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저 내일 집에 내려가요.”

집에 내려간다고 전화로 이렇게 미리 아버지에게 알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여름 방학을 하루 앞 둔 날이었다. 다 그만 두겠다고 할 참이었다. 학교고 뭐고, 그냥 떠돌아다니며 여행이나, 아니, 그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냥 숨만 쉬며, 아무 것도 안하고 숨만 쉬며 지내고 싶었다. 그것은 아무 의욕이나 의지 없이도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니까.

“니 어데 간다고 안했나?”

뉴욕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지난 번 아버지와 통화할 때 얘기했었다.

“안 가요.”

“와?”

“......”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더 꼬치꼬치 물을 아버지도 아니었다.

“뭐, 와서 얘기하던지. 내일 보자 그래. 드가그라.”

“예.”

‘안 가는 것이 아니고 못 가게 되었단 말이에요. 나쁜 짓 하고 돌아다녔다고, 못 내보내겠대요. 아무데도 못가요 나는요. 요기 이 모양 이 꼴로 그냥 있다가 썩어 버릴 거라고요.’

소리 없는 외침, 소리 없는 분노, 나의 희망이, 기쁨이, 소리 안내고 연기처럼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음 날, 짐도 별로 없이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사진이 다시 감은 눈앞에 나타났다. 현재를 망친 과거가 다시 내 위로 덮쳐 오는 것만 같았다. 아기인 나를 가운데 두고 아버지와 나란히 옆에 서서 사진을 찍은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처음 보는 얼굴이면서도 어딘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한 그 여자는?

 

버스터미널에 내려 집까지 걸어오려면 시장통을 지나게 된다. 4일과 9일마다 아직 장이 서는 이 동네. 장날의 시장통은 더 좁고 더 시끄럽다. 어릴 때 가끔 할머니를 따라 다니기도 했던 장이다. 집에 들어서자 강진이가 나를 보고 반갑게 달려든다.

“어, 형!”

“그래, 잘 있었냐? 아버지는?”

지난겨울에 봤을 때보다 좀 키가 컸는지 살피며 강진이 어깨를 한번 툭 쳐주었다.

“아버지 곧 오신다고 금방 전화 왔어.”

“어머니는?”

“엄마는 늦게 오셔. 가게 정리 하시고 9시는 되어야 들어오시니까.”

강진이는 시선을 마당의 개집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그럼 너 저녁은 어떻게 먹냐?”

“내가 뭐 어린애야? 저녁도 혼자 못 먹을까봐서? 아버지가 돈 주고 가시면 사먹기도 하고, 뭐, 내가 대충 차려 먹기도 하고 그래.”

“너 키가 별로 안자란 것 같아서 그래 인마. 요즘 여자애들이 남자 친구 얼굴 못 생긴건 용서해도 키 작은 건 용서 못한다는 말 못 들었냐?”

강진이랑 오랜만에 싱거운 얘기를 하며 킬킬거렸다.

강진이 말처럼 오래지 않아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어머니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늦을 거라며 강진이와 나만 데리고 예전부터 단골로 가던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시켜주셨다. 어릴 때로 잠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주로 얘기가 오간 것은 나와 강진이일뿐,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언제나 말이 없는 아버지. 사는 게 참 재미없어 보이는 아버지이다. 아버지를 보면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집에 들어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어머니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방바닥에 벌렁 누워 있다가 내키지 않았지만 방문을 열고 나가 고개만 꾸벅했다.

“어 그래. 방학이 금방 돌아오는구나. 피곤할텐데 들어가 쉬어.”

내 얼굴이라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짧은 말이나마 한건지, 나도 모른다. 나 역시 어머니 얼굴을 바로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강진이는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고 나는 슬며시 방을 나와 책꽂이가 있는 방으로 갔다. 책꽂이 위의 상자가 아직 거기 있을지 궁금해 하며 위를 올려다본 순간 책꽂이 위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고 깨끗이 치워져 있는 것을 알았다. 혹시 상자 속의 사진들이 앨범 속에 정리되어 책꽂이에 꽂혀 있나 하고 살펴보았지만 책꽂이엔 지난겨울에 꽂혀 있던 책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꽂혀 있을 뿐 사진 앨범 같은 것은 없었다.

