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야야, 밖에도 좀 나가 놀고 그라지, 하루 종일 방에만 있나? 깝깝하지도 않나?”

할머니가 방문을 열어보셨을 때 나는 지난 어린이날 아버지께서 사주신 동화책을 읽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른들은 왜 책을 읽고 있으면 갑갑할 거라고 생각 했는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음껏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아니 나를 잊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불쌍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갔던 것 같다.

실제로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책 속에서 내 맘대로 골라 만나는 세상들에서 더 행복을 느꼈던 나를 두고 집안 어른들은 나가 노는 것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아이로 여기셨다. 아버지는 그것이 나름 기특했는지 내가 사달라고 하는 책들은 대부분 다 사주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나에게 뭔가 해주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을 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땐 책을 사달라고 하면 되었다.

책을 읽지 않을 때 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종이와 연필만 보이면 나는 뭔가를 그리곤 했다. 앞에 보이는 물건을 따라 그리기도 하고, 동그라미와 네모를 이리 저리 비껴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내 손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가 안 계신 집. 경주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번갈아가며 나와 강진이를 비롯해 온갖 집안 뒤치다꺼리를 해주셨다. 엄마가 생각나 훌쩍거린 기억은 없다. 혹시 그런 모습을 보고 나를 가여워 할까봐 참았다.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겨우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딱 한번 울었던 기억이 있긴 하다.

그날 나는 할머니를 따라 시장엘 갔다 오는 길이었다. 할머니는 사야할 것을 잊어버리고 안산게 있다며 얼른 다녀올테니 나보고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그 자리에서 그야말로 꼼짝도 안 하고 서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며 할머니가 이제나 오실까 저제나 오실까 기다리면서도 나는 거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져갔다.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내 옆을 지나쳐 가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도 왜 눈물이 났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처음 ‘나는 혼자’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서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어졌고 눈물이 신발 등으로 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드니 뛰어 오셨는지 가쁜 숨을 쉬고 계신 할머니였다.

“아이고, 이누마. 여태 여기 이러고 서있었나. 고기 사고 그집 아지매랑 한참 수다떨다가 이자뿌꼬 그냥 집으로 갔다 아이가. 퍼뜩 생각나서 너 없어졌을깨미 을매나 맴 졸이며 담박질 해서 왔는지 모른데이. 아이쿠, 이눔 이거, 꼼짝 안코 여기서 기다렸구마. 어디 가서 앉아있기라도 하지 그랬나. 다리 안 아프나?”

할머니는 내가 눈물을 찔끔이고 있는 걸 보시고는 나를 끌어안고 토닥이셨다.

“이눔 이거 우야노. 사내 자슥이 이리 여릿해서 우야노.”

그땐 시장 바닥이었으니까, 나를 알아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눈물이 나왔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나는 울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해, 나는 5학년이 되었고 집을 떠났다.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강진이와 함께 서울의 좋은 학군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기 때문이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이웃 아는 분의 소개로 재혼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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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8-26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람들한테 아름다움을 베풀어요.
할머니하고 아이 사이에 아름다운 끈이 이어졌겠지요.

hnine 2013-08-26 14:13   좋아요 0 | URL
연작이어요. 조금씩 써놓았던 이야기인데 여기에 풀어놓고 이제 잊어버리려고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오기 2013-08-2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저 덩달아 '싸아~' 합니다~~~~~~
글쓰기를 즐기는 님의 모습에도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
좋은 책 추천 고맙습니다!!

hnine 2013-08-28 09:06   좋아요 0 | URL
어려운 책 보다는 이해가 쉬운 책 위주로 고르려고 했는데 도움이 되신다면 제가 영광이지요.
 

3

 

 

 

원래 혼자 지내던 방인데도 아버지 가시는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고 들어온 방은 유난히 썰렁해보였다. 썰렁한 방, 썰렁한 책상, 그 썰렁함에 내 마음 저 구석의 뜨거운 설움과 화가 섞여져 좀 누그러질 수 있다면.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왜 십년 전 엄마가 떠나던 그날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어제의 싸움질이 다른 때와 특별할 것은 없었다. 내놓으라고 할 때 순순히 가진 돈 다 내놓는 녀석 별로 없는 것도 의례적인 일이고, 문제는 더 어르고 겁주면 다 내놓게 되어 있는 것을 형민이 자식이 너무 빨리 흥분을 해서는 주먹을 휘둘러버린 것이다. 주먹을 휘두르면 가진 것 다 털어놓기까지의 시간이 더 단축될 것이라는 형민이 생각은, 맞은 녀석이 그 상황에서 갑자기 소리를 질러버림으로써 오히려 우리 쪽을 당황하게 만드는 결과만 불렀으니까. 순식간에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고, 미처 우리가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경찰이 달려들었다. 경찰서로 주르륵 끌려갔고, 보호자 연락처들을 대고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제일 먼저 경찰서에 나타난 보호자는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경찰서에 들어서자 먼저 내가 어디 있는지를 찾으셨다.

