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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려라, 아비]는 25살의 젊은 나이에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을 하며 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김애란의 첫 소설집이다. 처음 그녀의 작품을 만난 건 『2009년 제9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실린 [너의 여름은 어떠니]였고 그녀에 대한 소문은 이미 예전부터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들어 왔었다.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그녀의 책 『달려라, 아비』를 펼쳐 들었을 땐 이미 나에겐 그녀에 대한 선입관으로 가득했다. 마냥 발랄한 내용으로만 가득할 것이리라는 생각..심지어 『달려라. 아비』의 '아비'는 사랑스런 여자의 애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얼마나 그녀를 오해하고 있었는지 절절히 느껴야했고 그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호기심이 나를 사로잡았다.
총 9편의 단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아버지'이다. 물론, [달려라 아비]의 '아비'는 사랑스런 여자의 애칭이 아니라 말그대로 '아버지'의 낮춤말 '아비'인 것이다. 하지만 등장하는 아버지는 하나같이 현재의 삶을 함께 공유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과거의 아버지, 또는 상상속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머니와 가난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 것에 대한 분노와 상처와 어두움으로 아버지에 대한 처절한 마음과 복수심을 드러낼 듯도 한데 신기하리만치 그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풀어낸다.
[달려라, 아비]에서의 아버지는 처녀적 어머니에게 끝없는 구애를 펼쳤을 때 결국 어머니가 허락하면서 단, 지금 당장 피임약을 사와야만 한이불을 덮겠다는 단서를 달았을 때부터 뛰기 시작하여 그녀와 어머니를 버리고 간 이후에도 상상속의 아버지는 늘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으로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루네오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는 긍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십수 년동안 쉬지않고 달린 아버지에게 썬글라스를 씌워드리는 그 재치는 정말 아픈 현실의 상황을 유쾌한 상황으로 웃어넘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스카이 콩콩]에서의 아버지는 고추를 보여주면 스카이 콩콩을 사주겠다는 짖꿎은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집나간 아들의 귀가길을 밝히려 손수 가로등을 고치는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긍정이 빛을 발하는 단편은 단연 [사랑의 인사]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는 공원에서 자기를 버려두고 간 아버지를 실종되었다라고 표현한다.
'순간 나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하고 모호한 문장, 먼 곳에서 수백년 전 출발해 이제 막 내 고막 안에 도착하는 휘파람 소리. '아빠가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아버지는 실종된 것이 틀림없었다.' <p.147>
정말 유쾌하지 않은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실종되었다고 받아들임으로써 정신적 상처를 거부하는 자세. 그러한 긍정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랑의 인사]는 정말 사랑스런 작품이다.
그외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녀가 잠 못드는 이유], [영원한 화자], [노크하지 않는 집] 등은 작중 인물들에 대한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우리가 흔히 만나는 배경들과 소재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나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했다. 이 작품들에서도 그녀의 긍정적인 매력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 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p.138>
우리는 쉽게 상처 받았다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나는 당신에게 이런이런 상처를 받았습니다.' 라며 부모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기도 하고 삶의 고달픈 삶 속에서는 쉽게 좌절하기를 즐겨하고 언제든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그 부정적인 생각의 늪으로 빠져들기를 즐겨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상처를 거부하는 자세, 상처에서 벗어나 삶을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즐거운 상상(야광 반바지를 입고 세계를 뛰어다니는 아버지를 상상하듯.)을 하며 삶을 유쾌하게 살아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자기긍정적인 삶의 세계로의 초대.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