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수업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이 각자 여기 저기 학원으로, 또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때 그 때가 나에게는 뭔가 시작하는 시간인 듯 미술실로 향했다. 미술 선생님은 그저 주제만 주실 뿐, 나는 그것을 보고 떠오르는 것들을 글로 끼적거렸다. 읽었던 책의 어느 대목이 장면처럼 떠오를 때도 있었고, 어느 작가의 분위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그런 모든 것들을 그림보다 먼저 글자로 스케치한다고나 할까. 그림보다 글이 먼저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술 선생님은 나의 그런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보시는 것 같았다.

“넌 글도 잘 쓰는가보다?”

“잘 쓴 다기 보다 자동적으로 그냥 그렇게 돼요.”

“그림은 단순히 그리는 기술이 아니지. 너처럼 그렇게 자기 머릿속에서 그렇게 떠오르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은 그것을 적절한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해. 그것이 그림일 수도 있고, 조각일 수도 있고, 사진일 수도 있고, 이 중 몇 가지를 복합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고. 그것은 누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야.”

누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어쩌면 나는 이때 처음 들어본 것 아닐까 한다. 아니, 이전에 설사 들어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이날 처음 들은 것으로 하겠다. 선생님은 실제로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거나 가르치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하는 과정을 지켜보시고 질문을 하시고 나의 답을 열심히 들어주셨다.

 

 

기말 고사를 며칠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수업이 끝나자 오늘 따라 학교가 금방 비워지는 듯 했다. 미술실로 가려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창 너머로 운동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저 애들은 각자 저렇게 바삐 갈 곳이 있구나. 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 있구나. 예전에 상철이가 학원을 빼먹고 우리와 어울려 카페에 처박혀 놀고 있는데 학원에서 금방 문자 메시지가 오는 것을 보았다. 상철이 말로는 같은 메시지가 아버지 휴대폰으로도 전송된다고 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없다. 나는 그때그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뿐이다. 좋아. 좋지 않은가?

혼자 피식 헛웃음을 날리고 있는데 어깨에 감촉이 느껴져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몇 번씩 말을 시켜도 대꾸가 없냐? 무안하게스리.”

우리 반 ‘마담’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범생이 스타일이면서 성격도 좋아서, 비슷한 범생이들부터 노는 애들까지, 미움이라곤 받지 않는 우리 반 반장이다. 어디다 내놓아도 번듯하다는 뜻으로 우리는 녀석을 마담이라고 불렀다.

“어? 어...... 집에 안가고 뭐하냐?”

“그러는 넌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뭘 그렇게 내다보고 있는데?”

“저기 되게 쭉빵한 여자애가 지나가기에 거기 쳐다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왜?”

실없는 나의 장난말에 마담이 푸하하 웃음을 폭탄처럼 터뜨렸다.

‘뭐 그리 웃긴 얘기였다고 얘가 이렇게 웃어?’

내가 오히려 멋쩍어지는데 마담이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넌 평소에 말도 없는 녀석이 어쩌다 한번 입을 열면 사람을 완전 깨게 하잖아.”

무슨 말인지 나도 알 것 같아 나도 그저 큭큭 따라 웃었다. 원래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워낙 말상대가 별로 없다보니 그렇게 성격으로 굳어진 것인지, 아무튼 말이 별로 없다는 얘기는 어릴 때부터 한 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니까.“

너, 오늘도 미술실 가냐?”

“응?”

“너 미술실에 있는 거 여러 번 봤다.”

내가 방과 후에 미술실 가서 그림 그리는 것을 비밀로 할 것도 없지만 누군가 알고 있을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마담의 그 말에 난 솔직히 좀 놀랐다.

“나야 뭐, 수업 끝나고 나면 할 일도 없고, 공부는 싫고, 그냥 미술실에서 혼자 놀다 가는 거지 뭐. 너도 미술 관심 있어?”

질문의 화살을 마담에게로 돌리기 위해, 별로 궁금하지도 않던 것을 물어봤다.

“모르냐? 나 중학교때부터 입시전문 미술학원 다니고 있는거?”

학교도 제대로 안나가는 내가 반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중학교때부터 대학준비를 했단 말이야 그럼?”

