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세요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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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는 그 시절, 나에게 보석같은 책이었다. 그래서인지『사랑을 주세요』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 무척이나 궁금했고 그만큼 설레임도 컸다.

 

우리는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나만 외롭다고 생각하고 나만 상처입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나와 똑같은 분량, 어쩌면 나보다 더 큰 분량의 아픔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못 본 척 하고 모른 척 할 뿐이다.

 

『사랑을 주세요』 의 리리카와 모토지로. 그들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영혼들이며 자살을 시도하며 세상과 벗하기를 거부한 경험이 있는 상처입은 영혼들이다. 리리카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가족을 통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 어떤 냄새인지를 끊임없이 찾으려 하고,  모토지로는 자신을 키워주신 양어머니에 대한 의무를 끝까지 다하려는 바른 청년이다.

 

리리카와 모토지로는 서로 얼굴도 모른체 편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면서 서서히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간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리리카가 모토지로에게 자신의 삶과 아픔을 얘기하며 서서히 자신의 굴레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편지에서 배어나오는 신비한 온기랄까 다정한 느낌, 분별력 있는 마음 씀씀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절절이 느껴져 (p.9) 리리카는 모토지로를 오빠인 듯, 친구인 듯, 때론 연인인 듯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리의 상처는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곪아 터지고 곪아 터져 더 큰 상처를 낳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리리카는 모토지로에게 때로는 아버지의 냄새를 맡기위해 불륜을 저지른 자신을 고해성사하듯 얘기하기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절절이 묻어나는 격한 감정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가득 담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리리카는 그 모든 것을 그렇게 드러내면서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을테고 잘못된 방향이라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유턴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리라 생각한다. 원래 상담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내 속의 문제를 다 끄집어 내어 이야기할 때, 또 다른 내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아 가는...

 

모토지로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리리카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때로는 따뜻한 충고를 하면서 그녀를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낸다. 모토지로는 우리 모든 상처입은 여자들의 로망이다. 나도 그러한 때가 있었다. 내 맘을 어떻게든 토해내고 싶은데 친구들은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채팅을 하면서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내 마음을 위로받을 순 없고... 그냥 막연하게 그런 사람이 없을까. 내가 어떤 얘기를 한다해도 묵묵히 들어줄 사람. 그런 사람 없을까.. 를 한동안 찾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되려 하고, 그가 되려고 한다. 이번에는 리리카에게 너무 몰입을 했나보다. 내가 리리카인 듯, 리리카가 나인 듯. 그녀가 그 유부남의 품에서 행복의 냄새를 맡기 위해 수없이 얼굴을 비비고 그의 품을 파고들 때, 나는 그만 아득하게... 먹먹해져 갔고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뿌연 눈물 사이로 그녀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애썼다.

 

고통과도 같은 행위가 끝나고 샤워로 모든 것을 다 씻어낸 뒤, 또 하나의 세계로의 입구, 즉 내 쾌락이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기바 씨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그의 땀 냄새를 맡았어. 두툼한 가슴에 수없이 얼굴을 비비며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나 자신에게 자꾸 되뇌었어. 기바씨의 굵은 팔에 안겨 체크아웃까지 잤어. 마치 아기가 된 듯한 기분으로...나는 한없이 편안했어. 그가 꼭 끌어안고 있는 동안만은 이제까지의 삶의 고뇌가 모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아, 이것이로구나. 이것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아버지라는 존재의 냄새구나.' 굵은 팔뚝, 착한 눈매, 땀 냄새, 저음의 굵은 목소리. 그의 심장 소리를 귀로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나는 자꾸자꾸 어린 아기로 돌아갔어. 어린이집 아기들처럼 천진무구한 세계로. 시간이 되어 호텔에서 나와야만 할 때까지의 그 시간이 정말 너무나 행복했어. 그쯤에서 내 인생이 끝나버려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렇게 편안한 행복감을 느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 (p81~82)

 

나중에 편지가 후반부로 가면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을 만났을 때... 리리카의 그 허망함이 나의 허망함이 되어 나는 그만 멍 해졌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고 모토지로의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그 사연이 밝혀 졌을 때는 나는 그만 그 푸르른 수목원 그늘 아래에서 울고 말았다. 큰 먹먹함으로 끝까지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사랑을 주세요』는 나에게 또다른 보석으로 다가왔다.

