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전혀 계획하지 않은대로 살고 있다.

나만 그렇지 않다는게 위안이 아니라 더 무력감을 가져다 준다.

 

 

3월엔 가족중 한사람이 입원하는 일이 있었고 (코로나는 아니고),

4월 한달 동안 나는 두 병원의 응급실을 세번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중 한번은 지난 2014년 겪었던 일의 반복.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두 사람 모두 지금은 회복되어 잘 지내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번 봄 장기간 걷는 여행을 계획했던 남편은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그 계획을 실천 못할 것이 확연해지자

이미 구입해놓은 스틱, 트레킹복 등을 챙겨서 하루 2만보씩 주변의 산과 들 걷기를 두달 째 해오고 있다.

나 역시 다니던 체육시설이 코로나 때문에 폐쇄되어 답답해하고 있던 차. 남편이 집을 나설때 같이 나서서 걸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끝까지 함께 걷기가 힘에 부쳤다.

내 역량을 잘 아는 현명한 나.

중간쯤 가다가 미련없이

"뒤로 돌앗!"

하고 스스로 명하고 발길을 돌려 혼자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가던 길을 계속 가서 나보다 훨씬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라도 매일 걷는게 이제 몸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중이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 이것도 힘들겠지.

 

 

학교에 있어야 할 대학생 아들이 집으로 소환당하고,  

무슨 수업을 어떻게 받는지 어떻게 과제를 하는지 바로 옆에서 넘겨 볼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매일 세끼 밥을 차려야 하는 것쯤은 기꺼이 할 수 있는 수고.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다 지났고

이제 산과 거리에 이팝나무 꽃이 하얗다.

 

 

 

 

 

 

잠깐 내린 비와 바람에 벚꽃 열매 바닥에 떨어져있고,

어제 산책길엔 아카시아가 냄새가 달콤 향긋했다.

'아카시아 냄새를 맡을 수 있는걸보니, 코로나는 아닌가보다.'

그 생각부터 했더랬다.

발열 외에 미각과 후각 상실이 코로나 증상으로 더해졌다고 하기에.

 

 

 

이재무 시인의 <꽃들의 등급>이라는 시의 마지막 행은

'지루한 평화가 날마다 폐지처럼 쌓여간다' 이다.

공감의 뜻으로 밑줄 그었던 그 행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그 지루한 평화가 어떤 사람의 어떤 시기엔 절실하기 그지없는 바램일 수 있다는 걸,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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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5-1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드님이 벌써 대학생이 됐군요.
처음 h님 여기에 집 지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세월 참 빠릅니다. 그런데 학교도 못 가고 어쩝니까.ㅠ
코로나 자체만으로도 놀라운데 힘든 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걷기가 저는 참 안 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불 빨래했다고, 오늘은 미세먼지에 황사 핑계로 집에 있는데
핑계댈 게 있어 얼마나 좋은지.ㅋ
암튼 앞으론 좀 좋아지는 나날을 기대해 봅니다. 힘 내시기 바랍니다.^^

hnine 2020-05-12 22:18   좋아요 0 | URL
허걱, 이불 빨래를 하시다니. 걷는게 이불 빨래보다 쉬워요.
일부러 나가서 걷지 않으면 저란 사람은 집 밖으로 좀처럼 안나가게 되고, 그렇게 햇빛 안보고 지내면 건강에도 안좋고 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나가서 걷는답니다. 다른것 할줄 모르고 취미도 없는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몸 움직이기 이지요.
제가 여기 서재 시작한지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건 stella님 알고 지낸지도 꽤 오랜 시간이 쌓였다는거네요? 더 오래 쌓아가겠죠? ^^
 

 

 

 

 

 

 

 

 

걷는 것은 4월에도 변함없는 저의 루틴이었습니다.

개나리의 호위를 받으며 앞서 가는 분들 옷 색깔도 꽃처럼 선명하네요.

 

 

 

 

 

이런 길도 걸었고

 

 

 

 

 

 

 

이런 길도 걸었어요. 어디 가나 꽃길. 그야말로 꽃길만 걸을수 있던 날들이었습니다.

