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으면 반가와하지 않겠지만 나에게 있어 유안진의 시는 문학적인 감동을 주기 때문 이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어휘로 집약된 격있는 잔소리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미 그건 '잔소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대신할 적당한 다른 말을 찾지 못해 그냥 잔소리라고 하련다.

내게 잔소리가 필요한 순간이란 수시로 찾아오기 때문에 나는 이 시인의 시집은 빌려서 보는 것으로 안되어 다 구입해서 가지고 있다. 구입하여 한번 쭉 읽고 책꽂이에 꽂아둔 후, 필요할 때 마다 꺼내어 아무 쪽이나 펼쳐 읽는다. 잔소리의 약발이 들을 때까지 읽는다.

 

 

 

피뢰침, 죽을힘으로 산다

 

 

 

 

모든 꼭대기의 꼭대기가

몸이다, 신전이다, 제단이다

세상의 죽음을 대신 죽어주는

속죄 제물이다 제사장이다

초고압전류로 혼신을 씻느라고

혼절했다 깨어나는 죽음의 반복 끝에서

마침내 강림하는 천상의 전류

가 통과한다, 응답이다

 

 

어떤 외로움에도 더 외로운 외로움이 있느니라

가장 외롭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고

가장 어리석지 않으면 얻어낼 수 없는

그 높이 그 깊이는

기다리며 갈망해야 차지하는 죽음뿐이니라

 

 

삶이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것

죽음보다 더 죽음 되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니라

죽음 이상의 고독과 고통의 절정만이

부활의 희열을 안겨주느니라

싸잡아 죽음이라 해버리면 억울하지 않느냐

삶이 아닌 삶도

죽음보다 더한 죽음 이상도

또한 삶이니라

 

 

 

- 유 안 진 -

 

 

 

" 삶이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것

죽음보다 더 죽음 되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니라."

 

- 아, 네...네...

 

 

 

 

 

 

 

 

 

 

 

 

 

 

 

 

 

 

잔소리를 하려거든 이쯤 되야지,

그렇지 못할 바엔

잔소리, 하나마나

차라리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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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0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1 0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9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29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3-03-2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 어머니도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죽음은 사는 것이라 하셨어요.
시로 적지 않고 삶으로 보여준 우리 엄마는 인생의 시인이셨네요.^^

hnine 2013-03-23 19:31   좋아요 0 | URL
머리로 쓰는 시가 아니라 몸으로 시를 쓰셨네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 창비청소년문고 6
이운진 지음 / 창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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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자녀를 둔 엄마가 자녀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시와 함께 편지글 형식으로 전달하는 내용이라는 소개글을 보고 읽어보게 되었다. 커가는 자녀에게 부모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어디 한둘이랴만은, 그리고 그것을 거부감 없이, 일방적인 지시 사항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꼭 해야할 얘기들만 골라서 하기란 어느 부모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겠기에, 이런 내용의 책 소개글을 보면 우선 눈길이 간다.

저자의 이름이 낯설었지만 젊어보이는 사진과 달리 40대에 들어선, 시로 등단한 시인이었다. 사춘기에 들어선 딸에게 하는 말투로 쓰여졌는데 자신이 지금의 딸 나이 정도 되었을때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지금 세대에 대한 아쉬움, 부탁 등이 짤막한 꼭지글로 담겨 있으며 각 꼭지글에는 그 내용과 어울리는 시를 함께 싣고 그 시에 담긴 의미를 짚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담담한 문체로, 읽기 쉽게 쓰여졌으나, 아쉽게도 그저 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체로, 아름다운 내용이었으나 십대의 아이들이라면  그 정도의 내용은 이미 듣거나 보아서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 내용이랄까. 지금 네 나이가 얼마나 좋은 나이인지 아느냐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심하게 말하면 하나마나 한 이야기, 다르게 표현하여 전달되어야 할 이야기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사랑, 꿈, 꽃, 고요, 걷기, 소녀, 평화...시적인 언어로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겠지만 그리 몰입하여 읽혀지지가 않았다. 읽고 보니 저자는 딸을 대상으로 쓴 것이었는데 남자 아이라면 글쎄, 얼마나 공감을 할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길 기대하는 마음보다는 차라리 세상에서 너답게 사는 방법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진정한 의미로 아름다워지기까지, 청소년들이 거쳐야할 길은 만만치 않으며, 그 길이 아름답지만은 아니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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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꿈꾸는돌 1
루이스 새커 지음, 장현주 옮김 / 돌베개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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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구덩이>의 작가 루이스 새커의 다른 작품 <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에 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어하는 주인공 게리 분은 학교에서 이름 대신 얼간이로 불리며 놀림받는, 소위 왕따 당하며 지내는 아이이다. 게리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다른 사람들에게 농담을 하여 그 사람을 웃기게 하는데 관심이 많아서 늘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까 궁리한다.

