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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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책을 다 읽으면 버릇처럼 하는 일이 있다. 책의 시작으로 돌아와 몇 페이지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그럼 처음 읽을 때 놓쳤던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이해되는 시작인 것이다. (역자 후기에 보니 번역하는 동안 저자인 클레어 키건도 역자에게 이와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고 써 있어서 반가왔다.)

클레어 키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지는데 그녀가 지금까지 남긴 책은 단4권.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외 <남극>, <푸른 들판을 걷다>가 더 있을 뿐인데 그나마 아직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기 전이다. 

첫 페이지 시작에서부터 작가는 의도하는 모든 의미까진 못된다 해도 앞으로 소설의 분위기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할 만큼 묘사를 풍부하게 해놓고 있다.

사람들은 침울했지만 그럭저럭 날씨를 견뎠다. 상점 주인, 기술자, 우편 업무를 보거나 실업 급여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들, 우시장, 커피숍, 슈퍼마켓, 빙고 홀, 술집, 튀김 가게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 추위에 대해 또 비에 대해 한마디씩 하며 서로 이게 무슨 의미냐고-이 날씨가 어떤 조짐은 아니냐고-아니 또 이렇게 매운 날이 닥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물었다. (11)

날씨가 그냥 날씨가 아니다. 살면서 겪는, 매일 달라질 수 있는 '상황', '현실'을 의미했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들은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침울해하면서도 어쨌든 그럭저럭 견뎌내고 살았다고 한다. 매일 좋은 날일 수는 없고, 오늘 날이 궂었다면 내일은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험난한 날씨가 미래의 어떤 조짐이 아닐까 걱정도 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 아내와 두 딸을 키우며 살고 있는 펄롱이 있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채 어머니마저도 어릴 때 여의고 어머니가 모시고 있던 주인집 미시즈 윌슨의 보살핌으로 컸다. 맘껏 배우지 못했지만 건실한 가장으로서 낮이나 밤이나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그것이 가족을 위하고 본인이 할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매일 맡은 일에 충실하며 아내와 함께 두 딸을 키우고 공부시키는 것에 감사하며 산다.

가끔 펄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이 애들이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한 느낌을 느끼곤 했다.

"우린 참 운이 좋지?" 어느 날 밤 펄롱이 침대에 누워 아일린에게 말했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20)

아내와 나란히 누워 우린 참 운이 좋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아는 펄롱은 그런 사람이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22)


수녀원에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수녀원에서 아이를 낳고 도망쳐 나온 어린 여자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아이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지만 그 여아자이 말대로 수도원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일은 아닌 것 같다는 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배달만 끝내고 돌아온 것이 양심에 찔려 두고 두고 생각한다. 자기의 출신 성분, 부모로부터 일찍 떨어진 자기를 도와주었던 미시즈 윌슨을 생각하며, 나의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하는 궁금증까지, 잠시 하던 일을 멈춰서 생각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떠돌게 한다. 그동안 모르고 살았지만 자기를 지켜봐주면서 돌보아 주는 손길, 은총의 손길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이 가장 보기 어려운 것일까 생각한다.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기기로 할 때 그를 움직인 것은 검게 흘러가는 배로강의 강물을 보면서였다.

강을 건널 때 검게 흘러가는 흑맥주처럼 짙은 물에 다시 시선이 갔다. 배로강이 자기가 갈 길을 안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기 고집대로 흘러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간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117)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 길이라고 여기는 길을 선택해 행동에 옮기는 그는 다짐한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21)


저자가 역자에게 해주었다는 말 중에 이런 인용이 있었다.

"소설가 존 맥가헌은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클레어 키건은 그말을 염두에 두고 쓰는 작가라는 것을 알겠다. 진술이 없고 암시를 택하는 작가, 작가로서 독자에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알수 있도록 하고 싶은 작가이다. 읽으면서 그 암시를 얼마나 찾아내는지는 독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겉으로 명시하지 않았지만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독자라면 그 독자도, 작가도 그만큼 만족할 것이다.

