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과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아침 식사로 밥은 아니지만 빵이나 오믈렛 등을 먹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니까, 아마 그 이후에 생긴 습관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5분 이내에, 아니 3분 이내에 사과를 입에 물어야 한다. 그래야 잠이 깬다. 그래야 하루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사과를 한 개 (아주 큰 사과의 경우엔 반 개) 물에 씻어 껍질 째 아삭아삭 먹기 시작해서 거의 다 먹어갈 무렵이 되어야 나는 비로소 내가 된다. 사과만 먹어도 정신은 깨어나지만, 그것으로 끝내긴 심심하니까 이어서 마실 것을 한잔 만들어 먹게 되는데 이건 변천사가 있다. 코코아였을 때도 있고, 녹차에 우유타서 먹었을 때도 있고, 지금은 커피를 마신다 (물론 설탕, 우유 다 넣어서).
이것으로 나의 아침 식사는 끝.
어디 여행가서 숙박을 하고 와야할 경우에 나는 사과를 챙겨서 간다. 사과를 못먹고 시작하는 하루란, 아침 굶고 시작하는 하루처럼 생각만해도 히스테릭 해지므로. 지금도 친정에 가서 자고 온다고 하면 부모님은 다른 것은 몰라도 사과가 냉장고에 있는지 보시고, 없으면 일부러 사다놓으신다. 이 정도면 중독이라 부를 수 있겠지.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어느 종류의 사과를 좋아하느냐고 가끔 묻는데, 그런게 어디있나? 사과라고 이름 붙은 것은 뭐든 상관없다. 아오리, 홍옥, 부사, 가정용 사과, 제수용 사과, 꼬마 사과, 기스난 사과...안가린다.  

 



 

 

 

 

 

 

 

 

 

2. 편지 

이건 예전에 중독되었던 것이고 지금은 아니다. 중학교 때였는데, 편지 쓰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학교에서 매일 보는 친구,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재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 선생님, 사촌 언니, 심지어 군인아저씨께 의무적으로 써야했던 위문편지마저도 즐거워라 썼으니까. 저녁 먹고 책상에 앉으면 우선 오늘은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 부터 생각했다. 편지를 한장 쓰고 나야 공부가 되었다. 편지를 쓰다쓰다 더 이상 쓸 상대가 없으면? ㅋㅋ 방송국에 엽서라도 썼다. 노래 신청하고, 사연 쓰고. 

이 버릇은 고등학교에 가서 비관적, 자학적 일기를 써대는 것으로 대치되었다. 

 

3. 커피 

나는 중학교 입학전,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방학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를 즐기시던 아버지께서 당신 커피를 타시면서 내 것도 한 잔 타주시기 시작한 그 날부터 시작해서 곧 나는 하루도 커피를 안마시고 못배길 정도로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루에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한 잔으로 시작했고 대학생이 되면서 하루에 두잔 마시는 날도 가끔 있었다. 실험실에서 오래 지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하루에 석 잔. 지금까지도 하루에 그 이상을 마시는 날은 없다. 그 이하를 마시는 날도 거의 없다. 하루 석 잔.
아이를 가지면 커피가 마시고 싶어 어떻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너무나 신기한 일은 아이를 가지고부터 커피를 마시기는 커녕 냄새도 못맡겠는거다. 수퍼마켓의 상품 진열대 사이를 지나다가도 커피 진열대 옆을 지나가면 속이 울렁울렁해졌을 정도이니까.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수유를 마치고 나니 다시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정말 인체의 신비, 특히 여자 몸의 신비란 설명 안되는 부분이 참 많다. 

 



 

 

 

 4.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생긴 새로운 습관으로 뻥튀기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과자류를 잘 먹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 뻥튀기를 먹게 된 이후로 그날 이후 거의 매일 뻥튀기를 한봉지씩 (하나가 아니라 한 봉지) 먹고 있다. 파편을 온 방안에 다 날려가면서.
또 하나 내게 생기고 있는 습관은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 DJ가 처음 듣는 목소리, 처음 듣는 이름인데 알아보니 가수라네. 약간 건조한 목소리에, 어딘가 배철수 스타일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선곡되어 나오는 음악도 뭐, 괜찮고. 거의 매일 듣고 있다. 시계 보고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라디오를 켜게 되는. 되도록이면 그 시간에 라디오 앞에 앉아 있고 싶어지는.
그런데 이게 새벽 4시에 하는 프로그램이라는거지 ㅋㅋ