 

 

 

 

 

 

 

 

 

 

 

 

 

 

 

 

 

 

 

 

 

 

 

 

 

 

 

쇠뜨기를 비롯해 고사리 철이기도 했어요.

 

 

 

 

 

 

 

이꽃 이름은 "광대나물"이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할미꽃인데

4월 초에 이랬던 할미꽃이

어제 보니 벌써 아래처럼 하얗게 털만 남은 것들이 있더군요. 할머니 흰머리 처럼.

 

 

 

 

 

 

 

 

 

 

 

아주 흔한 제비꽃이고요.

 

 

 

 

 

제비꽃과 색깔이 비슷하고 키가 작아 제비꽃인줄 알뻔 했던 "각시붓꽃"이랍니다.

 

 

 

 

 

 

 

 

 

자운영도 한창이고요.

 

 

 

 

 

 

애기똥풀과 함께 노랑색 꽃의 대표 "양지꽃" 이랍니다.

 

 

 

 

 

 

 

 

 

 

 

 

 

 

 

 

 

 

 

무슨 나무 잎이 이렇게 생겼지? 궁금해하면서 파스타를 떠올렸어요. 왜 파스타 면 종류중에 꼬불꼬불하게 생긴 파스타면 있잖아요. "푸실리" 였던가요?

 

 

 

 

 

 

사람도 없는데 부시럭 소리가 나서 둘러보면 새가 있더라고요. 때까치로 짐작되는 새입니다.

까치 종류가 가장 흔한 것 같아요.

새 사진은 꽃이나 나무보다 찍기 어렵습니다. 동물이라서요.

 

 

 

 

 

재두루미가 아닌가 싶은데.

 

사진을 못찍었지만 딱다구리도 보고 꿩도 봤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 모두 깨달은 것이기도 한데, 아무리 사소한 루틴이라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말입니다.

이렇게 한가로이 걸을 수 없던 날도 있었어요.

 

 

 

 

 

 

 

아들이 아팠던 날들이 있었고,

(지금은 회복되어 건강합니다)

저는 4월에만 응급실행을 두어번 해야했고,

내일은 그 여파로 정밀검사가 필요하대서 병원 예약이 되어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도무지 잠이 안와요. 이렇게 사진 올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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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8 0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8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8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8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8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8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d 2020-04-2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요. 아드님도 hnine 님도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Daum)에서 찾아보니까 날개깃에 연파란색+검정색+하얀색 조합이 있는 새는 어치(Eurasian jay)라고 나오네요. hnine 님의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과 손길이 느껴지는 사진들을 볼 때마다 ‘힐링되는’ 느낌입니다. 따스한 봄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너무나 좋습니다. 흙내가 풀풀 나는 들길, 산길, 겨우내 거무튀튀해진 나무 껍질을 뚫고 올라온 초록색 잎사귀들, 갈색 낙엽들 사이로 솟아오른 풀꽃들, 물고기 냄새라도 섞인 듯 물내가 킁킁 나는 산 개울물, 물오른 연록색 버드나무들... 봄나들이 못하고 집안에만 박혀 있는 저 같은 사람들한테 hnine 님의 사진은 진짜 봄나들이를 한 것 같은 기분에 젖게 해주네요. 요새 힐링 힐링 하는데 딴게 아니라 이런 게 진짜 힐링인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hnine 2020-04-28 23:23   좋아요 1 | URL
말씀듣고 어치를 찾아보니 정말 어치 같네요. 그런데 때까치도 바로 그런 특징이 있다고 나와서 헷갈리네요.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꿩은 머리가 빨간 색이고 지상에서 천천히 걸어다녀서 금방 눈에 띄었어요. 저렇게 눈에 확 띠는 외형이라면 적의 눈에 너무 쉽게 드러나서 생존에 불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답니다.
제 사진이야 그저 사진이지만 실제로 숲속이나 산길을 걸으면서 주위를 둘어보면 힐링이 되는 것을 느껴요. 그리고 중요한 햇빛받기! 저렇게 일부러 나가서 걷는 목적 중 하나가 햇빛 샤워를 받고 싶어서랍니다.
mind님도 매일은 못해도 ( 저 같이 한가한 사람이나 부리는 사치이지요) 가끔이라도 햇빛 속을, 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늘 제 사진에 느낌을 보태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 고맙다는 인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stella.K 2020-04-2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밀검사요...? 코로나 때문인가요?
어쩐지 조용하셔서 무슨 일이 있으신가 궁금했는데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기회에 대비한다 생각하시고 마음 편히 검사 받으십시오.
저의 댓글을 읽을 때쯤은 다 끝나셨겠지만.^^