 

리리카는 상처입은 영혼이었지만 세상은 그녀를 상처입은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보호받으며 아파했던 것이다. 그녀의 행복은 가까이에 있었고 그녀는 그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꼭 거쳐야 할 아픔을 겪은 것이다. 리리카는 한없이 "사랑을 주세요."라고 외쳤지만 실제로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져서 다행이다. 그녀의 모습이 상처입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날마다 '사랑을 주세요..' 나지막히 외치는 나에게도 모토지로가 가까이에 있을 것만 같다. 결국은 사랑을 찾고 결국은 이별할 모토지로일지라도 내 맘에는 영원한 모토지로로 남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그야말로 순수한 공통의 시간을 경험했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우리 두 사람은 똑같은 고통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었어. 그래서 펜팔이 끝나더라도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훼손되거나 소멸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고 믿어. 그럼 믿고말고!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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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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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여동생이 받아놓은 손예진, 김주혁의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를 보고는 2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금 읽어 보았다. 손예진의 귀여운 연기를 보면서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다. 책 속의 그녀가 귀여운 여자라는 기억이 나에겐 없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나름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이럴 순 없다며 두 남자와 결혼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녀는 낯설었다. 나와는 너무 다른,

 

"나도 덕훈 씨를 좋아해요. 지금은 그래요. 그런데요, 미리 말해 두지만 덕훈 씨만 사랑하게 될 것 같진 않아요."

 

"나는 덕훈 씨를 독점할 생각이 없어요. 덕훈 씨도 나한테 그렇게 대해 줄 수 있나요?"

 

"나는 섹스를 좋아해. 해보니까 좋더라. 좋으니까 하고 싶더라. 내가 이상한 사람이야? 그리고 잘하는 걸로 따지면 그게 혼자서만 잘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덕훈 씨도 잘해. 덕훈 씨도 많이 해서 잘하게 된거야? 우리가 서로 좋아하니까 그것도 좋은 거 아냐? 그리고 나는..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도 잘 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이상해?"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당신과 결혼했어.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 당신과의 결혼을 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리고 또 나는그 사람을 사랑해.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전부야."

 

주인공 인아는 무척이나 솔직하고 자기의 뜻을 펼쳐가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인아가 덕훈에게 중혼을 설득할 때.. 읽는 이들도 설득당할 만큼... 그녀는 나를 낯선 세계로 이끌어 갔다. 일부다처제가 아닌 일처 다부제라는 세계. 남자들은 일부 다처제가 로망일지는 몰라도 여자에게 있어선 로망으로 여길 일은 아닐 것이다. 남자 한 명도 힘들텐데 두 명씩이나? 고리타분하게도 일편단심인 내 생각은 그렇다. 하지만, 서글픈 세상. 결혼 하고도 애인 없으면 바보라는 우스개 소리가 오고가는 세상에 나는 살아간다.

 

당신도 사랑하지만 그 사람도 사랑하기에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의 모습은 왠지 판타지같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잃지 않기 위해 그 반칙을 수용하고 마는 남자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같아 서글펐다. 이혼이라는 굴레가 두렵고 이 여자를 놓치는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설득당한 덕훈의 모습은 왠지 이 시대의 남자들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강한 척 하지만 속은 너무도 엄마 품을 그리워 하고 평안한 안식처를 그리워 하는 남자들의 뒷면을 보는 것 같은..

 

이 얘기가 책으로만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고서 3년이 지난 뒤, 영화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일본을 매도하고 그렇게 닮지 않을 거라던 우리 국민이 일본의 암울한 모습을 닮아가듯... 서서히 중혼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의 삶에 다가오지 않을까 살짝 겁이 난다. 너무 앞서가는 고민인가? 

 

<아내가 결혼했다>는 발칙한 발상, 월드컵 4강전을 관전하는 것 같은 느낌, 새로운 상상력의 성체를 훌륭하게 쌓았다는 등의 극찬을 받았고 또한 세계문학 당선작이다. 물론 그러한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숨길 수 없다. 내 마음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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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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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었다. 늘 눈물을 보이지 않게 그렁거리며 살았던 때, 업무 중에도 깊은 속울음이 올라와 계속 밀어 넣어야 했던 때, 세상은 행복한데 나만 이방인처럼 외따로 떨어져 이 세상 어찌 살아야 하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래, 그런 때가 있었다..

 

상실의 아픔을, 애도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절망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나의 아픔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욱 처절하게 절망하는 사람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처음 접한 상실이요, 절망이었다.

 

그때의 오랜, 어둠의 시간 동안 나는 그만큼의 시간을 잃었고 사람들을 잃었고 건강을 잃었다. 한 사람을 잊고 무뎌지는 것에는 그 사람을 사랑한 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니, 잊혀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 한 구석 저 깊은 곳에 옮겨졌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빼어내려야 뺄 수 없는 가시처럼 깊이 박혀 서로의 마음 속에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던 그 아픔을 다시 만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픔마저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주인공들의 "등을 토닥이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한번 어긋나 손을 못잡고 얼굴을 돌리고 사는 슬픔" 이 곧 나의 슬픔인 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제서야 나는 나의 상실을 "애도"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성숙에 이른 것일까..

