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전혀 계획하지 않은대로 살고 있다.
나만 그렇지 않다는게 위안이 아니라 더 무력감을 가져다 준다.
3월엔 가족중 한사람이 입원하는 일이 있었고 (코로나는 아니고),
4월 한달 동안 나는 두 병원의 응급실을 세번 방문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중 한번은 지난 2014년 겪었던 일의 반복.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두 사람 모두 지금은 회복되어 잘 지내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번 봄 장기간 걷는 여행을 계획했던 남편은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그 계획을 실천 못할 것이 확연해지자
이미 구입해놓은 스틱, 트레킹복 등을 챙겨서 하루 2만보씩 주변의 산과 들 걷기를 두달 째 해오고 있다.
나 역시 다니던 체육시설이 코로나 때문에 폐쇄되어 답답해하고 있던 차. 남편이 집을 나설때 같이 나서서 걸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끝까지 함께 걷기가 힘에 부쳤다.
내 역량을 잘 아는 현명한 나.
중간쯤 가다가 미련없이
"뒤로 돌앗!"
하고 스스로 명하고 발길을 돌려 혼자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가던 길을 계속 가서 나보다 훨씬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라도 매일 걷는게 이제 몸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중이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 이것도 힘들겠지.
학교에 있어야 할 대학생 아들이 집으로 소환당하고,
무슨 수업을 어떻게 받는지 어떻게 과제를 하는지 바로 옆에서 넘겨 볼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매일 세끼 밥을 차려야 하는 것쯤은 기꺼이 할 수 있는 수고.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다 지났고
이제 산과 거리에 이팝나무 꽃이 하얗다.
잠깐 내린 비와 바람에 벚꽃 열매 바닥에 떨어져있고,
어제 산책길엔 아카시아가 냄새가 달콤 향긋했다.
'아카시아 냄새를 맡을 수 있는걸보니, 코로나는 아닌가보다.'
그 생각부터 했더랬다.
발열 외에 미각과 후각 상실이 코로나 증상으로 더해졌다고 하기에.
이재무 시인의 <꽃들의 등급>이라는 시의 마지막 행은
'지루한 평화가 날마다 폐지처럼 쌓여간다' 이다.
공감의 뜻으로 밑줄 그었던 그 행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그 지루한 평화가 어떤 사람의 어떤 시기엔 절실하기 그지없는 바램일 수 있다는 걸,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