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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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만나고 싶다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누구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운명입니다.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더없이 행복했지만 또 그 사랑으로 눈물 글썽였던...

 

- 박성철, 『누구나 한번쯤 잊지못할 사랑을 한다』 중에서 -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를 읽으면서 계속 생각났던 구절로 시작을 열어 본다. "누구나 한번쯤 잊지못할 사랑을 한다."는 것을 진리처럼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의 주인공인 한나와 미하엘의 사랑이 어느 한 시절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에 무척 공감을 했다.

 

어느 날, 대학생 아이가 나를 찾아와 반짝이는 눈망울을 하며 내게 말하기를, "<더 리더>를 읽었는데 너무 가슴이 먹먹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과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로 만들어진 책은 잘 안읽는 나로서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고 영화로는 봤지만 책으로는 읽지 못했으니 다음 주에 만나서 깊이 얘기를 해보자고 했고 그런 이유로 이 책을 급하게 찾아  읽게 되었다. 영화로 무척 감명깊게 보았던 터라 책을 읽을 때는 그 영상들의 도움을 받아 더욱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15살의 남자 아이와 36살의 여인과의 사랑.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터부시할 만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사연많은 36살의 한나에게도.. 언제나 그녀를 찾아가는 어린 미하엘에게도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다음 날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그녀는 진지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끌기 전 반 시간 가량 그녀에게 <에밀리아 갈로티>를 읽어주어야 했다. 이제는 나도 샤워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올 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 보면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뚜렷이 드러나고 또 그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읽으려면 집중력이 꽤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면서 욕망은 다시 살아났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기 - 이것이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 

 

<p.49>

그들의 의식행위에 있어 책읽기는 미하엘에게는 그저 그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그리고 사랑행위를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한나에게는 미하엘이 읽어주는 책 이야기가 인생의 또다른 세상이었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글을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친위대의 수용소 감시원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 미하엘 곁을 떠나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아픔이 그 당시에는 미하엘에게는 숨겨진 사실이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된 미하엘이 재판장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에야 그는 그녀의 과거와 함께 그녀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나가 끝까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 쓰는 과정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녀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라고 판사에게 이야기만 했어도 한나가 무기징역으로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는 일이 없었겠지만 미하엘은 차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서라도 지키고픈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하엘의 발언 한 마디로 한나의 인생이 바뀔 수 있었음에도 미하엘이 그냥 잠자코 있었던 것이 영화를 볼 때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미하엘의 선택에 나또한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게르트루트와 함께 지내는 것과 예전에 한나와 함께 지냈던 것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게르트루트와 포옹할 때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손길이나 감촉, 그녀의 냄새와 맛, 그것은 내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한 것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나는 한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p. 184> 

미하엘은 결혼을 했지만 어린 시절 그에게 욕망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깊이 박힌 한나로 인해 결혼에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성장해서도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지 못하는 미하엘과 한나와의 인연은  미하엘이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책을 읽은 것을 녹음하여 보내는 것으로 다시 이어지고 한나는 결국 미하엘의 도움으로 글을 읽고 쓰게 되어 미하엘에게 짤막한 문장의 편지도 보내게 된다.

 

이렇게 사연많고 슬픔많은 한나에게 미하엘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의 인생을 두고서 아마도 마음에 품은 단 하나의 사랑이지 않았을까... 책을 읽어준다는 의미는 그녀의 삶과 약점을 다 이해하고 품어주겠다는 의미로 한나에게 남지 않았을까... 한나가 석방하는 날 아침에 그렇게 떠난 것도 미하엘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사랑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한나가 미하엘을 만난 것은 기적같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미하엘에게 있어서 한나를 만난 것은 슬픈 일이며 잘못된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혹여나 가슴 아프고 마음아픈 사랑일지라도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마음에 꽉차게 품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니까.

 

우리는 오늘도 사랑하며 산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서로의 삶을 어루만지는 사랑을 오늘도 진행하며 산다. 그 사랑들 가운데 한나와 미하엘처럼 함께 하지 못하고 평생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감사하자. 그렇게 잊지 못할 사랑 하나, 보석같은 사랑 하나 마음에 품고 있음에 감사하자.

