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엄마 나이 벌써 일흔 셋이라는 말을 했더니 엄마께서 깜짝 놀라시며 일흔 셋이 아니라 일흔 둘이라고, 왜 나이를 네 맘대로 한 살 보태냐고 그러신다. 일흔 둘이나 일흔 셋이나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또 잘못 생각한 것이다. 어릴 때 지금의 내 나이의 삶이 그려지지 않았던 것 처럼.
엄마한테 벌써 마흔 다섯살 된 자식이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냐고 했더니 안그래도 어디 가서 마흔 다섯 된 딸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고.
"하긴, 내 나이 서른 아홉에 너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네가 벌써 마흔 다섯이 되었으니..." 

마흔 다섯이란 나이, 이제 이렇게 살았으면 싶다.
뭐든지 과하지 않게.
하나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고 싶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이제는
과하지 않게 말하고, 과하지 않게 먹고, 과하지 않게 쓰고, 과하지 않게 생각하며

매일 아침 비로 마당을 쓰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마당에 남겨진 빗자국으로 남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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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8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3-01 02:46   좋아요 0 | URL
오늘도 역시 보잘것 없는 저의 끄적거림에 몇배의 통찰력으로 답해주시는군요.
마당을 쓰는 사람은 마당을 쓰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지요. 그런 마음이고 싶었어요.
봄을 더 일찍 만나고 오셨군요? 저는 장흥까지는 가봤는데 그곳은 아직 못가봤어요.

비로그인 2010-02-2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당을 쓸어내는 마음. 다 알진 못하겠지만 희미하게나마 공감이 갑니다.

저도 올해 hnine님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ㅎ

hnine 2010-03-01 02:51   좋아요 0 | URL
오늘 바람결님이 올려주신 음악 중에 2009 Proms 실황이 있더군요. 저는 10년쯤 전에 가본 적 있어요. 그게 벌써 10여년 전이라는 것을 알고 새삼 놀라며 음악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마치 바람결처럼 흘러간 느낌이었어요 ^^

혜덕화 2010-02-2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 아홉, 제 어머니는 제 나이에 할머니가 되셨답니다.^^
올해 가장 먼저 한 생각이 그거였어요.
아, 엄마는 너무 젊어서 할머니가 되셨구나 하는 생각.
엄마가 저를 스무살에 낳으셨으니, 젊은 엄마, 젊은 할머니가 저절로 된 것이겠지요.
아무리 아무리 부모에게 잘한다고 해도, 낳아서 길러준 은혜를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늙으신 부모님을 보면서 알게 됩니다.
님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으시군요.
비로 마당을 쓸듯이, 내 마음의 먼지를 쓸어내는 한 해 되도록
저도 노력할게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hnine 2010-03-01 02:53   좋아요 0 | URL
저도 가끔 현재 제 나이때의 어머니를 생각해보곤 해요.
저는 아이를 늦게 낳았으니 아마 천천히 할머니가 될까요? ^^
아무리 아무리 부모에게 잘한다해도, 받은 은혜의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는 말씀이 왜 오늘따라 이렇게 가슴에 와서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꿈꾸는섬 2010-03-0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당을 쓸고 남은 빗자국의 삶을 살고 싶으시다는 말이 와닿아요. 과하지 않게 산다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면 좋을 듯 싶어요. 저도 그렇구요.^^

hnine 2010-03-01 02:56   좋아요 0 | URL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제 할 일, 제 본분 지키며 살고 싶다는 소망이었어요. 지금 저의 그릇의 크기로는 힘드는 일이기에 꿈꾸어보는 것이겠지요.

세실 2010-03-01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하지 않게 먹는다는 말씀 100% 동감입니다. 제일 중요하지요.
제 나이도 벌써 43. 중년이죠. 이젠.

hnine 2010-03-01 22:51   좋아요 0 | URL
그것도 가끔 조절이 어려운 것 중의 하나 맞습니다.
세실님은 웬지 중년이라는 말과 안 어울려요. 피부로 보나, 미모로 보나, 열정으로 보나 ^^

같은하늘 2010-03-0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는 나이를 먹어도 예쁜 여자이고 싶다는데 엄마의 연세를 늘리시다니 큰 실수하셨습니다.^^ 뭐든 과하지 않게~~~ 이게 쉽고도 어려운 일 중 하나지요?

hnine 2010-03-02 12:38   좋아요 0 | URL
과하지 않게, 전 이게 쉬웠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아예 잘 할 자신이 없는 것은 겁먹어 시작도 안하던가, 일단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던지라... 그래서 끝장을 보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마음만 그랬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래 저래 상채기가 많은가봅니다.

상미 2010-03-0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까이 살면서도 엄마랑 3주에 한번이나 볼까 말까해.
지난주엔 모처럼 엄마랑 지하철 타고 어디 다녀오게 되었는데,
지하철에서 걸어 올라오시고 너무도 숨차 하는 엄마 모습이 왜케 짜증이 나는지...
겨우 그거 올라오고 그러냐고 ,
운동 부족이라고, 엄마 살빼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지.

속상한걸 아직도 짜증과 잔소리로 표현하고 만단다...
울엄마 아빠가 젊고 건강해서, 내가 아직 그래도 될거라 생각하고 싶어서.

hnine 2010-03-02 12:43   좋아요 0 | URL
나도 그래. 짜증과 잔소리 ^^
난 이번 일요일에 가서 뵈면 일곱달 만에 뵙는게 돼지. 연세는 속일 수가 없는지 아빠는 이제 체중이 51kg밖에 안되신다고...
위의 댓글에서 보듯이 우리가 아무리 부모님께 잘해드린다고 해도 만분의 일도 못미친다는데, 백년 만년 사실 것도 아니고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