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절에서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나는 이를테면 객식구로서 머물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절에서 하는 어떤 일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은 없었다. 누가 부르러 오면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고, 점심을 먹었고, 저녁을 먹었다. 다만 절에서의 하루 일정을 소리로, 분위기로서 조금씩 익숙해져갈 뿐이었다. 잠이 좀 늦게 들어 밤늦게 까지 깨어 있을라치면 어느 덧 이 세상엔 나 혼자 깨어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사방이 조용했다. 그저 들리는 소리라고는 물소리와 바람소리뿐. 그건 도시에서 듣는 물소리, 바람소리와 분명 다른 소리였다.

아버지는 왜 나를 이리로 보내셨을까?

아버지 말씀대로 머리도 식히고 마음도 다 잡기 위해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이 뭘? 내 머리가 뭘 어떻다고?

아버지 혼자 괜히 오버하신다고 생각하며 돌아누웠다가, 곧 다시 천장을 보고 누우며 다시 내게 말한다.

‘네가 너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냐? 너는 그냥 네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야. 네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그런 것은 별 쓸모없어.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어차피 네 의지가 아니라 네 주위 상황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를 움직여가는 것은 내 자신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다른 것들이라니.

8월의 중순에 이르자 여름의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한낮엔 여기서도 돌아다니면 땀이 흘렀다. 그래도 다른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절 밖 산책을 자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카메라를 들고서.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나는 발걸음도 다르고 눈의 반짝임도 아마 다를 것이다. 멀리서도 눈에 뜨일 만큼 고운 색깔의 꽃나무를 찍는 것은 쉽다. 산봉우리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탁 트인 경치를 찍는 것은 몇 번 앵글을 잡아보고 셔터를 누르면 된다. 하지만, 바람을 찍고 싶을 때는 그렇지 않다. 소리를 찍고 싶을 때, 나의 꿈을 찍고 싶을 때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릴 때 읽은 동화 ‘꿈을 찍는 사진관’ 이 생각난다. 읽고 또 읽었던, 좋아하는 동화 중 하나였는데 언제부터 그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찍어놓은 사진들은 결국 나의 꿈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그 날 밤, 다른 날보다 낮에 좀 많이 걸어 돌아다녔더니 피곤했는지 저녁 먹고 난 이후 잠이 일찍 들어있었다. 밖에서 누가 인기척 하는 소리에 번쩍 눈이 떠져서는 가만 귀를 기울였다.

“강석이 학생 자나?”

누군가 와 있었던 것 맞다.대답할 것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을 때 거기엔 장씨 아저씨가 서 계셨다.

“아, 아저씨 오셨네요? 들어오세요.”

오랜만에 보는 장씨 아저씨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니 그새 많이 늙어있었다.

“야, 이거 길에서 만나면 몰라보겠구나. 청년이 다 되었네. 그래, 여기 있으려니 갑갑하지는 않고?”

“아니요. 방문 열고 나가면 다 뚫려 있으니 오히려 갑갑하지 않아요. 어디 가셨더랬어요?”

“지난 번 공사해준 데서 급히 손봐달라고 연락이 오는 바람에 거기 불려갔다가 생각보다 오래 걸려 이제 왔지 뭐냐. 한옥은 지을 때도 그렇지만 보수하는데도 공이 많이 들어가. 후딱후딱 안 된다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재촉만 해대니.”

“그럼 요즘은 주로 한옥 일만 하세요? 예전에 아저씨, 우리 아버지랑 공사장에서 함께 일하실 때 생각나요.”

“내가 네 아버지 신세를 많이 졌지. 아버지 덕분에 일거리 떨어질 걱정은 안했으니. 아버지가 말씀은 없으시면서도 결단력 있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어서 집 지어 파는 바닥에서는 아주 적격이셨지.”

아저씨는 오랜만에 옛날 일을 얘기하시며 그게 지금도 그리 나쁜 추억은 아닌지 슬그머니 눈가에 웃음을 지으셨다.

“한참 잘 나가고 있을 때 우연찮게 한옥 집 공사가 들어왔는데 아버지는 그때 거기까지 눈 돌릴 틈이 없었고, 나만 어쩌다보니 거기 뛰어 들어가게 되어 가지고, 지금까지 이렇게 따로 돌아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아버지와는 종종 연락은 하고 소식도 듣고 지내고 있었다마는.”

