 덕분에 많은 사람이 웃을 수 있었던 것도 해미의 다정함 덕분이었겠구나... 해미에게 정말 수고 많았다고, 너의 착한 마음이 많은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웃게 했다고 마지막으로 나도, 안부를 전하고 싶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한수를 구원해주고 싶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구원하고 싶었던 건 정말 한수였을까?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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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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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이어서 읽기 전부터 내 호기심을 끌었고, 기대가 되었던 책이다. 사람에겐 “마음” 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안에 또 다른 자신, 바깥으로 결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이 있다. 마음이 평안한 사람은 얼굴이 밝고, 마음이 상한 사람은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은 마음이 곧 나를 드러내는 근원적인 곳이기 때문이겠고,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한 성경의 말씀은 마음에서 모든 선과 악, 모든 죄가 비롯된다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음>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는 주인공 화자가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경위와 그를 따르며 교제하는 내용이며, 2부는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가족 안에서의 주인공의 입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3부는 선생님이 남긴 유서의 내용이 편지글 형식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청년은 도쿄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학생으로 바닷가에서 만난 한 중년의 남자에게 매료되어 그를 선생님이라 칭하며 그의 집에 자주 찾아가 관계를 형성해 간다. 어떤 이에게는 동성애적인 코드로도 해석할 수 있겠으나 끝까지 읽은 내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매력,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흠모로 보였다. 그렇게, 무언가 깊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선생님은 늘 과묵하고, 바깥 세상에는 무심한 듯 냉소적이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일지라도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이 청년은 그저 존경스럽기만 했다.


“선생님이 갖고 계신 인간에 대한 그와 같은 굳은 생각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냉철한 눈으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현 세태를 관찰한 결과일까. 선생님은 세상을 관조하는 분이셨다. 그렇다면 서재에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만들어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 같았다. 선생님의 그 굳은 생각은 살아 있는 유기체 같았다. 불로 달구었다가 차갑게 식힌 석조 가옥의 기둥과는 다른 것이다. 내 눈에 비친 선생님은 한 사람의 사상가였다.” (50쪽)


어느 정도의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서의 외곬수 같은 고집스런 생각은 책과 깊은 생각, 현 세태를 관찰한 것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철저하게 자신이 경험하고 부딪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운 흔적인 것을. 청년의 눈에 비친 선생님은 냉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상가였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도대체 어떤 경험이 이 사람을 이토록 세상에 비관적이고,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여 고독한 사상가로 보이게 한 것인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자네도 예외가 아니었지. 하지만 더 이상 자네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거짓을 말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이거든.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스스로 양심에 한 점 거리낄 것 없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100쪽)


자신의 무심함에도 아랑곳 없이 자신을 찾아오는 청년에게 선생님도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생겼고, 자신 안에 숨겨 둔 비밀을 이 청년에게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고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멈추고, 한참을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는데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단 한 명,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깊은 고뇌로 덩어리진 맘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한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마음>에서 느껴지는 선생님의 마음을 그려 본다면 황폐한 전쟁터, 메마른 땅, 물도 길도 없는 메마른 땅이지 않을까. 그 단 한 명에게 “마음 놓고 흉금을 터놓”는다는 것은 그 메마른 땅에 물길을 여는 것이 될테다.


“나는 그때 품었던 나의 질투심을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네. 이미 몇 차례 언급했다시피 사랑에는 이러한 감정의 움직임이 그림자처럼 붙어다닌다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지. 더구나 다른 사람이 보면 신경도 쓰지 않을 사소한 일에도 그 또 하나의 감정이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지. 이건 여담이네만 이런 질투심은 사랑의 반쪽 부분이 아닐까 싶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는 이런 감정이 점차 엷어져가는 걸 느꼈네. 그와 동시에 애정도 결코 예전처럼 뜨겁게 타오르지 않았고 말이네.” (274쪽)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아버지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와 있는 청년에게 선생님은 유서가 담긴 편지 한 통을 보내고 그렇게 마지막 3부는 편지의 마무리와 함께 끝이 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믿었던 숙부에게서 느낀 배신, 그리고 사랑에 눈 먼 마음에서 불러온 비극이 선생님의 인생을 그토록 비관적인 태도로 살아가도록 한 것임을 알게 되는데 유서는 곧 선생님의 참회록이고, 선생님의 마음 그 자체였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성경의 잠언 말씀에도 있듯이, 선생님의 마음에 자리잡은 깊은 원망,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질투와 시기, 사랑하는 이에 대한 욕망은 차츰 자신의 삶을 좀먹었고, 성급하고 그릇되며 지혜롭지 못한 결정으로 이끌었으며, 결국 자신의 삶까지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의 유서를 읽으면서 내 안에서 분연히 일어났던 지난 날의 감정들을 만나게 되었고, 악해서가 아니라 단호하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여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 데서 오는 많은 어리석은 행동과 결정과 마음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읽는 내내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지글이다 보니 내게 보낸 편지처럼 읽혀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 과묵한 선생님의 마음에 오래된 죄책감과 불안한 감정,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면서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무기력과 자신을 향한 불신. 그러한 감정들로 점철된 마음, 그 마음이 이 책의 <마음>이었다.


