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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책을 고르게 되는 경로는, 나 스스로 책 소개글을 보고 결정할 때도 있지만 책 소개글로는 별로 끌리지 않았던 책을 나중에 어떤 분의 와닿는 리뷰를 보고 읽기로 결정할 때도 있다. 이 책도 그런 경우이다. 친언니를 암으로 하늘나라로 보낸 후 상심한 저자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랜다는 내용이 어찌 보면 새로울 게 없을 수도 있으나 아마 나 개인적인 상황도 한 몫 거들었을지 모른다. 46세 생일을 1일째로 시작하여, 하루 한권씩 읽고 리뷰 올리기. 이것이 저자가 다른 사람과 좀 달랐던 점이라면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이라는 저자의 약력도 약력이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분명하고 명쾌한 성격이 드러난다. 슬픔. 희열, 그 어떤 감정이든 휘둘리지 않고 결국은 극복해낼 것 같은 성격이랄까. 책을 읽은 취향을 봐도 그렇다. 어려운 책만 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벼운 책들만 읽은 것도 아니고 적절한 균형을 이루려고 저자 스스로 의도하였고 하루에 한권이라는 목표를 위해 너무 두꺼운 책은 피했다고 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과 더 진지한 책이 균형을 맞추었고, 최신작 소설이 추리소설의 긴장감의 속도를 조절했으며, 중년이나 생애가 끝날 때에 대한 성찰이 더 젊은 독자들을 위한 문학작품과 조화를 이루었고, 괴기물과 누아르가 회고록과 해설서들을 상쇄했다.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읽었고, 개인적인 글과 과학공상소설을 읽었다. 그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262쪽)
그 모든 것이 재미있을 수도 있나보다.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것은 특별히 좋아하는 분야가 없다는 의미? 이런 심술맞은 생각도 해보며.
책 취향은 곧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는가? 물론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서도 나와 책 취향이 비슷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나와 매우 다른 분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 그것으로 사람을 가리지는 않는다. 취향이 비슷한 분은 비슷해서 반갑고 다른 분은 오히려 더 관심을 갖고 대하게 된다. 나와 다르니까.
저자의 경우 하루에 책 한권을 읽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주위에서 이 책 읽어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게 되었고, 권유받은 책이 마음에 들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전혀 저자의 취향이 아닐 때 그것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멀어지는 계기가 된 경험을 얘기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책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등을 돌릴 것까진 없지만 그것이 곧 성격의 다름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131쪽)
저자 성격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명쾌하고 분명한 성격.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모임에서든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길 좋아한다. 이것에 대해 일침을 주는 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하루에 책 한 권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만찬 자리에서 책에 대해 장광설을 풀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불쌍하게도 그 자리를 모면할 길이 없어진 상대방을 앞에 두고 대화를 독점하거나 책에 대한 강연장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이다. (133쪽)
영국에는 골프맨 에티켓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룹 중 한사람이라도 골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골프를 화제로 올리지 않는 예의를 뜻한다고 한다.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1년을 보낸 후 저자는 어떤 결론을 얻었을까. 다음 구절에서 나는 그 실마리를 찾는다.
내가 겪었던 사건들이 내 삶의 윤곽을 설정해주었다. 여름날 밤 앞마당 잔디밭에서 하던 피구, 부모님과 떠났던 여행, 언니 덕분에 엉뚱한 버스에서 내렸던 일, 경찰차를 들이받은 일, 사랑에 빠진 모든 시간들, 아이들의 출생, 언니의 죽음 등. 하지만 내 삶의 의미는 결국은 내가 그런 기쁨과 슬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연대와 경험의 빗장을 어떻게 만드는가, 또 제각기 다양한 구불구불한 존재의 길을 가는 동안 어떻게 손을 뻗어 사람들을 돕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277쪽)
이어서 그녀는 말한다. 내게 있어 독서의 한해는 요양원에서 보낸 한 해였다고. 건강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의 공기에서 격리되어 지낸 1년이었다고.
살아가는 동안 슬픔과 상처의 경험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럴 때 책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자기를 치유하는 방법을 써서 그것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회복할 생각말고 스스로.
원제의 제목이 번역본보다 더 맘에 드는데 나만 그런가? <Tolstoy and the purple chair>
사실 이 책을 읽은 지는 꽤 되었는데 리뷰 올리기를 미루고 있는 중 오늘 저자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혼자 편지 쓰는 시간> 이라는 제목. 이것도 참신한 기획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1013/pimg_7149951631292088.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