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전 -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
강제윤 지음, 박진강 그림 / 호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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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이땅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고 있지만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그보다 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책이다. 사람사는 땅을 내 두 발로 걷는다는 행위. 때로는 터벅터벅, 때로는 꾹꾹 눌러 밟으며 이 땅을 걸어다니며 만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어찌 무덤덤하게 느껴질 수 있겠는가.

우선 저자의 이력이 평범하지 않아보인다. 1988년 등단.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루고 인권활동가로 살았으며 보길도 귀향 시절엔 33일간 단식으로 숲과 하천의 파괴를 반대하였다. 한국의 모든 섬을 걷겠다는 작심아래 여섯 해 동안 250여 개 섬을 걸었고 난개발로 사라져 가는 섬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가 닿은 섬들. 때로는 인적없는 길을 세시간 동안 걸어가 이른 마을에 젊은이는 없었다. 허리 구부러지고 주름꽃이 얼굴을 뒤덮은 할머니들뿐. 아마 그래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가 섬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 세대이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한때 우리의 시대를, 우리의 삶을 풀어내는 것일테니까.

사실 나의 어머니도 올해 칠순이 넘으셨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만난 분들은 내 어머니보다는 이미 세상을 뜨신 내 할머니 세대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며 어릴 때 부터 한집에 사시며 나와 동생들을 키워주신 내 할머니,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할머니와 한 고향 출신으로 우리 집에서 일을 도와주시던 아주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에게 못하는 얘기도 이 아주머니에게는 할 수 있었고 언제나 잘 들어주시던 분이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돌아가셨고, 십년 넘게 한집에서 식구처럼 지내시던 그 아주머니 역시 몇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언제 본 적도 없고 다시 볼 일도 없을 나그네(저자)의 방문에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려는 할머님들의 마음은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말을,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모성본능 아닐까. 누군가의 아들이니 내 아들 같기도 하여 배 곯지 않는지 그것부터 염려하는.

"얼른 잡수고 가시오. 객지서 오셨는디 드릴 것도 없고, 맘이 짠하요."
아주머니는 난생처음 본 나그네지만 집에 들렀으니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던 게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넙죽 받아먹는다. 평생 다시 마주칠 일 없을 나그네한테 베푸는 마음이란, 대체 어떤 마음일까. 달고 붉은 감. 목으로 넘어가는 것은 감이 아니다. 어미의 마음이다. (105쪽)

 

"할머니, 선착장까지는 얼마나 가야하나요"
"멀어, 이 밤중에 거기를 어찌 갈려고."
할머니는 나그네의 소매를 붙든다.

"빵이나 하나 먹고 가."

할머니는 구멍가게 주인이다.

"돈 안 받을 테니까. 먹고 가. 거기까지 갈려면 배고파서 안 돼."

할머니는 걸망을 맨 나그네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107쪽)

 

이 책엔 이런 대목이 이 외에도 여러 군데서 나온다. 그럼에도 그때마다 나는 페이지를 그냥 넘기지 못한다. 그 나그네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할머니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내 할머니 생각이 나고, 고향에 두고 온 막내 아들 생각을 하며 눈물 짓던 아주머니 생각이 났다. 특히 책에 그분들과 동향인 할머니들이 나오면 비슷한 말투를 따라 읽으며 마음이 뭉클해진다. 행정구역 상 서산에 속하는, 그 당시만 해도 작았던 섬이 고향인 할머니께서 굴 따는 얘기, 김 양식 하시던 얘기, 나는 머리 속으로 상상을 하며 들었더랬다.

오랜 만에 뭍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게 되면 제일 좋은게 뭐냐는 저자의 물음에, 남이 해 준 밥 먹고 일을 쉬고 놀 수 있었던 것이 제일 좋다고 하시는 할머니. 경치 구경보다 그것이 좋았다. 할아버지 앞서 세상을 뜨시고 자식들 모두 자기 가정을 꾸려 떠나보낸 후, 이렇게 남의 자식 (저자)이 와도 그냥 맘이 설렌다는 할머니. 대문을 들어섰다가 인기척 없어 빈 집인 줄 알고 돌아나오는 저자의 등 뒤에서 "가지 마시오. 나는 사람 구경 못 하고 사요. 어서 들어오시오."라고 불러 세우셨다는 안마도의 할머니는 지금도 그렇게 사람을 기다리며 살고 계실까? 그래도 자식이 있으니 전화도 해주고 그러지, 늙어서 외롭지 않으려면 꼭 자식을 가지라고 저자에게 거듭 당부하셨다는데, 자식을 열둘이나 나은 할머니 당신은 외롭지 않으시냐고 속으로 물음을 삼키며 돌아나왔단다.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묻자 성도 이름도 없이, 그저 누구 어메라 불리며 산다시던 할머니께서, 인사 드리고 돌아나오는 저자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나 이름은 윤필순이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하지만 외롭게 섬을 지키고 사시는 분들이라고 약하게 봐서는 안된다. 고난과 외로움, 설움을 이겨내신 그분들의 삶에 대해 단련된 모습, 삶의 고수가 다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배우라.

