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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아, 서강석!”
누군가의 노크소리에 이어 수업 중이던 교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린 것은 이제 2교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잠시 교실 밖으로 나가셨던 선생님께서 교실 문을 닫고 돌아서면서 바로 호명하신 것은 바로 나였다.
“강석이 지금 책가방 싸서 어서 집으로 가 보거라. 어머니께서 많이 안 좋으시단다.”
엄마가 안 좋으시단다? 새삼스러웠다. 엄마는 늘 안 좋으셨는데. 2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으시기 전에도 그 후에도,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자리에 누워계신 엄마이다. 엄마와 함께 어디를 놀러가거나 무엇을 같이 하거나 했던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수술 받고나서 잠시 좋아지시나 싶었는데 1년이 지나 재발한 후에는 수술 전 보다 오히려 더 아파 보였고, 다시 자리에 누워만 계시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와 동생 강진이는 엄마를 대신해 외할머니와 셋이나 되는 이모들이 돌아가며 우리 집에 와서 보살펴 주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늘 안좋던 엄마가 새삼 안 좋으시다니.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선생님 말뜻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가방을 챙기고 있는 나를 반 아이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도 못들고 가방을 챙겨 선생님쪽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교실을 나왔다. 대낮이었지만 12월의 바람은 바로 피부로 느껴졌다. 처음엔 빠르게 걷던 걸음이었는데 집으로 가까워 갈수록 차츰 느려졌다. 집에 거의 다가왔을땐 뭔지 몰라도 안 좋은 소식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가 계신 방에서 이모가 나오다가 막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보고 말했다.
“강석이 오나. 어서 들어가 보거레이.”
평소의 그 호탕하고 씩씩하던 이모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이모 얼굴을 쳐다보고 서있었다.
“어서......”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학교에서 공부하다 말고 지금 집으로 와야 했는지.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가 엄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이모들, 그리고 동생 강진이가 앉아 있었다.
“언니, 강석이 왔다.”
이모의 말에 엄마는 나를 향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셨다.
“강석아”
엄마가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
왜 그런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뜨셨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한 번 더 부르셨다.
“강석아......”
바보같이, 입이 얼어붙었는지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엄마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던 내 손을 잡으셨다.
“강석이 네가 그래도 형인기라. 강진이 잘 보살펴 주고, 그라고......”
“......”
고개를 푹 숙인 채 엄마가 그 다음 말을 이어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 손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걸 느꼈다.
내 뒤에서 흑흑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뒤에 서 있던 이모들이 엄마에게 달려들어 울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버지가 불러도, 이모가 불러도, 엄마는 이번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엄마, 엄마”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던 강진이가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나보다 세살 어린 강진이. 강진이는 점점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엄마, 일어나 엄마. 엄마!”
‘어, 엄마는 내게 더 할 말이 있었는데. 얘기하다 마셨는데......’
이게 꿈은 아닐까, 이게 바로 죽는다는 것일까?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엄만 이제 어디로 가는거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를 태운 상여가 나가는 날은 아침부터 하얗게 눈이 내렸다.
곡소리 속에 알록달록 화려한 꽃상여를 따라 걸으며 나는 상여가 왜 저렇게 알록달록 할까 생각했다.
눈으로 들어오는 화려한 꽃상여의 모습과 땡그랑 땡그랑 요령 소리,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노래 소리. 나는 그저 이 시간이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사진을 가슴께에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걷느라, 손이 시려워도 참아야 했다.
“저 아 봐라, 울지도 않는데이. 다 소용없다 아이가.”
“입 다물라. 아가 지금 뭐 알기나 하건나.”
누군가 뒤에서 소곤거리는 걸 들었다. 그게 나를 보고 하는 이야기인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