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토요일,
무료하게 집에만 있던 아이에게
여기 저기 대면서 나가자고 해도 싫단다.
이미 질리도록 많이 가보았던 만만한 곳만 내가 댔으므로.
나중엔 내가 답답해서 먼저 나섰더니
어디 가는지 묻지도 않고 따라나서는 아이. 

'어디 특별히 가려는게 아냐.
아무 목적 없이 집을 나서볼 때도 있어야 한단 말이지.
나서서 걷다 보면 나무도, 태양도, 길도, 사람도 눈에 들어오거든.
평상시에 지나치면서 그냥 보이는대로 보는 것 말고, 일부러 대상으로서 보는 것 말야.'

 




 

 

 

 

 

 

 

 

 

 

 

 

 

 

 

 

 

어슬렁 거리다가 동네 놀이터로 발길이 갔다.
우리 아이보다 훨씬 어린 꼬마들이 맨발인 채로 놀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아이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             "와, 너 몇살인데 미끄럼틀을 그렇게 잘 올라가니?"
(동네 아이)   "나요? 다섯살이요. 나 덤블링도 할수 있는데요? 해볼까요?"
(나)             "정말? 와, 한번 해볼래?"
그걸 아이 말 대로 덤블링이라고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두 손으로 땅 바닥을 집고 거꾸로 뱅그르 돌아서 다시 제자리에 서는 방법이었다.
(나)             "와~ 진짜 잘한다. 어디서 배웠어?"
아이가 딩동댕 번개 어쩌구 라고 하는데 나는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잘 못 알아들었다. 번개교실이라는 줄 알고,
(나)             "번개교실에서 배웠어?"
(동네 아이)   "딩동댕 번개맨이 하는 것 보고 나 혼자 따라해본거예요."

다섯 살 녀석이 아주 말을 잘 한다. 예전에 나 어릴 때 TV에서 하던 만화 영화 <요술 공주 새리>에 나오던 새리의 친구 콩순이였나? 그 콩순이의 세쌍동이 남동생들 처럼 생겼다. 적은 머리 숱에 앞짱구, 뒷짱구.
(동네 아이)   " 저 형은 몇살이어요?"
우리 집 아이를 가리키며 아이가 묻길래 아홉살이라고 했더니,
(동네 아이)   "으아~ 아홉살!"
이 아이에게는 아홉살이 아주 많은 나이인거다 ㅋㅋ

그 아이를 계속 보고 있던 중, 놀이 기구 위에서 발을 잠깐 잘못 디디는 것을 보고, 떨어지는 줄 알고 나도 모르게 "어!" 그랬더니 요 녀석 하는 말,
(동네 아이)     "아줌마, 놀랬어요?"
(나)               "응!"
(동네 아이)     "나 떨어지는 줄 알고요?" 
ㅋㅋ 

어릴 때엔 저렇게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말을 잘 하나보다.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점차 이것 저것 가리는 것이 생기게 된다. 일부러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이들어가면서 가리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 아이 때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 같지만 마음은 더 편협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피아노 레슨 갈 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더할 수 없이 푸르고,
아파트 앞 감나무에는 감이 초록과 주황색이 어우러져 익어가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잠깐 놀았는데도 얼굴이 땀 범벅이 된 아이에게 말했다.
"다린아, 밖에 나와보니 좋지?"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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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09-09-1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이는 오늘 아빠따라 밖에 나갔다가 눈물범벅이 되어 들어왔더라구요. 학교운동장에 갔는데, 아이들이 한솔이가 어리다고 같이 안놀아줬나봐요^^ 나라면 한솔이랑 둘이서 잘 놀다 들어왔을텐데, 애 아빠는 애를 달래지 못해 결국은 울려서 들어온거 있죠^^

hnine 2009-09-20 12:28   좋아요 0 | URL
조금 큰 아이들은 자기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는 안 끼워줄 때가 많더라고요. 한솔이 맘 상한 것 당연하지요. 한솔이 아빠께서는 어서 엄마에게 데려가자는 것이 해결 방법이셨나봐요 ^^

무스탕 2009-09-19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만 보면 가을이 아니고 한여름 같습니다 ^^
저도 무턱대고 돌아다니고 싶어지네요..

hnine 2009-09-20 04:44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말씀처럼 나뭇잎 사진 보면 정말 신록 우거진 여름이지요? 곧 저 나뭇잎 색깔도 모르는 새에 노랗게 변할 것 같아 그러기 전에 한번 사진으로 남겨봤어요.
딱히 계획이 없었으면서도 어제 남편이 일해야한다고 하루 종일 집을 비우니 갑자기 무료해지고 심심해지더라구요. 아이는 더 했겠지요.

세실 2009-09-20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박또박 말 잘하는 아이 보면 귀여워요~~ 붙임성이 좋으네요.
가을은 여행하기 참 좋은 계절이죠. 문득 떠나고 싶어요.

hnine 2009-09-20 12:29   좋아요 0 | URL
그렇게 꾸밈없이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아이들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 엄마도 다시 보이고요. 또 제가 꼬마들에게 말시키기를 좋아해서요. 저 아이 동생도 함께 있었는데 찡그리는 표정이 귀여워서 "어이구, 무서워라~ 호랑이 같다, 호랑이~" 했더니 계속 그 표정을 지으면서 저를 따라오더라구요 ㅋㅋ

프레이야 2009-09-20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록잎사귀가 눈부셔요.
정겨운 대화에 웃음이 나요.
아홉살, 되게 나이 많게 느껴졌나 봐요.
그 아이 귀엽네요. 그렇게 본 나인님 시선이 더 좋구요.^^

hnine 2009-09-20 04:49   좋아요 0 | URL
다섯살과 아홉살 차이, 웃기지요?
그 아이 아홉살 되어서도 지금처럼 또박또박, 해맑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과 얘기해보면 저도 어려지는 것 같아요 ^^

상미 2009-09-20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와 대화한 애가 사진에서 봉에 매달린 아이니?
애들한테 다섯살과 아홉살 차이는 큰 차이지.ㅋㅋ
4살 차이 나는 남편이랑 살아보니 별 차이 아니더만 ...

hnine 2009-09-20 20:27   좋아요 0 | URL
ㅋㅋ 나도 네살 차이~ ^^
봉에 매달린 아이 맞아. 오늘도 혹시 나왔나 놀이터 가봤는데 오늘은 못봤어.

순오기 2009-09-21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뻐요~ 초록잎도 놀이터의 덤블링 소년도~
무작정 나서는 엄마 따라 동행한 다린군도!^^

hnine 2009-09-21 13:29   좋아요 0 | URL
사실 매우 무료한 주말이었어요. 순오기님은 아이들 어릴 때 그런 날 뭘 하셨나요? 형제들이 있으니 그렇게 무료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2009-09-21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1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09-09-22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이터 놀이기구가 너무 좋아보이는데요. 울 동네랑 너무 차이나요.^^

hnine 2009-09-23 06:02   좋아요 0 | URL
지은지 오래 된 아파트라서 놀이터 시설도 별로 대단하진 않아요. 사진으로는 혹시 그렇게 보이나요? 저것도 2년 전인가 새로 들여놓은 것이고 그 이전엔 더 초라했었지요. 그래도 아이들은 모래흙만 있으면 잘 뛰어노느 것 같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