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마다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오늘 초대된 출연자는 시인 나 태주.
처음에 목소리만 듣고 김 용택 시인이 아닌가 했는데, 억양이 약간 다르다. 알고 보니 충남 공주 출신의 나 태주 시인이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한참 지내시다 지금은 정년퇴직하셨단다. 오래 전부터 시인이 꿈이셨다는데, 그의 시들은 조용하고 따뜻하고 때론 눈물 글썽여진다. 

많이 알려져 있는 시 중 두 편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행복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자세히 보고, 오래 들여다봐야 예쁘다. 하지만 갈수록 우리들은 자세히 보지 않는다.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다.
행복이란,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원하던 곳에 이르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인생에 이런 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 우리가 사는 시간들은 저녁 때이고, 힘들 때이고, 외로울 때 인 것이다. 그 때마다 작은 일들에서 감사하고 위안을 얻는 것, 그것이 행복일 수 있다면. 

이 시들도 자주 머리 속에서 오가며 기억될 것 같다. 

중학교 3학년때 우리 반 교생 선생님은 화학을 전공한 선생님이셨는데, 좋아하는 시라며 어느 날 읊어주신 시, 유 치환의 '파도'이다. 

파도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님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짧은 시이기도 하고 운율이 살아 있기도 해서, 어디에 적어 놓을 필요도 없이 그 날 이후 지금까지 기억이 되고 있는 시인데, 짧은 시라고 모두 기억되는 것이 아니니 아마 그게 이유의 다는 아닐 것이다. 

이 페이퍼를 다 써가니 7시가 다 되어가고, 라디오 프로그램도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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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5-03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시가 맘에 들어요.
나인님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hnine 2009-05-03 09:11   좋아요 0 | URL
어쩔 수없는 절절함이 느껴지지요.
아직도 하늘은 흐려있어요.
이제 아침 먹고 막 치웠네요. 쉴만하니 다린이가 농구하러 나가자고 해요. 늙은 엄마 힘들어요 흑 흑...

LAYLA 2009-05-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박히는 시, 다이어리에 적고 갑니다. :)

hnine 2009-05-03 13:02   좋아요 0 | URL
LAYLA님 마음에도 드셨다니 기쁩니다 ^^

순오기 2009-05-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아도 팍 꽂히는 시들이 있지요~~
풀꽃과 행복은 인생에 나이테가 많아져야 깨달을 것들이네요. 포근합니다~ ^^

hnine 2009-05-03 13:03   좋아요 0 | URL
인생의 나이테가 많아져야...공감합니다.
나 태주 시인의 음성도 아주 푸근~하더라고요.

마노아 2009-05-0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시가 확 스며들어요. 시인의 이름을 기억해야겠어요.^^

hnine 2009-05-03 20:44   좋아요 0 | URL
끝자가 마노아님과 같은가요? ^^

마노아 2009-05-03 22:21   좋아요 0 | URL
오, 빙고입니다. 저는 두루 주를 씁니다.ㅎㅎㅎ

무스탕 2009-05-03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요, 낮에 산책 나갔다가 몇몇 풀꽃들을 보고 왔어요. 그래서 그런지 첫번째 시가 더 와 닿네요 ^^
근데요, 와 닿은 시와 별개로 가슴을 후벼 파는 시는 세번째 시에요..
같이 가슴치며 울고싶은 심정이랄까요.. ㅠ.ㅠ

hnine 2009-05-04 05:20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세번째 시를 처음 듣는 순간 가슴을 꽝 한대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더랬어요. 중3때이니 아직 뭘 모를 때임에도 아마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저런 느낌으로 산다는 건가보다, 생각했더랬어요.
화려한 꽃도 예쁘지만, 눈에 금방 안띄는 풀꽃들에도 눈길을 돌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나이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늘바람 2009-05-0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꽃은 제 이야기 같고요. ㅎㅎㅎ
행복은 투덜대는 이에게 지금 문자 보냈지요.
마지막 시는 제가 자주 쓰는 ~

hnine 2009-05-04 18:2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시 세편이 모두 나름대로 괜찮으셨군요 ^^

2009-05-04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4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09-05-0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풀꽃처럼, 나를 풀꽃처럼,, 봐주는 님이 아직은 없어서 파도처럼 애절하지 않고 기냥 맹숭맹숭~ 그래도 외롭지 않고 행복한건 제가 가진게 많아서입니다^^ 가족~ 친구~

hnine 2009-05-05 15:46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는 사람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으실겁니다.
스스로 외롭지 않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요즘에, 자신감 있어보이시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