나에게 왜 느닷없이 이 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런 것을 묻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아버지께서 언질을 주셨던가보다. 뭐, 그러니 내가 여기 지금 있게 된 것이겠지만 말이다.그때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알고 계실 거란 생각, 우리 아버지와 예전부터 오래 같이 일을 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아니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 거란 생각이.

“저, 아저씨. 여쭤볼게 있어요.”

“응? 뭔데?”

“돌아가신 우리 엄마요......”

나의 그 말에 아저씨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어떻게 저의 엄마가 되셨어요?”

그렇게 물어보려고 계획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아저씨가 금방 대답을 못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이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모르고 지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나는 그동안 내 머리 속으로 상상한 것을 마치 사실이 그런 양,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처음엔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던 아저씨는 나의 말로 미루어 이미 내가 대강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어딘가를 한동안 바라보고 계신 아저씨의 표정으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아저씨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가보니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벽 한쪽에 겨우 나있는 작은 창을 바라보고 계신 거였다.

“하긴, 너도 이제 클 만큼 컸으니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싶긴 하다만......”

“네 아버지랑 결혼하기 전부터 네 엄마, 그러니까 친모가 워낙 몸이 약했더란다. 그래서 건강부터 좀 챙기고 아이는 천천히 가질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네가 생긴거라. 네 엄마를 끔찍이 생각했던 니 아버지가 알면 혹시나 낳지 못하게 할까 염려되어 그랬는지 거의 산달 될 때까지 아이 가진 것을 숨겼다더라. 그러다가 너를 낳았고, 다행이 아기는 건강했는데 네 엄마는 건강이 계속 안 좋아져서 결국 강석이 네가 돌을 지내고 얼마 안 되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지. 나도 여기까지는 들은 얘기고 내가 네 아버지를 처음 만나 함께 일하게 된 게 바로 그때쯤이었지. 갓 난 너를 키워줄 사람이 마땅찮으니 네 아버지는 아예 너를 데리고 할머니도 계시고 이모들도 있는 너의 외가에 들어와 살게 되었지.”

말없이 듣는 나의 시선은 방바닥을 향하고 있었지만 아저씨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숨을 죽이고 있는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그런데 그때 네 외가에는 몸이 워낙 약했던 네 엄마보다 먼저 결혼한 네 엄마 동생분이 와계셨다지. 혼인한 집안이 손이 무척 귀한 집안이었는지 결혼하고 오래도록 아이가 안 생기자 며느리를 무척 힘들게 했나보더라. 결국 남편 되신 분과 거의 강제로 헤어짐을 당하고 친정에 와계신거였지. 그분이 다른 이모들보다 특히 더 너를 예뻐하였다더라. 아마 아이에 한이 맺혀서 그랬는지.”

무슨 말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아저씨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너는 자꾸 커가고, 네 아버지가 언제까지 그렇게 너를 엄마 없이 할머니와 이모들 손에서만 키울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 할머니는 연세도 있으시고, 이모들도 언젠가는 다 출가들 하실 테고......”

“그래서……요?”

“너를 제일로 예뻐하고 애지중지 키워주시던 그 이모가 아주 네 엄마가 되어 주기로……. 그래 되었던 거지.”

그러니까 나를 낳아주신 엄마는 내가 갓난아기일 때 돌아가시고 원래 이모였던 분이 나의 엄마, 키워주신 엄마가 되신 거란 말씀이다.