“고등학교도 예고 봤다가 떨어져서 여기 왔지. 소질이 없나봐. 그래도 포기를 안한다.”

“힘들겠다.”

너무 솔직히 말했나 싶은데 마담이 피식 웃었다.

“그래, 포기 안하는 우리 아버지가 나보다 더 힘들지도 몰라.”

그러니까 포기를 안하고 있는 것은 마담이 아니라 마담의 아버지라는 말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할아버지가 반대해서 못했거든. 어릴 때 무슨 미술대회에서 상 한번 받은거 가지고 내가 그림에 무슨 대단한 소질이라도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나보고 화가로 성공할 놈이라고 굳게 믿고 계시다, 오늘날까지. 크크.”

웃는 소리를 내고 있는 마담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원래 부모님들은 자식을 자기 인생의 제2의 기회로 삼지 않냐?”

내 말에 마담은 금방 대꾸를 하는 대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부럽다 자식아!”

갑자기 뭔가 잊었던 것을 생각해 낸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마담이 말했다.

부럽다고? 내가? 사람 놀리나.

그런데 돌아서 가는 마담의 뒷모습이 어딘지 쓸쓸해보였다.

 

 

미술실에 가니 선생님은 바로 전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제출하고 간 그림을 채점하고 계셨었는지 앞에 수북이 쌓인 스케치북을 막 정리하고 계셨다. 검사를 막 마치신 듯 하여 며칠 전부터 작업하고 있는 ‘My special place' 라는 작품에 대해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었다. 나의 특별한 장소라는 주제를 듣고 내가 처음 떠올린 것은 나의 침대 밑. 그 속에 온갖 나의 무의식들이 꿈틀거리며 뛰쳐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다. 아크릴화로 그리고 침대 밑은 사진을 가지고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 나타내었다. 어느 한, 두 색만 가지고 채도를 달리한 다양한 색조를 쓰는 것을 나는 좋아했는데 이 작품의 주제색은 보라와 회색이었다. 선생님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문득 지금 이 곳, 바로 이곳이 언젠가는 나의 특별한 장소로 떠올려지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와 담 쌓고 지내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의아스럽다는 눈초리를 보내곤 하셨다. 하루 7교시까지의 수업 시간표가 그 이후의 한두 시간 때문에 견딜 만 했다는 것이 나한테도 신기하긴 했다. 그러던 중 나의 작품 '이카루스’가 전국 학생 미술 대전 예선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제는 본선 출전을 준비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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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학교가 방학을 하면 나는 의례 서울을 떠나 개학이 될때까지 아버지와 강진이, 그리고 새엄마가 계신 집에 내려가 있었다. 동네에서 양품점을 하는 새엄마는 낮엔 거의 집을 비웠고 강진이는 갈수록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장난질을 일삼는 악동이 되어가고 있었다. 빈 집이나 다름없는 집에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릴 때 그랬듯이 아버지께 부탁하여 사들인 책들을 읽거나, 역시 아버지가 지난 생일 선물로 사주신 디지털 카메라를 주머니 속에 넣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혼자 돌아다니곤 했다. 어릴 때부터 눈에 익숙한 곳들이지만 카메라를 통해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면 얼마나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지 혼자 신기해하면서 내 카메라 폴더를 채워가는, 누가 보면 심심해보일지 몰라도 나 자신은 조금도 심심하지 않은 내 방식의 시간 보내기를 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진짜 나의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작년,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의 어느 날. 그 길고도 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겨우 몇 장 안 남기고 있던 날이었다. 점심때가 다 되어갈 무렵 드디어 읽기를 다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다른 책을 찾아 의자를 놓고 올라가 책꽂이의 윗칸에서부터 아래 칸까지 살피고 있던 중, 5단 짜리 책꽂이 맨 위에서 웬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있는지도 모를 위치였다. 심심하던 차에 상자를 꺼내어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무슨 상자일까 궁금해 하며 열어보았다. 먼지가 뽀얗게 묻은 뚜껑을 열자 거기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뒤죽박죽 빼곡히 들어있었다.

