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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박경민 옮김 / 한겨레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베스트셀러와 무관하게 책을 읽는 버릇때문에 이 책이 한창 읽히고 있던 199x년 무렵, 아마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앤타일러의 <종이시계>와 제목도 헛갈려 하면서 두 책 모두 한번도 읽을 생각을 안했었다.
지금에 와서 이 책 <앵무새 죽이기>를 읽게 된 동기는 바로 우리 집 아이 때문이다. 아이때문에 읽는다면 대개 아이가 읽고 재미있다고 나에게도 권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은 그와 반대.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둔 학부모라면 아시겠지만 이 책은 이른바 읽어야할 책 목록에 항상 들어가있는 책 중 하나이다. 아이가 너무 한쪽 분야의 책만 치우쳐 읽는다고 생각한 아이아빠가 좀 다른 책도 읽게 해야겠다고 고른 책이 바로 이 책. 그런데 앞부분을 조금 읽더니 도저히 재미없어서 못읽겠다면서 끝까지 안읽는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도 잘 안된단다. 남자 아이라 단순해서 그러는지.
그러자 남편은 읽기로 약속한 이상 다 읽기전엔 다른 책을 안사주겠다고 해서 억지로 다 읽게 하긴 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 도대체 책이 어떻기에 그렇게 억지로 읽어야했을까 궁금해져서, 그리고 알아야겠어서, 도서관에 가서 새로나온 개정판도 아닌 1993년에 한겨레에서 나온 낡은 책을 빌려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일단 읽기 시작하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워낙 유명하고 상도 많이 받고 했으니 그렇다치고, 자기 어린 시절 얘기를 어른디 되어서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지. 전혀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거기에 뚜렷한 메시지, 사회상의 반영까지. 이 책이 데뷰작이자 현재까지 작가의 유일한 발표작이라지만, 몇권 몫을 이 한권이 다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저자 자신의 고향과 같은 앨러배마 주이다. 네살 위인 오빠보다 호기심도 더 많고 주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아홉살 꼬마 진 루이스는 변호사인 아버지가 백인이면서 흑인 변호를 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친구로부터, 그리고 동네 사람들로 부터 가끔 놀림을 당한다. 놀림을 당하면 어린 아이임에도 놀림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캐는 똘똘한 꼬마이며, 오빠에게 묻거나 아버지에게 물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에 대해선 쉽게 굴복하지 않으려 하는 당찬 꼬마이다.
젊은 흑인 남자가 동네 백인 아가씨를 강간했다는 이유로 기소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아버지가 이 흑인 피고의 변호사로 사건을 맡게 되자, 어른들의 허락 없이 진 루이스는 오빠와 함께 법정에 끼어들어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는데.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죄 없이도 벌을 받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하는 진 루이스와 오빠 젬은 도무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할지 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엄마 없이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태도에서도 인상적인 점이 많았다. 이유없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라, 어떻게 보여라, 어떻게 말해라, 강요하지 않는 아버지. 엄마의 부재로 아이들이 버릇 없다는 소리 들을까봐 아이들의 고모는 안절부절이지만 아버지는 아이들을 믿어주고, 다른 사람의 말보다 자기 아이들의 말을 우선적으로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아래, 저자인 하퍼 리의 말은 이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서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 지키기 쉽지 않은 일이다, 명심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제 아이와 이 책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점이 아이로 하여금 어렵고 재미없게 느끼게 했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아직은 아이를 이해했다고 하지 말아야지. 이거 역시 내 입장에서 한 짐작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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