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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평점 :
구불구불하고 긴 검은 머리, 검은 테 안경, 장갑 낀 손으로 애견 '애니'를 옆에 끼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 모습.
이 책을 다 읽고 궁금해서 찾아본 그녀의 모습은 25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릴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고 평화로왔다.
▶ https://www.cambridgeindependent.co.uk/whats-on/writer-emma-mitchell-discusses-the-wild-remedy-how-nature-mends-us-9060590/
그녀의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 심해지고 봄이 오면 나아지는 '계절성정서장애 (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와 많은 부분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숲에서 발견하게 된 사실은,
“I realised I could find signs of spring in the woods in the depths of winter. There are many signs visible right now. Back in 2012, when I first found out I had SAD, I started to use those walks in the woods to get through the winter."
(봄의 낌새를 한겨울 숲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봄의 징후가 바로 지금 여러 군데서 보인다. 지난 2012년 내가 계절성정서장애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나서 나는 겨울을 나기 위해 숲속길 걷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숲속 걷기를 하면서 발견한 것, 숲에서 주워 모은 것, 느낀 것들을 모아 글을 썼고, 꾸미는 작업을 하여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겨울나기>라는 책을 내었다. 그렇게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워오며 우울증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현재 잡지, 방송, 신문 기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영국의 박물관과 식물원에서 자연물을 이용한 창작 수업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삶이 빚어낸 두번째 책이다.
그녀는 실제 우울증의 압력에 못이겨 저항하다 못해 자살을 시도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마음이 요동치는 가운데 떨어져 내릴 다리를 찾아 차를 몰고 나가 달리던 중 문득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는 조그만 묘목이 눈에 들어왔고,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에 의해 마음의 진동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고 한다. 마음의 폭주와 소란이 가라앉으며 점차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다음날 아침 저자는 의사를 찾아가 의학적인 치료를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늘 있어왔다. 이러는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우리 인간들이란 인간의 편리와 이익만 생각하며 살다가 지친 몸과 영혼을 끌고 자연을 찾는다. 거기서 위안을 받고 회복의 기회를 발견한다.
이런 자연의 치료 효과는 단지 심리적인 플라시보 같은 것만은 아님을 저자는 이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하고 과학적인 근거 논문을 책 뒤에 참고문헌으로 제시해놓았다.
우울증 진단의 대책으로 자연 산책이라는 관념이 더욱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자연 속을 걷는 일이 특이하거나 괴짜 같은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인간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근본적 필요성이 일반적인 정신의학과 표준 심리치료법을 보충하는 효과적인 접근방식으로 간주되기를 바란다. (254쪽)
세로토닌이 아니더라도, 피톤 치드 효과에 대해 모르더라도, 도파민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꼭 숲이 아니더라도, 목적을 가지고 어디를 향하여 걷는게 아니라 무작정 걸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걷기가 주는 효과를. 걷는 곳이 자연 속이고 숲 속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가 교회에서 느꼈어야 마땅하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모든 감정이 자연 속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26쪽)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소설가 앨리스 워커 (소설 "컬러 퍼플"의 저자) 의 말이다.
이 책의 많은 지면이 여러 새들과 꽃들의 이름, 행태, 변화를 묘사한 내용이어서, 평소 이것들에 무관심했던 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언젠가 찾게 될 그날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근래 몇년 걷기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차지한 나로서는, 더구나 코로나 이후로 갇힌 공간이 아닌, 동네 뒷산을 거의 매일 산책하고 있는 나로서는 읽기도 전에 공감의 준비가 미리 되어 있던 책이었다.
오늘도 산책길에 딱다구리를 보았고, 꿩을 보았고, 매일 그 자리 할미꽃이 얼마나 더 피어있는지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동물학을 전공하였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까지 한 저자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기쁨과 행복은 조금은 일치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