펄롱에게 평생 자기의 진심을 말로 전달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을 살았던 네드, 그리고 미시즈 윌슨. 말로 표현되지 않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소박하지만 겸손한 그들의 사랑 덕분에 지금까지 펄롱이 거친 세상을 버티고 설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 펄롱은 그런 사랑을 자기도 베풀기로 한다. 그것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가져다 줄지 예상하면서도, 그럼에도 그는 자기가 믿는대로 하기로 한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오랜 세월 우리를 받쳐주고 있었던 중요한 것들이 존재한다. 사소해 보여서 모르고 지나치는 것, 가까이 있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자. 그리고 알아냈다면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괜찮은 인생일 것이다. 그런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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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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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foster인 것에 처음부터 마음에 쓰였다.

foster 

: to take care of a child, usually for a limited time, without being the child's legal parent

- Cambridge English Dictionary -

정해진 기간 동안 법적 부모가 아니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

돌봐지는 대상이 되는 아이가 아니라 돌봐주는 일을 하는 사람 쪽에 가까운 의미로 읽혀진다. 우리 말 제목은 맡겨진 소녀, 즉 돌봐지는 대상이 되는 아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 전부터 받는 인상이 약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왜 다른 제목이 아닌, foster 라고 했을까. 올라와 있는 다른 리뷰들을 읽어보니 대부분 아이 관점에서 이해하고 공감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 말 제목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제는 foster. 작가는 꼭 아이의 관점에만 맞춘 것이 아니라 맡기는 행위와 맡아서 돌보는 행위도 다 포함시켜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표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함께 구입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 까지 읽고 리뷰를 쓸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한 권을 읽고서 생소한 작가 클레어 키건 소설에 대해 소감을 쓸 만큼 충분히 얻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형제 많은 집에 태어나 부모의 충분한 돌봄과 애정을 못받고 자라고 있는 소녀, 가난한 형편에 이미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또 곧 태어날 아이가 있어 손이 모자라는 부부, 아이를 잃는 슬픈 일을 당하고 둘이만 살고 있는 부부. 어느 누구도 풍족하고 만족할 상황이 아니다. 내용 중간에 북아일랜드 분쟁이라는 정치 사회적 상황, 아이의 부모는 물론 이웃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자주 나온다. 아이의 부모는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 아이들은 줄줄이 딸린데 새로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 아이들을 충분히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킨젤라 아저씨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좀 더 나을지 몰라도 아이를 잃고 마음 한구텅이에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친부모와 살고 있기는 하지만 필요충분한 보살핌과 애정을 받지 못하고 크고 있는 아이의 결핍만큼 크진 않을지 모른다. 이들의 이런 결핍된 상황들이 아이가 킨젤라 부부에게 잠시 맡겨진 동안이나마 일시적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직접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주위 상황과 특히 인물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작가의 기법이 뛰어나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아이의 한마디는 몇개의 문장을 대신하고도 남음이 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잆어 만들어진 영화까지 국제 영화제 후보까지 올라갔다니 길지 않고도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요소가 분명히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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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3-0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읽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저도 비슷한 느낌이지 싶습니다. 한 권으로
어떤 작가에 대한 느낌을 단정짓는달까요.

이달 말, 독서 모임책이라 다시 읽어 보려
구요.

역시 다시 읽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클레어 키건 작가의 다른 책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만난 두 권의 책 모두 사회에서 소
외당한 이들에 대한 시선에 방점을 찍는 그
런 느낌입니다.

hnine 2024-03-09 09:54   좋아요 1 | URL
네, 그나마 후속으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읽고 나니 작가에 대해 조금은 감이 잡히는 느낌이어요. 지금까지 낸 작품이 4권 뿐이라니 나머지 두권도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어딘가 다른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스토리 전개에만 중점을 두지 않는.
 
