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1월
품절


팔십 세를 훨씬 넘기신 어머니는 간혹 한숨을 쉬시며 살아온 날들이 한바탕 꿈 같다거나 사는 일이 어린아이들의 소꿉놀이와 다를 바 없다고 말씀하신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엄마 노릇, 아빠 노릇, 아기 노릇을 하고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시늉을 하다가 해 저물고 어두워져 '아무개야, 그만 놀고 들어와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소꿉놀이 살림살이를 놀던 그대로 두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듯이, 이 세상에서 사는 일도 마찬가지로 한바탕 펼쳐놓고 살다가 어느 날 누군가의 부름에 놀던 것, 지녔던 것들을 그대로 놓아 두고 황황히 떠나가게 되는 것이라는 뜻일게다.-31쪽

마흔 살이란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 앞의 걸림돌이다. 설혹 잘못 들어선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것, 인생의 성패는 이미 판가름 난 것이 아닌가라는 성급한 판단에 초조해지기도 하고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이제야 확연히 보이는가 하면 여념 없이 살아온 날들에의 반성과 검토, 게다가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무엇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물음 앞에 피할 도리 없이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앞에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는 질병과 외로움의 종내 어느 날엔가 틀림없이 맞게 될 죽음-낯익고 친근한 모든 것과의 이별-역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40대가 되면 찾아올 거라고 기대했던 평화도 안도감도 앎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린 듯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럽다.-39쪽

결국 소설 쓰기가 힘들다는 것은 삶이 힘들고 섣부르게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 미묘하다는 깨달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63쪽

밤길을 혼자 걸어본 사람은 안다. 꽃피는 봄과 잎 무성한 여름, 스산한 가을과 얼어붙은 겨울, 달과 별과 바람이, 서로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서 있는 나무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살고 있음을.
어둠 속에 조용히 서 있는 나무들은 우리에게 살아가라고, 세상은 아름답고 충분히 견딜 만하다고 나직이 말하며 사시사철 마파람에 문풍지 떨듯 펄럭이는 마음을 위무하며 잠재우는 듯하였다.-68쪽

통찰력이 없는 상상이란 잡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성숙한 의식이 있어야 하고 성숙한 의식이란 또한 깊이 살아내기, 상식과 통념, 상투성을 깨고 뒤집어보는 물음과 시선, 본질에 대한 궁구가 따라야 하겠지요.-174쪽

죄 없는 아이들의 고통은 세상의 업이다. 그들이 누구라 해도, 어른이 되고 늙어간다 해도 어린아이 시절 입은 영혼의 깊은 상처는 세상 뭇 어미의 가슴에 슬픔의 형상으로 각인된다.-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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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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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싱싱한 오이와 상추와 딸기가 올라 있는 음식상을 바라보며 나는 불쾌감과 아울러 공포감을 느낀다. 한여름 먹을 거리인 오이가 한겨울에 생산되는 것은 모두 돈 때문이다. 한여름에 나는 먹을 거리를 한겨울에도 먹고자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중략) 사람들은 이제 절대로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대신 돈으로 사버리면 되는 것이다. 더위가 오기 전에 미리 더위를 돈으로 사서 즐기다가 막상 더위가 오면 또 추위를 돈 주고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계절을 기다리지 않고, 사랑을 기다리지 않고, 세월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떡하든 나이보다 젊은 모습을 지니고자 애쓴다. 늙었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70쪽

'나도 알고 보면 차암 예쁘고 괜찮고 아름다운 여잔데....'
내가 나에게 아름다움을 느낄 때 남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베푸는 아름다움이든 이기적인 아름다움이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171쪽

나는 그와 어떤 특별한 말을 주고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그는 내 속의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 그것도 모를 테지요. 자신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가 커다란 위로가 되고 부처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 또한 누군가의 가슴속에 들어가 위로가 되고 부처가 될 수는 없을까요. 좀더 가난해지고 좀더 외로워지면 그럴 수 있을는지요. 하기사 태안사의 그는 가난과 외로움조차도 스스로 느끼지 않는 그저 '그'일 따름이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조차도 때로는 거추장스런 장신구일 수도 있겠습니다.-15쪽

