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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리커버 에디션)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가정폭력과 아버지
들여다보면 아버지의 상처에서 기인한 연약함의 표출이다. 상처가 자기연민이 되고, 갈수록 자격지심과 자기방어로 이어져 가장 가까운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솔직하게 상처를 내보여 위로 받는 방법을 모르는 가장은 결국 자신의 가정과 인생을 해친다. 그러한 자신 또한 얼마나 두려울까. 상처 입은 아이와 청년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서 좋은 가장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자신과의 싸움이며 얼마나 큰 인생의 승리인지… 상처 입은 인생이 그 상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우리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한다. 또한 상처 입은 아버지를, 또는 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느냐도.
가정폭력과 아버지, 그리고 딸
상처는 대물림된다고 해야 하나.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모두 집을 떠나고 습지의 오두막에 일곱 살 난 카야만 홀로 남는다. 나이가 어려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습지의 생태가 제 삶의 근원인 것처럼 습지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성경의 다윗이 생각난다. 막내였던 다윗은 형들이 하기 싫어하는 양치기를 도맡아 하며 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루 종일 양을 쳤다. 외로워서 수금을 타며 노래를 했고, 양들을 노리는 곰이나 맹수가 나타나면 매일 연마한 물맷돌로 양을 지켰다. 일상의 성실, 원했던 삶은 아니지만 그 삶에 정성을 다했던 다윗은 후에 사울 왕을 괴롭히는 악신을 수금 연주로 떠나게 했고, 그 유명한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렸다. 그렇게, 홀로 남은 카야도 습지의 동물들과 새와 벗하며 습지의 모든 환경에 자신을 맡기면서 결국 누구도 쓸 수 없는 습지 생태 관련의 책을 계속해서 펴내게 된다. 상처 입은 사람은 있을 수 있으나 그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 어떻게 이겨나가느냐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양을 치는 들판이 왕이 되는 훈련 장소였고, 홀로 남아 살아야 하는 습지가 자신을 생태 전문가로 만들어 주는 곳일 줄이야. 삶을 대하는 태도에 언제나 답이 있고 미래가 있음을 깨닫는다.
사랑, 선택의 어려움
두 남자가 등장한다.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으로 카야를 대하는 인간적인 남자, 카야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습지를 떠나 자신의 세계로 들어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만다. 문득,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생각나는데 워딩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그리고 한 남자, 사랑하는 이가 떠난 공허한 자리를 끝까지 좋은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며 살기에 카야는 외롭고 허전하고, 그 남자는 육체적으로 끌린다. 선택의 문제. 저 사람이 내 사람이 아닌 걸 알지만 나의 외로움을 저 사람으로 채울 것인가. 말 것인가. 카야는 선택했고, 선택은 늘 책임을 요구한다. 인생을 살면서 늘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사랑.
자신의 세계로 그녀가 올 수 없다면 자신이 그녀의 습지로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에게는 그를 대신하는 남자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대로 된 선택을 한다. 떠나지 않고 그녀 주위에서 그녀를 지지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킨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위대함이란. 상처입은 남자, 여자. 어쩌면 우리 모두는 상처 하나씩 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 상처를 알아보고 모난 부분을 부드럽게 대해주고, 기다려주고, 안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하지만 누구나 그런 사람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언제까지 기대만 해야 하나. 우리의 사랑을 어떤 상황에서도 품을 수 있는 그릇으로 용량을 키워야지. 그렇게 생각만 해도 용량이 좀 커지는 것 같더라. 한 사람에게만큼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친구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을 장래희망으로 삼아도 좋겠다 싶은 마음. 하지만 기대는 쪼끔 남겨 두고파. 난 언제나 "그럼에도, 사랑"을 믿는다.
마무리.
미처 못한 이야기가 내내 마음에 떠다녀서 이렇게 또 구구절절 적어 보았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다 읽고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속았다 싶은 부분도 있었는데 그것도 이 책의 재미라면 재미겠다. 아, 이제는 마음에서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