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으면 반가와하지 않겠지만 나에게 있어 유안진의 시는 문학적인 감동을 주기 때문 이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어휘로 집약된 격있는 잔소리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렇다면 이미 그건 '잔소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대신할 적당한 다른 말을 찾지 못해 그냥 잔소리라고 하련다.
내게 잔소리가 필요한 순간이란 수시로 찾아오기 때문에 나는 이 시인의 시집은 빌려서 보는 것으로 안되어 다 구입해서 가지고 있다. 구입하여 한번 쭉 읽고 책꽂이에 꽂아둔 후, 필요할 때 마다 꺼내어 아무 쪽이나 펼쳐 읽는다. 잔소리의 약발이 들을 때까지 읽는다.
피뢰침, 죽을힘으로 산다
모든 꼭대기의 꼭대기가
몸이다, 신전이다, 제단이다
세상의 죽음을 대신 죽어주는
속죄 제물이다 제사장이다
초고압전류로 혼신을 씻느라고
혼절했다 깨어나는 죽음의 반복 끝에서
마침내 강림하는 천상의 전류
가 통과한다, 응답이다
어떤 외로움에도 더 외로운 외로움이 있느니라
가장 외롭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고
가장 어리석지 않으면 얻어낼 수 없는
그 높이 그 깊이는
기다리며 갈망해야 차지하는 죽음뿐이니라
삶이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것
죽음보다 더 죽음 되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니라
죽음 이상의 고독과 고통의 절정만이
부활의 희열을 안겨주느니라
싸잡아 죽음이라 해버리면 억울하지 않느냐
삶이 아닌 삶도
죽음보다 더한 죽음 이상도
또한 삶이니라
- 유 안 진 -
" 삶이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것
죽음보다 더 죽음 되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니라."
- 아, 네...네...
잔소리를 하려거든 이쯤 되야지,
그렇지 못할 바엔
잔소리, 하나마나
차라리 입 다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