hnine 2020-04-28 23:35   좋아요 0 | URL
코로나 때문인지 뭔지, x-ray 상에서 미심쩍은게 보였다고 더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네요. 병원에서 그 말처럼 겁나는 말이 있을까요. 오늘 신경외과에서는 별 이상 없다고 통과했고 내일 호흡기내과 검사가 남아있는데 오늘 밤은 잘 잘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현재까지는 전혀 잠이 오지 않고 있어요 ㅠㅠ

2020-04-2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8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0-04-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이 건강해져 다행입니다~~
선명하고 예쁜 꽃들보며 행복해지는 오후입니다**

hnine 2020-04-28 23:47   좋아요 1 | URL
제 아이는 한 2주를 병원에서 고생했지요. 먹기 좋아하는 애가 아무 것도 못먹고 끙끙 앓던 것이 안타까워서 지금은 어떤 배달 음식 조차도 먹겠다면 두말 않고 시켜준답니다.
요즘 나가보면 정말 여기 저기서 생명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답니다. 그것도 좋은 책 읽는 만큼이나 감동이던데요.
페넬로페님도 건강 잃지 않고 행복하시기를 바랄께요.
 
The Last Lecture (Paperback)
랜디 포시 지음 / Hyperion Books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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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간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책. 언제부터 내집 책장에 꽂혀있었는지 모를 책을 이제서 꺼내 읽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말로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사람은 과연 빈손으로 가는것일까.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럴지 모르지만 정신적인 영향력, 가르침도 포함한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2006년 췌장암 진단과 함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통고받았을때 저자인 Randy는 아직 40대였고 어린 세 아이의 아빠였으며 카네기멜론 대학 컴퓨터학과의 촉망받는 교수였다. 남아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족들과 함께 하며 어린 자식들의 기억 공간을 채워주고 싶었지만 그 시간을 쪼개어 그는 자신의 아이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뭔가 더 구체적인 것을 남기고 가고 싶었다. 아내 Jay의 말에 의하면 그는 원래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자기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 기간이 Randy 에게는 힘든 항암의 화학치료 기간이기도 했지만, 돌아보건대 암치료를 위해 주어지는 그 어떤 약보다도 그가 쓴 이 책을 읽은 사람들로부터의 긍정적이고 애정어린 반응을 받았던 것이 그에게는 더 좋은 것이었다고 아내는 회상한다. 그는 마침내 불과 1년 전만해도 자기가 지금 이런 일에 시간을 쏟을거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을 히작한다. 길지 않은 생을 돌아보고 남겨질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남겨질 이야기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연을 하였고, 책으로 출판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든, 그렇지 못했던 사람이든,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가늠하여 생의 성공여부를 말하곤 한다. 얼마나 남기고 갔느냐는 말의 '얼마나'에는 재산, 직위, 때로는 자식의 성공 여부까지 포함시켜서 말할 때가 많으면서 말이다.

