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Tuck everlasting (우리말로 '트리갭의 샘물'이라고 번역되었던가?) 이라는 작품을 떠올린다. 어린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동화로 분류되지만 어른이 읽을때 그 깊은 뜻에 더 감동을 줄 수 있는 동화를 대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마당에 내용도 전혀 다른 이 동화를 엉뚱하게 떠올리는 것은 아쉬움때문이다. Tuck everlasting의작가가 오스카 와일드보다 훨씬 덜 알려진 사람이면서도 이 작품이 기대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그 반대였다.

 

알고 보면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내 나이연배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던 어릴 때 이미 접한 바 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지금 이 책에도 포함되어 있는 <자기만 아는 거인>이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거인의 집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예쁜 꽃들과 나무들로 꽉 차 있는 거인의 정원에 아이들이 들어와 놀기 시작하고, 매일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정원의 꽃, 나무가 망가져 가는 것이 싫은 거인은 아이들을 못들어오게 막아버린다. 시작은 이렇게 되지만 국어 교과서에서 결말은 dl 책에 실려있는 원본과 좀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교과서에는 실제 결말 부분이 많이 생략하여 실렸던 것인데 원본을 읽고 나니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결말 부분이 단축된 이야기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초등학교를 지나 어른이 되어서까지 마음에 남아있는 동화가 되었다. 잘 알려진 또하나의 동화 <행복한 왕자>도 그렇다.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내용이, 누구나 한번 읽으면 기억에서 쉽게 사라질 내용이 아니었다. 훨씬 나중에 읽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감동을 넘어서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고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 마침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게 되었고 과연 여러 가지 면에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가 본 그 세 작품이 그의 최고의 작품이었던 것일까?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동화는 <행복한 왕자>와 <자기만 아는 거인> 외에는 그 정도 수준에 오르는 것들이 없었다. 작가의 의도가 너무 드러나다 못해 작위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하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도록 아쉽게도 내 생각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이야기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미화시켰다는 느낌, 평범한 인간과 신의 대비, 선과 악의 대비 등이 작품을 막론하고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었는데 너무 지어낸 티가 난다. 그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스토리텔링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그냥 거기서 끝. 그 이상의 무엇이 없다. 더 나아가지 못한다. 깊은 감동, 아쉽지만 없었다.

혹시 리뷰쓰는데 영향을 받을까봐 책 앞에 실린 해설을 읽지 않았는데, 이제 리뷰쓰기를 마치는대로 읽어봐야겠다. 다른 이는 어떻게 느꼈는지, 정말 궁금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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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e afraid to be weak

Don't be too proud to be strong

Just look into your heart my friend

That will be the return to yourself

The return to innocence

 

If you want, then start to laugh

If you must, then start to cry

Be yourself, don't hide

Just believe in destiny

 

Don't care what people say

Just follow your own way

Don't give up and loose the chance
To return to innocence

 

That's the beginning of the end

That's the return to yourself

The return to innocence

 

 

Enigma의 Return to innocence라는 노래이다.

 

노래만 들을때는 몰랐는데 저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그룹 이름 Enigma라는 이름만큼이나 수수께끼 같다.

동영상을 보면 첫 화면이 한 사람이 죽는 장면 시작해서 거꾸로 시간이 진행되어 출생의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Innocence란, 아무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상태를 뜻하여 흔히 우리 말로 '순수'라고 번역되지만, 무죄, 결백이라는 뜻도 있는데, 제목 Return to innocence의 innocence가 '순수'를 의미하는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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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4-08-22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편이랑 만날 무렵 ,남편이 enigma 1집을 사서 들려주는데,
몽환적이라는 느낌이었어.

hnine 2014-08-22 09:37   좋아요 0 | URL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구나.
그림이든, 음악이든, 몽환적인 느낌의 것이라면 별로 안좋아하던 때가 있었는데 (뭔가 분명치 않고 흐리멍텅 하다고 감히 생각했었음) 나도 다린아빠의 영향이랄까, 불연속적이고 몽환적이고 불분명해보이는 것의 매력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
youtube에서 Karl Jenkins의 Palladio 중 Allegretto 라는 곡 찾아 듣고 있다가 그곡이 아닌 이곡을 올리게 되었어.
 

 

열한동으로 이루어진 우리 아파트에서 우리 집이 있는 동은 소위 말하는 로얄동은 아니다. 마루 창으로 내다보면 앞이 툭 트인 대신 아파트 단지의 한쪽 끝을 알리는 시멘트 담과 그 위에 나무와 풀이 자라는 작은 언덕이 가로막고 있다. 내 방의 책상이 그 창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책상에서 고개만 들면 작은 나무 언덕을 언제나 볼수 있다. 

