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읽다가 저자 소개란을 몇 번이나 다시 들춰 보았는지 모른다. 과학을 전공했나 하고. 그런데 아니다. 국문학을 전공한 작가가 어찌 이렇게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제일 감탄한 점이다. 과학을 전공하였으면서도,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문학으로서의 미래 소설 혹은 SF 소설은 관심 밖으로 하고 있는 나이기에, 이런 비슷한 내용이 기존의 다른 작품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지금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어보니 '싱크'라는 말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종종 사용되는 용어이고, 읽으면서 밑줄까지 쳐놓은 '역진화'에 대한 것도 다른 책에서도 비슷하게 소개된 적이 있는 모양이다.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역진화에 대해 묘사되어 있는 부분에는 실제로 현재 연구 되고 있는 분야인 줄기세포 기술의 의미가 그대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전자의 발현이라든지, 발현되지 않고 잠자는 스위치를 다시 깨우기 라든지 하는 표현을 전공 서적이 아닌 소설 속에서 이렇게 접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미 포화 상태 혹은 고갈 상태인 지구를 벗어나 인류의 새로운 삶의 터전을 모색한다는 배경은 이미 많은 영화에서도 소개된 설정이지만 이 책에서 특이한 점은 그것을 다른 외계에서 찾는 대신 지구 내부에 정교하고 치밀하게 고안된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신아마존'이라는 열대 우림 지역으로 재현시켰다는 것이다. 바로 그 소위 베타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로 이 책의 첫 페이지는 시작된다. 지구의 표면은 이미 생물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차가운 얼음 세상으로 바뀌고 말았기에 '시안'이 유일한 인류의 생존 가능 지역이라 생각하며 인간들은 살아가는데, 과연 그 믿음은 진실이었을까?
제목의 '싱커'를 혹시 ' thinker'로 연상할 수도 있을까봐 그랬는지, 표지의 우리 말 제목 옆에 'syncher'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이 '싱커'에 대해 책 속에 어떻게 설명이 되어 있는지 보자 (24, 25쪽).

"아마존을 보고 싶지 않아?"
"아마존에 직접, 들어간다고?"
"그럴 순 없지. 우리가 개발한 게임이 있어. 시장에 출시될 땐 꽤 비싼 값이 매겨질 거야."
"게임?"
"그래. 이름은 '싱커' (Syncher). 동조자란 뜻이야."
"가상 체험 게임이라면 전에도......."
"그런 거 아냐. 싱커는 그저 그런 버추얼 게임이 아냐. 물론 다른 게임들도 거의 진짜처럼 생생하긴 하지. 하지만 진짜가 아니잖아."
"이 게임은 진짜라는 거야?"
"그래. 우리 건 진짜야. 뇌파 동조를 통해 직접 아마존을 체험하는 거지. 친구와 함께 할 수 있게 게임팩을 두 개 줄게."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싱커'의 의미를 작품 중의 인물인 미마와 쿠게오의 입을 빌어 잘 설명해주고 있는 부분이기에 인용해보았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동물들과 동조하여 '신아마존' 지역을 탐험한다. 잘 알려진 '가상 현실' 게임이 아니라 '진짜' 체험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책의 표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책에는 또한 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동물들을 소개하면서 유전자 진화가 어떻게 진행되어 갔는지 설명하는 부분에서 또 감탄. 인간 중 엄청난 기억력과 학습 능력을 지닌 부류들을 '서번트 (savant)', 다른 말로는 '백치천재'라고 부르면서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뇌의 감각의 영역에서 신비롭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한 그런 사람들이고, 과학자들이 연구해보니 이런 사람들은 선천적인 뇌 결함으로 뇌의 일부가 손상되자 그 보상으로 다른 쪽 뇌가 활성화됐던 것이라고. 즉 그 신비로운 능력은 원래 우리 뇌가 가지고 있는 능력인 것이라고. 아, 천재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이 책을 읽으며, 내용이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래 소설, 미래 영화라고 하는 것들의 내용을 보면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로 즐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를 바탕으로한 미래이고 상상이기 때문에 책에서는 2064년을 가상적으로 그려놓았다고 하지만 정말 멀지 않은 미래에 충분히 가능할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오싹하기도 한다. 이것은 영화 '아일랜드'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또 하나는, 이 책이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에 이어 제3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의 의미였다. 이제 판타지 세계라는 주제가 어느 특정 장르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더 확장시켜 본다면 우리의 문학이 나아가고 있는 하나의 방향으로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의미하지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서운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즐거웠을까? 구성과 발상이 이렇게 앞뒤 어긋남 없이 꽉 짜여진 이야기를 쓰면서 작품을 쓰는 동안의 즐거움보다는 아마 머리를 짜내는 고통이 먼저 연상되었던 것은 나 뿐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설프게 흉내낸 미래 소설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으면서 동시에 작가의 계획, 설정이 지나친 감이 있어 이야기가 한 방향으로 흡입력있게 진행되는 것은 좋지만 웬지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진 여지는 거의 없어보여 다소 숨막힐 뿐 아니라, 독자로서의 소외감 마저 없지 않았다는 점 말하고 싶다.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다 계획해놓았으니 읽는 사람은 그저 그 길대로 따라오면서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으면 된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작가의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드는 소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상을 받을만한 작품이라는 것, 그것도 심사위원들의 만장 일치로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에는 별 의의가 없는 것은 그만큼 완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창비어린이 2009겨울호에서 이 작품 '싱커'를 수상작으로 뽑게 된 심사평을 읽은 기억이 나서 찾아본 후 그 일부분을 옮겨와본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싱커'를 수상작으로 뽑았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의 성과를 잇는 올해의 기대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으며, 우리 문학에서 가장 취약한 미래소설 부문에서도 뚜렷한 이정표가 되리라는 데 공감했다. 미래사회를 설득력있게 축조하는 데 가장 필요한 대목이, 낯설지만 낯익은, 그 분열적인 감각을 독자에게 정교하고 치밀하게 소통시키고 납득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작품은 매우 성공적일뿐더러 놀라운 진경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와 현재, 가상과 실제를 동시에 포착해낼 줄 아는 상상력은, 비단 청소년문학에서뿐 아니라 모든 문학예술 분야에서 드물게 소중한 재능이며 덕목이다. 낯선 미래사회로 단도직입하는 첫대목의 장력을 성공적으로 돌파한 독자라면, 평생 경험해보기 어려운 기막힌 인생 게임 한 판을 성공적으로 마친 보람과 기쁨, 흥과 사색을 동시에 얻게 될 것이다. 청소년 심사단의 소감처럼 독자들은 게임 '싱커'를 실제로 해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우주적 연대기의 서장과 같은 느낌이 다분한 2010년, 어쩌면 '싱커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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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5-2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제목으로 봐선 그저 그랬는데
에이치나인님이 리뷰 쓰신 거면 한번쯤 다시 보게되요.^^