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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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식이 되었던 서사는 소설에 필요한 요소이다. 소설가라고 하면 우선 흥미있고 독창적인 서사를 구상할수 있는 사람, 그런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 연상하기 마련인데,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 같은 소설을 읽으면 그런 선입관을 희석시키게 한다. 서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소설의 품격이 높아지는데는 서사를 통해 구현되는 창의력이 전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 고급스런 소설을 쓰는데는 서사보다 더한 작가 자신만의 무엇이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경우 그것이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딱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겐 부족하다. 아마도 언어에 대한 그의 타고난 관심과 재능, 언어 구사력에서 나아가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 정확한 언어를 뽑아내 사용하겠다는 문학적, 철학적 의지 같은 것들이 아닐까.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있는 그의 본명은 페터 비에리. 1944년 스위스 태생이지만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철학 교수로 지냈다. 2004년 출간한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대학교수, 2020년에 출간한 이 소설 <언어의 무게>의 주인공은 언어와 문학에 매진해온 번역가 사이먼 레이랜드이다. 공식 직업은 번역가이지만 어릴 때부터 언어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 태평양 연안의 모든 나라의 언어들을 배워보고자 하는 생각을 감히 품는 젊은이였다. 그런 그를 알아본 대학교수인 삼촌은 죽기 전 조카 레이랜드에게 자기가 살던 집을 물려주며 그의 집, 그가 쓰던 책상에서 너만의 책을 써보라고 한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레이랜드는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일기같은 편지를 써오고 있던 중 자신도 뇌종양 진단을 받는다. 자기 생도 얼마 안남았다고 여긴 레이랜드는 그동안 아내 리비아 대신 운영해오던 출판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혼자 삼촌이 물려준 집이 있는 영국 햄스테드로 이주해온다. 그동안 해오던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다.

여기까지는 제법 평탄한 플롯 아닌가? 하지만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은 이런 뼈대에 입힌 살에 있는데 그 살에 해당하는 것이 주인공 레이랜드가 직업상 만나는 작가들, 출판 관계자들, 이웃, 그리고 과거의 인물 (삼촌, 아내) 까지, 이들과의 관계, 그들을 통해서 다시 보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에서 파스칼 메르시어는 다른 어느 작가에서도 볼 수 없는 그만의 색깔, 그만의 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내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으로 끌어들인다.

레이랜드가 만나는 사람들이 여럿 나오지만 여전히 레이랜드의 관심은 자기 내면을 향하고 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그가 결국 대면하는 것은 (대면하고자 하는 것은) 그 자신이었으니까.

"이따금 나는 만남, 특히 첫만남은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알지 못하던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146)

그는 나의 감정을 표현할때 이런 것을 염두에 두는 사람.

두 사람은 에스파냐어 '펠리시다드 felicidad'가 그 시기의 행복에 어울리는 유일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어 'felicita'은? 너무 현란하고 깊이가 없었다. 사탕 색깔이나 싸구려 젤라토 같은 울림이었다. 프랑스어 '보뇌르 Bonheur'는? 너무 평범하고 들척지근하고 향수를 슬쩍 뿌린 것 같았다. 그럼 영어 '해피니스 Happiness'? 귀엽고 레이랜드 집에 있는 장식품을 떠올리게 했다. 독일어 '글뤼크Gluck'는? 유행가 제목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유치해졌다. 그러니까 에스파냐어가 정확하게 어울렸다. 레이랜드와 리비아는 단어에서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울림과 의미 공간에, 타인에게는 닫혀 있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산다는 생각도 가끔 했다. (156)

레이랜드가 다양한 언어 구사력을 가지고 실현하고 싶은 것은 다름아닌 더 '정확한' 방법으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함이었다. 

레이랜드를 통해 독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과연 '현재'일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대를 현재라고 정의하긴 하지만 미래에 종속된 시간, 과거에 집착한 시간을 살고 있으면서 현재를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사람에게만 일어나요. 인생을 놓치는 것 말이에요. 어쩌면 될 수도 있는 일, 급하고 압제적이고 강제적인 시간에 복종하느라 자기 자신을 놓치지요. 동물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동물은 자기가 지금 있는 모든 순간에 충실하고 현재와 자신을 잊은 상태에 맹목적으로 빠져 있어요." (473)