 

내가 좋아하는 피천득님의 글귀로 한나와 미하엘의 가슴아픈 사랑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고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피천득님의 <인연> 중에서 -  

 

 

 

 

 

 

 

 

 

 

*

피천득님의 인연으로 결론을 맺은 것을 보시고 어느 분이 선물로 주신 시다. 감사한 마음으로 옮겨본다.

 

 

버릴 수 없는 인연  /  이민숙          

 

소리내어 말하지 못한 사랑이 있다면

가슴에 담아두고 무너지듯 아파 오는 사랑이 있다면

한 방울 눈물로도 씻어낼 수 없는 사랑이 있다면

눈물이 다 마르도록 울어도 버려낼 수 없는 사랑이 있다면

차라리 잊으려 벗어 버리려 하기 보다는 가슴에 더 깊이 심어 두렵니다

 

어찌합니까 어쩌란 말입니까

그저 사랑해서 아픈 가슴을

내가 떠 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베어 비울 길 없는 사랑을

그저 운명으로 당신을 받아 들입니다

 

 뼛속 깊이 알알이 묻혀서 떨어지지 않는 감정이란 선에서

서로 묶여 있을 인연이라면

그 인연 어떤 시련이 몰아쳐도 받아 들입니다

 

피를 토해내며 내 목숨을 앗아 간다해도 버릴 수 없는 것

그것 하나는 당신과의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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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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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원함과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내가 밤일을 하는 여자의 원하지 않던 아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 삶에 순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 삶의 법칙이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에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로자 아줌마가 그렇다. 주인공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는 인생의 동반자였고 모모의 엄마였으며 모모의 전부였다.

 

거리의 여자들의 아이들을 돌보며 삶을 꾸려가는 로자 아줌마에게도 모모는 특별한 아이였다. 특이한 행동을 하면 한번도 오지 않은 엄마가 혹시라도 오지 않을까 해서 매일같이 아무데나 똥을 싸는 모모였지만 로자 아줌마는 그 아이를 어느 누구에게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녀 곁에 두려 했다. 열 살이라고 알고 있을 때까지는 로자 아줌마에게 그저 어린아이였던 모모도 자신이 실제로는 열 다섯 살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로자 아줌마를 더욱 어른답게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옹호하고 보호하려 한다.

 

모모는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자신이 의지할 사람은 로자 아줌마밖에 없었고 30년을 엉덩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지금은 아이들을 돌보다 시시때때로 가사상태에 빠지는 로자 아줌마에게도 모모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버려질 것이 두려웠고 그들은 서로를 잃을 것이 두려웠다. 머리가 다 빠져가고 장시간을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옛날의 좋은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로자인냥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교태의 눈빛과 웃음을 흘리는 로자 아줌마지만 모모는 열 다섯 살 때의 이쁜 로자 아줌마 사진으로 그 끔찍한 상황들을 이겨내는 법을 터득하며 끝까지 그녀와 함께한다.  

 

세상의 보호에서 비켜간 자들의 운명적인 만남이라 하고 싶다. 모모는 자신의 처지를 일찌감치 깨닫고 그러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부등켜 안으려 했고, 로자 아줌마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갈 줄 아는 현명한 소년이기도 했다. 로자 아줌마의 삶이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해져 갈 때에도 그 촛불을 기꺼이 끝까지 지켜봐주고 그녀를 끝까지 세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던 사람도 열다섯 살난 모모였던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가슴 아픈 현실에서의 만남이지만 함께였기에 그들의 삶이 더욱 소중했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 여인의 꺼져가는 생 또한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생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을 함께하는 그 장면은 어느누구도 모모를 탓할 수 없다. 그건 모모의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사랑한 남은 자의 최선 앞에 누가 무어라 말할 수 있으랴..   