“어데, 다치진 않았나?”

아버지 얼굴도 똑바로 못 쳐다보았지만 죄송하다든지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대신 고개만 한번 젓고 시선을 아래로. 보고 싶은 것도 없고 듣고 싶은 것도 없다는 심사였다.

어떤 과정을 거쳐 내가 제일 먼저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순전히 아버지 덕분이었다는 것 밖에.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각서라도 쓰셨을까? 각서로만 이루어진 일이었을까?

벌렁 누워 한 쪽 팔을 들어 눈 위에 올려놓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서려는데 현관 옆 신발장 위에 봉투가 보였다. 열어보니 그 속엔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두고 가신 것이다. 얼마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그 중 대충 몇 장을 뽑아들고 나와 담배를 사러 집을 나왔다.

편의점에는 내 나이 정도 되는 아이들 몇 명이 가방을 메고 선채로 라면을 먹고 있었고, 계산대의 점원 역시 내 나이 정도 되어 보였다. 점원은 내 나이를 묻지도 않고 달라는 담배를 꺼내어 준다. 한 공간 같은 시간에 비슷한 나이대의 누구는 담배를 사고, 누구는 담배를 팔고, 누구는 앉지도 않고 선채 바삐 라면을 먹고.

누구하고도 눈 마주치기 싫었던 오늘, 처음으로 담배를 내미는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나를 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 치자 얼른 눈길을 거둔다. 내가 담배를 살 나이가 안 된다는 것을 알만 한데 내게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을 보니, 너도 여기서 알바할 나이는 안 된 것 아니냐?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이를 물으면 대꾸할 것도 없이 나와서 다른 가게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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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석아, 서강석!”

누군가의 노크소리에 이어 수업 중이던 교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린 것은 이제 2교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잠시 교실 밖으로 나가셨던 선생님께서 교실 문을 닫고 돌아서면서 바로 호명하신 것은 바로 나였다.

“강석이 지금 책가방 싸서 어서 집으로 가 보거라. 어머니께서 많이 안 좋으시단다.”

엄마가 안 좋으시단다? 새삼스러웠다. 엄마는 늘 안 좋으셨는데. 2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으시기 전에도 그 후에도,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자리에 누워계신 엄마이다. 엄마와 함께 어디를 놀러가거나 무엇을 같이 하거나 했던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수술 받고나서 잠시 좋아지시나 싶었는데 1년이 지나 재발한 후에는 수술 전 보다 오히려 더 아파 보였고, 다시 자리에 누워만 계시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와 동생 강진이는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와 셋이나 되는 이모들이 돌아가며 우리 집에 와서 보살펴 주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늘 안좋던 엄마가 새삼 안 좋으시다니.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선생님 말뜻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가방을 챙기고 있는 나를 반 아이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도 못들고 가방을 챙겨 선생님쪽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교실을 나왔다. 대낮이었지만 12월의 바람은 바로 피부로 느껴졌다. 처음엔 빠르게 걷던 걸음이었는데 집으로 가까워 갈수록 차츰 느려졌다. 집에 거의 다가왔을땐 뭔지 몰라도 안 좋은 소식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가 계신 방에서 이모가 나오다가 막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말했다.

“강석이 오나. 어서 들어가 보거레이.”

평소의 그 호탕하고 씩씩하던 이모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이모 얼굴을 쳐다보고 서있었다.

“어서......”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학교에서 공부하다 말고 지금 집으로 와야 했는지.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가 엄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이모들, 그리고 동생 강진이가 앉아 있었다.

“언니, 강석이 왔다.”

이모의 말에 엄마는 나를 향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셨다.

“강석아”

엄마가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

왜 그런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뜨셨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한 번 더 부르셨다.

“강석아......”

바보같이, 입이 얼어붙었는지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엄마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던 내 손을 잡으셨다.

“강석이 네가 그래도 형인기라. 강진이 잘 보살펴 주고, 그라고......”

“......”

고개를 푹 숙인 채 엄마가 그 다음 말을 이어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 손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걸 느꼈다.

내 뒤에서 흑흑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뒤에 서 있던 이모들이 엄마에게 달려들어 울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버지가 불러도, 이모가 불러도, 엄마는 이번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엄마, 엄마”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던 강진이가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나보다 세살 어린 강진이. 강진이는 점점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엄마, 일어나 엄마. 엄마!”

‘어, 엄마는 내게 더 할 말이 있었는데. 얘기하다 마셨는데......’

이게 꿈은 아닐까, 이게 바로 죽는다는 것일까?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엄만 이제 어디로 가는거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를 태운 상여가 나가는 날은 아침부터 하얗게 눈이 내렸다.

곡소리 속에 알록달록 화려한 꽃상여를 따라 걸으며 나는 상여가 왜 저렇게 알록달록 할까 생각했다.