생애의 어느 한때 한순간, 누구에게나 그 '한순간'이 있다. 가장 좋고 눈부신 한때. 그것은 자두나무의 유월처럼 짧을 수도 있고, 감나무의 가을처럼 조금 길 수도 있다. 짧든 길든, 그것은 그래도 누구에게나 한 때, 한순간이 된다. 좋은 시절은 아무리 길어도 짧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짧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57쪽

세상은 참 많이, 그리고 늘 '나쁜 것'들의 연속이었다. 나쁜 것들의 행렬 속에서 좋은 것의 도래를 열망하여 어느 한때, 좋은 한 시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간절한 열망 끝에 오는 좋은 한 시절은 그 기다림과 그 열망의 시간들에 비해 너무나 짧다. 오죽하면 메뚜기도 한철이란 말이 생겨났겠는가.
그러나 좋은 한순간, 한때, 혹은 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기다리고 열망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오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그야말로 그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도 '좋은 한때' 한번 못보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지난한 생애들을 종종 보게 되니 말이다.
어느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겠는가마는 평탄한 삶만을 살다 간 사람보다 산산하기만 한 생을 살았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가슴이 메어오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그 생애에서 뭔가를 이우려 하다가 끝끝내 이루지 못한 이의 죽음 앞에서는 울음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울음이란, 슬픔이란 때로 얼마나 감정의 허영인 것이냐.-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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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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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서재 지인 어느 분께서 곡성에 가신다는 댓글에 얼른 '공 선옥'부터 떠올릴만큼 나는 요즘 이 작가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제목도 고와라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실제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한줄 한줄 따라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장황스럽거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멋지게 사용한 것도 아니면서, 그저 소박하고 솔직한 문장들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나. 내가 공선옥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동안의 그녀의 평탄치 않은 인생 여정과 경륜에서 말미암은 내공을, 이렇게 찬찬히 걸러내어, 소박하고 솔직하고 깨끗한 문장만 남길 수 있는 능력 때문일 것이다.
획기적이고, 참신하며, 한 눈에 들어오는 표현, 재치가 번뜩이는 문장, 감성과 지성의 조화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독자를 사로잡는 글 솜씨. 누가 이런 작가를 훌륭하지 않다 했는가? 다만 나는 감탄할 뿐, 그 이상으로 끌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을 빼고 말할 수 없는 그녀의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 이미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며 쓸어내리는 가슴, 이제 그녀 뒤에 따라 붙는 올망졸망 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어미의 마음 등, 그녀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침내 큰 파도를 이루어 밀려와 내 가슴 역시 한바탕 쓸어내리고 가곤 했다. 자기도 모르게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듯한 글, 나를 알아달라고, 나의 뛰어남을 은연중에 내세우려는 듯한 글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글이 난 참 좋다.

그동안 그녀의 여행기나 소설, 수필 등에서 간간히 얘기가 나오긴 했었지만, 이 책에는 어린 시절 뿐 아니라, 중 고교 시절, 대학 시절, 85년 광주와 관련된 결혼, 그리고 세 아이를 거느린 엄마 가장이 되어 어려움을 헤쳐나가던 시절 얘기들이 역시 잠깐 잠깐씩 나온다. 질펀히 앉아 다 풀어놓지 못하는 까닭은 그녀가 아직도 그 모든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그것때문에 마음 아림 때문이리라.

훼손되어 가는 자연, 제철 음식이랄 것 없이 아무 때나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을 보며 두려움 마저 느낀다면서, 하지만 두려움, 걱정과 함께 그럼에도 품어야 하는 희망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는 글의 제목을 이 리뷰의 제목으로 붙여보았다 '마른 풀더미에 촉을 틔운 마늘꽃을 보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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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a child is to keep alive his inborn sense of wonder, he needs the companionship of at least one adult who can share it, rediscovering with him the joy, excitement and mystery of the world we live in."

: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경이감을 계속 살려 나가려면 최소한 그 경이감을 함께 나눌 어른(보호자)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기쁨과 흥분, 그리고 신비를 같이 발견할 그런 어른이 필요하다”

“If I had influence with the good fairy who is supposed to preside over the christening of all children, I should ask that her gift to each child in the world be a sense of wonder so indestructible that it would last throughout life."

: 내가 만약 모든 어린이의 세례를 관장하는 여신(요정)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그녀가 세상의 어린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결코 파괴되지 않고 평생 동안 지속될 경이감이라고 부탁 드리고 싶다” 찡한 감동이 오는 이야기죠? 세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에 대한 경이감입니다.