게리의 부모는 늘 실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아들이 걱정되어, 다른 사람이 네가 하는 소리에 주목을 하지 않고 놀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며, 앞으로 3주 동안 농담을 하지 않으면 100불 포상금까지 주겠다고 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장기 자랑 대회가 열린다는 공고가 붙고 게리는 자기도 '개그'종목으로 출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자기만의 개그를 짜기 위해 골몰한다. 다른 사람이 이미 한 웃기는 말 대신 자기만의 독창적인 농담을 지어내느라 게리는 이것 저것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유심히 듣기도 하며 대회 며칠 전에는 자기가 짠 개그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준비물이 필요할 것인지 등등, 평소의 어리숙한 모습과 달리 매우 치밀하게 준비하고 연습한다. 대회 날, 잔뜩 긴장하여 무대에 올라 장기를 시작하자 마자, 관객들 앞에서 예상치 못한 모욕을 당하게 되어 읽는 사람 마음까지 조마조마 하게 하지만, 게리는 그 순간을 어찌나 의연하게 넘기는지.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넘기는 게리의 모습은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백미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에 이르러 방금 흐뭇하게 짓던 웃음이 순식간에 콧등을 찡하게 하는 안타까움으로 마음 저리게 반전시키는 데 있다. 

게리가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웃기게 하고 싶어하는 이면에는, 자기의 의기소침, 자신없음을 반전시키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아닐까 한다. 유머는 인간만이 가지는 재능. 인간이니까 할 수 있는 지략이다. 제목의 "개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는 그런 맥락에서 붙여진 것이다.

<구덩이>에서도 그랬듯이, 루이스 새커는 자기 작품 속에 확실한 캐릭터를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작가인 것 같다. 남들의 눈에는 찌질해보일지라도, 금방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굳은 심지, 소신, 긍정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요즘 우리의 슬픈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남을 짓밟고 모욕하며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뒤틀린 행위, 그에 힘없이 쓰러지고 마는, 생명을 포기하고 마는 허무함. 아마 '적자생존'의 원리가 적용된다면 현대의 '적자'는 눈으로 보여지는 다른 능력이 아니라, 이 책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울음 끝에 맛보는 웃음이 우리에겐 더 친숙하다. 하지만 웃음 뒤에 비로소 흘리는 한줄기 눈물. 그 눈물의 가치는 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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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oled (Paperback, Reprint)
Korman, Gordon / Disney Pr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재, 구성, 전달하는 의미, 재미까지 골고루 탄탄하게 갖춘 외국 작가의 책 또 한권을 읽었다. Schooled. 우리말로 뭐라고 바꿔쓸 수 있을까. 학교 체험? 학교 다니기? 표지의 노란 색 바탕에, 미국 어느 곳이나 공통된 모양의 학교 버스 그림이 달랑 그려져 있다.

주인공 Cap의 본명은 Capricon Anderson. Capricon은 별자리 이름 중 하나로 염소자리를 말한다. 나이 열 세살. 유일한 가족은 할머니. 사는 곳은 Garland 농장. 왕년에 히피였던 할머니는 복잡한 도시 문명에서 사는 것을 거부하고 Garland농장에 살면서 직접 먹을 것을 가꾸고 손자인 Cap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직접 가르치며 산다. 아주 어려서부터 부모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온 Cap은 바깥 세상에 대한 기억이 없이 할머니가 부모이자 친구이자 학교 선생님이자 인생의 선생님이다. 할머니는 독특하긴 하지만 뚜렷한 주관과 철학을 가진 분으로 Cap은 바깥 세상의 학교에 다니는 것 못지 않은 올바른 품성과 순수한 심성을 가진 아이로 자라난다. 문제의 발단은 이 할머니가 부상을 당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도시의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일어난다. 골절상으로 병원에 장기 입원해야하는 일이 생기자 Cap은 할머니 대신 사회복지사의 집에서 지내며 학교라는 곳에 다니게 된것.