아침 6시경, 때로는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책상에 앉아 있을 때도 있는데 부엌에 있는 동안은 못듣고 지나치지만 내 방에 앉아있을때는 영낙없이 새소리를 듣는다. 바로 우리 집이 숲을 곁에 두고 있는 덕분일거다.

'너도 일어났니? 우리 식구들은 아직 자고 있단다.'

저건 무슨 새의 노래 소리일까 궁금해하며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소리만 들을 수 있는게 아니다. 꿩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남편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마루 창으로 부르더니 건너 숲을 가리키며 저기 좀 보라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꿩이 종종거리며 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마리 옆에 또 한 마리. 신기해하며 본 그날 이후로 종종 꿩을 볼 수 있었다. 밖에 나갈 필요도 없이 바로 우리 집 마루에 서서.

 

오소리를 처음 본 그날도 책상에 앉아 일을 하던 중이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는 중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눈 앞에 뭐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일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 고개를 들어 창 너머 언덕쪽을 보았더니 '오소리'라고 생각되는 동물이 두 마리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있었다.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사진 찍을 생각도 못하고 그냥 그자리에 얼음이 되어 구경만 했더랬다. 꿩에 이어 오소리까지.

 

며칠 후엔 고라니까지 볼 수 있었는데 난 그게 고라니인지 몰랐다. 사슴처럼 생겼는데 사슴이라 하기에는 훨씬 몸집이 작았다. 나중에 우리 집 아이가 보더니 "고라니다!" 하는것이다.

 

 

 

- 이미지 출처는 서울대공원 웹사이트 -

 

 

겨울, 유난히 추운 날엔 가끔 저 동물들 생각을 하기도 한다. 뭘 먹고 어디서 추위를 피하고 있을까 하고.

 

전망은 좀 떨어지는 우리 집이지만 마루에서 꿩, 오소리, 고라니 볼 수 있는 우리 집이 좋다고, 다음엔 카메라 준비하고 있다가 사진도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다가 문득 든 생각.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원래는 쟤네들이 살고 있던 터전이었겠구나, 어느 날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산이 깎여나가고 땅이 파헤쳐지고, 그렇게 원래 살던 동물 식물들 다 쫓아내고 만든 아파트에 지금 내가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이곳의 주인은 쟤네들인 셈인데.

 

미안하다...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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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4-08-1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머 신기하다.꿩에 오소리 고라니까지...

hnine 2014-08-15 12:35   좋아요 0 | URL
나, 이런 곳에 살아~~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8-15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소리는 아니고 너구리가 아닐까요? 오소리는 꽤 귀한 동물이거든요.맹수들과도 싸울 정도로 강해요.개는 오소리를 못이기죠.저만의 구별법은...오소리 얼굴은 코알라와 개미핥기 분위기가 나구요,너구리는 거의 개와 비슷해요.오소리는 걸어갈 때 몸이 땅에 딱 붙어서 다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hnine 2014-08-15 17:37   좋아요 0 | URL
저도 무척 궁금해요. 너구리는 제가 가까이서 본적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너구리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오소리가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렇게 귀한 동물이라면 아닌 것도 같고... 꼭 작은 멧돼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어요. 움직임이 빠르지 않았고요. 에구, 궁금해라...

노이에자이트 2014-08-16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멧돼지를 연상시킨다면 오소리 같기도 하고...사진을 찍어 올리시면 제가 알 수 있겠습니다만...사는 곳이 어딘가요?

hnine 2014-08-15 20:18   좋아요 0 | URL
사진은 찍어놓지 못했어요. 사는 곳은 대전이고요.

노이에자이트 2014-08-16 16:03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가끔 제 글도 읽으러 와주세요.

hnine 2014-08-16 20:24   좋아요 0 | URL
저 노이에자이트님 서재에 자주 가는데...마땅히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할지 몰라서 그냥 나오곤 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4-08-17 13:11   좋아요 0 | URL
그러셨구낭~ 그냥 부담없이 댓글 한 방 쏘아주세요.

2014-08-19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9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20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여름 2014-08-2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까지 다 읽으니 동물 사랑 사이트 같아요^^ 오소리인지 너구리인지 어떻튼 꿩에 고라니까지 나타나는 아파트단지라니 멋지네요!

hnine 2014-08-22 14:42   좋아요 0 | URL
적어도 저에게는 멋진 단지입니다. 그런데 밤에 산책할땐 좀 무서워지기도...ㅋㅋ 갑자기 나타나면 놀랄것 같아서요 ^^
 

 

 

 

 

 

 

 

 

 

 

 

 

아이 책은 전집으로 사준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 내 책으로 전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몇달 전 부터 갖고 싶어하다가,

그 마음이 부디 흐지부지 되길 기다리다가,

세달이 지나도 여전히 갖고 싶다는 걸 확인하고

드디어 오늘

질렀다!