자기가 태어나는 때를 스스로 정하지 못했듯이 생의 마감도 자기가 정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 뻔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그 순간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

흔히 나이들으면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남의 말을 듣는 대신 자꾸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꺼내어 한번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모르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에게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길게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다. 거기에 남을 가르치는 듯한 말투까지 보탠다면 상황은 더 못견딜 상태로 치닫는다. 이런 일에 대한 대안으로서 "내 말 좀 들어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에 해당하는 내용을 아무나 붙잡고 말을 하는 대신 혼자 글로 써보면 어떨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도 되고 억지로 듣는 사람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30년을 살든, 70년을 살든,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면 누구나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것들을 자기의 경험을 기본으로 하고 경험을 통해 얻은 생각을 잘 정리하여 에피소드 형식의 지루하지 않은 얘기들을 "The Last Lecture"  라는 제목으로 남겨주었다. 학생들과 interaction이 활발하던 젊은 교수였기 때문인지 강의라기 보다는 한바탕 그의 수다를 들은 느낌일 정도로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며, 그러면서도 요약이 잘 되어 결론이 분명하고 확실하다. 이해하기 쉽고 전달력이 확실한, 강의라고 치면 명강의이다.

 

Experience is what you get when you didn't get what you expected. (148쪽)

경험이란 당신이 기대하던 걸 얻지 못했을때 얻은 그 무엇이다.

 

'The Eaten By Wolves Factor' (160쪽)

: 어떤 일을 하기 앞서 worst case scenario를 생각해보는 것. 더 잘 준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이다.

 

Once you get over them, it can be helpful to others to tell them how you did it. (174쪽)

당신이 일단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극복해야 나중에 그것이 어땠노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A lot of parents don't realize the power of their words. An offended comment from Mom or dad can feel like a shove from a bulldozer. (198쪽)

많은 부모들은 그들이 하는 말의 위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화 나서 던지는 한마디는 (자식들에게) 불도저가 와서 밀어붙이는 것 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지 3년만인 2008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결코 빈손으로 떠났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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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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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하고 긴 검은 머리, 검은 테 안경, 장갑 낀 손으로 애견 '애니'를 옆에 끼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 모습.

이 책을 다 읽고 궁금해서 찾아본 그녀의 모습은 25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릴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고 평화로왔다.

▶ https://www.cambridgeindependent.co.uk/whats-on/writer-emma-mitchell-discusses-the-wild-remedy-how-nature-mends-us-9060590/

 

그녀의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 심해지고 봄이 오면 나아지는 '계절성정서장애 (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와 많은 부분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숲에서 발견하게 된 사실은,

“I realised I could find signs of spring in the woods in the depths of winter. There are many signs visible right now. Back in 2012, when I first found out I had SAD, I started to use those walks in the woods to get through the winter."

(봄의 낌새를 한겨울 숲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봄의 징후가 바로 지금 여러 군데서 보인다. 지난 2012년 내가 계절성정서장애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나서 나는 겨울을 나기 위해 숲속길 걷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숲속 걷기를 하면서 발견한 것, 숲에서 주워 모은 것, 느낀 것들을 모아 글을 썼고, 꾸미는 작업을 하여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겨울나기>라는 책을 내었다. 그렇게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워오며 우울증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현재 잡지, 방송, 신문 기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국의 박물관과 식물원에서 자연물을 이용한 창작 수업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삶이 빚어낸 두번째 책이다.

그녀는 실제 우울증의 압력에 못이겨 저항하다 못해 자살을 시도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떨어져 내릴 다리를 찾아 차를 몰고 나가 달리던 중 문득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는 조그만 묘목이 눈에 들어왔고,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에 의해 마음의 진동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고 한다. 마음의 폭주와 소란이 가라앉으며 점차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다음날 아침 저자는 의사를 찾아가 의학적인 치료를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늘 있어왔다. 이러는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우리 인간들이란 인간의 편리와 이익만 생각하며 살다가 지친 몸과 영혼을 끌고 자연을 찾는다. 거기서 위안을 받고 회복의 기회를 발견한다.

이런 자연의 치료 효과는 단지 심리적인 플라시보 같은 것만은 아님을 저자는 이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하고 과학적인 근거 논문을 책 뒤에 참고문헌으로 제시해놓았다.

