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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혼자 지내던 방인데도 아버지 가시는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고 들어온 방은 유난히 썰렁해보였다. 썰렁한 방, 썰렁한 책상, 그 썰렁함에 내 마음 저 구석의 뜨거운 설움과 화가 섞여져 좀 누그러질 수 있다면.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왜 십년 전 엄마가 떠나던 그날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어제의 싸움질이 다른 때와 특별할 것은 없었다. 내놓으라고 할 때 순순히 가진 돈 다 내놓는 녀석 별로 없는 것도 의례적인 일이고, 문제는 더 어르고 겁주면 다 내놓게 되어 있는 것을 형민이 자식이 너무 빨리 흥분을 해서는 주먹을 휘둘러버린 것이다. 주먹을 휘두르면 가진 것 다 털어놓기까지의 시간이 더 단축될 것이라는 형민이 생각은, 맞은 녀석이 그 상황에서 갑자기 소리를 질러버림으로써 오히려 우리 쪽을 당황하게 만드는 결과만 불렀으니까. 순식간에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고, 미처 우리가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경찰이 달려들었다. 경찰서로 주르륵 끌려갔고, 보호자 연락처들을 대고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제일 먼저 경찰서에 나타난 보호자는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경찰서에 들어서자 먼저 내가 어디 있는지를 찾으셨다.

“어데, 다치진 않았나?”

아버지 얼굴도 똑바로 못 쳐다보았지만 죄송하다든지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대신 고개만 한번 젓고 시선을 아래로. 보고 싶은 것도 없고 듣고 싶은 것도 없다는 심사였다.

어떤 과정을 거쳐 내가 제일 먼저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순전히 아버지 덕분이었다는 것 밖에.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각서라도 쓰셨을까? 각서로만 이루어진 일이었을까?

벌렁 누워 한 쪽 팔을 들어 눈 위에 올려놓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서려는데 현관 옆 신발장 위에 봉투가 보였다. 열어보니 그 속엔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두고 가신 것이다. 얼마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그 중 대충 몇 장을 뽑아들고 나와 담배를 사러 집을 나왔다.

편의점에는 내 나이 정도 되는 아이들 몇 명이 가방을 메고 선채로 라면을 먹고 있었고, 계산대의 점원 역시 내 나이 정도 되어 보였다. 점원은 내 나이를 묻지도 않고 달라는 담배를 꺼내어 준다. 한 공간 같은 시간에 비슷한 나이대의 누구는 담배를 사고, 누구는 담배를 팔고, 누구는 앉지도 않고 선채 바삐 라면을 먹고.

누구하고도 눈 마주치기 싫었던 오늘, 처음으로 담배를 내미는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나를 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 치자 얼른 눈길을 거둔다. 내가 담배를 살 나이가 안 된다는 것을 알만 한데 내게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을 보니, 너도 여기서 알바할 나이는 안 된 것 아니냐?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이를 물으면 대꾸할 것도 없이 나와서 다른 가게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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