바닷가에서 청년이 우연히 선생님을 발견하게 되고 급속도로 흠모하고 존경하게 된 것은, 어쩌면 선생님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한 사람에 대한 열망이 그 청년의 시선을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청년을 통해 선생님은 인생을 두고 최선의 참회를 하게 되면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홀가분하게 자신의 죄를 스스로 책임지며 떠났겠구나… 하지만, 다 읽고 나서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모든 이야기를 다 읽고 그 감정을 다 알게 된 남은 이는 어떻게 될까... 사람의 마음에 분노와 원망, 시기와 질투가 시작되면서 결국 영혼의 사망이든, 육신의 사망이든 끝은 사망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절절하게 아프게 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서 더욱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내 안에 들어오는 욕심, 그 욕심을 다루지 못해 찾아오는 질투와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을 책을 읽고 나서도 마음으로는 책을 끝내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내 안에 조용히 자리잡으면서 5월의 끝날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의 마지막 장을 겨우 닫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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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정이현 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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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서는 아득함과 서글픔을, 이별에서는 서늘함을, 죽음에서는 온 몸으로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를 만난다. 얇고 짧지만 묵직하고, 여운이 길고도 긴 소설 세 편이었다. 한 번, 두 번... 맛보면 맛볼수록 더 진하고 깊은 맛이 느껴지는 소설을 만난 것이 무엇보다 반갑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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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산티아고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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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힘들지만 놀라운 길이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며 초대이다. 이 길은 당신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비워버린다. 그리고 다시 당신을 세운다. 기초부터 단단하게. 이 길은 당신으로부터 모든 힘을 가져가고 그 힘을 세 배로 돌려준다. 당신은 이 길을 홀로 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길은 그 비밀을 보여주지 않는다. (360쪽)


아주 오래전에 서영은 작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인상 깊게 읽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동경하게 되면서 언젠가 꼭 걷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로망이겠지만 실제로 그 길 위에 서지 않는 이상 영영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꿈의 길로 남고 마는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일 것이다. 이번에 하페 케르켈링의 순례기를 읽으면서 마음에 한 점 흔적으로만 남은 그 꿈에 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는데 꿈은 얼마나 자주 불을 지펴주느냐에 따라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는, 그래서 때마다 적절한 부채질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저자는 건강에 적신호가 계속 울리는 것에도 아랑곳없이 일을 하다가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결국 담낭이 터졌고 심근경색까지 의심되는 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 간다. 이후에 사고의 전환을 위한 시간으로 순례의 길을 택해 프랑스 생장피드로프에서 출발해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프스텔라까지 장장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순례길을 떠나게 된다. 어쩌면 순례의 길은 내가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 그 길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MC인 저자답게 유머가 넘치는 그의 입담에 읽다가 자주 소리내 웃었고, 고통의 순간에서도 유머로 승화하는 그에게 깊이 매료되기도 했는데 순례길이 길어질수록 그렇게 유머가 풍부하던 저자마저도 짜증과 분노와 부정적인 생각이 그를 덮쳤다. 다녀와서 기억에 의존해서 적은 것이 아니라 매일 일기로 남긴 것이다 보니 마치 동행하는 것처럼, 그의 감정 변화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너무도 인간적이었고,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내가 순례길을 떠나게 된다면 저자보다 못하면 못 했지, 더 나을 순 없겠구나 싶었다.


흔히 갖는 환상 중에 결혼이 있는데 현실은 얼마나 다른지 모두가 인정하는 어떤 법칙처럼 얘기하곤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환상을 가지고 떠났다가는 바로 항복하고 말리라는 것. 실제로 몇천 명이 출발했다가 끝까지 도착하는 이는 20%도 채 안 된다는 것에서 산티아고 길은 결코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를 만나고 싶어서, 또는 신을 만나고 싶다는 목적으로 많이 떠나는 순례길 중의 하나인데 저자의 얘기를 읽다 보면 실제로 많은 사람이 친구들과 떠났다가 결국 서로 합의해서 홀로 걷는 것을 택한다고 한다. 마치 인생길 같았다. 함께 걷는 이가 있다 해도 결국 혼자 걷는 길, 혼자 걸어야만 하는 길. 그렇게 홀로 침묵 속에 걸으며 자신과 만나고 어느 순간에 이르면, 길 위에서 통제할 수 없는 울음이 터지면서 비로소 신과 조우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정말 거짓말처럼, 불현듯.


저자가 걷는 순례길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한 명 한 명의 묘사가 참 재밌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함께 걷다가 평생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거울처럼 자신의 못난 부분을 들여다보게 하는 사람도 만나고, 정신이상자, 사기꾼, 그리고 순례길마저도 여자들에겐 성범죄에 있어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이들도 있었다. 평생의 친구가 된 이들도 처음부터 마음이 잘 맞았던 건 아니었다. 오해와 불신 속에서 차츰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이 참 인상적이었고, 그의 한결 같은 진실됨이 그런 만남을 이루지 않았나 싶었다.


“순례자는 순례를 하는 동안에만 존재할 수 있다.” (346쪽)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느새 35일 간의 대장정이 끝이 나지만 저자는 순례길이 끝나는 그 길 끝에서 진정한 순례의 길을 걷게 되었을 것이다. 인생길의 작은 축소판이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느꼈던 그 깨달음과 인생의 깊이를 세상 속 자신만의 순례길에서 더 깊이 느끼면서. 순례길을 걷기 이전과 이후의 삶은 확연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당장은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순 없지만, 내가 걷는 이 길 위에서 하루하루, 순례길을 걷는 마음으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주한 일상에서도 나를 자주 들여다보고 신을 만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침묵의 시간을 확보하여 자주 절대고독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 내가 왜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면서 그 길 끝에 서고 싶다.


반복적인 일상에 무료한 이들이나 재밌는 여행기를 읽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이에게 적극 추천한다. 웃고 울고를 반복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한 그 길 끝에서 저자와 함께 우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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