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여, 걸어라 - 걷는다는 것 혹은 나를 만난다는 것
조은 지음 / 푸른숲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그녀를 이전의 세 권의 책을 통해 알고 있다.

김서령의 <家>라는 책에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박혀 있는 아주 작은 그녀의 집이 소개되어 있었다. 많은 문인 친구들이 그녀의 집에만 오면 예외없이 낮잠을 자고 간다고 해서 인상적이었던 그녀의 집. 그만큼 아늑하고 조용하다는 뜻일거다. 사진 속의 그녀의 집은 작지만 아주 정갈한 한옥. 이 책에 실린 다른 어느 집보다, 그리고 거기서 글을 쓰며 혼자 사는 그녀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제목이 내용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녀의 에세이 <벼랑에서 살다>를 읽었다. 겉으로 보면 아주 평범하고 조용해보이는 일상이지만 벼랑 위에 버티고 있는 마음으로 산다는 그녀의 글은 속깊고 아름다왔다.

 

'샘터'에서 나온 사진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제는 고인이 된 최민식님의 사진에 조은이 글을 썼는데, 글과 사진이 아주 잘 어울렸다. 그의 사진처럼 그녀의 글도 컬러보다는 흑백이니까.

 

그리고 오늘 읽기를 마친 이 책. 내 보관함에 한참 담겨있다가 이제야 읽게된 책인데 수차례 혼자, 때로는 벗과 함께 경주의 남산을 오르며 쓴 기록들이다. 그녀는 왜 그리 남산에 자주 오른 것일까. 15년 전 나는 왜 하필 신혼여행지로 경주를 택했으며 6월의 더위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남산에 올랐던 것일까.

 

서문에서 그녀는  중세 철학자 베르나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경주 남산을 거인의 어깨에 비유했다. 남산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오르면 우리는 거인의 거대한 키만큼 높아지고, 높은 그 곳에 올라, 떠나왔으나 되돌아가야 할 곳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고.

 

제일 먼저 내 눈에 꽂힌 문장은 17쪽에 있었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하잘것없었다. 하찮게 여겨졌던 것들이 모두 소중했다.

아직도 멀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발설조차 못 하는 그리움 (53쪽)이란 어떤 것일까. 여기 저기 끄적거릴 수도 없이 삼켜야 하는 그리움이란.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고통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니체가 한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강함은 고통의 댓가라는게 사실이라면.

여기서 처음 본 건 아닌 것 같은데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문장도 있다. 새벽에 경주에 도착한 저자가 한치 앞도 안보이는 깜깜한 산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남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 날이 환해지자 올라갈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 되면서, 보려던 일출은 날씨때문에 보지 못했지만 새로이 일출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알게 된것은, 어둠을 밝히는 한 자루의 촛불처럼 내가 밝아지면 나를 감싼 환경은 저절로 밝아진다는 것이었다고 (151쪽).

내 주위가 어둡다고 비관하지 말고, 내가 밝아지면 비로소 내 주위가 밝아진다. 내 주위를 불 밝힐 수 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 (200쪽)이라. 그래, 요즘 나도 이런 사람들에게 괜히 말걸고 싶어진다. 난 말을 아끼고 그냥 옆에서 이들의 동선을 따라가고 싶다.

 

환한 햇볕 아래 있지 않고 늘 그림자 속에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을 어둡게만 볼 것 없다.

그림자는 내게 어둠이자 자의식이고, 통과해야만 하는 관념이었기에 나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든 그것의 그림자도 함께 살펴보곤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두운 느낌을 주었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이 낮은 곳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 어둠에는 우리를 높은 세계로 들어올려 주는 신비한 부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땅의 어둠을 극복한 자들이 머무르는 세계가 상징적으로 구현된 남산이 그걸 내게 가르쳐줬다. 그림자가 내 삶에 입체감을 주고, 나와 다른 대상 사이에 끼어들어 온갖 충격을 흡수했고 내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에도 숨 쉬고 살도록 공간을 확보해줬다. (228쪽)

사람이 사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니까.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되돌아보고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그녀의 삶을 그림자 속의 삶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양지보다는 그늘에 먼저 눈을 돌리는 쪽이라 생각하기에 이 글에 더 공감을 했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그녀가 출연했었다는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TV프로그램은 어떠했을까, 은근히 궁금해진다.

걷는다는 행위는 발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발과 함께 마음도 함께 걷고, 생각도 함께 걷는다는 것도 저자에게 공감하는 것 중 하나이다.

화려할 것 없는 무채색의 글들이, 편하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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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1 05: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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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2 1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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