색이 바라기 시작한 컬러 사진은 흑백 사진보다 더 오래 되어 보이고 애잔해 보였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아버지, 친구들과 계곡에서 어울려 찍은 사진, 공사 현장인지 안전모를 쓰고 있는 사진 등 아버지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얼마 다니지 않아 그만 두고 집 짓는 일을 시작, 크진 않아도 지금의 건설업체를 손수 일궈낸 자수성가형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었다.

휙휙 보아 넘기다가 어떤 사진 한장에 눈길이 꽂혔다. 단출한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그 속의 젊은 남자는 아버지라는건 금방 알아보겠는데, 아버지 옆, 그러니까 보통 이런 사진에서 아내의 위치에 해당하는 자리에 서있는 여자는 누군지 모르겠다. 계속 보고 있자니 아주 낯설지는 않은 것 같기도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구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앞의 아기, 혼자 서지도 못할 정도의 어린 아기, 그건 다름 아닌 나였던 것이다. 사진 아래 날짜가 인쇄된 것을 보니 내가 태어난 다음 해 봄이었다. 그러니까 강진이 일리도 없단 말이다. 그럼 이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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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별로 안마셨다고 생각했는데 잠에 깊이 빠져 들었던 것을 보니 생각보다 꽤 마셨었나보다. 몇 번 울리다 안 받으면 끊어질 줄 알았던 전화벨 소리가 끈질기게 울어대다가 결국 나를 일으켜 세웠다.

“서강석!”

전화기를 들자마자 내 이름을 대는 이 사람.

“누구세요?”

안 나오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는데 낯선 목소리가 아니었다.

“네 담임이다 녀석아”

“아 네......”

“왜 학교 안 나오나? 어디 아픈 건 아니고? 아버님에게 전화해보려다가 네게 먼저 전화하는 거다.”

“아닙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너 지금 며칠 째 결석인줄이나 아냐? 학교 안 오고 뭐하고 다니나?”

“나가야지요.”

나가겠다고, 이제부터는 다시 학교에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선생님도 더 할 말이 없어 전화를 끊으실 줄 알았다.

“너 꼭 다시 학교에 나와야 할 이유가 있다.”

“예?”

학생이 학교에 가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담임이 말하는 그래야 할 이유란 그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여서 나도 모르게 되묻고 있었다. 관심 있는 것으로 들렸을지 모르겠다.

“나와 보면 알아. 내일은 꼭 나와. 알았지?”

“...... 예.”

다른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으랴.

 

 

학년이 시작되고 나서 한 몇 주 나가다가 거의 한 달 만에 가는 학교였다. 여기 저기 진달래가 만발이고 라일락도 피기 시작했지만 진달래 색에 묻혀 이제 피기 시작한 라일락은 눈에 잘 뜨이지 않고 있었다. 오랜 만에 가려니 더 가기 싫었지만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가방 하나 꿰차고 학교로 발길을 향했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생각한다.

‘어서 들어오라는 거야, 아니면 힘들면 관둬라, 뒤돌아 나가라는 거야. 입구를 이렇게 숨을 헉헉거리게 만들어놓은 이유가 도대체 뭐야.’

 

“미술선생님이 보자고 하실 거다.”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담임이 나를 불러 대뜸 하는 말이다.

‘미술선생님께서?’

학년 초에 의무적으로 특별 활동부를 하나씩 들어야 한다기에 미술부를 들었었고, 그것 역시 몇 번 안 나갔는데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일까.

교무실의 미술 선생님 자리가 비어 있기에 복도 끝의 미술실로 찾아갔을 때 선생님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셨다.선생님 계신 곳까지 가서도 나는 금방 말문을 열지 않고 그저 멀뚱히 서 있었다. 처음 와보는 곳 인양 미술실을 휘휘 둘러보면서.

마침내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석입니다.”

“어, 그래. 어서 와라.”

나를 잠시 올려다보시더니 보고 계시던 컴퓨터 모니터 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선생님은 여러 종류의 푸른색이 비껴가며 화면을 채우고 있는 위에 날카로운 긁힘 자국이 사방으로 나 있는, 그림이 아닌 사진을 가리키셨다.

“이거 네 거 맞아?”

그 사진을 들어 보이시며 내게 물으셨다.