“처음에 그게 누구 뜻이었는지는 내도 모르겠고. 너는 계속 그 어머니를 네 친어머니로 생각하고 자랄 만큼 그 이후로도 너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셨는지. 나중에 강진이가 태어난 후에도 어찌 보면 너를 더 챙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밤이 깊었는지 밖에서는 다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기만 했다. 그 날 밤 아저씨가 돌아가신 후 나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의 얼굴이 내 머리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엄마, 내가 당신 얼굴을 기억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야했던 엄마, 그렇게 세상을 뜬 언니가 불쌍했을까, 아니면 그렇게 엄마 얼굴도 모른 채 남겨진 갓 난 내가 불쌍해서였을까. 그 엄마 역시 내가 더 커가는 것도 못 보시고 일찍 세상을 뜨고, 그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뿐 아닌 다른 가족들까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 어려서 어머니와 이별을 한 강진이 생각도 났다. 어지러운 생각으로 머리는 자꾸 무거워지고, 무거워진 머리에 못 이겨 어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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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공주 터미널에 내려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야 은애사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점심 먹을 시간을 지나 있었지만 여름 한 낮의 열기로 후덥지근한 터미널 의자에 앉으니 별로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음료수만 하나 사서 마시며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려서 은애사 초입에서 내렸다. 짐가방을 들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을 둘러봐도 산, 저쪽을 둘러봐도 산, 주위는 온통 초록이었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머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 했고, 어느 덧 나는 절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을 몇 개 지나 종 내로 들어서니 정면엔 대웅전이 보이고 절 마당엔 오래되어 보이는 석탑이 하나, 마당 왼쪽엔 동백나무로 보이는 나무 아래 돌우물이 있고 그 앞에 뭐라고 표지판이 있었다. 평일 오후의 절은 조용했다. 대웅전 안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흘낏 보고 오른 편의 종무소로 들어갔다. 사무보시는 분인 듯한 여자 분이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적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얼른 시선을 내게 향했다.

“저, 서울서 왔는데요, 제 아버지께서 여기 계시는 장 문수 아저씨께 연락을 해놓으셨다고......”

내가 말을 꺼내자 그 여자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하더니 내 말을 다 듣고는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뒷문으로 나갔다. 잠시 후 들어와 앉았던 책상 한 편의 작은 수첩에서 뭔가를 찾더니 전화를 걸었다.

“예, 처사님, 지금 여기 웬 학생이 찾아왔네요. 이름이?”

나를 쳐다보기에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서강석이요.”

“서강석이라는데 부친께서 처사님께 연락을 해놓으셨다고요.”

그리고는 수화기 저편의 말을 잠시 들으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아버지는 장씨 아저씨에게, 그리고 장씨 아저씨는 지금 이 여자 분에게 무어라고 한 것일까?

“학생, 학생이 지낼 방은 여길 나가서 저 위편에 있어. 가방 들고 따라 와요.”

대웅전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자 작은 암자가 있었다. 창호지 발린 방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방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그 청량함이 발끝을 통해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방을 안내해주신 보살님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이 다시 종무소 쪽으로 내려가고, 땀도 식힐 겸 차가운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넓지도 않은 방이고 이제 발 들여 놓은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머리 아픈 일들은 다 안 보이는 곳에 두고 온 듯 마음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내가 여기 왜 와있나 하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은애사에서의 나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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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학 사이트에 글을 응모했더니 선물로 시집을 한권 보내주었다.

시인, 출판사, 시집 제목, 모두 낯설다.

수수한 표지의 시집을 열어 읽어보다가 다음의 시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한번 더 읽었다.

 

 

 

 

팔순 부부의 대화

 

 

 

 

 

새마을호 같으믄 통일호로 갈아탔으면 싶구먼

 

내사 고마 징글징글허요

 

헐 수만 있으믄 댕기오소 내 여비 선남 보태줄 테이

 

봄날 하루 꽃 귀경 겉은 기 서운코 바쁘구만

 

이만하면 꽃 귀경 헤프게도 했지 뭣이 서운혀

 

그나저나 낼이 미리 올라는지 내세가 미리 올라는지

 

뭐부텀 오면 대수요 둘이 한 날 갈란지 그게 염려지

 

하긴 그려 아이고 난 인자 잘라네 임자도 말 고만 지끼게

 

 

 

 

한번 더 읽으니

무슨 뜻인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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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1-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쓰신 분이
이녁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고받은 이야기처럼
스스로 삶에서 길어올린 시를 쓰시면
참으로 아름다웁겠구나 싶어요.

조곤조곤 새겨읽고 다시읽고 또또 읽으면서
마음으로 스며들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시요 이야기요 삶이 되겠지요.

hnine 2013-11-01 15:10   좋아요 0 | URL
'봄날 하루 꽃귀경' 잘 하고 계신가요? ^^
 

 

15

 

 

그로부터 며칠 후, 예고도 없이 아버지가 올라오셨다. 방학이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지도, 자율학습 같은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는 다시 예전처럼 낮엔 자고 해질 무렵이 되면 시내에 나가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생활로 돌아갈 판이었다. 밤늦게 연락도 없이 오신 아버지는 그날 밤 별 말씀 없이 그냥 나와 나란히 누워 주무셨다. 피곤하셨는지 누우시자 나보다 먼저 금방 잠이 드셨다.

