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해가 넘어 가는 시간. 밖에 있던 사람들이 집을 찾아 돌아오는 시간. 나는 그제서 집을 나선다.

옷을 차려 입고 지갑을 챙기고 구두를 꺼내 신고 전철역을 향해 여유를 부리며 걷는 나는, 최소한 차림새만은 누가 봐도 고등학생 차림은 아니다.

저녁 8시쯤의 종로는 오히려 대낮의 종로보다 더 바쁘고 분주하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여기 저기 영어 학원이 무슨 대형 백화점 마냥 번쩍거리며 호객행위를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출입구들이 늘어서 있는 그 사이에, ‘스테이션’이란 카페 간판은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

문을 밀고 들어가자 저 구석 자리에 형민이 혼자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상철인?”

“그 녀석, 연락 안 된다.”

지난 번 패싸움으로 경찰서에 함께 들어갔던 이후로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엔 상철이 아버지가 본때를 보여준다고 단단히 작심했나보더라.”

본때를 보여준다? 본때가 뭔데?

어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다. 중요한 것이 눈에 안 보일 수도 있는건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그럴듯하면 진짜 그 속에 숨어있는 것이 아무리 크고 중요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형민이 말을 코웃음 한방에 날려버리며 상철이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카페에 앉아 담배 몇 대를 피운 후 우리는 홍대 앞으로 향했다. 거기서 또 다른 한 팀을 만나서 놀기로 되어 있었다. 논다는 게 별게 아니다. 우리 좋은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노는 것 아닌가? 맥주나 한 파인트 씩 시켜 놓고 가진 폼 다 재면서 마시고, 또 다른 놀 거리에 대해 얘기를 하고, 어디 가면 뭐가 있다더라, 어디가 좋다더라, 이 옷 어디서 사 입었다, 이 신발, 이 가방 등등, 학교, 시험, 대학, 이런 것들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필요하다고 하면 캐묻지 않으시고 거의 그냥 용돈을 내주시는 아버지는 내가 정말 말처럼 책이나 참고서 사는데 필요해서 돈을 달라는 것으로 다 믿으시는 걸까? 가끔, 아주 가끔은 아버지가 내게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 무슨 책을 사려고 하느냐, 그냥 읽을 책이냐, 아니면 보충 수업에 필요한 참고서냐, 물어주셨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없었다. 말했지만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학교를 안 나가면 멱살을 잡고서라도 나를 끌고 학교로 데려가시던가, 차라리 죽도록 패주던가, 혹시 그래주지 그러나 은근 기대해보는 내가 이상한 놈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결코 나를 야단치거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셨다. 그래서 아버지와 대립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냐고? 대립만 없었던 것이 아니니까. 대화라는 것도 없었으니까.

가족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을 나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채우려했나보다. 혼자는 싫었지만 나에게는 옆에 가족이 없었다. 대신 우리끼리 모여 있는 동안에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서로 보호막이 된다는 기분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저 간섭이 싫어서 비슷한 놈들끼리 모여다닌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내가 그들을 잘 모르듯이 그들도 우리를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으니까 어른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지만 어른들은 이미 우리 나이를 겪었으면서 왜 우리들을 모를까. 그러면서 다 아는 체는 왜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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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살던 곳 평택에서 서울까지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두 살 내게 서울은 낯설었다. 갑작스런 전학에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으쓱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마 어리둥절을 으쓱함이 잠시 누르고 있었나보다. 적어도 처음엔 말이다.

서울에 아버지가 얻어주신 집은 강북의 작은 연립주택이었다. 도우미 할머니께서 아예 우리와 함께 살면서 돌봐주셨고 가끔 아버지께서 올라오시는 식이었다.

낯선 서울, 낯선 학교에 익숙해지고자 처음엔 꽤 노력을 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한눈팔지 않으려 애썼고 숙제도 열심히 해갔다. 말이 없는 성격 때문에 친구를 금방 사귀지는 못했지만 시험 보면 성적은 좋은 편이어서 서울로 이사시켜놓은 것에 대해 아버지는 일단 안심하셨을 것이다.

