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절에서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나는 이를테면 객식구로서 머물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절에서 하는 어떤 일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은 없었다. 누가 부르러 오면 내려가서 아침을 먹었고, 점심을 먹었고, 저녁을 먹었다. 다만 절에서의 하루 일정을 소리로, 분위기로서 조금씩 익숙해져갈 뿐이었다. 잠이 좀 늦게 들어 밤늦게 까지 깨어 있을라치면 어느 덧 이 세상엔 나 혼자 깨어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사방이 조용했다. 그저 들리는 소리라고는 물소리와 바람소리뿐. 그건 도시에서 듣는 물소리, 바람소리와 분명 다른 소리였다.

아버지는 왜 나를 이리로 보내셨을까?

아버지 말씀대로 머리도 식히고 마음도 다 잡기 위해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이 뭘? 내 머리가 뭘 어떻다고?

아버지 혼자 괜히 오버하신다고 생각하며 돌아누웠다가, 곧 다시 천장을 보고 누우며 다시 내게 말한다.

‘네가 너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냐? 너는 그냥 네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야. 네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그런 것은 별 쓸모없어.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어차피 네 의지가 아니라 네 주위 상황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를 움직여가는 것은 내 자신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다른 것들이라니.

8월의 중순에 이르자 여름의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한낮엔 여기서도 돌아다니면 땀이 흘렀다. 그래도 다른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절 밖 산책을 자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카메라를 들고서.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나는 발걸음도 다르고 눈의 반짝임도 아마 다를 것이다. 멀리서도 눈에 뜨일 만큼 고운 색깔의 꽃나무를 찍는 것은 쉽다. 산봉우리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탁 트인 경치를 찍는 것은 몇 번 앵글을 잡아보고 셔터를 누르면 된다. 하지만, 바람을 찍고 싶을 때는 그렇지 않다. 소리를 찍고 싶을 때, 나의 꿈을 찍고 싶을 때에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릴 때 읽은 동화 ‘꿈을 찍는 사진관’ 이 생각난다. 읽고 또 읽었던, 좋아하는 동화 중 하나였는데 언제부터 그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찍어놓은 사진들은 결국 나의 꿈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그 날 밤, 다른 날보다 낮에 좀 많이 걸어 돌아다녔더니 피곤했는지 저녁 먹고 난 이후 잠이 일찍 들어있었다. 밖에서 누가 인기척 하는 소리에 번쩍 눈이 떠져서는 가만 귀를 기울였다.

“강석이 학생 자나?”

누군가 와 있었던 것 맞다.대답할 것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을 때 거기엔 장씨 아저씨가 서 계셨다.

“아, 아저씨 오셨네요? 들어오세요.”

오랜만에 보는 장씨 아저씨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니 그새 많이 늙어있었다.

“야, 이거 길에서 만나면 몰라보겠구나. 청년이 다 되었네. 그래, 여기 있으려니 갑갑하지는 않고?”

“아니요. 방문 열고 나가면 다 뚫려 있으니 오히려 갑갑하지 않아요. 어디 가셨더랬어요?”

“지난 번 공사해준 데서 급히 손봐달라고 연락이 오는 바람에 거기 불려갔다가 생각보다 오래 걸려 이제 왔지 뭐냐. 한옥은 지을 때도 그렇지만 보수하는데도 공이 많이 들어가. 후딱후딱 안 된다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재촉만 해대니.”

“그럼 요즘은 주로 한옥 일만 하세요? 예전에 아저씨, 우리 아버지랑 공사장에서 함께 일하실 때 생각나요.”

“내가 네 아버지 신세를 많이 졌지. 아버지 덕분에 일거리 떨어질 걱정은 안했으니. 아버지가 말씀은 없으시면서도 결단력 있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어서 집 지어 파는 바닥에서는 아주 적격이셨지.”

아저씨는 오랜만에 옛날 일을 얘기하시며 그게 지금도 그리 나쁜 추억은 아닌지 슬그머니 눈가에 웃음을 지으셨다.

“한참 잘 나가고 있을 때 우연찮게 한옥 집 공사가 들어왔는데 아버지는 그때 거기까지 눈 돌릴 틈이 없었고, 나만 어쩌다보니 거기 뛰어 들어가게 되어 가지고, 지금까지 이렇게 따로 돌아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아버지와는 종종 연락은 하고 소식도 듣고 지내고 있었다마는.”