눈으로 들어오는 화려한 꽃상여의 모습과 땡그랑 땡그랑 요령 소리,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노래 소리. 나는 그저 이 시간이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사진을 가슴께에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걷느라, 손이 시려워도 참아야 했다.

“저 아 봐라, 울지도 않는데이. 다 소용없다 아이가.”

“입 다물라. 아가 지금 뭐 알기나 하건나.”

누군가 뒤에서 소곤거리는 걸 들었다. 그게 나를 보고 하는 이야기인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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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9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9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경찰서에서 나와 보니 밖은 이미 어두웠다.

아버지는 저만치 앞서서, 내가 따라오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걷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머 묵어야 안 되겄나?”

버스 정류장에 다 와서야 아버지는 내가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가 물으셨다.

“됐어요.”

이럴 때 제일 짧게 끝낼 수 있는 대답이다. 그것도 아버지 쪽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쪽, 허공을 향해 대답하면서, 불빛 번쩍거리는 이 도시는 지금 낮도 밤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맘 놓고 어둠 속에 파묻혀 버리기도 쉽지 않다고.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서도 아버지와 나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것 역시 늘 그랬던 대로이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원래부터 그렇게 말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아무 말도 안하는 것으로 아버지 기분을 파악할 수는 없다. 하긴, 내가 왜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경찰서에서 이미 다 들으셨을 테고, 패거리들과 싸움질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니 더 물으실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십 여분 언덕길을 걸어올라 집에 도착했다. 벌써 7년째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이다.

아버지는 내가 신발을 벗고 올라서는 것을 보고 집을 한번 휘 둘러보시더니 들어오지도 않고 바로 돌아서셨다.

“내 간다.”

언덕을 내려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질 때까지 그냥 거기 그렇게 서있었다.

아버지 모습이 안보이게 되었을 때야 마치 김밥을 급하게 물 없이 꾸역꾸역 먹을 때의 그 묵직한 덩어리가 목구멍에서 느껴졌다. 이제는 거의 모습을 감춰버린 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까 시내에서와 달리 제대로 어둠 속에 덮여가고 있는 동네의 배경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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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이 울렸다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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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책에 대한 리뷰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 작품 두편 <연을 쫓는 아이>와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우리 나라에서도 많이 읽히면서 작가의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인가보다. 비록 나에게는 이 책이 작가의 작품으로 처음 읽는 것이었지만.

책 제목을 정할 때 시의 한구절에서 따오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이 책의 제목 역시 그렇게 정했는데, 제목을 보자 웬지 예전에 읽었던 제임스 볼드윈의 <Go tell it on the mountain>이 떠올랐다.

 

author-pic

 

(사진 출처 http://khaledhosseini.com/biography/)

 

할레드 호세이니. 1965년생.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아홉살때 파리로,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의대를 졸업한 후 의사로 일하고 있던 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이 책 역시 영어로 썼다. <연을 쫓는 아이>는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작가로서의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 자격으로 아프가니스탄 방문의 기회가 있었고, 이때 느낀바가 있던 그는 미국에 돌아와 자기 이름의 비영리재단을 설립했고 아프가니스탄에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소감이라면 우선 작가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570쪽에 이르는,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지루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처음에 아버지가 남매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복선으로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돌고 돌아 긴 이야기의 마지막은 역시 남매의 이야기로 맺는다. 남매에서 비롯된 다른 여러 인물들을 차례로 등장시키며 이야기에 이야기가 꼬리를 물면서 전개되어 나가는 식이다. 장편을 쓰는데 좋은 방식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집약적인 느낌보다는 다소 산만한 느낌도 들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등장인물 누구의 이야기이든 공통적으로 항상 숙명적, 혹은 운명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윗세대에서 시작한 행, 불행이 그 세대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자손의 자손까지 이어지며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게 '행'보다는 '불행'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읽는 동안 마음이 찡 할때가 많았다.  분명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자기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로 거의 한 평생을 산다는 것. 평생 염원하던 일, 만나야할 사람을 결국 눈을 감는 순간이 되어서야 잠깐 만나게 된다는 것은 행일까 불행일까.

 

시대상황과 개인사를 엮어가며, 이야기를 길지만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나가는 작가의 능력은 높이 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좀 아쉽다. 재미 이상의 깊은 울림을 주거나,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주제를 되씹어 보고 한다거나, 슬픔, 안타까움, 아쉬움 등의 일차적인 감정외에, 알지못했던 인간의 감춰진 심리, 본성, 이런 미묘하고 섬세한 곳까지 건드리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작가의 정신세계가 막 궁금해지는, 더 알아내고 싶은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그런 책까지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리뷰의 제목은 474쪽의 문장에서 가져왔다.

그는 아프간 사람이 사진을 찍을 때 종종 그러하듯이, 숙명적이면서 수줍고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다.

가끔 이쪽 사람들을 사진이나 TV에서 볼때, 순수하고 숫기 없어보이기도 하면서 또 어떻게 보면 경건하고 엄숙한 결의가 느껴지기도 하는, 내가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과 비슷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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