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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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꿈을 가지지 않을까.

큰 서점 말고 동네 작은 서점을 하나 내고 나도 책을 읽고 팔기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꿈.

저자 역시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여 에세이스트로 데뷔하였고 이후 소설까지 써서 내게 되었는게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에세이 쓰는 것보다 소설 쓰기가 훨씬 쉬웠다고).

소설이라고 했지만 대단한 스토리를 가지고 전개되는 것은 아니고 작가 또래의 30대 여자가 혼자 동네에 서점겸 카페를 차렸고, 바리스타 점원인 민준, 그리고 서점에 들르는 손님들 얘기, 가끔 서점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에 초대되어 오는 연사 등의 얘기가 복잡하지 않는 기법의 수가 놓아진 면보처럼 담백하고 가볍게 펼쳐나간다.



(39) 좋은 책의 기준은? 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엄마와 딸에 관해 쓴 책. 엄마와 아들에 관해 쓴 책. 자기 자신에 관해 쓴 책. 세상에 관해 쓴 책. 인간에 관해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좋은 책이란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데 동의한다.


(53)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좁은 경험으론 결코 보지 못하던 세상의 고통이 가득해요. 예전엔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무엇이 성공인가. 그 기준에 따라 책과 성공은 연결될 수도, 연결되지 않은 수도 있지 않을까. 물질적 성공을 말하자면 굳이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96) 누가 저 아이를 새장에 집어넣었을까. 아이는 알까. 새장 문을 안에서도 열 수 있다는 걸. 영주는 지금 영주가 하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아이가 직접 새장 문을 열도록 도와주는 것.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것.


아무것에도 의욕과 흥미를 보이지 않는 고등학생에 대해 서점 주인인 영주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꼭 사춘기 방황하는 소년의 얘기로만 볼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어른이 되어서도 새장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고 (이게 제일 행복할지도), 그 새장 자체가 우리가 만든 것일 수도 있다.


(133) 꿈이 다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꿈을 이뤘다고 마냥 행복해지기엔 삶이 좀 복잡하다는 느낌? 뭐 그런 느낌이에요.


단순한데 진리가 있고 정답이 있다고들 하지만 삶은, 생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만 안다. 


(282)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 그럴 수는 있겠지. 그런 사람도 분명 있을거야.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텐데.


(283)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284) 대충 아무일이나 해봤는데 의외로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어. 우연히 해본 일인데 문득 그 일이 평생 하고 싶어질지 누가 알아.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러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미리부터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먼저 생각해봐. 그게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우선 정성을 다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288) 민준은 커피를 내리면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실력이 늘었다. 커피 맛이 좋아졌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런 속도로, 이런 마음으로 성장해도 충분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 바리스타가 돼서 뭘 하겠는가. 삶을 갈아 넣은 후에 최고라는 찬사를 받아서 뭘 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신 포도의 여우가 된 건가 싶었지만,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목표점을 낮추면 도니다. 아니, 아예 목표점을 없애면된다. 그 대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최선의 커피 맛. 민준은 최선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민준은 더 이상 먼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민준에게 현재에서 미래까지의 거리란 드리퍼에 몇 번 물을 붓는 정도의 시간일 뿐이다. 민준이 통제할 수 있는 미래는 이 정도 뿐이다. 물을 붓고 커피를 내리면서 이 커피가 어떤 맛이 될지 헤아리는 정도. 이어서 또 비슷한 길이의 미래가 펼쳐지길 반복한다.


미래에 대해 어떤 미사여구나 어떤 철학적 정의보다 때로는 이렇게 구체적인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이해하기 쉬워서일수도 있고,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아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얘기하는 걸 듣는 것 같아서이다.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의 결과를 얘기하는 것 같아서이다.



소설로서의 재미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밍밍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곳에 밑줄을 치며 읽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친구가 이 책을 소개해주면서 읽으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내게는 과분하지만.


(참고로, 저자는 이 책을 낸 후 계속 작가의 길을 가는 대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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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2-04-15 05:3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정작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 자신은 책 읽는 시간이 생각만큼 충분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애저녁에 그 꿈은 접었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여자는 계속 서점을 알차게 꾸려나가요. 그런데 글을 쓴 작가 자신은 서점도, 글쓰는 일도 아닌, 자기 전공 찾아 복귀하더라고요. 인터뷰한 사회자는 그런 배신이 어딨냐고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