문제는 강진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강진이는 5학년이었던 나에 비해 아직도 누군가의 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였나 보다.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머리만 아프다고 할 때도 있었고 배도 같이 아프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는 날이 잦아지자 아버지는 강진이를 데리고 종합병원까지 데려가 진찰을 받게 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여전히 강진이는 두통을 호소했고 가끔 조퇴에 결석까지 하는 날이 생기자 아버지는 결국 나는 남겨두고 강진이를 평택 집으로 데려가셨다.

매일 함께 지내던 녀석이 떠나고 나자 있을 때와 기분이 참 많이 달랐다. 함께 있을 땐 안 나던 생각들이 가끔 나기도 했다. 어떤 땐 강진이 얼굴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려, 실제 강진이가 여기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옆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넓은 서울 바닥에 그래도 나 혼자는 아니었는데.

‘나도 가끔 머리 아프고 배도 아프단 말이야 자식아. 나도 여기 이렇게 떨어져 나와 지내는 것 싫단 말이야.’

아버지를 따라 나서는 강진이 뒤에서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면서도, 형이랑 그냥 여기서 지내자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잘 가. 가서 아프지나 마. 나는 형이니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

겨우 초등학교 5학년. 그 나이에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난 참 솔직하지 못했다. 혼자서도 잘 지내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시키고 있었다고 해야 맞다. 그렇게 조금씩 혼자 지내는 법을 배웠던 것 같고, 그게 지금 생각하면 가끔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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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의 즐거움
도미니크 로로 지음, 임영신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식이 쉬운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원래 먹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어서 저절로 소식이 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소식은 음식의 양을 의식적으로 조절하여 조금 먹는다는 의미이니 보통의 사람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면 왜 굳이 소식을 권하는걸까? 어쩌면 먹는 것 자체보다 더 큰 차원에 의미를 두고 행하는 일환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전작 <심플하게 한다>가 프랑스에서 2005년에 나왔고 이 책은 4년후인 2009년에 나왔다. 누가 봐도 한사람이 썼다싶게 두권이 비슷한 목소리,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는데 전작 <심플하게 산다>에서 보다 이 책에는 방법, 요령 등이 많아 실용서의 느낌도 준다.

눈 앞에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 그것이 몸에 좋은지 안좋은지 판단에 앞서 일단 먹고 싶고 배불러도 계속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때, "다 먹고 나면 더는 행복하지 않다." 라는 말을 늘 마음에 새겨두라고 한다. 단식의 효과는 체중 조절, 체질 개선 이런 것보다 저자는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는데 있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려면 이것 저것 더 먹어보는 것이 아니라 먹던 것을 중단해봐야 그 본심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공감하는 말이다.

몸을 조절하면 마음 조절도 함께 된다는 말은 나 자신도 느끼고 있고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내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 자신감을 잃지 않게 된다고.

'자유에 이르는 길은 바로 훈련이다'

인도 이나얏 칸이 했다는 이 말. 훈련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의 느낌이 아닌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자유는 역시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인데, 사사롭고 산만한 잡념들에 나를 휘둘리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를 진정한 나의 삶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를 준다면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말이겠지. 이런 훈련은 외부로부터 명령되는 훈련이 아니라 스스로 택하고 스스로 행하는 훈련이라는 점이 다를 것이다.

어릴 땐 나와 상관없던 공간인 부엌이, 결혼하고부터 매일 상당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일터로 생각되던 어느 날 부엌은 일터가 아니라 나의 제2의 실험실이라고 위안을 삼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 비슷한 구절이 나오네, 부엌은 인생을 예찬하고 온갖 즐거운 실험을 하게 만드는 장소라고. 훨씬 멋진 문장으로 태어났지만 얼른 공감이 되는 구절이었다. 그러려면 매일 하던 음식 매일 하던 방식으로 하기 보다 때로는 안해보던 재료의 조합, 조리법 등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책 제목이 소식의 즐거움이라지만 이 책에는 소식에 대한 것만 나오진 않는다. 언젠가 따로 페이퍼에 쓰기도 했던 '평정심'에 관한 글에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문제라면서 그것에 집착할때 이미 우리 마음은 평정심에서 벗어나게 되고 행복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지나치게 추구하도록 하는 미끼가 될 뿐이라고 한다.