달그락 소리에 잠이 깨어 보니 아버지는 벌써 일어나셨는지 옆에 안계셨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아버지가 부엌에서 내는 소리였다.

“뭐하세요?”

밥 냄새와 된장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는 가운데 2인용 작은 식탁에는 벌써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냥 이래 묵지 뭐. 밥하고 찌개면 안되겄나.”

“아버지......”

“니, 밥 묵고 나랑 어데좀 가자.”“어디요?”

“조용한 데 가서 좀 쉬면서 공부도 좀 하고 그라레이. 예전에 내랑 같이 일하던 목수 장씨가 저 아래 공주 은애사에 지금 있다카더라. 장씨에게 연락해 놓았다. 너 거기서 한 여름 좀 지내다 오게.”

장씨 아저씨라면 나도 알고 있다. 아버지가 한참 집을 지어 집장사를 할 때 우리 집에서 숙식하다시피 하며 아버지의 오른 팔이 되어 일하시던 아저씨였다. 내가 서울로 전학을 오고서 다시 본 일이 없었다.

“거긴 왜......”

“지난 일 자꾸 생각해봤자 도움 되는기 하나 없다. 지금 열심히 잘 살 궁리를 해야제. 뭐, 미술 연수도 그렇고, 마음 상해하지 말고. 거기 못가면 뭐 할 일 없다드나? 본당에서 좀 떨어진 암자에 방 하나 마련해 달라켔으니 가 머리도 식히고 마음도 좀 다잡고 그라거라.”

“여기 그냥 있겠어요.”

느닷없이 절은 무슨. 머리 식히고 마음잡는 것, 그럴 수만 있다면 여기서는 못하랴 싶었다.

“여기 있으면 또 뻔하다 아이가. 공부고 뭐고, 그냥 시내로 할일 없이 돌아다니면서 허송세월 하지 않건나? 내 데리다 주고 갈꺼이니 어서 준비 하그라.”

“여기 그냥 있겠어요.”

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조금 아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아버지의 긴 한숨이 들렸다. 그러더니 수첩을 꺼내어 한 장을 북 찢어내시더니 은애사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서 아버지 명함 한 장과 함께 건네주셨다.

“여기 그 절 주소랑 전화 번호, 그리고 버스 편이다. 공주까지 시외버스 타고 가서 거기서 은애사 있는 까지 가는 버스가 있으니 그걸 타고 가면 된다. 내가 오늘 데려가 주려고 했드마이”

내가 더 이상 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아버지는 일어서셨다.

“강석아”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시려는지 옷을 주춤주춤 입으시다 말고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르셨다.

“예.”

“니 엄마 말이다......”

엄마 얘기를 좀처럼 꺼내는 적이 없으셨던 아버지 입에서 엄마 얘기가 나오자 나는 방바닥을 향했던 눈을 얼른 아버지 얼굴로 향했다.

“니한테는 말이다......보통 엄마가 아닌기라.”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만 말씀하시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셨다. 내게서 무슨 대답을 기대하진 않다는 듯이.

아버지의 그 말이 여운이 되어 나는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었고 무엇을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시선을 돌려보니 아버지가 차려 놓은 아침밥상이 보였다. 함께 먹고 절에 나를 데려다 주려하셨는지 소복한 밥 두 공기가 마주 보고 놓여 있고, 가운데 된장찌개에서는 아직도 김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김치와 김이 전부였지만, 그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밥상 앞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고 밥을 크게 한 술 떠서 입에 넣었다. 입 안에 금세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 왔다. 한동안 그렇게 한입을 씹지도, 삼키지도 않은 채 있었다. 삼키지도 않았는데 왜 목 언저리가 묵직해져 오는 것인지. 무엇이 목구멍을 꾹 누르는 것처럼 메어져왔다. 그러다가 엉겁결에 그냥 꿀꺽 삼켜 버렸다. 첫술을 그렇게 넘기고 나서는 그때까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된장찌개도 한 술 뜨고, 김치도 집어 먹고, 김도 밥에 얹어 제대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눈두덩이 뜨끈해지나 싶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또 목이 메었다. 일어나 물을 한 잔 들이켜고 다시 앉아 밥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리고는 간단한 옷가지와 노트, 카메라, 책 몇 권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어가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공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조금 아까 아버지에게는 여기 있을 거라고 해놓고서 나는 어느 새 어디로라도 가야할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방안에 앉아 있으면 그대로 사그라져 버릴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폭발해 버릴 것도 같았다. 재로 사그라지거나 화약처럼 폭발하거나.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집을 나서자 밖에는 비가 꽃처럼 내리고 있었다. 마치 봄날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듯이 빗방울은 그렇게 하늘에서 보솜보솜 내려 왔다. 비를 맞으며 걷고 있으니 꽃물이 옷만 적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 더 스며들어가 마음속에 꽃망울이 맺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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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저 내일 집에 내려가요.”

