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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4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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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파인만이라는 사람은 1918년에 태어나 1988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물리학자이다. 1965년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물리학 관련 책을 여러 권 내기도 했는데 이 책은 그의 다른 저서들처럼 물리학 관련 저서라기보다는 그의 회고록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어떤 분야애서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에게 물리학을 빼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보니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읽게 되었는데 캘리포니아 공대의 앨버트 힙스가 이 책 앞의 추천사에서 잘 언급을 해놓았다. 이 책은 리차드 파인만의 개성과 인간미가 잘 드러나는 좋은 책이긴 하지만 그의 삶의 핵심인 과학을 겨우 스쳐 지나갔을 뿐이고, 그의 참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그의 삶의 원천은 과학이었고 그가 던지는 웃음과 농담은 비밀스러운 농담이 아니고, 사람들을 웃기고자 던지는 말들이 아니라 물리학 그 자체에 대한 즐거움의 표현이었다고.   
이 책은 1,2,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 2부에는 주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아직 학생이던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 있어, 그의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이나 행동들을 읽어가는 재미에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만, 뒤로 갈수록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의 오로지 관심있어 하는 것은, 물리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본론'은 어디까지나 물리학이라는 것이다. 그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과정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무리 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정도가 결코 아니었다. 전공 분야에 대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저자의 소신이라던가 어떤 철학적인 신념을 위주로 서술한 책들도 있다. 하지만 파인만에게는 그것에 할애할 시간이 있으면 아마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시간을 더 쏟았을 것으로 보여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비전문인으로서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이 그렇게 많이 알려지고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기획 덕분일까? 내가 보기에 파인만은 물리학 분야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유머가 넘친다거나, 기이한 행동이나 재치있는 언변으로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즐기던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제목에서 보이듯이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을 듣고 간간히 웃음을 지으며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으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수 없는 책이다.
이 책 중에서 내가 제일 열심히 읽은 부분은, 저자가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섞여 보고 싶어서 항상 그룹별로 앉아서 식사를 하는 전통이 있는 프린스턴 대학원 시절, 일부러 철학자들 사이에 끼어 식사를 해보고, 또 생물학자들과도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해보는 대목이었다. 세계의 다른 부분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 자기 세계에 갇혀 살지 않고 다른 세계에 대한 이런 호기심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참 멋진 일 아닌가? 여기서 더 나아가, DNA구조를 밝힌 제임스 와트슨의 강의를 듣고 나서 엄청나게 흥분한 저자는 여름 동안 생물학 연구실에 얹혀서 그들이 하는 실험을 지켜보겠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결국 생물학 연구실 책임자의 권유로 생물학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실제 연구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 결과를 가지고 하버드 대학 생물학과에 가서 세미나까지 하게 되는데 이르러 그는 신나서 외친다. 자기는 항상 이렇게 한다고, 어떤 일을 착수해서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는 식으로 말이다. 생물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좋은 경험들을 했지만, 역시 나는 물리학을 사랑했고 물리로 되돌아가고 싶었다는 고백과 함께.
이 책이 저자의 의도와 조금 다르게 소개되고,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기대를 가지고 읽혀지는 것 아닌가, 조금 염려되고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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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아래서 - 어른들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프간 소녀와 난민 학교 여선생의 삶과 희망의 노래 일곱색깔문고 4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 지음, 김민석 옮김 / 오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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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하늘>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수잔 피셔 스테이플스의 소설이다.
2001,2002년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소설의 배경.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출판된 것은 2005년이고 우리 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2008년이다. 제목이 <감나무 아래서> 인 것은,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지방의 어느 집 마당에 피난민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차려지는데 그 마당에 큰감나무가 드리워져 있고 그래서 학교 이름도 '감나무 학교' 로 불리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대열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그 자연환경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서 풍족하진 않지만 아빠, 오빠, 그리고 곧 태어날 동생을 가지고 있는 엄마와 함께 양을 치며 행복하게 살고 있던 소녀 나즈마는, 어느 날 오빠와 아빠가 탈레반에 끌려감으로써 엄마와 단둘이 남게 되고, 그 와중에 아기를 분만한 엄마와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중, 엄마와 갓난 동생 마저 눈 앞에서 폭격으로 숨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말을 잃는다. 이웃 가족을 따라 인접 국가인 파키스탄까지 갖은 고생을 다하며 피난길에 오르게 되고, 위의 '감나무 학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이야기의 한 자락. 또 한자락의 이야기는 '감나무 학교'를 운영하는 미국인 출신 누스라트의 이야기이다. 미국에 와서 일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인 남자를 만나 이슬람교로 개종, 결혼까지 하고, 전쟁 중인 고국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을 떠나온 여자이다. 남편이 아프가니스탄의 전쟁터에서 의료 활동을 벌이는 동안 파키스탄에서 나름대로 피난민들을 돕는 활동으로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집 마당에 피난민 학교를 차리게 된 것.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전쟁터에서 오랫 동안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그녀는 불안과 걱정으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만 가고, 그러는 와중에 만난 소녀 나즈마의 딱한 사정에 동정심이 생겨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한다.