제주의 해녀 할머니들은 그 강인함이 비장의 무기 수준이다. 장성한 아들, 며느리와 한집에 사는 경우에도 아예 안채, 바깥채 구분하여 살림도 따로 하고 산다는 앗살함. 집에서는 답답한데 바다에 나오면 시원하다시며 아흔의 연세에도 물질을 멈추지 않으신다고 한다.

한 평생, 산다는게 무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렇게 살아내어 이르게 되는 곳은 어디인가. 또 이런 속절없는 생각에 빠지려고 하는때 한 할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여자들은 철들면 시집가는데 사내들은 철들면 죽어 뿌러!"

쓸데 없는 생각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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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5-27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철들며 죽고 싶지는 않아요 ^^;;;
철들며 신나게 이 삶을 누려야지요 ^^;;;;;;

며칠 앞서
시골마을 이웃 할머님들과
마늘밭에서 함께 마늘일을 하면서
참 좋았어요.

hnine 2012-05-27 13:27   좋아요 0 | URL
그럼요, 물론이지요 ^^
전 요즘 '누린다'는 말이 참 좋더라고요. 참고 견딘다는 말보다 현재를 누리며 사는 것은 꼭 어떤 물질적인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어 잘 읽었습니다.

하늘바람 2012-05-27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남자가 과연 철이 들까 하고있는데 된장님 댓글 보고 웃네요^^

hnine 2012-05-27 13:28   좋아요 0 | URL
ㅋㅋ 남자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얘기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 말씀 하시는 할머니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짐작은 할 수 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05-2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은 철들면 시집간다...그러나 노처녀들이 많아지고 있는 걸 보면 여자들도 철이 안 드나봅니다.

hnine 2012-05-28 07:43   좋아요 0 | URL
ㅋㅋ 요즘은 철 드는 방법이 다 각각이라고 해야겠지요. 어떤 게 철드는것인지 저도 한마디로 얘기 못하겠어요 ^^
 

 

 

 

 

 

내게 악기가 하나 있어

노래를 연주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몰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늙은 새가 날아가며 말하네

그 악기는 백년에 한번 소리를 낸다지

부서지는 바위가 말하네

살아있는 동안 한번도 소리를 못듣는 수도 있다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악기

버릴까보다

들고 나갔다가

다시 들고 들어오며

백년에 한번이

오늘일지 몰라

내일일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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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5-24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좋은아침을 또 좋은 시로 열어요 :)
그 백년이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다림 자체가 인생인 것 같아요.
그 백년을 소유하고나면 정작 기다림이라는 달디달고 조금은 결핍된 설렘이
사라질지도 모르지요.^^ 그런 의미로 저는 읽었어요. 좋아서 주절거려 봐요.^^

hnine 2012-05-24 11:57   좋아요 0 | URL
예, 그런 마음을 담았어요. 제 몫으로 받은 악기를, 한번도 소리를 제대로 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조바심이 날 때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그 악기를 버리면 안될 것 같아요.
시라고 하긴 뭐하고, 그냥 짧은 문장으로 나타낸 제 마음 한자락일 뿐이지요.
읽어주시고 함께 느껴주셔서 고마와요 ^^

파란놀 2012-05-24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 년은 어쩌면 그리 안 긴 시간일는지 몰라요

hnine 2012-05-24 11:58   좋아요 0 | URL
백년은 절대적인 시간이라기 보다, 음...긴 세월을 뜻하는 말로 썼어요.

