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동양고전 슬기바다 6
홍자성 지음, 김성중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달 아파트 문고가 문을 열었다. 말로만 듣고 있다가 어제 저녁 산책하고 들어오는 길 아이와 함께 들러보았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서 문을 닫았을 거라 생각하고 밖에서 구경만 하자고 했는데 불이 켜져 있었고 나와 아이가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안에 계시던 분이 들어오라고 하셨다. 이미 도서관은 닫은 시간이었지만 다른 일 때문에 남아있으신 듯 했다.

책들이 모두 새것이다. 나란히 꽂혀 있는 동양고전 시리즈에 눈길이 갔다. '논어'를 빼어들었다가 무슨 맘에서인지 다시 꽂아놓고 '채근담'을 꺼냈다. 웬지 더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인가보다.

채근담은 명나라 홍자성이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특이한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저자인 홍자성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바가 별로 없는데 채근담외에 "선불기종"이라는 다른 저서가 남아있을 뿐이다.

잠언 형식의 짤막한 글들이 전집, 후집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글들이 짧고 어려운 내용이 아니어서 읽기 어렵지 않다. 이 책 뒤에는 친절하게 한문 원문이 그대로 실려져 있고, 한문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 도전해보라고 부추기는 듯, 단어 뜻 풀이도 해놓았다.

전집 61: 배우는 사람은 조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하되 또한 소탈한 멋도 지녀야 한다. 만일 한결같이 단속하고 지나치게 청렴결백하기만 하면, 이는 쇠락해 가는 가을의 기운만 있고 소생하는 봄기운은 없는 것이니, 어떻게 만물을 자라게 할 수 있겠는가?

의외의 내용이다. 청렴결백일지라도 지나치면 좋지 않음을 일깨우고 있다.

전집 62: 진정한 청렴함은 청렴하다는 이름조차 없으니, 청렴함을 내세우는 사람은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재주는 특별한 기교가 없으니, 기교를 부리는 사람은 졸렬하기 때문이다.

전집150: 수면은 물결이 일지 않으면 저절로 평온하고 거울은 먼지가 끼지 않으면 자연히 밝다. 그러므로 마음도 굳이 맑게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속의 번뇌를 없애면 맑음이 절로 드러나며, 즐거움도 굳이 찾을 필요가 없으니 괴로움을 없애면 즐거움이 절로 깃들인다.

탁한 거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위에 무엇을 덧씌우는게 아니라 덮여 있는 먼지를 닦아내는 것이란 말씀이구나.

전집169: 마음속에 잡념이 없어야 자기의 본성이 드러나니, 잡념을 끊지 않고 본성을 보려하는 것은 물살을 헤쳐서 달을 찾으려는 것과 같다. 뜻이 깨끗하면 마음이 맑아지니, 뜻을 명확히 알지 못하고 마음이 맑기를 구하는 것은 깨끗한 거울을 바라면서 거울에 먼지를 덧씌우는 것과 같다.

마음의 잡념이란 거울에 낀 먼지 같은 것.

후집 35: 선의 종지를 드러내는 말 중에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는 표현이 있고, 시의 묘지를 드러내는 말 가운데 '눈앞의 경치를 사실대로, 평이한 말로 묘사한다'는 표현이 있다. 대체로 지극히 고원한 진리는 아주 평범한 가운데 깃들어 있고 지극히 어려운 경지는 가장 평이한 곳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일부러 의도하면 오히려 멀어질 것이요, 마음을 비우면 저절로 가까워지리라.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피곤하면 잠을 자면 된다. 이 말이 다른 누구의 입에서 나왔으면 이렇게 옮겨 적어놓을 생각을 했을까. 대단한 행적을 쌓으려 하지 말고, 사람으로서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도하면 오히려 멀어지고 마음을 비우면 저절로 가까워지리라는 말은 집착을 버리라는 뜻인데, 불교 사상의 한자락을 전해주는 것 같다. 채근담은 유, 불, 도를 아우른 일종의 정신수양서이자 처세방법을 일러주는 책이라는 설명대로, 읽다보면 그런 것이 느껴진다.

짐작했듯이 무슨 대단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기 보다,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 핵심인 듯하다.

 

600번째 리뷰를 채근담에 대한 것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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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5-05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600번째!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h님의 깔끔하고도 속살 가득한 리뷰 700번째로 계속 이어가시길 기대합니다.^^

hnine 2012-05-05 10:41   좋아요 0 | URL
stella님, 감사합니다. 700번째, 800번째, 계속 이어나갈테니 stella님도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 있으셔야 합니다, 꼭! ^^

파란놀 2012-05-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살아가면 돼요.

<채근담>은 여러 가지 번역판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한용운 시인이 옮긴 판하고
조지훈 시인이 옮긴 판을 나란히 읽어 보셔요.

맛과 결이 사뭇 다르리라 생각해요.

hnine 2012-05-05 21:39   좋아요 0 | URL
예, 검색해보니 있네요. 누가 어떻게 번역했느냐에 따라 또 다른 맛이 있겠지요.

하늘바람 2012-05-0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600번째 리뷰
그렇게 리뷰 숫자를 센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세니 참 근사하네요
채근담 아주 어릴떄 보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12-05-07 13:14   좋아요 0 | URL
어느 새 그렇게 되었네요. 처음엔 페이퍼 수와 리뷰 수가 비슷하게 가더니 언제부터인가 리뷰가 페이퍼를 못따라 가길래 더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다 했는데 갈수록 그 차이는 더 벌어지더군요 ㅋㅋ
고전이라서 읽기 전에 부담부터 가졌는데 번역이 잘 되어 있고 짧은 글들이라서 읽는데는 전혀 어렵지 않게 되어 있네요.

세실 2012-05-0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파트 작은문고가 인기네요.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좋을듯.
600번째 리뷰를 채근담으로^*^ 좋아요!
600번째 리뷰 축하드려요~~~

hnine 2012-05-07 13:16   좋아요 0 | URL
문을 연지 이제 한달 채 못되었는데 책이 1700여권 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 책만 있을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안그래도 이사온 후로 도서관이 멀어져서 서운했는데 아쉬운대로 자주 이용하려고요.
600번째 리뷰인데 요즘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는지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ㅠㅠ 공부하시는 세실님은 정말 대단하신거예요.

마녀고양이 2012-05-0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예요,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을 왜이리 복잡하게 생각하며 사는지. ㅡㅡ;

언니, 600번째 리뷰 축하드려요. 그것도
채근담으로.... 예전에, 채근담 읽어봤는데, 다시 사서 야금야금 읽고 싶다는 맘이 드네요.

hnine 2012-05-07 13:20   좋아요 0 | URL
야금야금 읽기에도 너무나 금방 읽겠더라고요 ^^
공부하고 과제하시느라 바쁘시죠? 제가 다 보고 있답니다 흐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