저자가 아시아 지역 특파원 출신이기 때문일까, 전쟁 상황을 그리는데 소설 형식을 빌기는 했지만 르뽀의 성격도 느껴지고, 현실 고발적인 분위기가 현장감 있게 전달되는 소설이었다. 미국인이면서 이슬람교인 남편을 만나 자신도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전쟁이 한창인 지역으로 남편을 따라 나선다는 설정은, 그런 주인공의 눈을 통해 저자가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벗겨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녀 자신이 직접 부딪혀 본 경험에서 나온 글이라는 것에서 설득력을 가지기도 하지만,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되는 전쟁, 테러, 납치, 살해 등의 사건들로 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그 벽을 허물게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 종교와 종교 사이에서 허물어지기 힘든 벽들이, 오히려 사람대 사람 사이에서는 좀 더 쉽게 허물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게 하였다.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그 사람의 종교와 나라까지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역으로 진행되는 경우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피붙이라고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 나라에 계속 남아 피난민들을 위해 일할 여지를 남기는 미국인 여자 주인공이나, 목숨을 걸고 가야하는 길, 가난과 굶주림의 땅임에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터전이라는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어린 소녀는 서로 상반되는 것 같으면서도, 사람마다 종교나 국가에 상관없니,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이슬람교인 친구들을 두어본 경험이 있어, 그들의 생각과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구석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또한 이 책속의 주인공처럼 이슬람교인 남자와 결혼하고 개종까지 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 핀란드 여성이 결국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옆에서 본 기억이 나서, 저자의 의도대로 따라가며 읽히지는 않았지만, 잃을 것 다 잃었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또 열리는 새로운 길을 따라 가는 주인공들의 삶을 보며 받는 감동이 그보다 더 컸음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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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08-2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엊그제 경은이한테 네 <서재>를 보여줬어.
엄마처럼 게으른 아줌마만 있는게 아니고,
열심히 독서하고, 자기 생각을 적는 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경은이는 개학 3일 남은 요즘은 학교 권장도서 읽느라 고생중.
읽고 싶은 책만 빨리 급하게 읽는 녀석이,철학책종류
딱 한장 읽으면 자고 싶은 책만 읽어야 하니...

hnine 2009-08-21 19:32   좋아요 0 | URL
나도 재미없는 책은 진짜 못 읽겠던데, 경은이 장하다.
내가 그래서 아직도 <종의 기원>을 못 읽었고, 대학때 레포트도 안 읽고 썼지 뭐냐.
경은이야 뭐, 알려줬어도 재미없는 서재 별로 구경할 거리도 없겠지만, 경은이에게 보여줬다는 네 말이 감동적이어서, 설겆이 하고 푹 퍼져 있다가 기운이 다시 반짝하고 났다. 역시 넌 나의 베프라니까 ^^