우리 나라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8학년으로 들어간 Cap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리둥절하다. 천명이 넘는 아이들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공부를 시작해서 똑같은 것을 배우고 똑같은 시간에 끝나, 똑같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다는 것. 일반적인 시간 대신 '교시 (periods)' 라고 이름 붙이며 수업종과 함께 시작해서 종이 치면 끝나는 공부 방식하며, 자기 물건을 넣어놓고 남이 훔쳐갈까봐 꼭꼭 잠그고 다니는 사물함의 행렬, 아이들의 거친 말투 등,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이다. 반면 Cap의 모습과 행동거지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다른 아이들 눈에도 구경거리 자체이다. 다듬은 적 없는 것 같은 긴 머리에 짚으로 엮어 만든 것 같은 신발, 결코 바뀌지 않는 옷, 자기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행동과 대답을 하는 것 등. 하지만 수업 시간에 보는 Cap은 결코 지식이 모자라거나 수업 태도가 나쁘거나 아둔한 아이가 아니었다.

이런 아이들이 어느 날 Cap을 8학년의 학생대표로 뽑아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일 어리숙한 아이를 그 자리에 앉혀 놓고 자기들이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서이다. 영문도 모른 채 학생 대표자리에 오른 Cap이 제일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은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다. 대표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명, 한명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하는, 참으로 엉뚱해보이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아이이다.

Cap이 학교에서 지내는 하루 하루, 임시로 지내고 있는 사회복지사 집에서의 생활 그 자체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이다. 작가는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단순히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현대 문명과 교육제도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 이 책에 의미를 실어준다.

학교 제도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쉽게 예상하듯이 작가는 단순히 현재의 학교 제도와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문제점을 제시하는 데서 끝냈을까? 그랬다면, 그렇게 흑 아니면 백이라는 입장을 택하여 전달하려고 했다면 이 책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기성이면 기성,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 어느 한쪽을 찬성하면 다른 한쪽에 대해서는 배타적이 되며, 갈수록 비판의 입장을 굳혀가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답답해져온다. 진정한 비판 의식이란 끝까지 다른 입장에 대한 열린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거기서도 받아들일 것이 있을 수 있고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버리지 않는 것, 마음을 말랑말랑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일지 모른다.

 

비교적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영어이고 재미도 있어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재미도 있고, 생각거리도 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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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3-1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대표가 되면 해야 할 첫째 일이 이름 익히기라고 느껴요.
처음에는 이름, 다음에는 이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무가 어떤 삶을 누리는가...
담임교사도 마땅히 이름이랑 삶을 하나하나 익힐 때에
비로소 교사 구실 할 수 있겠지요.

hnine 2013-03-16 12:30   좋아요 0 | URL
급하게 외우려들지도 않아요. 한명씩 새로운 아이를 만나게될때마다 이름을 외우고 외우고, 그래서 두달만에 천여명의 이름과 얼굴을 다 외우게 되지요.
요즘은 이름대신 휴대전화 끝자리수 네자를 이름처럼 많이 부르더군요.
여기 나오는 주인공의 할머니는 굳은 신념으로 주인공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학교를 다녀본 후 아이는 그 누구의 편견도 아닌 자기의 생각을 얘기하고, 할머니는 그것을 존중해주지요.
 

 

 

먼 길 / 이재무

 

 



이 세상 가장 먼 길
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왔다
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동안
몸 속 유숙했던 그 많은,
허황된 것들로
때로 황홀했고 때로 괴로웠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날
길의 초입에 서서 나는 또,
태어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새처럼
분홍빛 설레임과 푸른 두려움으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괜시리
주먹 폈다 쥐었다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내게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예전엔 상상이나 했었던가

분홍빛 설레임보다는 푸른 두려움쪽이다 내 경우는.

 

그동안 빈자리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내 자리.

황홀하고 허황되고 때로 괴로왔던 것들로

댓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알아보게 된 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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