미래를 생각하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인간만의 능력이 결국 인간의 삶에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으로, 언어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다양한 문학작품을 읽고 감상할 수 있는 것 외에 우리 삶의 차원과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언어가 우리 삶에 올려놓는 무게에 대한 사색과 통찰은 이 책의 제목을 추상적으로 인식하던 처음에 비해 읽어가면서 점차 또렷해져갔다. 이처럼 세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채우고 있는, 레이랜드가 자기 자신의 책을 쓰기로 작정하고 쓰기 시작하는 부분은 너무나 마음에 드는 결말이다. 어느 누구든 어느 만큼 생을 살아왔다면 어떤 내용이 되었든 책 한권 쓸 만큼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평소 내가 혼자 하던 생각이기도 하다. 그럴려면 다른 사람을 따라 살지 않고 나의 생을 내 생각대로 용기있게 살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성공 일색이 아니라 실패 일색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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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11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딘데 이렇게 멋진가요?
커피 넘 많이 드시는 거 아닌가요? ㅋ
책 두껍네요. 야간열차 읽어야 하는데 이 책은 언제 읽을지 모르겠네요.ㅠ

hnine 2024-02-11 20:32   좋아요 3 | URL
동네 카페랍니다. 커피는 제 것과 남편 것 ^^
빈 컵은 제가 벌써 다 마셔서 그렇고요.
멋모르고 읽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보다 저는 이 책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책 두꺼운 것에 비해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2024-02-12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12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야멘타 하인학교 (양장)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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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 가르치는 교사들도 없다. 우리들, 벤야멘타 학원의 생도들에게 배움 따위는 어차피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훗날 아주 미미한 존재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로 살아갈 거라는 뜻이다. (7)

이 책의 시작이다. 책의 결론도 이 시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산책자'라는 에세이로 많이 알려진 로베르트 발저는 에세이뿐 아니라 소설도 남겼는데 <벤야멘타 하인학교>라는 이 장편소설도 그중 하나이다. 그가 출간한 세번째 소설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작이기도 하다. 독일어 원제는 '야콥 폰 군텐 이야기 (Jakob von Gunten)'. 여기서 야콥 폰 군텐은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이름이다. 

야콥의 목표는 하인이 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인 벤야멘타에 입학한다. 이 학교에서 배우는 유일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학교가 있을까? 벤야멘타 원장과 그의 여동생인 리자 벤야멘타양이 교사로 있는 이 학교에서 생도들이 하는 일은 이 학교의 규정들을 달달 외우거나 학교의 지향하는 목표등이 적혀 있는 책을 보는 일이다. 

어떤 생도는 따로 혼자 프랑스어 따위를 공부하기도 하고 작은 일탈 행위를 하는 생도도 있는 등, 집단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소소한 일과 인간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여기에도 존재한다. 

이 학교에서는 생각한다는 일 조차 쓸데 없는 일이다.

순응하는 것, 그건 생각하는 일보다 훨씬, 훨씬 더 고상한 일이다. 생각을 하면 저항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은 항상 꼴사납게 일을 망쳐버린다. 철학자들,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망쳐놓았는지를 알기나 할까.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무언가를 행한다. 그게 훨씬 더 필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머리들이 쓸데없이 일하고 있다. 학술적으로 다루고 이해하고 지식을 갖게 되면서 인류는 삶에 대한 용기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다. (101)

이것에 대해 누군가는 동의를 하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이 문장을 비유적 표현으로, 과장된 표현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만큼 살았나보다. 그렇게 살았나보다.

이 소설에서 하이라이트는,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다른 생도들을 보며 나도 일하러 나가고 싶다고 하는 야콥에게 벤야멘타 원장이 야콥을 말리느라 쏟아붓는 긴 대사중 에 나오는 다음 부분이 아닐까 한다.

내가 이제 막 너라는 놈을 얻게 되자마자 내게서 멀리 달아나버리고 싶다는 말이냐?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 학원에서 네가 할 수 있는 한 맘껏 지루해보거라. 오, 이 어린 세계의 정복자여, 세상에서, 세상 밖에서 비로소,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위해 노력할 때 무엇인가를 쟁취할 때, 그때, 그때 지루함의 바다가, 적막과 고독의 바다가 네게 그 깊은 심연을 드러낼 거다. 이곳에 그냥 머물러라. 조금만 더 동경하는 거야. 동경 속에, 그러니까 기다림 속에 어떤 축복이, 어떤 위대함이 있는지 너는 믿을 수가 없을 거다. 그러니 기다려라. (145)

야콥에게 호의를 베풀고 걱정해주던 벤야멘타 양 마저 세상을 떠나고 대부분의 다른 생도들도 학교를 떠난 후 결국 야콥은 혼자가 될 원장과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한다.