그림, 사진, 조각, 어느 수단을 써도 좋으니 자기를 나타내는 이미지를 표현해보라는 것이 미술부 시작하고 첫 과제였다. 처음엔 여러 가지 푸른 색상을 팔레트에 만들어 가며 스케치북 지면을 채워나갔다. 그리고는 ‘블루오션’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게 나야? 자기를 나타내는 이미지의 표현이야?’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 벽에 박으려고 찾아놓은 못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못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지금 막 완성한 그림 위를 이리 저리 긁어내었다. 스케치북의 그림 위에는 여기 저기 거친 긁힘 자국이 만들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이젠 맘에 안 드는 그림을 찍찍 그어버린 형태가 되고 말았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나는 그 상태가 더 마음에 들었다. 카메라를 꺼냈다. 그 상태 그대로 사진을 찍은 후 그 사진 파일을 미술부 과제로 선생님께 보냈던 것이다. 제목도 블루오션을 '이카루스'라고 바꿔서.

“그런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다니? 이름을 안 적어서 누가 낸 것인지 알아내느라 애 좀 먹었다. 다른 미술부 학생들 다 제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맞춰보니 서강석이란 이름의 작품만 없기에 이게 네가 낸 것 인가보다 했지. 맞는가보구나.”

이어서 선생님은 그 사진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림으로 그렸다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 그림 위에 못으로 입체적인 질감을 나타낸 후 사진으로 찍은 얘기를 했다.

“이 작품 이번 전국학생미술대전 예선에 내도록 하자.”

“예?”

깜짝 놀라는 내게 선생님은 이어 말씀하셨다.

“이번 주가 제출 마감이야, 녀석아. 그래서 담임선생님을 통해 너 좀 급히 오라고 말씀드렸어.”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슨 대회 목적으로 내주는 과제라는 것을 알고 한 것도 아니었고 설사 알았다 할지라도 그것에 별로 연연하지 않았을 터였다.

“학교가 재미없니?”

이건 또 무슨 느닷없는 질문인가? 보통의 선생님의 대사가 아니다.

“선생님은 재미있으세요? 아, 재미없어도 다 참고 산다고 하실려고 그러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온 것에 대해 선생님보다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하하! 왜 내가 할 대답을 네가 다 해버리냐?”

선생님은 다른 말씀 없이 그냥 웃으신다. 이것도 선생님의 반응으로선 적절하지 않은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한마디 덧붙이는 말씀이란 게 참, 그 날 이후로 며칠 동안 가끔씩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학교만 재미없는 줄 알아? 사는 게 원래 재미없는 법이야.”

뭐 이런 거지같은 대답이 다 있나? 그런데 그 날 이후로 내가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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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3-10-0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글 참 좋아요.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벌써 궁금한걸요.
이 글의 서강석, 저랑 성도 같고...ㅋ~.
한참 몰입하여 눈물 찔찔 흘리던 눈으로, 또 미소 지으며 읽었어요.

호두나무는 어떤 꽃이 필까요?
당장 찾아보러 가야겠어요~=3

hnine 2013-10-07 16:0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 끝까지 다 써놓은 걸 조금씩 조금씩 올리고 있는 중이어요.
양철나무꾼님 성이 양이 아니고 서였군요! ^^ (이것도 조크라고 하는거랍니다)
호두나무꽃은 꽃이라고 알아보기 어렵게 생겼어요.
저도 솔직히 제목부터 붙이고 나서 어떻게 생겼나 찾아보았지요.
 

 

 

 

 

 

당신의 과거가 당신의 삶을 좁은 틀에 가두는 결과가 되게 하지 마라

딛고 일어서면 더 멀리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만의 역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의 길로 들어선다

 (이건  쇼펜하우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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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10-0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현재가 당신의 삶을 좁은 틀에 가두는 결과가 되게 하지 마라.
요렇게 바꿔도 좋겠네요^^

hnine 2013-10-06 08:05   좋아요 0 | URL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렇겠지요. 역시 세실님은 진취적! ^^
 
마음이여, 걸어라 - 걷는다는 것 혹은 나를 만난다는 것
조은 지음 / 푸른숲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그녀를 이전의 세 권의 책을 통해 알고 있다.