이제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는 동안의 단 몇분 입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먹는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활력을 최상으로 되찾아 주고 인생을 더 여유롭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이용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을 얼마나 풍족하게 먹느냐가 삶의 질을 나타내는 시대는 지났다. 어떤 마음 가짐으로 음식을 대하고 먹느냐 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에는 이제 음식이 음식 자체의 소중한 의미를 넘어서 하나의 상품으로, 쾌락과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으로 마구잡이로 전락되고 있다.

가끔 걷기 운동할때 시간을 보고 29분이면 조금만 더 해서 30분을 채우고 그만하자고 이를 악물 때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30분이 아니라 29분에서 그만 두는 연습을 한다. 아홉만큼 가지면 하나를 더 채워 열을 만들려고 했던 때가 있는데 그것보다 더 어려운게 아홉에서 이제 되었다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먹는 일에서는 이게 잘 안된다. 뭐 당연하다. 그게 잘 되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계속 노력할 뿐이지.

간단한 식단의 예도 책에 많이 나와있는데 일단 재료와 조리법이 우리와 좀 안 맞는 부분도 있고 해서, 이건 내 나름대로 우리 식재료를 가지고 개발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이 왜 벌써 절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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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8-29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 오는 아침은 왠지 여유를 찾고 싶네요. 커피 마시면서 알라딘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자유에 이르는 길은 바로 훈련이다.' 굿!
요즘 요가 하고 있는데 참 좋아요. 몸이 슬림해지고, 허리가 꼿꼿해지며, 건강해지면서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을듯요^^

hnine 2013-08-29 09:51   좋아요 0 | URL
오늘 비소식 있어서 언제오나 했는데 조금 아까 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그쳤어요. 그런데 하늘을 보니 곧 또 내릴 기세네요.
요가 시작 잘 하셨어요. 저도 가끔 비디오랑 책 보면서 따라 하는데 엉터리겠지만 그래도 몸이 풀리는걸 확실히 느끼거든요. 몸이 풀리면 마음도 새로와질거고요. 아무튼 뭔가 해야합니다 우리 나이엔 ^^

꿈꾸는섬 2013-08-2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러 좋은 글 보고 가요.^^ 잘 지내시죠?
몸을 조절하면 마음 조절도 함께 된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몸을 조절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저도 더 노력해야겠어요.^^

hnine 2013-08-29 20:43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 서재 가서 그동안 지내신 얘기 읽고 왔습니다. 사진 보니 더 젊어지신 것 같기도 하고요 ^^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요즘은 손에 잡히는 책들이 이런 책들이 많네요.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책 한권은 제목이 <비움>이거든요.
몸과 마음은 정말 찰떡처럼 붙어간다는 것을 책에서도 확인하고 스스로도 느껴요. 그런데 잘 조절하며 살기보다는 그냥 내키는대로 사는 편에 가깝답니다. 그래도 매일 결심은 잘 하지요 ^^
 

 

5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오면서 언제부터인가 학교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보면 이미 대낮이었고, 아니, 대낮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일어나 좀 밍기적거리다 보면 오후 서너 시가 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때쯤이면 어떤 놈인가 전화를 걸어오게 되어 있다.

“뭐하냐?”

“뭐할까 생각중이지.”

“자식, 있다 보자.”

몇 시도 아니고 ‘있다 보자’ 라고만 해도 그것이 해가 지는 어둑할 무렵, 단골 카페에서라는 걸 우리끼리는 알아먹었다.

해가 슬금슬금 져갈 무렵,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옷장을 연다. 적지 않은 옷들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다. 보통 사람들이 입으려면 용기가 필요할 듯한 옷도 내 맘에 들면 망설임 없이 사들였다. 옷이고 뭐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는 건 어딘지 바보 같아 보였다.

반짝거리는 회색 셔츠와 검은 바지를 꺼내어 거울 앞에서 몸에 대보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현관 벨이 울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더니 처음 보는 웬 젊은 남자가 서있다. 대학생 정도 되었을까, 나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고 적당히 뺀질거리게 생겼다.

“네가 강석이냐?”

“누구에요?”

들어오라는 말도 안하는데 마루로 성큼 올라서는 인상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여기서 혼자 지내냐?”

누구냐 묻는 말엔 대답도 없이 실내를 휘휘 둘러보며 물어대는 폼이 더욱 마음에 안 든다.

“누구냐니까요?”