삶이 원하는 것은 격동적인 움직임이라는 것, 성찰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느낀다.

생각하는 삶일랑 이제 집어치운다. (184)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거의 모순에 가까운 말을 남긴다.

이제부터 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신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 신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신에 대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신은 생각하지 않는 자와 함께 간다. (184)


야콥이 마지막으로 짐을 꾸려 떠나는 그곳은 어떤 곳일까? 책 속에는 황야 또는 사막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것이 나타내는 곳은 어떤 곳일까 생각하며 이 책을 구상했을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마치 노자의 무위 사상을 연상하게 하는, 그런 생각을 소설로 쓰기로 한 로베르트 발저의 마음 상태를. 

알다시피 로베르트 발저는 일생동안 세상에 알려지기를 극도로 꺼려하며 살아간 사람이지만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카프카, 헤세, 벤야민 등의 쟁쟁한 인사들에게 높이 평가되었다. 아직 이들도 아웃사이더에 속하는 시대였긴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 이전에 그를 인정한 이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로베르트 발저가 너무 오래동안 요양원과 정신 병원에서 세월을 보내며 단절된 채 살았다는 것은 지금도 안타까운 일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로베르트 발저의 일생을 나타낸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모두 살아가는 동안 한번씩 거쳐가는 시공간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생을 마치는 반면, 어느 누군가는 벤야멘타 학교를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갈 것이다. 그곳이 거친 황야나 사막일 지라도. 지루함과 적막과 고독을 불사하고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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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법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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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 내가 지금까지 읽은 가장 난해한 한국 소설은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였다. 정지돈의 에세이 한 권 읽은 댓가로 지금 몇권째 줄줄이 독서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한기 이 소설도 그렇게 읽게 되었는데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 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 역시 어떻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나 고민을 남겼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풀밭위의 돼지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작품에 대한 모호한 해석을 숙제로 남길 뿐 읽는 속도를 방해할 정도의 난해함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독성은 좋다. 

1985년생, 2012년에 등단한 이 작가는 현실에서 박리되어 나와 현실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며, 한번 세상에서 동떨어져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사실주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읽으면 영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싶다.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있어 하나의 장편을 읽는 것보다 작가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수가 많아서 좋다.


파라솔이 접힌 오후

자살한 컨트리 가수 W를 추앙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의 손님이었다가 임시직원이 된 '나'는 W의 평전 <파라솔이 접힌 오후>를 읽으며 평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실제 인물인 서점 주인, 손님 튀기, 유리를 대입시켜 생각한다. 이 모든 사람이 '서점'이라는 커다한 파라솔 아래 있다는. 파라솔 아래서 이들은 파라솔을 접고 햇빛에 맞서 견딜 시기를 망설이며 기다리고 있다.


더 웬즈데이

제목 '더 웬즈데이'는 예전에 실제 있었던 주간지 '선데X 서울'을 연상시키는 대중 주간지 이름이다. 여배우와 불륜의 관계에 있던 아버지의 사망기사가 더 웬즈데이에 실린 것을 본 '나'는 곧 없어질 상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포르노 소설을 쓰는 초급 작가이다. 아버지의 납골당으로 가는 중에 아버지의 불륜 상대였던 여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난 것을 보며 노출 영화에 씌워질 가면과 해석을 생각한다.


나의 클린트이스트우드

아날로그 시대의 종말, 영화관의 종말, 서부극, 마초 영화배우의 종말을 얘기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작가의 방식은 이렇게 한편의 소설이 되었다. 


유리

오한기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유리'라는 인물은 여기서 살인청부업자. 기이한 언행과 행동을 소재로, 한 작품 써보려는 글 속 작가지망생의 과정을 그린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미완의 느낌이 강한 단편이다.


