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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법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평점 :
내 기억으로 내가 지금까지 읽은 가장 난해한 한국 소설은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였다. 정지돈의 에세이 한 권 읽은 댓가로 지금 몇권째 줄줄이 독서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한기 이 소설도 그렇게 읽게 되었는데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 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 역시 어떻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나 고민을 남겼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풀밭위의 돼지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책장이 넘어간다. 작품에 대한 모호한 해석을 숙제로 남길 뿐 읽는 속도를 방해할 정도의 난해함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독성은 좋다.
1985년생, 2012년에 등단한 이 작가는 현실에서 박리되어 나와 현실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며, 한번 세상에서 동떨어져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사실주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읽으면 영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싶다.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있어 하나의 장편을 읽는 것보다 작가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수가 많아서 좋다.
파라솔이 접힌 오후
자살한 컨트리 가수 W를 추앙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서점의 손님이었다가 임시직원이 된 '나'는 W의 평전 <파라솔이 접힌 오후>를 읽으며 평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실제 인물인 서점 주인, 손님 튀기, 유리를 대입시켜 생각한다. 이 모든 사람이 '서점'이라는 커다한 파라솔 아래 있다는. 파라솔 아래서 이들은 파라솔을 접고 햇빛에 맞서 견딜 시기를 망설이며 기다리고 있다.
더 웬즈데이
제목 '더 웬즈데이'는 예전에 실제 있었던 주간지 '선데X 서울'을 연상시키는 대중 주간지 이름이다. 여배우와 불륜의 관계에 있던 아버지의 사망기사가 더 웬즈데이에 실린 것을 본 '나'는 곧 없어질 상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포르노 소설을 쓰는 초급 작가이다. 아버지의 납골당으로 가는 중에 아버지의 불륜 상대였던 여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난 것을 보며 노출 영화에 씌워질 가면과 해석을 생각한다.
나의 클린트이스트우드
아날로그 시대의 종말, 영화관의 종말, 서부극, 마초 영화배우의 종말을 얘기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작가의 방식은 이렇게 한편의 소설이 되었다.
유리
오한기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유리'라는 인물은 여기서 살인청부업자. 기이한 언행과 행동을 소재로, 한 작품 써보려는 글 속 작가지망생의 과정을 그린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미완의 느낌이 강한 단편이다.
햄버거들
'나'는 작가지망생, '한상경'은 시인 지망생. 한상경은 햄버거가 최고의 문학적소재라고 떠들어대며 햄버거와 관련된 유명작가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다. 말도 안되는 행동이라며 한상경을 이해 못하던 나도 어느새 햄버거 얘기만 하고 있고 햄버거를 통해 문학을 해석하고 있다. 나와 한상경이 함께 알고 있는 여자 최승자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왜 썼을까 갸우뚱 하게 하는 작품이 이것뿐만은 아니지만 소재어를 들라면 많아도 주제어를 말하라면 없는 것도 이 작가 작품들에 공통적이다. 작가로서 관점과 의식의 확장 연습이었을까?
볼티모어의 벌목공들
상황설정은 많은데 다 읽고나서 주제어가 떠오르지 않는 모호함으로 남는 또 하나의 단편이다. 시작은 독특하나 그만한 결말이 아닌 것은 이 단편만의 특징은 아닌듯하다. 포르노적 묘사가 빈번하게 출현하는 것도 거슬리기 시작하여 읽기를 방해했다.
열네살
말이 열네살이지 스무살은 되어 보이는 소년의 직업은 도시락 배달. 여기서 작가는 모든 상황을 도시락의 종류와 상태에 비유한다. (예; '텅 빈 도시락', '도시락 속에서 온갖 반찬들이 뒤섞이는 기분 같았다'). <햄버거들>에서 모든 문학작품을 햄버거에 비유했듯이. 오한기 소설에서 여자를 묘사하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고 물질적이라는 아쉬움이 쌓여간다.
의인법
나와 한상경은 아직 유명해지기 전의 소설가. 소설가로서의 능력이 있는건지 자아비판하며 하루라도 빨리 유명해져보고자 망상인지 소설인지 모를 글을 써대고 헛소리 같은 말을 해댄다. 어느 날 한상경은 자기의 정체가 외계인이었다고 지껄여대고, 처음엔 헛소리로 흘려듣던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외계인 생각에 빠지게 되어 자기도 혹시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어 외계인 '나'가 나오는 소설을 쓰기에 이른다.
실제 외계인도 이보다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비현실적인 내용이다.
새해
한동안 잠적했던 한상경이 아이를 안고 내 앞에 나타난다. 아이의 이름은 피츠제랄드. 한상경 대신 그 아이를 돌봐주게 된 나는 아이를 피츠제랄드가 아닌 친친나트라고 이름 부른다. 같은 아이의 이름이 돌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불리게 한것은 문학을 하는 사람에 따른 문학적 롤 모델, 혹은 지향하는 문학이 다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아이의 존재는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기 보다 '납치'의 형태로 오게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
아홉편의 단편이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동일 인물이 중복해서 출현하기도 한다.
아홉 편을 통해 나타나는 오한기 작품의 특징을 정리해보았다.
1. 완성된 플롯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 떠오른 한 두 문장에서 출발하여 거기서 어떻게 소설을 한편 써볼까 생각하여 써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화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2. 아직 큰 인정을 못 받고 있어 더 유명해지고 싶고 자기 미래에 끊엄없이 회의하는 작가가 '나'로 나오고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그러나 같지는 않은 사람이 또 하나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여러번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상경' 같은 인물이다. 모두 작가 오한기 자신이 투영되었다고 보이는데 이들은 생계를 위해 전업 작가보다는 다른 직업을 병행하여 가지고 있다. 포르노 작가, 자서전 대필, 학원 강사, 서점 직원, 햄버거 가게 직원, 식물 학자 등.
3. 현실과 상상 속 세계, 진실과 허구 사이를 구분 없이 드나든다. 없는 존재, 없는 나라, 없는 지명, 없는 질병 이름을 수시로 지어내어 작품 속에 등장시키니 주의하여 읽어야 하는데,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 재미없었을까? 세상과 동떨어져 작가 마음대로 지어내고 마음대로 일을 벌인다. 작가는 소설이 그릴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그렇게 넓히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런 방식의 글에서 문제는 그래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는지, 상상과 허구의 세계까지 범위를 넘어가며 알아온 것은 무엇인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영역은 넓어졌으되 손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 꿰지 않은 서말의 구슬일 뿐이라면.
오래간만에 눈에 띄는 한국 소설을 읽어서 좋고, 적어도 이 작가를 다른 어떤 작가와 혼동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