“누구 같으냐?”

내가 뭐 자기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보는 줄 아나보다. 내쫓기 위해 물어본 줄 모르고 되묻기는.

“......”

내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쳐다보고 있자 별 수 없이 신분을 밝혔다.

“네 과외선생이다. 영어 과외 선생”

“전 그런 거 안하거든요. 어떻게 오셨나요?”

누가 보냈을지 짐작하면서도 자연스레 그렇게 묻고 있었다. 누구 맘대로 과외선생이냐는 심사였다.

그 날 나는 오랜만에 책상을 펴고 앉아 그 남자가 들고 온 프린트물을 앞에 놓고 문장의 5형식에 대해,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라나, 하는 것에 대해 그 과외선생의 설명을 들어야했다.

한 시간 좀 넘게 혼자 실컷 설명을 하더니 문제지 두 장을 숙제로 내주며 일어섰다. 다음 주 월요일 5시에 또 오겠다고 했던가?

그 과외선생과 마주 앉아 공부를 한 것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난 그 시간에 집에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학교도 가다 말다하고 있는 놈에게 과외선생은 무슨. 아버지도 참.

프린트물, 문제지, 모두 휴지통에 쑤셔 박으며 녀석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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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9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30 0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31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3-08-31 06:16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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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행기가 나와있지만 이 책을 구입하게 된데는 어딘가 이 책이 이미 나와있는 다른 책들과 다른데가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의 여행기는 많이 보았고 엄마와 아들의 여행기도 보았지만 그건 아들이 아직 부모품을 떠나지 않은 나이였을 때의 여행이었지 이렇게 서른과 예순의 조합은 아니었다. 나도 나이를 들어가다보니 예전엔 간단히 할머니 세대로 포함시켰던 60대가 이제 그렇게 노인 취급 받기엔 억울한 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 나이에 살가운 딸도 아닌 젊은 혈기로 어디든 휙휙 날라다닐 것 같은 서른의 건장한 아들과 여행을 한다니, 그것도 일주일, 한달 정도가 아니라 몇달에 걸친 세계 여행을, 배낭 여행으로? 이건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아들의 생각은 기특했다. 얼마전 외할머니와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동안 일만 해오신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무너져내렸을까 생각하여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가보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지 엄마가 그동안 해오시던 가게를 정리하고, 누나도 경제적으로 보태어 떠나게 된 세계 여행. 떠난 후 어떤 고생을 하였든 일단 떠나기 전 가슴 설레었을 엄마 마음이 짐작이 된다.

바람 매서운 겨울 엄마와 아들은 드디어 짐을 꾸려 메고 중국으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되는데, 아시아 일주를 마치고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기 전까진 육로로 다닌다는 계획이다. 인천에서 중국의 칭다오라는 곳까지 운임이 12만원이라니 싸긴 싸다. 열차와 버스로 그 큰 중국 땅 여기 저기를 누비고 다니는데 특히 '리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기에 일주일 씩이나 머물렀다 떠나면서도 한달도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할만큼 좋았는지 궁금해진다. 지친 몸과 마음을 여기서 다 회복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니. 여행도 파도타기 같은가보다. 힘든 곳이 있으면 이렇게 쉬게 해주는 곳이 나오고.

태국의 물총 축제는 엊그제 TV를 보다보니 우리 나라 어디에서도 여름에 바닷가에서 한다고 하던데 어린이 처럼 노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아들의 마음이 그려져 있다.