우울증 진단의 대책으로 자연 산책이라는 관념이 더욱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자연 속을 걷는 일이 특이하거나 괴짜 같은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인간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근본적 필요성이 일반적인 정신의학과 표준 심리치료법을 보충하는 효과적인 접근방식으로 간주되기를 바란다. (254쪽)

세로토닌이 아니더라도, 피톤 치드 효과에 대해 모르더라도, 도파민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꼭 숲이 아니더라도, 목적을 가지고 어디를 향하여 걷는게 아니라 무작정 걸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걷기가 주는 효과를. 걷는 곳이 자연 속이고 숲 속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가 교회에서 느꼈어야 마땅하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모든 감정이 자연 속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26쪽)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소설가 앨리스 워커 (소설 "컬러 퍼플"의 저자) 의 말이다.

이 책의 많은 지면이 여러 새들과 꽃들의 이름, 행태, 변화를 묘사한 내용이어서, 평소 이것들에 무관심했던 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언젠가 찾게 될 그날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근래 몇년 걷기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차지한 나로서는, 더구나 코로나 이후로 갇힌 공간이 아닌, 동네 뒷산을 거의 매일 산책하고 있는 나로서는 읽기도 전에 공감의 준비가 미리 되어 있던 책이었다.

오늘도 산책길에 딱다구리를 보았고, 꿩을 보았고, 매일 그 자리 할미꽃이 얼마나 더 피어있는지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동물학을 전공하였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까지 한 저자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기쁨과 행복은 조금은 일치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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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수도사 -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잃어버린 삶과 업적
로빈 헤니그 지음, 안인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번역본이다.

함께 구입하긴 했지만 번역본이 있으니 아무래도 번역본으로 먼저 눈이 가긴 했는데 읽다가 번역의 원뜻이 궁금할때 함께 참고하며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유전학사, 아니 생물학사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게 한 발견이라면 DNA보다 앞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꼽아야 할 것이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이 Nature에 발표된 것이 1953년이었고 멘델이 유전의 근본원리를 내용으로 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1865년이니 거의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로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 속도와 방향은 이전과 비교 될 바 아니었다.

그레고어 멘델. 182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스무살 무렵 브륀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이곳은 현재 체코의 브루노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금 그의 흔적을 보기위해선 오스트리아가 아닌 체코의 브루노를 찾아가야한다.

그는 결코 수월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 수도사의 신분으로 빈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대학에서 딱히 생물학이라기 보다 물리, 화학, 수학, 동물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제반을 공부하였다. 수도원으로 돌아온 그는 수도 생활과 함께 완두의 잡종 교배 연구를 시작하였다. 왜 그는 완두 잡종 교배를 연구하게 되었을까. 수도사인 그에게 그 연구를 해야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워준 사람이 있었을리 없고 그런 자리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보다는 그의 과학자로서의 성향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물과 현상을 보는 과학자로서의 눈이 궁금증을 일으켰을 것이고 궁금증에서 발전하여 더 알고 싶고 캐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것이 요즘의 몇억 짜리 글로벌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완벽한 연구계획서를 만들어내고 추진하는 욕구와 같을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다른 수도사가 실제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유의 과정과 실험 과정을 거쳐 오늘날 멘델의 법칙이라 불리는 소위 3:1, 9:3:3:1 이라는 간단한 보편적 비율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도 그의 실험에 대해 반론이 끊이지 않게 한 여지를 남긴 것이다. 완두라는 식물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는지, 그토록 형질의 구분이 뚜렷하고 예외가 없는 식물을 골랐다는 것을 두고 그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완두가 첫 실험 대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식물로 시도했다가 그중 예외없이 딱 떨어지는 결과를 낸 식물인 완두를 나중에 골라서 논문을 쓴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의문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다. 딱 필요한 결과와 과정만 기록으로 남겼을뿐 모든 실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오직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정확하게 실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떤 질서를 따라, 어떤 계절에, 그리고 브륀에 있는 성 토마스 수도원의 널따란 안마당의 정확하게 어디에서 그런 실험이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모른다. 멘델이 한 번의 재배 기간 동안에 몇 세대나 식물을 키워 냈는지, 얼마나 자주 온실에서, 또 얼마나 자주 정원에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그가 사용한 완두 식물의 총 개체수를 알지 못하고, 그가 작업할때 누가 그를 도와주었는지 아닌지, 아니면 가장 집중적인 실험이 행해지던 시기의 어떤 특별한 날에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멘델은 실험 일지를 쓰지 않았던 것 같고, 만일 그가 그것을 썼다면 그것은 뒷날 사라졌다. (163쪽)

