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늘 비슷한 횟수로 비슷한 커피를 마시며 살지만, 오늘 같은 날씨, 즉 축축한 날씨엔 특히 커피 향과 커피 집과 커피 맛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광화문이면 결혼 전 살던 집에서 한강만 건너면 그리 멀지 않던 만만한 곳이었다. 친구 만나러 가고, 영어 학원 때문에 가고, 대형 서점이 있으니 가고, 미술관이 가까이 있으니 가고. 광화문에 가야할 이유는 만들기 나름이었다.
그랬던 광화문이었는데.
어제 다시 가보고 드는 생각은,
1. 참 오랜만이구나
2. 광화문에 이런 곳도 있었네 (코리아나 호텔, 동화면세점 뒷 골목길에 있는 카페였다)
3. 세상이 바뀌어 가는 동안 나는 우물 안에서 개구리로 살고 있는 중이군.
4. 더 자주, 많이 돌아다녀야지. 광화문에만 나와도 이렇게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는데 이 세상에 안 가본 곳이 얼마나 많은가. 구경도 구경이지만 내 머리와 가슴이 굳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이렇게 확장, 비약되기에 이르렀다.
(사진은 매일경제 신문에 실린 것을 빌려왔음)
채 인선 작가의 얘기를 들으러 간 발걸음이었는데, 호리호리하고 조근조근한 말씨, 단정한 인상의 그녀로부터 집에서 들고 간 작가의 책 <내 친구 최영대>와 <아름다운 가치 사전>에 사인을 받아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밤 늦게 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 비를 뿌리고도 구름을 잔뜩 품고 있는 하늘에 보름달이 둥그렇게 올라있었다. 구름 때문에 얼룩덜룩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하듯이 둥실.
다음 보름달이 뜰 때는 추석이구나. 맏며느리에게 별로 반갑지 않을지도 모른다지 아마.
그래, 아무리 더워도 이렇게 가을도 오고 있고 추석도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