 

은서는 완과 세에게, 그리고 그의 동생 이수에게마저 하나 뿐인 고향이다. 각기 다른 고향의 모습으로 그녀를 품고 있기에 각각의 아픔의 모습도 다르다. 완에게 사랑을 느껴버린 은서는 아픈 고향의 기억을 벗어 나려고 은서를 모질게만 대하는 그의 등을 바라보고, 은서를 사랑하는 세는 완을 바라보는 은서의 등만 바라본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같은 아픔을 간직한 동생 이수와의 애틋함..

 

완의 사랑을 잃고 은서는 일 년 후에 세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그 상실의 아픔은 세를 곁에 두고도 절망하는 삶을 살게 한다. 세가 그러한 은서의 아픔을 알고도 결혼을 한 것은, 그 아픔까지도 다 품어 주려고 한 것이었을테고, 그리고 그렇게라도 은서를 자기 곁에 두려 한 것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이유였을지도.

 

사랑은 욕심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간절한 소망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고도 아니 만나고 평생을 마음에만 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뒤늦게 은서가 자기의 전부인 것을 깨달은 완도, 세의 사랑이 떠난 후에야 세에 대한 마음이 완과 이수를 향한 마음 그 이상인 것을 깨달은 은서도.. 그저 위로할 밖에. 좋은 시절에, 좋은 때에 만나 사랑하지 못했음을 그저 위로할 밖에..

 

지나간 사랑이 기억이 나서 울기에는 시간이 충분히 흘렀고, 나는 그녀, 은서 때문에 울었다. 그 마음이 알겠어서 울었고, 그 어찌할 수 없는 슬픈 식욕으로 불균형적으로 살이 쪄버린 그녀가 못견디게 아파서 울었다. 

 

" 나, 그들을 만나 불행했다. 

그리고 그 불행으로 그 시절을 견뎠다. "

 

끝까지 자기 편이 되어 줄거라고 믿었던 이마저 등을 돌렸을 때에 은서는 그만 모든 것을 놓아 버렸다. 살아갈 힘을 잃지 않으려고 자신이 믿는 기억들을 찾아 헤맸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을 지켜야 할 사람은 자신뿐임을 깨닫지만 그 깨달음으로 다시 일어서기엔 이미 늦은 뒤였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은서가 느끼는 깊은 슬픔과 절망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그녀와 동일한 감정들을 끄집어 내게 될 것이다. 이제는 화해해야 할 그 아픈 감정들과 대면하면서 은서가 나의 슬픔과 절망과 아픔과 그 기억까지도 가져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아픔으로 인해 많이 성숙했고, 그 아픔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나도 은서처럼 마음까지 놓았을지 모를 그 때에,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 그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하여 지금 나, 비록 혼자일지라도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다.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 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 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5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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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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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선생님은 솔직히 잘 모른다. 그 책을 만든 사람도 실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책을 만든 사람을 좋아한다. 그 책을 만든 사람은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 지성사) 산문집 『각설하고,』(한계레 출판사)의 작가 김민정 시인이다. 그녀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기사를 검색하다가 그녀를 시인보다 편집자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렇게 김민정 시인에 대해 검색을 하게 되었고 신형철 문학평론가 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사람이 되었다. 알고 보니, 두 분이 베프시란다. 참, 초록은 동색이라. 멋진 사람들의 우정이다 싶다.
 
여러 글들을 접하고 그녀가 만든 책들을 보면서 그녀에게서 아주 멋진 사람 냄새를 맡게 되었다고 할까.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된 경우는 참 드문 것 같고, 참 오랜만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그녀의 시집과 산문집을 사서 읽으면서 그녀가 더 좋아졌다. 늘 여자다움에 갇혀 살다가 이제는 조금 그 부분에서 자유해졌지만 김민정 시인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내숭쟁이다. 그녀의 언어는 결코 낯선 언어들이 아니었다. 내 안에 숨겨진 언어들이었고 표현들이었다. 그녀의 시원한 입담에 그래서, 내가 그렇게도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더 좋아진 이유는 그런 입담들이 아니라 그 안에 숨은 사람과 세상을 향한 그녀만의 사랑법 때문이다. 그 사람을, 그 세상을 사랑하려고 맘 먹기만 하면 그 사람은. 그 세상은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시집과 산문집을 내 머리맡에 둔 이유가. 내 편이 필요할 때 언제든 펼쳐 볼 수 있게.. 
그렇게 그녀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내가 산 책들 중에 그녀가 만든 책들이 많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느낌 공동체』(문학동네)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난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도정일 선생님의 산문집『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그리고 사진은 못올렸지만 세트로 함께 나온『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문학동네) 그녀가 만든 책은 이유불문, 덮어놓고 사게 된다. 그만큼 그녀를 믿고 그녀가 만든 책의 저자들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얻은 선물은 내 인생에 꼭 읽어야 할 멋진 책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황현산 선생님, 도정일 선생님의 책을 선뜻 구입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도 파주 어느 곳에서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인들을 열심히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고 문자로, 카톡으로, 멘션으로, 댓글로 다독이고 있을 것이다. 왜.. 그녀가 옆집 언니같이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그녀의 글과 그녀가 만든 책을 대할 때마다 나도 그녀에게 도닥임을 받고 있는 듯 하다. 
각설하고, 
도정일 선생님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읽다가 글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피잉 돌더라. 두 페이지 남짓한 짧은 분량의 글인데 어쩜 그렇게 깊은 통찰이 담길 수 있는지.. 귀한 분을 만난 그 찰나의 감동이 눈물이 되어 흐르더라. 지금도 열심히 밑줄 좍좍 그으며 읽고 있다. 김민정 시인의 말을 빌리면 성서처럼 남을 책이라는 것. 정말 그렇게 오래도록 내 곁에 있을 귀한 책이다.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과는 또다른 깊이의 만남. 이렇게 귀한 분들을 만나게 해준 김민정 시인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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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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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아간 블로그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블로그 주인이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하는 책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이 아니고는 그렇게 선물할 리 없으니, 말이다. 블로그를 나오면서 바로 주문을 했고 다음 날, 이 책은 나에게 왔다.