펭귄 클래식 1~50 세트 A

 

 

 

1 유토피아
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3 크로이체르 소나타
4 동물농장
5 좁은 문
6 성
7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8 노생거 수도원
9 인간의 대지
10 위대한 개츠비
1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12 아가씨와 철학자
13 홍길동전
14 금오신화
15 소송
16 지하로부터의 수기
17 이탈리아 기행 1
18 이탈리아 기행 2
19 첫사랑
2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1 별에서 온 아이
22 고독의 우물 1
23 고독의 우물 2
24 오페라의 유령
25 기쁨의 집 1
26 기쁨의 집 2
27 데이지 밀러
28 이반 일리치의 죽음
29 대위의 딸
30 군주론
31 지킬 박사와 하이드
32 주홍 글자
33 채털리 부인의 연인 1
34 채털리 부인의 연인 2
35 톰 소여의 모험
36 로빈슨 크루소
37 야간비행/남방우편기
38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39 전원교향악
40 인상과 풍경
41 논어 1
42 논어 2
43 크리스마스캐럴
44 켈트의 여명
45 피터 팬
46 드라큘라 1
47 드라큘라 2
48 1984
49 자유론
50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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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8-15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펭귄클래식 세계문학 세트, 좋겠어요.
나인님 책꽂이 보며 저절로 벙그러지는 모습이 그려지네요.^^

hnine 2014-08-15 09: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한꺼번에 구입해보긴 아마 처음인것 같아요. 제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
마침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기에 원래 정가보다 싸게 사긴 했어요.
읽은 책들도 있지만 고전은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있는 거니까 망설임없이 선택했는데 아무래도 안읽은 책부터 읽어보게되겠지요? ^^

파란놀 2014-08-15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석 달을 기다린 멋진 선물로
저 쉰 권을 차근차근 읽는 내내
아름다운 빛을 가득 누리셔요~

hnine 2014-08-15 09:08   좋아요 0 | URL
제가 별로 통이 큰 사람이 못되어서 작은 거 하나 사면서도 바로 살때가 거의 없거든요. 이번에도 몇달을 째려보고 있다가 마침내 일을 저질렀습니다 ^^
차근차근 읽는 시간들을 미리 생각해도 즐겁습니다.

상미 2014-08-15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축하축하 ㅎㅎㅎ
흐뭇하겠다.
책 많이 보는건 괜찮은거야??

hnine 2014-08-15 11:17   좋아요 0 | URL
책 보는 건 그나마 머리 덜 쓰는 일인데, 밥벌이로 하는 일이 머리 지끈거리게 할때가 많지 ㅋㅋ
되도록 책 보지 말라는건 병원있을때 얘기이겠지, 혼자 그렇게 해석하고 사버렸어.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전에 와계시다~ 조금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미사가 있을 예정. 5만 인파가 미사에 참여하려고 모였대.)

2014-08-17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7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 - <걷기예찬> 그 후 10년
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하루 종일 집안에서 한발짝도 안나가는 날이 더러 있다. 의도한건 아니라도 어찌어찌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몸이든 마음이든 둘 중 하나가 움직이기 싫다고 떼를 쓰는 날, 즉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날이었을 것이다. 하루쯤 그러는 건 괜찮은데, 그게 이틀 혹은 사흘까지 계속될라치면 거의 대부분 기분이 점점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

목적지가 있어 바쁜 걸음을 해야할때도 있지만 때로 누구와 약속 없이 그저 나혼자 걷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건 행운이다.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 그런 시간을 만들어내야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더 확실해졌다. 이 책에서 저자가 줄곧 하고 있는 말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15쪽)

먼저 나온 책 <걷기예찬>과 주제는 같으나 다른 점이라면 이 책엔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 사례등이 훨씬 많이 인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통찰력있고 수려한 문장 표현, 경험과 생각이 잘 집약되어 있는 구절 등은 전작에 뒤지지 않으나 인용 부분이 많으니 어딘지 깊이가 덜 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걷기는 근심 걱정의 무게로 너무 무거워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 (32쪽)

걷는다는 일은 때로는 침묵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일 (43쪽)

길을 걷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유일한 주인이다. (59쪽)

짧고 전달력있는 문장들은 마치 광고 카피같기도 하다.

 

가방을 가볍게 꾸리는 일은 정신을 가볍게 하는 형태이다. (189쪽)

알면서도 잘 안되는 일중 하나.

 

책이 중반을 넘어서면 사색적인 느낌보다는 여행기 느낌이 나서 이 책의 원래 색깔을 잃어버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것도 저자 자신의 여행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여행 경험 인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인데, 저자는 이 책의 주제를 전달하는데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을까, 아니면 사례 인용 먼저 해놓고, 읽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한 것일까.

 

풍경의 아름다움은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노잣돈처럼 늙어가는 일을 돕는다. (147쪽)

이런 표현들.