하늘바람 2012-05-2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를 내고 싶지만 막상 소리를 내려니 용기도 안나고 가마있으면서도 내안의 쿵쿵대는 소리에 늘 답답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면 이것도 소리내는 방식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싶긴 할 거 같아요
다른 길을 모색해보듯 다른 악기를 흉내내 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시가 참 좋고 여러 생각이 드네요

hnine 2012-05-24 16:51   좋아요 0 | URL
열 사람이면 열 사람, 가지고 있는 악기는 다 다른데, 남의 악기와 비슷한 소리가 나기를 바라며 내 악기의 가치를 내 스스로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리만 차지한다고 내다 버리면 안되겠지요? ^^ 자리 차지하고 있어주는게 어딘데요...

하늘바람 2012-05-25 10:58   좋아요 0 | URL
하긴 그래요 남의 소리 따라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나를 발견할 때가 있지요.
그럼요 누가 뭐래도 소리가 나든 안나든 내 악기가 최고지요

댈러웨이 2012-05-24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많은 글을 쓰신 hnine님도 이런 고민을 하시네요.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hnine의 뜻이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요? ^^


hnine 2012-05-25 05:50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댓글을 읽으니 제가 끄적거려놓은 것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알것 같습니다 ^^ '악기'라고 쓴 것은 어떤 구체적인 것이라기 보다 막연한 대상이라고 해야겠지요.
hnine은 다른 분들께서'에이치나인'이라고 불러주시던데, 아무 뜻 없어요. 어떤 분께서는 줄여서 그냥 '나인'이라고 부르세요. 그것도 좋고...저를 불러주는 이름이면 그저 반갑습니다.

달사르 2012-05-2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드디어 대금소리가 모두 났어요. 장장 석달이 걸렸다지요. 백년에 비하니 정말 빠른 시간이다 싶어요. 하하. 내 마음 속 악기 소리는 저도 늘 궁금한데요. hnine님의 악기소리는 어떤 소리가 날지 그것도 무척 궁금합니다. 은은한 방울꽃 소리와 같을까요? ^^

hnine 2012-05-28 07:46   좋아요 0 | URL
반가운 달사르님, 안그래도 달사르님 오랜만에 올리신 글 읽었는데 저는 잘 모르는 책이라서 리뷰만 찬찬히 읽고 나왔네요.
석달 걸려 소리를 내는 악기라니, 멋진데요.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소리를 내줄 것 같아? 악기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좀 해봐요, 아름다운 소리를 내줄테니...이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아이가 학교에서 플룻을 배우는데 보니까 그 악기 소리내는 것도 쉽게 되지 않더군요. 한참 애 먹더니 드디어 소리가 난다고 좋아하던 기억이 나요.
 

 

 

 

 

내가 아직 모르는 일이면

나무가 알고 있을테지

바람이 알고 있을거야

 

 

 

 

 

나를 비워내 생긴 자리

나무 숨결 들어올수 있으라고

바람 손길 들어올수 있으라고

 

 

 

 

 

그것도 욕심이라면

 

 

 

 

 

그 말도 왜 아니 맞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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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3 0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3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5-23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도 바람도 모두 나일 테니까,
나를 비운 자리에 들어오는 나무나 바람이 아니라,
내 모습이 나무나 바람으로 바뀐 셈일 테지요.

hnine 2012-05-23 19:37   좋아요 0 | URL
그 경지까지 오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글쎄요. 많이 모자라서요.

프레이야 2012-05-2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좋은 시로 아침을 맞이하네요.^^

hnine 2012-05-23 19:3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좋은 시로 읽어주시니 제 맘도 좋습니다.
어제부터 장석주님의 '고독의 권유' 읽고 있는데,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을 끄적거려봤어요. 쓰고 다시 읽어보니 비우는 것 또한 다른 것으로 채우기 위한 욕심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하늘바람 2012-05-2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정말 좋네요

hnine 2012-05-23 19:40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덜어내고 비우고, 그것이 제 스스로도 더 편해요. 다 저를 위한 이기심의 또 한 모습일지도 모르지요. 그냥 바람에, 나무에, 시간에, 나를 맡기고 살고 싶어요.
 
가족과 1시간 - 매일 만나는 행복한 기적
신인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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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족이 성공적인 가족인지 알아보려면, 각 가족 구성원의 역량에 '이것'이 더해져야 한다고 할 때, '이것'이란 무엇일까. 문득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에서 저자가 꼽은 '이것'은 바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으며, 그것에 대한 다른 가족 구성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간,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이런 일상의 자잘한 일부터 중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공유해야 하는, 의무적, 강제적인 시간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한' 시간이다.