상미 2009-08-25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 방학 숙제가 <게으름의 찬양 >, <다윈의 식탁>, <희망의 인문학>,
또 뭔가 한권 더 있었지...
어제 같은 반 엄마들 말 들으니까,
다 읽고 독후감 써간 애가 경은이밖에 없는거 같더라고.
나 안닮아서 다행이야.


hnine 2009-08-25 07:28   좋아요 0 | URL
<다윈의 식탁> 저자는 과학저술가 중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비교적 젊은 세대이면서 글도 잘 쓰고 해박하고.
경은이가 독후감을 어떻게 썼을까 궁금하구나.
 
위험한 하늘 사계절 1318 문고 26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 지음, 이수련 옮김 / 사계절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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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선옥의 수필 <마흔살 고백>에서 이 작가의 이름을 처음 만났다. '수잔 피셔 스테이플스'. 미국 태생인 그녀는 신문 기자로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등의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했고 워싱턴 포스트지의 편집장을 지낸 경력을 가졌다. 주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서 청소년 소설 전문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뉴베리 상을 비롯, 청소년 소설에 수여되는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몇 대에 걸쳐 한 가족처럼 지내온 두 집안이 있다. 한 집안은 백인, 다른 한 집안은 흑인. 한 집안은 고용주, 다른 한 집안은 고용된 쪽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종속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일상 대소사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온 가족같은 분위기 덕에, 두 집안의 동갑 내기 백인 소년 버크와 흑인 소녀 튠 역시 열 세살이 되기까지 함께 숲과 바다를 끼고 고기도 잡고 헤엄도 치며, 학교도 함께 다니는 등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나누는 단짝 친구이자 남매 같은 사이 이다. 어느 날 버크와 튠은 함께 낚시를 나갔다가 물 속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조지 아저씨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마을 보안관에게 보고가 되고, 온 마을에 사건이 알려지면서 범인을 밝혀내가는 과정에서 버크와 튠은 지울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도 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 똑똑하고 다부진 성격임에도 처음부터 진실을 밝히기를 포기하려 하는 흑인 소녀 튠과, 그런 튠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고자 애쓰는 버크의 안간힘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과연 진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진실은 통한다고 배우며 자라기 마련이기 때문에 철썩같이 그렇게 믿고 있던 시기로부터, 점차 꼭 그런 것만은 아닌 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쉽게 오지 않고 크거나 작은 댓가를 치르게 마련인가보다. 이 책에서 버크와 튠이 치르는 댓가는 그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르게 하고 앞으로의 살아가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을 예시한다. 즉 조지 아저씨 살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이전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다른 세계에 살게 되는 것이다.
공 선옥의 표현을 빌어보자.

   
  사람은 아무리 어려도 모년 모월 모시, 어느 한순간에 겪은 한 사건에 의하여 그 사건을 겪기 전의 영혼의 상태를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 라는 미국 작가가 쓴 한 소설을 보고 소름 끼치게 깨달았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느 한순간에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바로 그 순간이 한 아이를 더 이상은 아이로 살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을 당했다면 또 역으로 나 자신이 누군가를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이 될 것인가. 그런 무서운 일을 사람들은 또 그 얼마나 무심하게 저지르고 살아가는지(182쪽).  
   

진실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들의 편견, 차이와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개인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이다. 늘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어 존재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에, 그것이 누군가의 영혼 세계를 회복불가능한 다른 세계로 바꿔놓을 수 있음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그것이다.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고 야무진 소녀였던 튠은 왜 그렇게 쉽게 진실을 지켜나가기를 포기해야 했을까.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열세살 소녀에게 뿌리박히게 되기 까지 우리들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왔던 것일까.

열세살때의 일을 열여덟살이 되어 풀어 놓는 버크는 이미 열세살의 버크가 아니다. 이것도 우리는 '성장'이라는 의미로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니, 실로 성장은 때로 얼마나 잔혹하고 아픈 것인지.

