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여름 방학 동안 에버랜드나 한번 데리고 가려고 했었다. 아이의 외가가 있는 수지에서 가까우니 친정에 갈 일이 있는 날 한번 큰 맘 먹고 데려가기로 했는데, 옆에서 이 말을 들은 여동생 내외가 지금은 너무 덥기도 하고 비라도 내리면 낭패볼 수 있으니 차라리 거리는 좀 더 되더라도 롯데월드엘 데리고 가란다. 며칠 전 자기 가족도 가서 아주 신나게 놀고 왔다고.
롯데월드. 수원에 살 때 당시 네살된 아이를 데리고 그 안의 무슨 예술극장에서 하는 '혹부리 영감'이라는 연극을 보여주러 버스 타고 업었다가 걸렸다가 하며 힘들게 갔었는데, 들어가자 마자 아이가 도깨비 분장한 사람들을 보고 무섭다고 우는 통에 연극 티켓만 버리고 입장한지 3분 만에 나와야 했던 기억이 그나마 롯데월드 근처라도 가본 기억의 전부이다.
그래, 이번엔 진짜 롯데월드엘 가보는거다!
나도 남편도 그 '탈 것'이라는 것에 별 취미가 없는 편 (남편이 좀 더 심해서 아예 시도도 안한다)임에도 안 가본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가본다는 목적 하나로 아침부터 길게 서 있는 줄도 감수하고, 허걱할 정도로 비싸다 생각하면서도 나, 남편, 아이 셋 모두 자유이용권을 끊어서 들어갔다.
그런데,
이거 타 볼래?
아니오...
저거 타 볼래?
싫어요.
그럼, 저기 저거?
그것도 싫어요.
아이가 '탈 것'에 대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오기 전에 동생 내외가 이것도 타보고 저것도 타보라며 몇 번씩 알려준 그 모든 기구들을 아이는 타고 싶지 않아했다.
아이는 차라리 야외의 '매직 아일랜드'에 가보자고 했지만 쏟아지는 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고,아, 아까운 자유이용권......
화가 좀 나려고 했지만, 아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싶었다.
나 : "다린아, 엄마도 사실 이런 것들 타라고 하면 좀 무서워."
다린 : "엄마는 어른인데도 무서워요?"
나 : "그럼, 그건 아이냐 어른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냐. 모험심이 강하고 아찔한 기분을 느끼기 좋아하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나 할까?"
다린 : "태어날 때부터요? 용기 없고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요?"
나 :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물질 중에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있거든? 이건 우리가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호르몬이야. 호르몬 알아? 뇌의 명령을 받아서 우리 몸의 여기 저기에 전달해주는 배달부."
다린: "그 도파민이란 것과 관련이 있어요?"
나: "그렇지. 뇌세포 표면에는 도파민이 나타났다 하면 금방 알아보고 손을 잡아 환영하는 물질이 있거든? 그것을 '도파민 수용체' 라고 불러. 말이 좀 어렵네~ "
다린: "도.파.민.수.용.체..."
나: "그런데 사람마다 이 도파민 수용체가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어. 그러니까 도파민은 똑같이 만들어지더라도 도파민 수용체가 다르면 그 도파민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게 되지."
다린: "아, 열쇠는 도파민이 아니라 도파민 수용체가 가지고 있는가보다..."
나 : " 빙고~ 그럼 왜 사람마다 도파민 수용체가 다르냐!"
다린 : "왜 달라요?"
나 : "바로 도파민 수용체를 만드는 설계도 (도파민 유전자 D4DR : 이건 다린이에게 설명 생략) 가 다르기 때문이지~ 기본적인 것은 같은데 이 설계도를 잘 들여다보니까 말야, 어떤 곳에 똑같은 부분이 계속 연달아 반복되어 있는 데가 있는거야. 그런데 그게 어떤 사람은 여러 번 반복되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조금만 반복되어 있어. 그러니까 반복횟수가 사람에 따라 다 똑같지가 않다는거지.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설계도의 전체 길이가 길고 어떤 사람은 짧고, 그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지."
다린: "그 도파민 수용체, 맞나? 도파민 수용체? (엄마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말을 계속) 그것을 만드는 설계도 길이가 긴가 짧은가에 따라 무서운 놀이 기구 타는 걸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나: "그래! 바로 그거야. 도파민 수용체 설계도가 다른 사람보다 긴 사람은 짧은 사람보다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알아보긴 하는데 그렇게 큰 반응을 보이진 않나봐.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부족한 쾌감을 보상받기 위해서 늘 짜릿한 것, 아찔한 것, 모험심, 이런 것을 추구하며 사는거야."
다린: "그럼 나는 이 도파민 수용체 설계도의 길이가 짧은가봐요."
나: "아마 엄마도~ "
다린: "아마 아빠도 ㅋㅋ"
나: "그런데 다린아, 그 '도파민 수용체 설계도'를 사람들이 뭐라고 별명을 붙였게?"
다린: "별명이요? 음....혹시 '아찔아찔' ? 아니면 '으랏차차'? ㅋㅋ"
나: "롤러코스터 유전자!"
다린: "하하, 정말이요?"
나: "정말이야 ~ "
이 날 (정확히 2주 전 월요일), 결국 우리가 탄 것은 천장에 붙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는 풍선 기구 달랑 하나. (ㅠㅠ...)
롯데월드 내의 이곳을 발견하고는 그나마 아이가 좋아하며 구경했다. 사슴벌레를 비롯 각종 곤충과 게, 개구리, 새우, 물고기 등 물 속의 생물 탐험관.
나에게 장수풍뎅이 암, 수 구별하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짝짓기 하는 것도 설명해준다. 똑바로 앞을 향해 있는 개구리를 보더니 나보고 어서 사진 좀 찍어주란다, 기다리는 것 같다고.
사진의 꽃은 흰색 꽃에는 '칸나', 빨간 꽃에는 '체리'라고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무래도 놀이공원 체질은 아니라는 것과,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가 정확히 우리 부부로부터 아이에게 유전되었음을 확인했다는 것, 이 날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