기대에 비해 최악이었던 라오스를 떠나 치앙마이로 가는데, 버스로 자그마치 20시간. 경비도 경비이지만 여행할때 이동 수단 선택에서 오는 득과 실을 잘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힘들면 신경도 날카로와지고 엄마와 아들 역시 뭔가 속에 쌓여가는데 다행이 그때 마침 누나의 깜짝 방문으로 둘 모두에게 분위기를 띄워주고 격려를 해준 덕에 여행을 계속 해나갈 수 있었다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여행은 거기서 중단되었을지도 모르고 그 긴 여행이 무사히 해피 엔딩으로 맺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여러 종교가 모여 있으면서도 별다른 분쟁없이 잘 모여 사는 나라 말레이지아, 계산 없고 순박하기 그지 없는 스리랑카 사람들, 이집트로 넘어가 말로만 듣던 사막위를 여행하는 기분, 사막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사진으로도 장관이었지만 그 나라에선 그것의 댓가를 치르어야만 했다. 기독교인인 엄마의 원대로 계획에 없던 이스라엘 땅을 밟게 되는데 엄마조차도 이젠 여기 다신 오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혹독하고 모욕적이기 까지한 국경심사를 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를 거쳐 다른 나라로 넘어가서도 이스라엘을 거쳐왔다는 것때문에 문제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요르단의 페트라는 아들이 이번 여행중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란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찍었던 전설적인 고대도시라는데 바위산 안쪽에 붉은 사암으로 이 도시를 건설했던 것이 지진으로 사라졌다가 2000년이 지난 후 한 탐험가에 의해 발견된 신비로운 곳. 43m나 되는 신전 형태의 건물을, 건축한게 아니라 조각한 것이라니 그 앞에서 저절로'알 카즈네'를 외쳤다는데 알 카즈네는 보물창고라는 뜻. 이곳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욕심에 혼자서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일행을 놓쳐 버스에서 너무 먼곳까지 와버린 아들,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알고 낙오되지 않으려고 6km되는 거리의 사막을 30분 만에 질주하는 일이 벌여야 했다. 더운 땡볕의 사막에서 무리한 결과 버스 일행에서 낙오되진 않았지만 결국 아들은 며칠을 의식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몸져 누었다가 간신히 회복하여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난다. 2권이 곧 나올 모양인데 제목이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란다. 아마 주로 유럽의 일주 여행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78쪽) 라고 했다는 60세 엄마의 소감이 글 중에 더 많이 드러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들이 글을 썼기에 엄마의 느낌도 아들의 눈을 통해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엄마 글이 짧게 실리긴 했는데 편집을 거쳤다고 해도 엄마의 글 솜씨가 결코 아들에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다. 사실 아들인 저자에 대해 아는 바 없어서 이전에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경험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도 여행기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경험 많은 여행가에 의한, 유용한 정보가 충분히 담겨 있고 그곳의 특색을 자기의 느낌과 잘 버무려 독자에게 전달하는 그런 프로급 여행기는 아니다. 어느 여행지에선 자기의 개인적인 느낌, 실수담, 이런 것에 치중하느라 정작 그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은 별로 없이 지나가는 곳도 있고, 아주 좋았다고 하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그 느낌이 전달되게 하는데 하는 힘도 약했다. 그야말로 초보 여행기의 느낌이랄까.

읽으면서 나의 생각은, 나중에 나는 60 넘어서 아들보고 함께 여행하자고 제안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여행은 나와 비슷한 사람과 하든가 혼자 하는게 제일 좋다는 생각이다. 혼자 하는 여행이 물론 순탄할리 없겠지만 혹시 내 여행파트너에게 내가 짐이 되지 않을까, 나와 다른 의견인데 나에게 맞춰주느라 속으론 불만이 쌓이는건 아닐까, 이런거 신경쓰는게 더 힘든 인간이 나이기 때문이다.

리뷰 제목에도 썼지만 여행은 떠나기 전엔 설렘이지만 막상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현실이다. 책 제목처럼 '일단 가고 보자'로 출발한 여행은 그만큼 고생이다.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고 계획하고 꼼꼼한 탐색이 필요하다. 더구나 엄마를 모시고 하는 여행임에랴. 엄마도 마찬가지. 다 큰 아들이니 믿고 따라만 간다는 생각이라면 여행 가서 우왕좌왕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몇배로 더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 그게 아들의 본 모습임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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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8-29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가 더 나이 들어 일흔이나 여든 되어도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그때에는 우리 나라 곳곳을 돌아본다면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hnine 2013-11-07 07:06   좋아요 0 | URL
일흔이나 여든 되면 아들 나이가 마흔에서 쉰. 아마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한창 생활전선에서 바쁘게 뛸 나이 아닐까 싶네요. 어머니 건강도 건강이고요. 지금 세대는 그래도 해외를 가든 국내를 가든 여행이라는 차원에선 똑같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좀 나이드신 분들은 저희랑 또 다른 세대를 살아서 그러신지 비행기타고 해외에 가보시는 것에 매우 흥분하고 기대하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