이 책을 다 읽자 마자 저자의 다른 책 <감나무 아래서>를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특파원으로 머물렀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배경으로, 전쟁 속에 굽어지고 휘어지는 이런 저런 삶을 그리고 있는 책,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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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08-1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의 다른 책 감상문도 기대~~

hnine 2009-08-17 05:45   좋아요 0 | URL
아빠와 오빠는 탈레반에 끌려가고, 엄마와 갓난아기 동생은 미군 공습에 눈 앞에서 죽어간,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이야기란다. 누구에게는 소설이지만 지구상의 어느 누구에게는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겠지.
 
공선옥 마흔살 고백
공선옥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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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선옥 하면 내가 소설이든 수필이든 일단 읽고 보는 국내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마흔을 전후로 5년 안짝에 쓰인 글들을 모은 것이라고 하는데 작가가 머릿말에서 그랬듯이 마흔 살의 일기처럼 읽힐 수 있는, 어찌보면 소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나, 그렇게 소소하게 풀어 놓는 얘기가 그 상황에선 얼마나 감당해내기 힘들 수도 있었을지 짐작해보게 되는 그런 '공 선옥 스런' 글들이다. 그래서 수필이지만 소설처럼 읽히기도한 책.
스물, 서른, 마흔 고개를 넘는다고들 한다. 저자는 인생의 분수령 같은 40대 라고 표현하였다. 분수령이라. 다른 말로 turning point, 전환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한치 앞을 모를 것 같던 2, 30대를 지나, 이제 앞으로의 인생도 어떻게 펼쳐질지 조금은 감이 잡히기 시작하는 나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지는 것이 가능해지는 나이, 조금씩 인간이 여물어가기 시작하는 나이, 이 세상에는 내 힘만으로는 안되는 것도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나이.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종교에 의지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에 평화를 맞아들이게 된 것 같다. 원망의 마음이 있던 자리에 감사의 마음을, 눈물이 있던 자리에 미소가 조금씩 찾아들고 있다니 말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시인이었던 고 임길택 선생님이 그랬다. 모든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왜 우는지 묻고 싶었고 특히 어린아이가 울고 있으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고. (...) 누가 울고 있으면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왠지 그 앞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 지는 것이다. 하물며 우는 이가 어린아이임에랴.' 라고 시작되는 <아이들아, 울지 마> 란 글은 마음의 울림이 특별히 커서 베껴 써보기도 했다. 누구의 삶이든 만만한 삶은 없다. 그녀의 삶의 행로 역시 그녀의 잦은 이사 기록 만큼이나 질곡이 심했고, 그것이 이유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기로 단단히 뭉쳐 있는 듯이 보였던 이전의 그녀의 글들이 앞으로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읽혀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을, 이제 어떤 말을 하며, 어떤 글을 쓰며 살까 하는 물음과 함께 생각한다는 그녀는 천상 작가이다. 글 쓰는 일이 좋고, 앞으로도 글만 쓰고 살아야 할 운명이 되었음을 직감하는 것이 싫지 않다고 하는 그녀 말대로, 부끄럽고 아프기도 한 마음을 이렇게 울림이 있는, 진솔한 글들로 피원워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그녀 정도의 작가라면 경제적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램은 너무 속물스러운 것인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어서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마구 일었다. 코드가 맞는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일종의 행복감을 어딘가에 털어 놓고 싶었나보다.
마흔 여섯의 그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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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08-1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느해 12월이었는데,이제 내가 한 살 먹는게 꽃이 피려고 준비하는 게 아니고
언제 폈는지 나도 모르게 피었다가 , 천천히 꽃이 지는 나이구나 싶더라고.
쉰 되면 , 지금의 나이도 <좋은 때>일거 같아.
좋은 때 잘 보내자... 가끔 보고

hnine 2009-08-15 11:57   좋아요 0 | URL
네 표현이 더 절절하구나. 지금의 나이도 좋은 때 맞지. 50대이신 어느 분이 그러시더라. 지금 40대만 되어도 이 세상에 못할 일 없을 것 같다고.
걱정마. 너는 볼때마다 한창 피어있는 꽃 같아.

