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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터미널에 내려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야 은애사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점심 먹을 시간을 지나 있었지만 여름 한 낮의 열기로 후덥지근한 터미널 의자에 앉으니 별로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음료수만 하나 사서 마시며 오고 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려서 은애사 초입에서 내렸다. 짐가방을 들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을 둘러봐도 산, 저쪽을 둘러봐도 산, 주위는 온통 초록이었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머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 했고, 어느 덧 나는 절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을 몇 개 지나 종 내로 들어서니 정면엔 대웅전이 보이고 절 마당엔 오래되어 보이는 석탑이 하나, 마당 왼쪽엔 동백나무로 보이는 나무 아래 돌우물이 있고 그 앞에 뭐라고 표지판이 있었다. 평일 오후의 절은 조용했다. 대웅전 안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흘낏 보고 오른 편의 종무소로 들어갔다. 사무보시는 분인 듯한 여자 분이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적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얼른 시선을 내게 향했다.

“저, 서울서 왔는데요, 제 아버지께서 여기 계시는 장 문수 아저씨께 연락을 해놓으셨다고......”

내가 말을 꺼내자 그 여자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하더니 내 말을 다 듣고는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뒷문으로 나갔다. 잠시 후 들어와 앉았던 책상 한 편의 작은 수첩에서 뭔가를 찾더니 전화를 걸었다.

“예, 처사님, 지금 여기 웬 학생이 찾아왔네요. 이름이?”

나를 쳐다보기에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서강석이요.”

“서강석이라는데 부친께서 처사님께 연락을 해놓으셨다고요.”

그리고는 수화기 저편의 말을 잠시 들으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아버지는 장씨 아저씨에게, 그리고 장씨 아저씨는 지금 이 여자 분에게 무어라고 한 것일까?

“학생, 학생이 지낼 방은 여길 나가서 저 위편에 있어. 가방 들고 따라 와요.”

대웅전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자 작은 암자가 있었다. 창호지 발린 방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방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그 청량함이 발끝을 통해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방을 안내해주신 보살님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이 다시 종무소 쪽으로 내려가고, 땀도 식힐 겸 차가운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넓지도 않은 방이고 이제 발 들여 놓은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머리 아픈 일들은 다 안 보이는 곳에 두고 온 듯 마음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내가 여기 왜 와있나 하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은애사에서의 나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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