읽으면서 나조차도 믿기 어려웠다. 실험의 성공 여부를 떠나 실험 하는 사람에게 기록은 기본이고, 그것은 실험의 진실성 여부를 가늠하는 제일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은 실험자로서 상식이나 다름 없는데 실험 일지가 남아 있지 않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그의 실험 결과가 지금까지도 몇가지 예외를 남기고 잘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들까지도 멘델의 기본 법칙들을 넘어서 더 큰 법칙으로 볼만한 것들은 아직은 없다는 것과, 이후로 밝혀지고 있는 유전학의 제반 현상들이 멘델의 기본 법칙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설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1865년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소박한 제목의 논문으로 10여년에 걸친 거의 혼자만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때 그 누구도 제대로 주목한 사람이 없었다. 당시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지 얼마 안되어 (1859년) 가히 진화론의 찬반이 크게 대립해있을 때였고 그것이 과학계에 던진 돌풍이 가라앉기 전이었다. 멘델은 자기의 논문을 다윈을 비롯해 몇몇 유명한 과학자들에게 보낸 것 같으나 주목은 고사하고 제대로 읽어준 사람도 없는 듯 하다. 멘델은 그후 수도원 원장 직을 맡게 되면서 수도원 행정과 경영 문제, 세금 문제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결과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우연히 그와 같은 연구를 하던 세명의 각기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였다. 이들 역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이해 관계가 엇갈렸고 갈등도 많았는데 본격적으로 유럽을 넘어서 미국에까지 멘델의 이론을 전파한 것은 영국의 과학자 베이트슨이었다. 이 사람 역시 과학계의 아주 주류에 있던 사람은 아닌 것이, 평생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에 매진했지만 끝내 교수가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를 수도사의 불도그 (The Monk's Bulldog)라고 부르며 책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베이트슨의 업적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이트슨 역시 멘델이 살아있는 동안 멘델과 교류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멘델이 세상을 떠난 것은 1884년, 베이트슨이 영국 왕립원예학회에 돌연변이 이론에 대한 강연 준비차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서 각주에 인용된 멘델의 논문을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1900년의 일이다. 1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 중에 베이트슨은 멘델의 논문을 읽고 그 탁월함과 명료함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강연 내용을 완전 수정하였고 이후 멘델을 영어권 세계에 소개하게 되었다는 추측이다.

책 후반부엔 멘델의 결과를 뒤늦게 발견한 드브리스를 비롯해 베이트슨과 다른 주장을 하는 학파와의 논쟁 과정을 자세하게 기술하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참고할 기록들이 멘델 자신의 연구에 비해 많다는 것이고 멘델이 얻은 결과가 얼마나 영향이 컸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토마스 모르건의 유명한 초파리 연구, 염색체라는 것이 어떻게 유전자가 위치한 장소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왜 이름이 염색체인지, 유전자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 책의 저자는 비교적 산만하지 않고 정확하게 잘 설명해놓았다.

 

멘델은 내게 늘 더 알고 싶은 과학자였다. 인간 멘델도 그렇고 그의 연구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래서 그가 평생 봉직하고 실험했던 수도원을 찾아가보기도 했었다. 유전이라는 것에 대해 현장이 아닌 책상에서, 실험이 아닌 이론으로 추론하고 단정하던 시대에, 밭이든 정원이든 손수 실험하여 나온 결과로 유전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한 멘델이 아닌가. 그로부터 100년후 DNA가 유전 물질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그후로 100년도 안 지난 지금은 그 DNA의 성질을 바탕으로 신종 코로나 진단을 하루에 수만건씩 하고 있지 않나.

멘델에 대한 관심은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고 그 본질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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