햄버거들

'나'는 작가지망생, '한상경'은 시인 지망생. 한상경은 햄버거가 최고의 문학적소재라고 떠들어대며 햄버거와 관련된 유명작가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다. 말도 안되는 행동이라며 한상경을 이해 못하던 나도 어느새 햄버거 얘기만 하고 있고 햄버거를 통해 문학을 해석하고 있다. 나와 한상경이 함께 알고 있는 여자 최승자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왜 썼을까 갸우뚱 하게 하는 작품이 이것뿐만은 아니지만 소재어를 들라면 많아도 주제어를 말하라면 없는 것도 이 작가 작품들에 공통적이다. 작가로서 관점과 의식의 확장 연습이었을까?


볼티모어의 벌목공들

상황설정은 많은데 다 읽고나서 주제어가 떠오르지 않는 모호함으로 남는 또 하나의 단편이다. 시작은 독특하나 그만한 결말이 아닌 것은 이 단편만의 특징은 아닌듯하다. 포르노적 묘사가 빈번하게 출현하는 것도 거슬리기 시작하여 읽기를 방해했다.


열네살

말이 열네살이지 스무살은 되어 보이는 소년의 직업은 도시락 배달. 여기서 작가는 모든 상황을 도시락의 종류와 상태에 비유한다. (예; '텅 빈 도시락', '도시락 속에서 온갖 반찬들이 뒤섞이는 기분 같았다'). <햄버거들>에서 모든 문학작품을 햄버거에 비유했듯이. 오한기 소설에서 여자를 묘사하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고 물질적이라는 아쉬움이 쌓여간다.


의인법

나와 한상경은 아직 유명해지기 전의 소설가. 소설가로서의 능력이 있는건지 자아비판하며 하루라도 빨리 유명해져보고자 망상인지 소설인지 모를 글을 써대고 헛소리 같은 말을 해댄다. 어느 날 한상경은 자기의 정체가 외계인이었다고 지껄여대고, 처음엔 헛소리로 흘려듣던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외계인 생각에 빠지게 되어 자기도 혹시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어 외계인 '나'가 나오는 소설을 쓰기에 이른다. 

실제 외계인도 이보다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비현실적인 내용이다.


새해

한동안 잠적했던 한상경이 아이를 안고 내 앞에 나타난다. 아이의 이름은 피츠제랄드. 한상경 대신 그 아이를 돌봐주게 된 나는 아이를 피츠제랄드가 아닌 친친나트라고 이름 부른다. 같은 아이의 이름이 돌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불리게 한것은 문학을 하는 사람에 따른 문학적 롤 모델, 혹은 지향하는 문학이 다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아이의 존재는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기 보다 '납치'의 형태로 오게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


아홉편의 단편이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동일 인물이 중복해서 출현하기도 한다.

아홉 편을 통해 나타나는 오한기 작품의 특징을 정리해보았다.

1. 완성된 플롯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 떠오른 한 두 문장에서 출발하여 거기서 어떻게 소설을 한편 써볼까 생각하여 써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화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2. 아직 큰 인정을 못 받고 있어 더 유명해지고 싶고 자기 미래에 끊엄없이 회의하는 작가가 '나'로 나오고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그러나 같지는 않은 사람이 또 하나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여러번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상경' 같은 인물이다. 모두 작가 오한기 자신이 투영되었다고 보이는데 이들은 생계를 위해 전업 작가보다는 다른 직업을 병행하여 가지고 있다. 포르노 작가, 자서전 대필, 학원 강사, 서점 직원, 햄버거 가게 직원, 식물 학자 등.

3. 현실과 상상 속 세계, 진실과 허구 사이를 구분 없이 드나든다. 없는 존재, 없는 나라, 없는 지명, 없는 질병 이름을 수시로 지어내어 작품 속에 등장시키니 주의하여 읽어야 하는데,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 재미없었을까? 세상과 동떨어져 작가 마음대로 지어내고 마음대로 일을 벌인다. 작가는 소설이 그릴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그렇게 넓히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런 방식의 글에서 문제는 그래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는지, 상상과 허구의 세계까지 범위를 넘어가며 알아온 것은 무엇인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영역은 넓어졌으되 손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 꿰지 않은 서말의 구슬일 뿐이라면.


오래간만에 눈에 띄는 한국 소설을 읽어서 좋고, 적어도 이 작가를 다른 어떤 작가와 혼동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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