산책은 그날의 근심을 털어내면서 세상으로 배를 채우고 영양을 섭취하는 또다른 방식 (168쪽)

 

산보객은 도시의 예술가인 동시에 행인들이나 건물의 세부묘사 또는 거리의 분위기를 관찰하는 일종의 사랑스런 형사이다. (177쪽)

걷는 사람을 고도의 관찰을 직업으로 삼는 형사에 비유한 이런 예리한 표현도 이 사람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쇠이유협회는 비행청소년들을 맡아 주변사람들과 잠시 거리를 두는 경험을 통해 사회 복귀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으로서 석달동안 휴대전화나 게임기 또는 음악없이 배낭만 짊어지고 매일 25km 가량을 걷는다. (211쪽)

Seuil (쇠이유).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설립한 청소년 교화단체이고 마침 이에 관한 다음과 같은 책이 최근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자신 앞에 있는 것은 삶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빌리는 의미, 즉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가치들이다. 자신의 존재와 단절된 각각의 개인은 더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세상 앞에서 영원히 제자리 걸음을 치는 형벌을 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그 벽에 창문을 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의미의 길을 세우고, 존재 이유를 만들어내고, 즉흥적이든 혹은 지속적이든 흥분을 만들어내고, 존재감을 되살리는 일이다. 집에서 멀어질 방법을 갖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 짧고도 반복적인 걷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장악력을 되찾기 위해 가능한 해결책이다. (221쪽)

우리가 지금 눈앞에 보고 느끼는 것은 대상의 실체, 본질이 아니라 우리가 부여한 대상의 가치라니, 이런 부분에선 동양 사상이나 불교 사상에 관한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난다.

 

걷는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건 내 몸이나 마음이 그래도 정상 수준에 있을 때 얘기이고, 가끔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심할때는 걷기는 커녕 자리에서 꼼짝 하기 싫어지기도 하다. 이럴 때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선다는 것은 정상 수준에 있을 때보다 몇배 더 강한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 그렇다면, 그런 수준에 이르기 전에 미리 미리 대처를 해서 스트레스나 불안 수위가 그렇게까지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 수 밖에.

문없이 벽으로만 둘러쌓인 방에 갇혀 있는 느낌은 살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인데, 그 상황을 애써 부정하고 모르는 척하며 넘아가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차라리 똑바로 인정하고 벽에 문이든 창문이든 낼 수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런 내면의 힘을 키워가는데 느리게 걷기는 분명히 한 몫 한다.

 

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 -찰스 디킨스-

 

 

걷기는,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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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8-1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기 예찬이라는 책, 제목부터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나요. ^^

스트레스나 불안감이 높을 때, 정말 꼼짝하기 싫을 때, 잠만 자고 싶은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안 일을 합니다. 걷기나 비슷한 것 같아요. 벽에 문이든 창문이든 낼 수 있다는 문구ㅡ 참 좋아요.

그런데 갑자기 집 검사를 하다가 지붕에만 창문을 냈던 어느 그림이 생각이 나네요.
이런 그림의 해석이 참 잼나요... 이런 창문은 남들은 집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자신은 내려다볼 수 있다죠.
제 창문은 그렇지 않길 바라는데, 잘 모르겠네요. 나인 언니, 즐거운 한주되셔요.

hnine 2014-08-11 19:58   좋아요 0 | URL
문이나 창 없는 방,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한데,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 자신을 그런 곳에 가둔 채 속수무책으로 지내고 있는 경우를 생각하니 참...
몸과 마음이 이렇게 같이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학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저자의 전작인 <걷기 예찬>이 이 책보다 좀 더 좋았어요 저는 ^^

icaru 2014-08-12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쩐지 책 표지가 오래 눈에 와 박히네요.
처음엔 그냥 어디에나 흔한 다리 사진인가 했다가는,, 다리가 아니고, 물가를 끼고 있는 도로네요.
걷고 싶은 길들을 아직 가리는 저는 ㅎㅎ
꽤 쓸만한 운동화를 장만하면 걷는 일이 즐거워질지도 하는 생각이나 하구요 ^__^

hnine 2014-08-12 23:22   좋아요 0 | URL
걷고 싶은 길을, 걷고 싶은 사람과 걸을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있을까요? ^^ 저도 바라는 일이랍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걷기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걷기를 말하고 있어요. 몸을 움직여나감으로써 마음의 정해진 회로에서 벗어나보는 것, 정체된 상황에서 자신을 일으켜보고자 하는 노력, 뭐 그런거라 할까요?
해가 갈수록 걷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긴 해요. 저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요. 언제부터 이렇게 일부러 걸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지...
책 표지 그림이 예뻐서 꼭 미술책 같기도 했어요.
(아참, 그리고 제 건강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이제 완전 괜찮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