집에 내려간다고 전화로 이렇게 미리 아버지에게 알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여름 방학을 하루 앞 둔 날이었다. 다 그만 두겠다고 할 참이었다. 학교고 뭐고, 그냥 떠돌아다니며 여행이나, 아니, 그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냥 숨만 쉬며, 아무 것도 안하고 숨만 쉬며 지내고 싶었다. 그것은 아무 의욕이나 의지 없이도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니까.

“니 어데 간다고 안했나?”

뉴욕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지난 번 아버지와 통화할 때 얘기했었다.

“안 가요.”

“와?”

“......”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더 꼬치꼬치 물을 아버지도 아니었다.

“뭐, 와서 얘기하던지. 내일 보자 그래. 드가그라.”

“예.”

‘안 가는 것이 아니고 못 가게 되었단 말이에요. 나쁜 짓 하고 돌아다녔다고, 못 내보내겠대요. 아무데도 못가요 나는요. 요기 이 모양 이 꼴로 그냥 있다가 썩어 버릴 거라고요.’

소리 없는 외침, 소리 없는 분노, 나의 희망이, 기쁨이, 소리 안내고 연기처럼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음 날, 짐도 별로 없이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사진이 다시 감은 눈앞에 나타났다. 현재를 망친 과거가 다시 내 위로 덮쳐 오는 것만 같았다. 아기인 나를 가운데 두고 아버지와 나란히 옆에 서서 사진을 찍은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처음 보는 얼굴이면서도 어딘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한 그 여자는?

 

버스터미널에 내려 집까지 걸어오려면 시장통을 지나게 된다. 4일과 9일마다 아직 장이 서는 이 동네. 장날의 시장통은 더 좁고 더 시끄럽다. 어릴 때 가끔 할머니를 따라 다니기도 했던 장이다. 집에 들어서자 강진이가 나를 보고 반갑게 달려든다.

“어, 형!”

“그래, 잘 있었냐? 아버지는?”

지난겨울에 봤을 때보다 좀 키가 컸는지 살피며 강진이 어깨를 한번 툭 쳐주었다.

“아버지 곧 오신다고 금방 전화 왔어.”

“어머니는?”

“엄마는 늦게 오셔. 가게 정리 하시고 9시는 되어야 들어오시니까.”

강진이는 시선을 마당의 개집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그럼 너 저녁은 어떻게 먹냐?”

“내가 뭐 어린애야? 저녁도 혼자 못 먹을까봐서? 아버지가 돈 주고 가시면 사먹기도 하고, 뭐, 내가 대충 차려 먹기도 하고 그래.”

“너 키가 별로 안자란 것 같아서 그래 인마. 요즘 여자애들이 남자 친구 얼굴 못 생긴건 용서해도 키 작은 건 용서 못한다는 말 못 들었냐?”

강진이랑 오랜만에 싱거운 얘기를 하며 킬킬거렸다.

강진이 말처럼 오래지 않아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어머니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늦을 거라며 강진이와 나만 데리고 예전부터 단골로 가던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켜주셨다. 어릴 때로 잠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주로 얘기가 오간 것은 나와 강진이일뿐,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언제나 말이 없는 아버지. 사는 게 참 재미없어 보이는 아버지이다. 아버지를 보면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집에 들어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어머니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방바닥에 벌렁 누워 있다가 내키지 않았지만 방문을 열고 나가 고개만 꾸벅했다.

“어 그래. 방학이 금방 돌아오는구나. 피곤할텐데 들어가 쉬어.”