 

이 책을 덮은 후에는 나의 마지막 생을 끝까지 지켜봐주고 끝까지 보호해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두었는가.  그러한 사람을 나는 만났는가. 그러한 사람을 나는 만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세상에 가진 것이 많고 나의 재능이 뛰어나고 내가 세상에 군림한 자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 하나 없다면 나의 삶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쉬 생기지도 않지만 시간을 두고 삶에 녹아내린 사랑은 그 무엇과도, 그 누구와도 끊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 책이다. 책을 덮은 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슴뭉클함으로 가득차는 경험을 만날 것이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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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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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는 곧 우리네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 부르고 싶다. 삶에 대한 자그마한 것에도 깊이 반응하고 고뇌했던 그 젊은 날들, 부딪히고 아파하고 상처입고 상처주면서 조금씩 자리잡아가는 우리의 인생관. 그런 치열한 젊은 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겠고 그러한 날들이 없었다면 고스란히 30대, 40대가 되어서 그보다 더욱 치열한 오춘기를 겪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허무가 곧 인생인 듯 살아가는 와타나베. 하나밖에 없던 친구 기즈키의 자살. 그리고 기즈키를 함께 기억하는 나오코와의 사랑. 또한 와타나베를 사랑하는 미도리. 상실과 갈등의 날들 속에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가는 와타나베의 젊은 날의 이야기. 


나오코와의 사랑은 자신을 향한 연민과 친구를 잃은 상실의 아픔과 연인을 잃은 나오코의 마음에 대한 공감과 그로 인한 그녀에 대한 연민, 보호본능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낸 감정이라고 본다. 그녀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하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다. 와타나베를 만나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관계를 가진 나오코지만 그 관계조차도 어쩌면 그 사람, 기츠키에 대한 그리움이 불러온 단 한번의 촉촉함이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에 반해 미도리는 새로운 삶에 대한 탈출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상처와 상실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새로운 사람. 나오코와 계속 함께 한다면 서로의 상처는 덧날 뿐이지만 미도리는 삶에 대한 허무함 속에 생기를 넣어준다.

 

나오코에게도 만약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면 죽을만큼의 아픈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조금씩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분명 오랜 연인이었던 기즈키의 가장 친한 친구 와타나베를 볼 때마다 더욱 과거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나오코였을 것이다. 과거는 과거 속에 두고 아픔은 시간을 두고서라도 치유해야 하며 결국은 터널 속을 빠져나가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봐야 하는 나오코에게 결국 희망은 주어지지 않았다. 삶의 포기를 선택한 나오코가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상실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은 상실감 속에 평생 자신을 가두고 살아갈 수 있고 그러한 젊은 날의 기억이 지금의 황폐한 나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아픔을 겪은 자는 그렇지 않은 자보다 더욱 그윽하고 깊은 눈을 가질 수 밖에 없고 더욱 깊은 통찰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소중한 것을 잃은 자들의 특권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여전히 부딪히고 아파하고 힘든 날들을 살아가지만 그래도..라며 그 상실감 속에서 살아갈 희망을 붙잡는다. 우리의 인생이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대로 아픔없고 상처없고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면 좋겠지만 삶은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상처를 허락하고 상실의 아픔을 허락하고 고통과 고뇌를 허락한다. 그러한 치열한 싸움 가운데 삶에 대한 겸허한 자세와 삶에 대한 통찰을 가질 것을 가르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라는 인생의 선배들이 남긴 말이 그냥 주어진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잃을수도 있고 더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 희망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희망의 빛 미도리. 과거의 상실 속에서 나를 가누지 못하던 나오코였던 나에게 희망의 빛으로 찾아온, 나의 미도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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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기프트 세트 (1권~4권 + 자석 메모 보드 + 고급 정리함 + 2010년 연하장)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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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하느라 지친 사람도, 사랑이 깨져서 우는 사람도, 꿈을 잃고 실망하는 사람도,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도, 일에 쫓기는 사람도,
상사를 잘못 만나서 하소연하고 싶은 사람도, 행복해서 날아오를 것 같은 사람도,
배를 채우고, 마음도 채우고, 모두 웃는 얼굴로 돌아가는, 거리 한구석의 안식처.
 
 
메마른 마음과 목을 적셔주는 심야식당.
 
