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잔잔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로맨스 드라마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로맨스는 별책부록>. 두 작품 다, 착한 남녀가 서로의 마음까지 보듬는 따뜻한 사랑이라는 것이 공통점이겠다. 보는 내내 내 맘까지 따뜻해질 정도였으니. 그리고 특히 주목했던 건 두 남녀의 대화였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필사하고픈 대사가 많다고 몇 번 얘기를 했더니 동료가 생일에 대본집 세트를 선물해서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고,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두 남녀의 대화가 내게 설렘과 위로를 많이 주어서 원작까지 꼼꼼하게 읽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드라마는 특히 여자가 아닌 남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참 많이 안아주고픈 인물이었지.
요즘은 드라마 <런 온>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화법이 너무 좋아서 녹화를 하고 꼭 챙겨 보는데 대사들마다 어쩜 저렇게 센스있고 통통 튀는지 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대본집 나오면 꼭 소장해야지, 벼르고 있다.
<런 온>의 OST를 들으며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 연애 감정은 어디쯤에 머물고 있을까. 수줍고 내숭쟁이던 그녀는 벌써 사라진지 오래일테고 조건을 따지는 욕심은 또 없는 걸 보면 여전히 이십 대 어린 연애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참 부질없는 생각이다 싶다. 언젠가 나타나면 그 감정에 충실하면 될 것을. 다만, 그때의 나는 성급하지 않고 지혜로울 수만 있다면 좋겠다.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대었던 날들을 보내고 나는 그 속에서 나를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법을 배웠다.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을 때, 의식적 자립이 가능한 나일 때 사랑은 더 깊은 신뢰 속에 단단해져 가는 것임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며 천천히 산책하듯 친구처럼 사랑이라는 감정 속으로 따뜻하게 물들어가고 싶다. 그때, <런 온>에서 미주가 했던 대사들을 농담처럼 던질 수 있으면 좋겠네. 하지만 지금은 혼자인 것도 좋고 나와 잘 지내는 것이 참 만족스러워서 연애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음을...
설호승이 부른 <런 온> OST, 너무 좋아서 자주 듣는다. 음색이 묘하게 “짙은”과 비슷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음색은 참 뚜렷하구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