내 얼굴이라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짧은 말이나마 한건지, 나도 모른다. 나 역시 어머니 얼굴을 바로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강진이는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고 나는 슬며시 방을 나와 책꽂이가 있는 방으로 갔다. 책꽂이 위의 상자가 아직 거기 있을지 궁금해 하며 위를 올려다본 순간 책꽂이 위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고 깨끗이 치워져 있는 것을 알았다. 혹시 상자 속의 사진들이 앨범 속에 정리되어 책꽂이에 꽂혀 있나 하고 살펴보았지만 책꽂이엔 지난겨울에 꽂혀 있던 책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꽂혀 있을 뿐 사진 앨범 같은 것은 없었다.

차가운 방바닥에 등을 대고 벌렁 누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멍하니 한참을 누워 있는데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였다.

“여기서 와 그러고 있노?”

특별히 궁금해서 묻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말문을 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밥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아도 밥 먹었냐 묻듯이 말이다.

“미국 간다켔던 거이 와 그리 되얐노?”

아버지는 금방 나가지 않으시고 일어서 앉은 내 앞에 따라 앉으셨다.

“학교 빼먹고 패싸움 하고, 경찰서 드나들고……. 뭐, 미국까지 보내서 보여주고 가르쳐 주기엔 불량학생이라는거죠.”

“지난 일 아이가?”

“지난 일을 다 조사했나보더라고요.”

아버지는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도 나처럼 실망이 크지 않았을까? 아님, 니가 그럼 그렇지 하고 혀를 차고 계실까. 그래도 나는 아직 아버지가 후자보다는 전자에 해당할 거라 믿는 편이었다.

“너무 실망 말그라. 또 기회가 있을기이다. 내, 니 나이 때는 말이다, 내 벌어서 내가 학교 다니능기라. 니야 하고 싶은기 있으면 뭘 못하겠노. 내가 있는데.”

아버지는 더 길게 말씀 안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일찍 여읜 아버지는 지금의 기반을 이루기까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라 할 인물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아버지로부터 종종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겪음이 많다보면 오히려 할 말이 줄어드는 건지. 아버지처럼 말이 없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아버지”

이젠 물어야했다.

“와?”

“제가 저에 대해 뭐 모르고 있는 것이 혹시 있어요?”

"기 뭔 말인데?"

되묻는 아버지 말투가 애매했다. 뭔 말인지 정말 모른다는 것으로 들리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지난 번 집에 내려왔을 때 제가 사진을 봤거든요. 저 어릴 때 사진 같은데 저랑 아버지, 그리고 옆에 처음 보는 여자 분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그 여자 분은 누구신가요?”

아버지는 말없이 잠시 서계시더니 내 앞에 천천히 앉으셨다.

“니 어무이 아니라면 이모들 중 누구 아니건나?”

“아버지!”

‘내가 엄마나 이모들을 못 알아 봤을까봐요?’

“지난 일, 모 신경 쓸기 있노. 뭐, 니 아는 누군가 같이 찍었지 않건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신경 쓰지 말고 맘 잡고 공부나 열심히 하그라. 이제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 아이가. 필요한 기 있으면 얘기하고.”

나가는 아버지의 뒤를 향해 말했다.

“모르는 얼굴인데 어쩐지 처음 보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아버지는 흠칫하시더니 그대로 방을 나가셨다.

‘아버지, 제게 뭘 숨기고 있으신 것 맞지요? 그렇지요?’

답답했다. 지난 일이 지금 이렇게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지난 일 뭐 신경 쓸게 있냐는 것은 나에게 지금 전혀 먹히지가 않는단 말이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앞을 향해 달릴 준비가 겨우 되었는데 왜 내 앞을 막고 나서는 것들이 이렇게 자꾸 생기는 것인지,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온통 모르겠는 것투성이냔 말이다. 에잇.

나는 강진이방으로 가서 아직 풀지도 않은 가방을 챙겨들었다. 아직 안자고 있던 강진이가 놀라서 물었다.

“형, 가방은 왜?”

“강진아, 나 올라간다. 아버지 주무시는 것 같으니 내일 네가 말씀드려라.”

“형! 조금 아까 와놓고 한밤도 안자고 가?”

“잘 있어라.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인마......”

밤이지만 아직도 낮의 열기가 식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내 안의 열이 뿜어 나오기 때문인지 후끈했다. 낮에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서울 가는 막차는 대여섯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다. 창문을 내다보지도 않고 나는 눈을 감았다. 내발로 떠나면서도 마치 누가 떠다 밀은 양 눈물이 찔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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