요즘들어 머리가 자주 지끈거린다. 누군가 내 머리를 눌러줄때면 죽을 듯 비명을 지른다. 여러 삶의 힘듦과 스트레스를 제때 풀지 못하고 늘 쌓아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루리는 늘 판단자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판단하는 삶을 습관적으로 살아가고 늘 사람들에게 판단받는 것을 견뎌내며 살아간다. 그러한 편치 못한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을 찾기란 힘들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안식을 원한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나에게 안식을 주는 사람이길 원하고 어떤 장소에 갈 때에도 그 곳이 나에게 안식처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사람이나 장소라면 언제든 습관적으로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읽은 '심야식당'이 바로 그런 곳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안식을 주는, 아주 편안한 곳. 어느 누구도 나를 판단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곳. 주인장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음 하고 첫 발걸음을 하지만 오히려 무뚝뚝한 주인장에게 나의 고민과 사연을 술술 이야기하며 매일 습관적으로 찾아가게 되는 곳이 바로 '심야식당'이다. 
 
'심야식당'의 손님들은 밤무대를 삼아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상처와 삶의 무게로 하루하루 무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첫사랑의 입술이 명란젓을 닮아 매일같이 명란젓을 미디엄으로 구워 먹는 스트립퍼. 어릴적 기억을 떠올리며 고슬고슬 따뜻한 밥에 가다랑어포를 얹어 간장을 뿌려 먹으며 행복을 느끼는 엔카 가수. 늘 차밥을 시키는 애증으로 똘똘 뭉친 차밥 시스터즈, 육류만 먹어대는 부인 때문에 결국 이혼하고 늘 와서 채소만 먹는 남자, 사제지간의 슬픈 사랑을 담은 우엉볶음...
 
우리의 눈에는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에 불과하지만 이들에게는 눈물의 음식이고 희망의 음식이다.
자신의 힘든 삶에 한 줄기 희망처럼 찾게되는 '심야식당'에서 그들은 다시 살아갈 희망으로 마음까지 든든히 채우는 것이다. 조직 폭력배라 할지라도, 밤무대 가수라 할지라도, 스트립퍼라 할지라도, 하나같이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순수한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버터를 녹여 간장을 뿌려 먹는 고슬고슬한 밥에 배가 금새 고파지지만 그들의 순수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배고픈 걸 잊고 함께 웃게 된다.
 
내 마음을 그저 담담히 들어줄 누군가가 있는 곳.
내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빼고 자르고 편집하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곳.
'심야식당'이 많이 읽히고 드라마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바라던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번 주위를 둘러보자. 정말 아주 가까운 곳에 나의 '심야식당'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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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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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생의 어느 한 부분을 안다는 것으로

서로 얼굴 한번 안 본 사이끼리 위안과 격려를 주고받습니다.

그런 소설이 되기를 바랐고 그것이 교감되었다는 것이 기쁘고 고맙습니다.

 

- 임영태-

  

책 표지 한장을 넘겨 작가 이력 밑에 조그맣게 새겨진 짧은 임영태님의 소감을 읽으며 나는 혹시나 이 책을 읽으며 엉엉 울게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그 사람은 분명, 읽는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상처들을 하나가득 안고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울면서 걸어가는 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끝끝내 참아도 흘러내리는 눈물. 자신의 의지로 감당할 수 없는 눈물,눈물의 호소들... 하지만 오랜만에 정말 마음껏 울 수 있는 책이면 오히려 읽고 난 후 개운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어야겠다는 마음졸임을 내려놓았다. 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테고 아직도 내 마음에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며 울 수 있는 눈물의 주머니가 비어 있지 않음을 깨닫는 것일테니.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은 '나'라는 대필작가의 이야기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던 사랑많은 아내를 잃고 반지하 연립주택을 사무실 겸 주거공간으로 삼아 매일 동네를 산책하며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처량한 40대 사나이. 그의 담담한 일상을 담고 있어 그저 술술 읽혀 내려가지만 그가 느끼는 비애감과 서글픔과 그리움은 내 마음을 계속 먹먹함으로 물들여갔다.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주인공의 마음따라 생각따라 추억따라 꿈따라 그렇게 이끌려간다. 이런 경험은 공지영님의 <도가니>를 읽었을 때도 느꼈더랬다. 그 충격의 도가니 속으로 한없이 이끌려 갔던 그 느낌. 

