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하늘 사계절 1318 문고 26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 지음, 이수련 옮김 / 사계절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공 선옥의 수필 <마흔살 고백>에서 이 작가의 이름을 처음 만났다. '수잔 피셔 스테이플스'. 미국 태생인 그녀는 신문 기자로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등의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했고 워싱턴 포스트지의 편집장을 지낸 경력을 가졌다. 주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서 청소년 소설 전문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뉴베리 상을 비롯, 청소년 소설에 수여되는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몇 대에 걸쳐 한 가족처럼 지내온 두 집안이 있다. 한 집안은 백인, 다른 한 집안은 흑인. 한 집안은 고용주, 다른 한 집안은 고용된 쪽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종속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일상 대소사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온 가족같은 분위기 덕에, 두 집안의 동갑 내기 백인 소년 버크와 흑인 소녀 튠 역시 열 세살이 되기까지 함께 숲과 바다를 끼고 고기도 잡고 헤엄도 치며, 학교도 함께 다니는 등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나누는 단짝 친구이자 남매 같은 사이 이다. 어느 날 버크와 튠은 함께 낚시를 나갔다가 물 속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조지 아저씨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마을 보안관에게 보고가 되고, 온 마을에 사건이 알려지면서 범인을 밝혀내가는 과정에서 버크와 튠은 지울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도 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 똑똑하고 다부진 성격임에도 처음부터 진실을 밝히기를 포기하려 하는 흑인 소녀 튠과, 그런 튠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고자 애쓰는 버크의 안간힘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과연 진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진실은 통한다고 배우며 자라기 마련이기 때문에 철썩같이 그렇게 믿고 있던 시기로부터, 점차 꼭 그런 것만은 아닌 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쉽게 오지 않고 크거나 작은 댓가를 치르게 마련인가보다. 이 책에서 버크와 튠이 치르는 댓가는 그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르게 하고 앞으로의 살아가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을 예시한다. 즉 조지 아저씨 살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이전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다른 세계에 살게 되는 것이다.
공 선옥의 표현을 빌어보자.

   
  사람은 아무리 어려도 모년 모월 모시, 어느 한순간에 겪은 한 사건에 의하여 그 사건을 겪기 전의 영혼의 상태를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 수잔느 피셔 스테이플스 라는 미국 작가가 쓴 한 소설을 보고 소름 끼치게 깨달았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느 한순간에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바로 그 순간이 한 아이를 더 이상은 아이로 살 수 없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을 당했다면 또 역으로 나 자신이 누군가를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이 될 것인가. 그런 무서운 일을 사람들은 또 그 얼마나 무심하게 저지르고 살아가는지(182쪽).  
   

진실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들의 편견, 차이와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개인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이다. 늘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어 존재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에, 그것이 누군가의 영혼 세계를 회복불가능한 다른 세계로 바꿔놓을 수 있음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그것이다.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고 야무진 소녀였던 튠은 왜 그렇게 쉽게 진실을 지켜나가기를 포기해야 했을까.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열세살 소녀에게 뿌리박히게 되기 까지 우리들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왔던 것일까.

열세살때의 일을 열여덟살이 되어 풀어 놓는 버크는 이미 열세살의 버크가 아니다. 이것도 우리는 '성장'이라는 의미로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니, 실로 성장은 때로 얼마나 잔혹하고 아픈 것인지.

이 책을 다 읽자 마자 저자의 다른 책 <감나무 아래서>를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특파원으로 머물렀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배경으로, 전쟁 속에 굽어지고 휘어지는 이런 저런 삶을 그리고 있는 책,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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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09-08-16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의 다른 책 감상문도 기대~~

hnine 2009-08-17 05:45   좋아요 0 | URL
아빠와 오빠는 탈레반에 끌려가고, 엄마와 갓난아기 동생은 미군 공습에 눈 앞에서 죽어간, 아프가니스탄 소녀의 이야기란다. 누구에게는 소설이지만 지구상의 어느 누구에게는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