hnine 2010-05-25 13:26   좋아요 0 | URL
창비 문학상을 받은 기존의 작품 '완득이'나 '위저드 베이커리'가 워낙 큰 화제를 몰고 왔었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특히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보면 작품의 완성도도 완성도이지만 앞으로 우리 나라 문학이 나아갈 방향이랄까, 그런 것을 제시해주는 의미도 읽혀졌어요. 기성 작품과는 어딘가 다른, 실험성이 들어가 있는 작품들이 수상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저만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래서 읽어볼 가치가 분명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마침 서평단 도서이기도 했고요 ^^

양철나무꾼 2010-05-25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hnine님.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청소년용이라고 하여 망설이고 있었는데,님 리뷰를 보고 읽어보기로 결정했어요.
독자의 몫이 없다는 말이 좀 걸리지만요~
장르소설의 매력이,또 청소년 소설의 매력이,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것일텐데 말이죠.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hnine 2010-05-25 17:2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안녕하세요?
장르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이 책 한번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느끼실지 저도 무척 궁금하네요. 제 느낌은 위의 리뷰에 썼다시피 분명히 상을 받을만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작품들이 모두 읽는 사람에게 와닿는 것은 아니니까요.
청소년용이라고는 하지만 별 상관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05-25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5-26 05:44   좋아요 0 | URL
완득이의 저자는 아니고요, 이 작품이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데 1회 수상작이 김 려령 작가의 '완득이'였지요. 기존의 청소년 소설과 좀 다른 소설이랍니다. 한번 읽어보실만 해요.

하늘바람 2010-05-26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궁금한 작품이네요.
요즘 과학을 소재로 습작을 해 볼까 하고 있었거든요.
역시 공부가 중요해요

hnine 2010-05-26 17:30   좋아요 0 | URL
이 작가분은 생물학을 전공한 분 뺨치시더군요. 상을 안 줄 수가 없었겠더라고요.

같은하늘 2010-05-27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군요. 급관심~~

hnine 2010-05-27 04:29   좋아요 0 | URL
무척 치밀하고 노력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원래 동화를 쓰던 분이라는데 이분의 동화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