 

그는 매일같이 떠나간 아내와 아꼈던 애견 태인이를 그리워하며 동네를 산책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과거의 추억 또한 산책한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그는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고 용서하기에 이른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아이가 컨베이어 라인에 앉아 있다. 아이가 식당의 긴 줄 뒤에 서 있다. 아이가 리어카를 끌고 자재과로 간다. 잠시 서서 담장 밖 미루나무를 본다. 아이는 낯익으면서 멀었다. 그 아이는 내 안 어느 곳에서 자라지 않은 또 다른 나였다. 내가 손을 놓은 아이였다. 내 입에서 저절로 말이 흘러나왔다. 자식, 외로웠구나. 많이 막막했구나. 말이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이가 오래도록 그 말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때 너 그랬구나....." <p.281>

 

"나의 맹렬한 허기와 대결 의식이 슬펐다. 참 못나게 살았다. 그건 치열함이 아니라 오히려 게으른 자만이었다. 질긴 엄살이었다. 그러나, 용서하고 싶었다. 가장 힘찬 용서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아무 걱정 하지 마요." <p.282>

 

읽는 내내 먹먹했다. 읽으면서 엉엉 울었음 싶었지만 그런 류의 눈물이 아니라 가슴에 맺혀서 좀처럼 터져 나오지 않는 깊은 설움섞인 눈물이었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 죽은 자는 다만 염원하고 소망한다.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지만 그건 욕망이 아니라 다만 그리움이다.<p.125>


그의 눈에 죽은 자들이 보였던 것은 그 또한 간절히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살아갔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는  과거 속에서만 살아가고 현재속에서는 그저 삶이라는 것을 버텨만 가는 죽은 자였는지도 모른다. "그거 아니라도 살아 있는 이유를 모르면 죽은 거랑 똑같죠."<p.131>

 

'나'도 주인공처럼 과거 속의 나를 만나 그때의 나를 위로해야 할 것이고 용서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나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과거 속에 갇혀 살았던 적이 있다. 속으로는 세상과 단절하며 내 속에 갇혀 살면서 세상을 향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면을 쓰고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었고 늘 눈물을 머금고 살았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푹 눌러쓰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마음껏 울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 내가 네 마음을 안다. 그 때 많이 힘들었지. 같이 울어주는 이 하나 없이  얼마나 힘들었니. 그 때의 나로 돌아가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 있다고 힘있게 얘기해 주고도 싶다.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새벽이 밝아오는지도 모르고 어느새 한 권을  다 읽게 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은 게 아주 오랜만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 주인공의 마음이 내 안에서 넘실거린다. 책을 읽으며 이대로라면 끝끝내 울진 않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마지막에 주인공이, 태인이가 환생하여 왔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유기견을 바라보며  "몽아" 라고 부를 때 나는 느닷없는 공격을 받은 것처럼 가슴에 맺혔던 눈물들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몽이"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주었던  나의 반려동물 애견의 이름이다. 우리 세 남매 모두 자신의 미니홈피에 비공개 폴더를 만들어두고 남몰래 꺼내어 보는 사진의 주인공 몽이... 주인공의 애견 태인이가 아니라 우리 몽이가 다시 살아나 주인공의 품에 안긴 것처럼 기쁘고 반가웠다. 그리고 그립고 또 그리웠다. 몽이를 묻고 돌아오는 날 아버지도 울고 엄마도 울고 나도 울고 우리 모두 다 울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몽이를 입밖에 낸 적도 없고 지금까지도 함께 몽이를 떠올리며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주인공이 태인이를 떠올릴 때마다 몽이를 떠올렸더랬는데 그렇게 몽이 이름을 마주할지 어떻게 알았으랴... 정말 느닷없는 대목에서..느닷없는 눈물이었다. 주인공이 태인이에게 가졌던 그 애잔한 그리움만큼이나 나는 몽이가 그립고도 그립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주인공의 아내가 만든 문패에 적혀 있는 문구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을 직접 읽으며 그 의미를  찾아보셨음 한다.  그 먹먹한 마음 안으로 들어가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을 온전히 만나면 거기에 다른 이들도 보인다.

배역이 다를 뿐 모든 사람의 욕망과 상처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산다.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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