“If facts are seeds that later produce knowledge and wisdom, then the emotions and impressions of the senses are fertile soil in which the seeds must grow. "

: 만약 사실(사실적인 것)이 훗날 지식과 지혜를 양산하는 씨앗이라면 우리의 감성과 느낌은 그 씨앗을 자라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다”

 

- 레이첼 카슨의 말. 인터넷 과학 신문에서 퍼왔다.

 

자기 철학을 가지고 하는 일하는 사람은 돋보인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이건 나의 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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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최고의 파이

 

모우와 조우는 동네에서 파이를 최고로 잘 만듭니다.
"그들이 만드는 체리 파이는, 최고의 어떤 피자보다도 훌륭해." 피자배달부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만드는 사과 파이는 최고의 어떤 아이스크림보다도 맛있지."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파이는 안 먹을수록 좋아." 은행원은 말했습니다.

 

매일매일 모우와 조우는 파이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파이 가게는 항상 바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모우와 조우의 여동생 플로가 찾아왔습니다.
"모우언니, 조우언니,  잘 있었어?" 플로가 말했습니다.
"안녕, 플로~" 모우와 조우도 인사합니다.


플로는 모우와 조우에게 파이를 두개 건네주었습니다.
"한번 먹어 봐, 내가 바로 오늘 아침 만든거야." 플로가 말했습니다.
"고맙다 플로" 모우가 말했습니다.
"잘 먹을께." 조우가 말합니다.
모우와 조우는 플로가 만든 파이를 몇 입 먹어보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모우가 말했습니다.
"쯧 쯧" 조우가 말했습니다.
모우와 조우는 우습다는 표정을 지어댔습니다.
"파이가 맛이 없어?" 플로가 말했습니다.
"최고의 맛은 아니구나." 모우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것보다 더 잘 만드는데" 조우가 말했습니다.

 

플로는 자기가 만든 파이를 한 입 먹어보았습니다.
"웩!" 플로는 말했습니다.
"내가 만드는 파이는 전부 도움이 필요하겠어. 언니들, 파이를 더 잘 만들게 나 좀 도와줄래?"
모우와 조우는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지."

 

모우와 조우는 플로에게 파이를 더 잘 만들수 있는 요령을 여러 가지 알려 주었습니다.
플로는 체리 파이를 몇개 만들었습니다. 또 사과 파이도 몇개 만들었습니다.
은행원이 가게에 왔습니다. 그리고는 플로가 새로 만든 파이중 하나를 다 먹었습니다.

 

"모우 조우, 당신들은 이 동네에서 파이를 최고로 잘 만드는군요." 은행원이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모우가 플로를 향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은행원은 플로가 만든 파이를 하나 더 사가지고 갔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모우와 조우, 플로는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다 함께 파이를 먹었습니다!

 

-Kathryn McKeon 글, Valeria petrone 그림 -

(hnine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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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8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8-06-29 06:57   좋아요 0 | URL
빵 만들기, 취미로 저는 참 좋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풍기는 빵 냄새, 또는 커피 냄새 등은 사람을 참 행복하게 하지요.
오븐은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참 여러 종류가 나와 있고 가격대도 다양하고요. 좋은 것도 참 많던데 저는 아주 간단한 컨벡스 오븐이어요. 2년 전에 샀는데 10만원보다 조금 더 주고 산 것 같은데 (제가 산 것이 아니라 동생이 집들이 선물로 사 준 것이라서) 오븐 중에서 가장 간단한 모델일거예요. 그런데 베이킹을 자주, 전문적으로 하실 것 아니라면 이것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되어요. 단, 오븐 토스터 라고 되어 있는 것 (아마 5-6만원대)은 온도 조절 기능도 없고 크기가 너무 작으므로 빵 만드는 용도로 권하고 싶지 않아요.
처음엔 머핀이나 쿠키, 그 다음에 카스테라나 간단한 케잌, 마지막으로 발효빵 순으로 해보세요.
여기 대전도 어제 토요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답니다.
그럼,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님의 댓글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2008-06-30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8-06-2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븐사려고 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hnine 2008-06-29 11:39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추천합니다~ ^^
좋아하실거예요.

2008-07-11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1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5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