혼자 결정하고 혼자 해나가는 것도 홀가분하고 좋기도 하겠지만 홀가분하고 자유스럽다는 것의 다른 한 면은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고 외로움이다. 다른 가족 구성원의 의견과 결정에 너무 간섭하려 하고 지배하려는 그 경계만 잘 지킬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가족만큼 따뜻하고 힘이 되는 것이 어디 있을까. 가족만큼 '진심으로' 내 입장에서 생각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는 가족.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의 뜻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의 뜻만 아는 것에서 나아가 그 말이 가르치고 있는 더 깊은 뜻을 이제, 이 나이에 이르러 생활 속에서 자꾸 떠올리며 실감하고 있다. 그 어려움을 몸으로 겪어보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만 어려운 게 아니라 한 가족을 잘 꾸려나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나라를 잘 다스리는 왕이라 할지라도 실패할 수 있는 것이 자기 가족 하나 잘 건사한다는 것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기를 목말라 했다. 엄하신 부모님이셨고 동생이 둘이나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리웠다. 다른 집 처럼 휴일이면 함께 어디 놀러 가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친척집을 방문하고, 이런 시간들이 더 자주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어릴 때 자기에게 충족되지 못한 것을 나중에 자기 자식에게 제일 먼저 모자라지 않게 해주려는 마음이 부모에게는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 같다. 나의 부모님 세대에선 경제적인 결핍이 그런 것이었다면 나는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많이 해주려 내 자식에게 안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환기시키게 된 것은 함께 하는 시간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질이라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하루에 최소한 1시간은 되어야 한다는 것은 1시간이라는 그 절대적 시간이 중요하다기 보다 매일 그렇게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일분 일초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라면 오히려 그 시간이 고통의 시간이 되겠지만 그러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제대로 된 시간에 대한 갈망이 더 커갈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거의 이 모든 것들이 머리 속에 섬광의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안 읽어볼 수 없었다. 물질적인 풍족함, 많이 배워 얻은 지식,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 이런 것들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고, 그것들이 다 가족 내에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런 얘기들, 자기의 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기본 정서부터 다르지 않을까? 나도 그런 가족을 만들어가고 싶은데. 그래서 당장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아쉽다. 책을 읽고 나서 더 알게 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처음 제목에서 받은 영감이 결국 책을 한권 다 읽은 후에도 그저 그대로. 내 생각이 틀리지 않구나 정도. 그래서 아쉽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보는 책으로 묶일 정도라면, 나처럼 보통 사람들로서는 읽고 새로 깨우치고 배워갈만한 (문학 서적이 아니라 적어도 이런 종류의 책이라면) 무엇이 들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던 도중 우연히 저자가 어느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들었다. 아직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 벌써 스무 권 넘는 책을 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나니 이해가 간다. 다른 책들도 이 책 정도의 무게라면 스무 권 넘는 책을 쓰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이 책의 중심이 되는 주장, 가족과 함께 1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책을 사서 읽을 것 까지 있겠는가 누가 묻는다면 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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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5-2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사람이 저한테 낯익은 이름이라 누군가 했더니, 제 장학퀴즈 동기로군요 @.@
여러 회사를 거치고 여러 회사에서 강의를 한다고 해적이에 되게 길게 적혔는데,
저나 hnine 님 같은 사람한테는 굳이 이 같은 책을 읽는대서 무언가 더 느끼거나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느끼기 힘드리라 봅니다. 아마, 대기업과 방송사에서 '지식 정보' 바라는
이들 머리를 살살 건드리는 이야기는 잔뜩 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 개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책을 낸 제 장학퀴즈 동기야말로 집에서
'1시간' 아주 조용히 오붓하게 '지식 정보'하고는 동떨어진 놀이와 얘기와 꿈으로
즐거이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글쓴이 스스로 이 같은 삶을 누리지 못하면서
이러한 책을 내놓은 셈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글쓴이 스스로 '하루 1시간'만
식구들하고 보내며 이러한 책을 썼다 싶기도 해요.

저는 네 식구와 1년 365일 24시간 내내 함께 살아요. 아이들하고든 옆지기하고든
하루 1시간 떨어져 따로 지내는 일조차 생각하기 힘들고, 이렇게 따로 제 할 일을 하면
마음이 그닥 홀가분하지 못해요.