나에게 왜 느닷없이 이 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런 것을 묻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아버지께서 언질을 주셨던가보다. 뭐, 그러니 내가 여기 지금 있게 된 것이겠지만 말이다.그때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아저씨는 알고 계실 거란 생각, 우리 아버지와 예전부터 오래 같이 일을 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아니 나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 거란 생각이.

“저, 아저씨. 여쭤볼게 있어요.”

“응? 뭔데?”

“돌아가신 우리 엄마요......”

나의 그 말에 아저씨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어떻게 저의 엄마가 되셨어요?”

그렇게 물어보려고 계획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아저씨가 금방 대답을 못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이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모르고 지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나는 그동안 내 머리 속으로 상상한 것을 마치 사실이 그런 양,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처음엔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던 아저씨는 나의 말로 미루어 이미 내가 대강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어딘가를 한동안 바라보고 계신 아저씨의 표정으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아저씨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가보니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벽 한쪽에 겨우 나있는 작은 창을 바라보고 계신 거였다.

“하긴, 너도 이제 클 만큼 컸으니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싶긴 하다만......”

“네 아버지랑 결혼하기 전부터 네 엄마, 그러니까 친모가 워낙 몸이 약했더란다. 그래서 건강부터 좀 챙기고 아이는 천천히 가질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네가 생긴거라. 네 엄마를 끔찍이 생각했던 니 아버지가 알면 혹시나 낳지 못하게 할까 염려되어 그랬는지 거의 산달 될 때까지 아이 가진 것을 숨겼다더라. 그러다가 너를 낳았고, 다행이 아기는 건강했는데 네 엄마는 건강이 계속 안 좋아져서 결국 강석이 네가 돌을 지내고 얼마 안 되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지. 나도 여기까지는 들은 얘기고 내가 네 아버지를 처음 만나 함께 일하게 된 게 바로 그때쯤이었지. 갓 난 너를 키워줄 사람이 마땅찮으니 네 아버지는 아예 너를 데리고 할머니도 계시고 이모들도 있는 너의 외가에 들어와 살게 되었지.”

말없이 듣는 나의 시선은 방바닥을 향하고 있었지만 아저씨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숨을 죽이고 있는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그런데 그때 네 외가에는 몸이 워낙 약했던 네 엄마보다 먼저 결혼한 네 엄마 동생분이 와계셨다지. 혼인한 집안이 손이 무척 귀한 집안이었는지 결혼하고 오래도록 아이가 안 생기자 며느리를 무척 힘들게 했나보더라. 결국 남편 되신 분과 거의 강제로 헤어짐을 당하고 친정에 와계신거였지. 그분이 다른 이모들보다 특히 더 너를 예뻐하였다더라. 아마 아이에 한이 맺혀서 그랬는지.”

무슨 말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아저씨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너는 자꾸 커가고, 네 아버지가 언제까지 그렇게 너를 엄마 없이 할머니와 이모들 손에서만 키울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 할머니는 연세도 있으시고, 이모들도 언젠가는 다 출가들 하실 테고......”

“그래서……요?”

“너를 제일로 예뻐하고 애지중지 키워주시던 그 이모가 아주 네 엄마가 되어 주기로……. 그래 되었던 거지.”

그러니까 나를 낳아주신 엄마는 내가 갓난아기일 때 돌아가시고 원래 이모였던 분이 나의 엄마, 키워주신 엄마가 되신 거란 말씀이다.

“처음에 그게 누구 뜻이었는지는 내도 모르겠고. 너는 계속 그 어머니를 네 친어머니로 생각하고 자랄 만큼 그 이후로도 너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셨는지. 나중에 강진이가 태어난 후에도 어찌 보면 너를 더 챙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밤이 깊었는지 밖에서는 다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기만 했다. 그 날 밤 아저씨가 돌아가신 후 나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의 얼굴이 내 머리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엄마, 내가 당신 얼굴을 기억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야했던 엄마, 그렇게 세상을 뜬 언니가 불쌍했을까, 아니면 그렇게 엄마 얼굴도 모른 채 남겨진 갓 난 내가 불쌍해서였을까. 그 엄마 역시 내가 더 커가는 것도 못 보시고 일찍 세상을 뜨고, 그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뿐 아닌 다른 가족들까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역시 어려서 어머니와 이별을 한 강진이 생각도 났다. 어지러운 생각으로 머리는 자꾸 무거워지고, 무거워진 머리에 못 이겨 어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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