차가운 방바닥에 등을 대고 벌렁 누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멍하니 한참을 누워 있는데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였다.

“여기서 와 그러고 있노?”

특별히 궁금해서 묻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말문을 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밥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아도 밥 먹었냐 묻듯이 말이다.

“미국 간다켔던 거이 와 그리 되얐노?”

아버지는 금방 나가지 않으시고 일어서 앉은 내 앞에 따라 앉으셨다.

“학교 빼먹고 패싸움 하고, 경찰서 드나들고……. 뭐, 미국까지 보내서 보여주고 가르쳐 주기엔 불량학생이라는거죠.”

“지난 일 아이가?”

“지난 일을 다 조사했나보더라고요.”

아버지는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도 나처럼 실망이 크지 않았을까? 아님, 니가 그럼 그렇지 하고 혀를 차고 계실까. 그래도 나는 아직 아버지가 후자보다는 전자에 해당할 거라 믿는 편이었다.

“너무 실망 말그라. 또 기회가 있을기이다. 내, 니 나이 때는 말이다, 내 벌어서 내가 학교 다니능기라. 니야 하고 싶은기 있으면 뭘 못하겠노. 내가 있는데.”

아버지는 더 길게 말씀 안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일찍 여읜 아버지는 지금의 기반을 이루기까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라 할 인물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아버지로부터 종종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겪음이 많다보면 오히려 할 말이 줄어드는 건지. 아버지처럼 말이 없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아버지”

이젠 물어야했다.

“와?”

“제가 저에 대해 뭐 모르고 있는 것이 혹시 있어요?”

"기 뭔 말인데?"

되묻는 아버지 말투가 애매했다. 뭔 말인지 정말 모른다는 것으로 들리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지난 번 집에 내려왔을 때 제가 사진을 봤거든요. 저 어릴 때 사진 같은데 저랑 아버지, 그리고 옆에 처음 보는 여자 분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그 여자 분은 누구신가요?”

아버지는 말없이 잠시 서계시더니 내 앞에 천천히 앉으셨다.

“니 어무이 아니라면 이모들 중 누구 아니건나?”

“아버지!”

‘내가 엄마나 이모들을 못 알아 봤을까봐요?’

“지난 일, 모 신경 쓸기 있노. 뭐, 니 아는 누군가 같이 찍었지 않건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신경 쓰지 말고 맘 잡고 공부나 열심히 하그라. 이제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 아이가. 필요한 기 있으면 얘기하고.”

나가는 아버지의 뒤를 향해 말했다.

“모르는 얼굴인데 어쩐지 처음 보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아버지는 흠칫하시더니 그대로 방을 나가셨다.

‘아버지, 제게 뭘 숨기고 있으신 것 맞지요? 그렇지요?’

답답했다. 지난 일이 지금 이렇게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지난 일 뭐 신경 쓸게 있냐는 것은 나에게 지금 전혀 먹히지가 않는단 말이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앞을 향해 달릴 준비가 겨우 되었는데 왜 내 앞을 막고 나서는 것들이 이렇게 자꾸 생기는 것인지, 도대체 나란 인간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온통 모르겠는 것투성이냔 말이다. 에잇.

나는 강진이방으로 가서 아직 풀지도 않은 가방을 챙겨들었다. 아직 안자고 있던 강진이가 놀라서 물었다.

“형, 가방은 왜?”

“강진아, 나 올라간다. 아버지 주무시는 것 같으니 내일 네가 말씀드려라.”

“형! 조금 아까 와놓고 한밤도 안자고 가?”

“잘 있어라.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인마......”

밤이지만 아직도 낮의 열기가 식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내 안의 열이 뿜어 나오기 때문인지 후끈했다. 낮에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서울 가는 막차는 대여섯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다. 창문을 내다보지도 않고 나는 눈을 감았다. 내발로 떠나면서도 마치 누가 떠다 밀은 양 눈물이 찔끔 나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