'집착'이 아닌 '삶'이고, 삶이 무엇인가를 살핀다면, 식구들이 모두
가장 좋아하고 가장 아끼며 가장 즐길 만한 가장 아름다운 터전에서
하루 1시간 아닌 하루 24시간을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쉬고 함께 밥먹으며
살아야 사랑이요 기쁨이 되리라 생각해요.

hnine 2012-05-20 15:57   좋아요 0 | URL
이럴 땐 세상이 참 좁은 것 같아요 아시는 분이라니 ^^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바로 저자 본인이 그 문제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말이 후기에 나와요. 가족에게도 그렇고, 몸담고 있는 회사에도 그렇고, 그렇게 집필 활동을 해나가려니 고운 시선만 받지 않았겠지요.
저자의 주장에 백번 공감하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성과 위주로 나아가다 보면 가정 역시 삐그덕 거리게 마련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너무 물질 위주, 업적 위주, 성취 위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 내 가족부터 거기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이 책에서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별 소득이 없어 좀 실망했달까요.
 

 

 

http://youtu.be/_iqCsJyWBVE

 

 

 

얼마만에 듣는 이 노래인지. (한 20년 쯤 되었나보다.)

다른 곡 검색하다가 만나서 데려왔다.

 

불어 전혀 배운 적 없는 나는 저 노래를 들으며 이 제목이 무슨 뜻인지, 당장 찾아보는 대신 머리 속으로 막 상상을 하면서 맞춰 보려고 했었다.

별로 자장가스럽게 생기지 않은 이 단어 Berceuse가 '자장가'라는 뜻이라는 걸 그렇게 알게 되었고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오늘 고달픈 하루를 보낸 모든 사람들이,

이 노래 들으며 잠시라도 편한 휴식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비록 나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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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얼마만에 듣는 나나 무스꾸리인지...나나 무스꾸리의 노래 중에서는 옛날 라디오 영화음악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던 Plaisir d'amour (영화 "7일간의 사랑"의 주제곡인 "사랑의 기쁨")를 제일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

hnine 2012-05-15 00:52   좋아요 0 | URL
아마 지금쯤 파파 할머니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겠지요.
정말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았었는데...Plasir d'amour도 찾아서 들어봐야겠어요. 그 노래를 좋아하셨었군요 ^^

파란놀 2012-05-15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도 언제나 따사롭고 느긋하게 저녁을 누리면서 잠자리에 드시기를 빌어요~

hnine 2012-05-15 07:01   좋아요 0 | URL
예, 마음을 잘 보살피면 가능할 듯 싶어요.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5-1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 무스쿠리와 메르나 메르쿠리는 그리스에서 군사독재 반대하는 연예인으로도 유명했죠.메르나 메르쿠리는 이젠 저세상 사람이 되었네요.

hnine 2012-05-16 13:32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은 흘러간 옛노래 사전 같으세요. 국내 가요, 해외 가요 할 것 없이...^^
나나 무스쿠리는 지금 들어도 참 독보적인 가수였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05-17 13:23   좋아요 0 | URL
저는 최신곡도 많이 안답니다.이쁜 걸그룹 노래는 좌악~ 다 알죠.hnine님이 좋아하는 최신곡은 무엇인가요?

hnine 2012-05-20 06:37   좋아요 0 | URL
저 최신곡 잘 몰라요 ㅠㅠ

댈러웨이 2012-05-16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니까 hnine님은 음악도 좋아하시는 분이군요!

나나 무스끄리 나나 무스끄리 이러면서 놀았던 것도 같은데, 막상 그녀의 음악은 많이 듣지 않았어요. 이 밤에 듣고 있으니까 참 좋네요. 자러 가기 전까지 유튜브에서 나나 무스끄리 돌리겠습니다. ^^

hnine 2012-05-16 13:33   좋아요 0 | URL
정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나요? 전 그렇더라고요. 지글지글 하던 머리속 마음속이 잠시 휴전 상태에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자장가'란 넓은 의미에서 그런 음악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처음 해보았습니다.
저 음악, 좋아하지요 ^^ 책이랑 음악 중에 고르라면 전 음악을 고를거예요~

노이에자이트 2012-05-2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 무스쿠리 자서전이 나왔어요.관심있으면 읽어보세요.

hnine 2012-05-23 16:05   좋아요 0 | URL
벌써 나와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제 나왔나봐요?
정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