2009-08-15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8-1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여섯이군요, 그분이.
리뷰 보니 읽고싶어지는 책이에요. 담아갈게요.
주말 잘 보내세요.^^

hnine 2009-08-15 14:38   좋아요 0 | URL
마흔 여섯이란 나이가 예전엔 저랑 한참 먼 나이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당장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운 날이지요?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두번 했더니 벌써 3시가 다 되어가네요.

세실 2009-08-1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책 이었어요.
제가 읽고 싶었던 책이.....
잊고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hnine 2009-08-20 04:41   좋아요 0 | URL
세실님, 좋아하실거예요 ^^
 
악동일기
빅토리아 빅터 지음, 전영애 옮김 / 두레아이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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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도 이런 악동이 있을까. 아니, 이 정도 되니까 악동 (bad boy)이라 불릴 만 하고, 엄마 아빠로부터조차 이 세상에 아무 쓸모 없는 몹쓸 녀석이란 소리를 그렇게 자주 들음에도 그 부모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안드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열살 소년 조지의 본심은 무엇일까. 읽으면서 분석에 들어갔다. 남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아니면 부모에 대한 반항심에서? 이 사회에 대한 반항이라고 하기엔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되고 말이다.
이 아이는 일단 어떤 장난거리가 머리에 떠오르면 그 다음을 생각 안한다. 그렇게 여러번 가족으로부터 구박도 받고, 벌도 받고, 맞기도 하는 등 온갖 모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해보고 싶은 욕망과 궁금함, 호기심을 저지시킬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나중에 자기의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 나면 항상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한다. 하지만 자기는 그럴 뜻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거나, 그것이 뭐 그렇게 대수냐면서 사람들의 소동을 이해 못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 동물들, 물건들에 그렇게 손상과 피해를 입히고 다니면서도 그의 상상을 초월한 모험과 장난은 멈추질 않는다. 책 속의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마조마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혹자는 이 책의 악동 조지에게 그 나이에 병행하는 사회화 과정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그저 재미있게 읽히게 하려고 썼을 수도 있겠으나, 이 사회의 가리워진 위선을 악동 조지를 통해 폭로하는 쾌감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표면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 뒤에 숨어 있는 전혀 다른 속마음들이 조지에 의해 완전히 폭로되는 대목들이 유난히 많이 나오고 있고, 바자회나 파티가 그렇게 자주 열리는데에는 순수 사교나 친목 도모의 의도보다는 전혀 순수하지 않은 목적에 의해 의도된 것들이 많다는 것, 특히 조지에게는 혼기에 이른 누나들이 셋이나 있는 관계로 결혼과 관련하여 1800년대 말의 사회의 풍속과 사람들의 심리, 더불어 인디언과 흑인에 관한 인종 편견 등 그 당시 사회상이 '숨어서 그러나 잘' 드러나고 있었다.
이 책은 근래에 쓰여진 책이 아니다. 저자 빅토리아 빅터 (1831~1886)가 쉰살이 다 되어 썼다는 이 책은 처음에 뉴욕에서 익명으로 출간되었다가 미국과 영국에서 여러 판으로 찍혀 나왔고 독일에서는 번역가의 이름만 표지에 나와 있어 진짜 저자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사람들에게 읽히다가 나중에서야 진짜 저자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왜 끝까지 익명을 고수하고자 했을까? 사람들에게 그냥 재미로 읽히기를 원했다면 그렇게 꼭 익명이기를 바랬을까?
악동의 마음은 어린 아이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분출되지 못하도록 조절되고 있다가, 이런 악동의 픽션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하면서 더 재미있게 읽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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