김서령의 <家>라는 책에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박혀 있는 아주 작은 그녀의 집이 소개되어 있었다. 많은 문인 친구들이 그녀의 집에만 오면 예외없이 낮잠을 자고 간다고 해서 인상적이었던 그녀의 집. 그만큼 아늑하고 조용하다는 뜻일거다. 사진 속의 그녀의 집은 작지만 아주 정갈한 한옥. 이 책에 실린 다른 어느 집보다, 그리고 거기서 글을 쓰며 혼자 사는 그녀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제목이 내용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녀의 에세이 <벼랑에서 살다>를 읽었다. 겉으로 보면 아주 평범하고 조용해보이는 일상이지만 벼랑 위에 버티고 있는 마음으로 산다는 그녀의 글은 속깊고 아름다왔다.

 

'샘터'에서 나온 사진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제는 고인이 된 최민식님의 사진에 조은이 글을 썼는데, 글과 사진이 아주 잘 어울렸다. 그의 사진처럼 그녀의 글도 컬러보다는 흑백이니까.

 

그리고 오늘 읽기를 마친 이 책. 내 보관함에 한참 담겨있다가 이제야 읽게된 책인데 수차례 혼자, 때로는 벗과 함께 경주의 남산을 오르며 쓴 기록들이다. 그녀는 왜 그리 남산에 자주 오른 것일까. 15년 전 나는 왜 하필 신혼여행지로 경주를 택했으며 6월의 더위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남산에 올랐던 것일까.

 

서문에서 그녀는  중세 철학자 베르나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경주 남산을 거인의 어깨에 비유했다. 남산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오르면 우리는 거인의 거대한 키만큼 높아지고, 높은 그 곳에 올라, 떠나왔으나 되돌아가야 할 곳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고.

 

제일 먼저 내 눈에 꽂힌 문장은 17쪽에 있었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하잘것없었다. 하찮게 여겨졌던 것들이 모두 소중했다.

아직도 멀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발설조차 못 하는 그리움 (53쪽)이란 어떤 것일까. 여기 저기 끄적거릴 수도 없이 삼켜야 하는 그리움이란.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고통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니체가 한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강함은 고통의 댓가라는게 사실이라면.

여기서 처음 본 건 아닌 것 같은데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문장도 있다. 새벽에 경주에 도착한 저자가 한치 앞도 안보이는 깜깜한 산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남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 날이 환해지자 올라갈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 되면서, 보려던 일출은 날씨때문에 보지 못했지만 새로이 일출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알게 된것은, 어둠을 밝히는 한 자루의 촛불처럼 내가 밝아지면 나를 감싼 환경은 저절로 밝아진다는 것이었다고 (151쪽).

내 주위가 어둡다고 비관하지 말고, 내가 밝아지면 비로소 내 주위가 밝아진다. 내 주위를 불 밝힐 수 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 (200쪽)이라. 그래, 요즘 나도 이런 사람들에게 괜히 말걸고 싶어진다. 난 말을 아끼고 그냥 옆에서 이들의 동선을 따라가고 싶다.

 

환한 햇볕 아래 있지 않고 늘 그림자 속에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을 어둡게만 볼 것 없다.

그림자는 내게 어둠이자 자의식이고, 통과해야만 하는 관념이었기에 나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든 그것의 그림자도 함께 살펴보곤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두운 느낌을 주었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이 낮은 곳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 어둠에는 우리를 높은 세계로 들어올려 주는 신비한 부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땅의 어둠을 극복한 자들이 머무르는 세계가 상징적으로 구현된 남산이 그걸 내게 가르쳐줬다. 그림자가 내 삶에 입체감을 주고, 나와 다른 대상 사이에 끼어들어 온갖 충격을 흡수했고 내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에도 숨 쉬고 살도록 공간을 확보해줬다. (228쪽)

사람이 사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니까.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되돌아보고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그녀의 삶을 그림자 속의 삶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양지보다는 그늘에 먼저 눈을 돌리는 쪽이라 생각하기에 이 글에 더 공감을 했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그녀가 출연했었다는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TV프로그램은 어떠했을까, 은근히 궁금해진다.

걷는다는 행위는 발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발과 함께 마음도 함께 걷고, 생각도 함께 걷는다는 것도 저자에게 공감하는 것 중 하나이다.

화려할 것 없는 무채색의 글들이, 편하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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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1 05: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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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2 1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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