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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안마셨다고 생각했는데 잠에 깊이 빠져 들었던 것을 보니 생각보다 꽤 마셨었나보다. 몇 번 울리다 안 받으면 끊어질 줄 알았던 전화벨 소리가 끈질기게 울어대다가 결국 나를 일으켜 세웠다.

“서강석!”

전화기를 들자마자 내 이름을 대는 이 사람.

“누구세요?”

안 나오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는데 낯선 목소리가 아니었다.

“네 담임이다 녀석아”

“아 네......”

“왜 학교 안 나오나? 어디 아픈 건 아니고? 아버님에게 전화해보려다가 네게 먼저 전화하는 거다.”

“아닙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너 지금 며칠 째 결석인줄이나 아냐? 학교 안 오고 뭐하고 다니나?”

“나가야지요.”

나가겠다고, 이제부터는 다시 학교에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선생님도 더 할 말이 없어 전화를 끊으실 줄 알았다.

“너 꼭 다시 학교에 나와야 할 이유가 있다.”

“예?”

학생이 학교에 가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담임이 말하는 그래야 할 이유란 그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여서 나도 모르게 되묻고 있었다. 관심 있는 것으로 들렸을지 모르겠다.

“나와 보면 알아. 내일은 꼭 나와. 알았지?”

“...... 예.”

다른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으랴.

 

 

학년이 시작되고 나서 한 몇 주 나가다가 거의 한 달 만에 가는 학교였다. 여기 저기 진달래가 만발이고 라일락도 피기 시작했지만 진달래 색에 묻혀 이제 피기 시작한 라일락은 눈에 잘 뜨이지 않고 있었다. 오랜 만에 가려니 더 가기 싫었지만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가방 하나 꿰차고 학교로 발길을 향했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생각한다.

‘어서 들어오라는 거야, 아니면 힘들면 관둬라, 뒤돌아 나가라는 거야. 입구를 이렇게 숨을 헉헉거리게 만들어놓은 이유가 도대체 뭐야.’

 

“미술선생님이 보자고 하실 거다.”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담임이 나를 불러 대뜸 하는 말이다.

‘미술선생님께서?’

학년 초에 의무적으로 특별 활동부를 하나씩 들어야 한다기에 미술부를 들었었고, 그것 역시 몇 번 안 나갔는데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일까.

교무실의 미술 선생님 자리가 비어 있기에 복도 끝의 미술실로 찾아갔을 때 선생님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셨다.선생님 계신 곳까지 가서도 나는 금방 말문을 열지 않고 그저 멀뚱히 서 있었다. 처음 와보는 곳 인양 미술실을 휘휘 둘러보면서.

마침내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석입니다.”

“어, 그래. 어서 와라.”

나를 잠시 올려다보시더니 보고 계시던 컴퓨터 모니터 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선생님은 여러 종류의 푸른색이 비껴가며 화면을 채우고 있는 위에 날카로운 긁힘 자국이 사방으로 나 있는, 그림이 아닌 사진을 가리키셨다.

“이거 네 거 맞아?”

그 사진을 들어 보이시며 내게 물으셨다.

그림, 사진, 조각, 어느 수단을 써도 좋으니 자기를 나타내는 이미지를 표현해보라는 것이 미술부 시작하고 첫 과제였다. 처음엔 여러 가지 푸른 색상을 팔레트에 만들어 가며 스케치북 지면을 채워나갔다. 그리고는 ‘블루오션’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게 나야? 자기를 나타내는 이미지의 표현이야?’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 벽에 박으려고 찾아놓은 못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못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지금 막 완성한 그림 위를 이리 저리 긁어내었다. 스케치북의 그림 위에는 여기 저기 거친 긁힘 자국이 만들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이젠 맘에 안 드는 그림을 찍찍 그어버린 형태가 되고 말았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나는 그 상태가 더 마음에 들었다. 카메라를 꺼냈다. 그 상태 그대로 사진을 찍은 후 그 사진 파일을 미술부 과제로 선생님께 보냈던 것이다. 제목도 블루오션을 '이카루스'라고 바꿔서.

“그런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다니? 이름을 안 적어서 누가 낸 것인지 알아내느라 애 좀 먹었다. 다른 미술부 학생들 다 제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맞춰보니 서강석이란 이름의 작품만 없기에 이게 네가 낸 것 인가보다 했지. 맞는가보구나.”

이어서 선생님은 그 사진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림으로 그렸다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 그림 위에 못으로 입체적인 질감을 나타낸 후 사진으로 찍은 얘기를 했다.

“이 작품 이번 전국학생미술대전 예선에 내도록 하자.”

“예?”

깜짝 놀라는 내게 선생님은 이어 말씀하셨다.

“이번 주가 제출 마감이야, 녀석아. 그래서 담임선생님을 통해 너 좀 급히 오라고 말씀드렸어.”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슨 대회 목적으로 내주는 과제라는 것을 알고 한 것도 아니었고 설사 알았다 할지라도 그것에 별로 연연하지 않았을 터였다.

“학교가 재미없니?”

이건 또 무슨 느닷없는 질문인가? 보통의 선생님의 대사가 아니다.

“선생님은 재미있으세요? 아, 재미없어도 다 참고 산다고 하실려고 그러죠?”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온 것에 대해 선생님보다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하하! 왜 내가 할 대답을 네가 다 해버리냐?”

선생님은 다른 말씀 없이 그냥 웃으신다. 이것도 선생님의 반응으로선 적절하지 않은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한마디 덧붙이는 말씀이란 게 참, 그 날 이후로 며칠 동안 가끔씩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학교만 재미없는 줄 알아? 사는 게 원래 재미없는 법이야.”

뭐 이런 거지같은 대답이 다 있나? 그런데 그 날 이후로 내가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한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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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3-10-0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글 참 좋아요.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벌써 궁금한걸요.
이 글의 서강석, 저랑 성도 같고...ㅋ~.
한참 몰입하여 눈물 찔찔 흘리던 눈으로, 또 미소 지으며 읽었어요.

호두나무는 어떤 꽃이 필까요?
당장 찾아보러 가야겠어요~=3

hnine 2013-10-07 16:0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 끝까지 다 써놓은 걸 조금씩 조금씩 올리고 있는 중이어요.
양철나무꾼님 성이 양이 아니고 서였군요! ^^ (이것도 조크라고 하는거랍니다)
호두나무꽃은 꽃이라고 알아보기 어렵게 생겼어요.
저도 솔직히 제목부터 붙이고 나서 어떻게 생겼나 찾아보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