 

삶은 화창한 첫 봄날에 창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내 그림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언제나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 주는 것들을 깊이 알고, 기록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우선 제일 가까이 있는 것들부터 내 노트에 떨어지는 햇살, 냉장고에 붙여놓은 잭이 새로 그린 그림들. 식탁 아래 살며시 구르는 먼지덩이. 나는 이들의 축복을 느끼고 싶고, 또한 나 자신이 이들의 일부이자 원인이 되고 싶었다. 그림 자체보다는 이러한 유대감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다.

 

책의 띠지에 적혀 있는 분문의 내용이다. 대니 그레고리는 20년 넘게 광고업을 해오던 자칭 광고쟁이다. 스타일리스트인 아내, 10개월 된 아들 잭, 그리고 여덟 살 된 개, 프랭크. 그렇게 그들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 없던 그의 삶이 아내가 지하철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아주 낯선 환경에 놓여지게 된다. 

패티와 네가 떨어진 곳이야. 장애인의 세계 말이야. 네가 원했던 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네가 살아온 것처럼 빠르고 신나지는 않겠지만, 그 삶은 깊고 진한 것이야. 너는 그 삶을 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그것을 사랑하게 될거야. (본문 중에서)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된 것은 모든 것은 특별한 존재이고, 서로 다 다르며, 흥미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저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고정관념의 함정을 쉽게 넘어설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다르다면, 내가 생각하던 우리 가족의 비참한 삶도 어쩌면 그저 나만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나무에 대해 생각해 왔던 것들이 실제 나무와 달랐듯이, 나는 장애인 아내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정말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아내가 사고를 당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대니 그레고리는 지금까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삶의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바라보게 되고 빠르게만 흘러가던 그의 삶이 느리고도 깊이 있는 삶으로 변화하게 된다.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을 눈으로 사랑스럽게 어루 만지듯 했다. 내 시선은 모든 굽이와 도드라진 곳들에 정성스럽게 머물렀고 표면을 따라 그늘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렇게 바라볼 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본문 중에서)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헛된 생각들이다... 중요한 것은 앞날을 예측하며 상념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세워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고 궁리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내 삶의 충만함을 있는 그대로 360도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말이다. 병원 대기실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하던 그 흉한 일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은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당신에게 하지 못한다. (본문 중에서)

 

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라는 말을 자주 되뇌인다. 누구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인지했던 탓이기도 하다. 그 삶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뚫고 내가 어떻게 그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대니 그레고리는 그 삶을 자신의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고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더욱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대니 그레고리의 상황이 되었을 때 모두가 그림 그리는 것으로 상황을 보듬어갈 순 없겠지만 삶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통로가 분명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는내내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했고 책을 덮을 때에는 여운이 너무도 길어서 한동안 먹먹한 채로 있어야 했다. 살아 숨쉬는 감정들, 절제된 고통의 흔적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삶을 향한 사랑을 놓치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을 정성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볼 것을 당부하는 그의 메세지를 한참을 마음에 새겼다. 자주 들여다 보고픈, 아름다운 책을 알게 해주신 그분께 감사드린다.

​당신이 자신을 그저 보도록 내버려 둘 때, 그것은 화창한 첫 봄날에 창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세계는 낯설고, 날카롭고, 낱낱이 다른 무엇이 되어 흘러들어 온다. 과거의 경험에 기대지 않을 때, 존재하는 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들을 보게 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판단하려 하지 말고, 가능성들을 받아들여 보라. 시간의 짓누름에서 풀려날 수 있다. 모든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오하고 독특하며, 아름답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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