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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벚꽃 에디션) - 인생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기록
심혜경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월
평점 :
64세. 요즘엔 할머니라고 하기엔 좀 이른 나이. 대학 졸업후 27년 동안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였고 이후엔 지금까지 12년째 번역가의 직함을 달고 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따로 사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여 사서가 된 것도 도서관에서 일하면 책 읽는 시간이 많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번역가가 된 것도 읽고 싶은 책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였다고 하니 저자의 행로는 모두 책읽기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을때 우리는 시작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기 보다는 일단 못한다는 전제하에 아쉬워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 하면 참 좋겠다, ~에 가면 참 좋겠다, ~할 줄 알면 참 좋겠다" 등등. 하라고 등떠미는 사람도 없지만 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정말 형편과 상황이 안되어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도하는 용기와 결단보다 입으로 한탄하며 흘려보내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말이다.
저자는 필요하다 싶으면 그 기회가 떨어지길 기다리기 보다 '시작하는' 사람이었고, 시간 없다는 구실을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방송대학 졸업장을 몇개째 손에 쥐게 되었고, 생각에도 없던 번역가의 직함을 달게 되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친 경우도 있지만 중도에 그만둔 종목이 더 많을거라고 고백한다.
노년은 정해놓은 나이부터 갑자기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슬며시 노인의 대열로 점차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사실이 즐거울리 있겠는가. 하지만 팩트는 팩트. 이 때 필요한 것은 '받아들임'과 '융통성'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융통성 있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계획하고 추진해 가는 것.
이제 공부는 어떤 자격증이나 직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배워보는 것이다. 이것을 공부라고 부른다면 공부라고 해도 좋다.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직업으로서의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뭔가 할일이 필요하다. 나는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따르는 모든 행위를 '공부'로 치환하기로 했다. 현재의 삶에 갇혀 더는 생각이 자라지 않을 때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내겐 뭔가를 배우는 일이다. (10)
집에서만 있기 답답할때 저자는 주저 없이 가방을 챙겨 카페로 향했고 그렇게 '카공 (카페에서 공부하는)족' 이 되었다.
외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방송대학에 등록을 했던 것이고, 뜨개질을 하기 위해 성북동 공방에 다닌다.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 윤독 (돌아가며 읽기) 모임을 만들어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자잘함 배움, 별로 중요한 것 없어 보이는 공부도 계속 쌓이다 보면 신기하게 한 줄로 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 줄에 안 꿰이면 '삽질'의 전리품으로 남겨두자. '공부'라는 요소가 인생에 추가되면 즐길 수 있는 일들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13)
나의 경우 스페인어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거 뭐하러 하냐고 묻는 대신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나의 전공이나 과거 직업과 전혀 무관한 것들을 배우러 장거리를 마다하며 신나서 다니는 것을 보고 유난 떤다거나 특이한 사람 보듯이 하기 보다는 격려해주고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소심한 나는 그것에도 용기 백배이다. 혹시 이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정말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도전해나가는 중에 있거나 직업의 책임감, 성취해야 하는 도전을 앞두고 있는 사람보다는, 나처럼 이제 그런 의무에서 벗어나 스스로, 알아서 하루 24시간 자기 시간을 채워나가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떤 공부도, 어떤 시험도, 누구도 말리지 않지만 누구도 시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좋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내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