 

뭔가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은,
재미있다. 취향이 살아있다는 것이니까.
크게 내 몸을 축내거나 민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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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피필름 2009-02-2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중독은 특이한데요? ^^ 아침에 사과 먹으면 몸에도 좋으니까 좋을 것 같아요.. 커피는 저도 중독이에요.. 저도 한때 뻥튀기 열심히 먹던 때 있었는데 요즘에도 없으니까 안먹지 아마 집에 있으면 바닥 보일때까지 계속 먹고 있을 것 같아요. 흐흐.

hnine 2009-02-21 04:36   좋아요 0 | URL
특이한가요? 다른 과일도 아니고 사과여야 하니까 특이한것 같기도 해요 ^^
뻥튀기가 특별한 맛이 없으니 질리지가 않아요. 매일 같은 가게가서 한봉지씩 사니까 아마도 주인아주머니께서 제 얼굴 다 기억하실거예요. 뻥튀기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특산품 아닌가 싶어요. (여전히 예찬론~ ^^)

마노아 2009-02-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스 난 사과! 훌륭해요! 저도 한 동안 사과 계속 먹었는데 사과 뚝 떨어지니까 습관도 뚝 끊어졌어요...;;;;
새벽 4시에 어떤 방송 들어요? 방금 엠비싸 fm만 검색해봤는데 하동균이 나오네요.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거예요, 아직 잠들기 전이에요?

hnine 2009-02-21 04:40   좋아요 0 | URL
기스난 사과도 맛은 좋거든요. 기스가 좀 나있기로서니 천대받을 이유가 전혀 없지요 ^^ 전 냉장고에 사과가 10개 이하로 남기 전에 다시 박스로 들여다 놓아야 안심을 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좀 엽기적인 것 같기도 하네요 ㅋㅋ)
예, 그 방송사 프로 맞아요 ^^

무스탕 2009-02-2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정말 홍옥 껍질째 아삭아삭 씹어먹는거 너무 맛있어요. 사과중에 최고에요, 최고!
2. 편지는.. 제가 좀 스토커 기질이 있는건 사실인가봐요 -_- 고딩때 좋아하던 선생님께 1.2학년땐 수업을 받았는데 3학년엔 수업이 없었어요. 3학년 내내 일요일마다 편지를 썼지요. 졸업후 일이 있어 학교엘 갔더니 이 선생님께서 제 편지를 모두 읽어보고 계셨더라구요. 제가 어디 취직했는지까지 다 꿰고 계셨으니.. 그럴거면 진즉에 아는척해서 영계를 챙길것이지 ^^;
3. 커피는 들쭉날쭉이에요. 요즘은 집에 있을때는 하루에 한두 잔, 알바하러 사무실에 나가면 기본이 네 잔.. 이 편차란..;;
4. 전 과자보다 한동안 콜라에 중독된적이 있었어요. 콜라를 쟁겨놓고 살았었죠. 정말 하루라도 콜라를 안 마시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요즘엔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정도 ^^

hnine 2009-02-21 04:44   좋아요 0 | URL
아, 무스탕님도 사과 좋아하시는구나~ 반가와요.
고등학교때 그 선생님도 무스탕님에게 어떻게 아는 척을 해야할까 망설이고 계셨던게 아닐까요? 그런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매주 일요일마다 편지를...
콜라도 중독되는 것 맞아요. 탄산중독이라고 ㅋㅋ

프레이야 2009-02-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중독은 몸에 좋을 것 같아요.
커피와 글쓰기는 저도 중독이에요.
새벽 4시의 그 라디오 프로그램은 어딘가요? ^^

hnine 2009-02-21 04:46   좋아요 0 | URL
예, 아침 사과가 몸에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미 다른 것을 먹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먹는 사과보다 이렇게 눈 뜨고 빈 속에 먹는 사과는 정말 좋아요.
지금도 듣고 있는 그 프로그램은 위의 마노아님께서 말씀해주셨네요 ^^

Kitty 2009-02-21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진짜 일찍 일어나시는 것 같아요. 정말 부지런하신가봐요.
이곳 오후쯤이 한국 새벽인데 2-4시쯤에는 서재 글이 뜸하다가
5-6시쯤에 제일 먼저 올라오는 페이퍼가 hnine님 글일 때가 많아요 ^^ 왠지 반갑다는 ㅎ
9시 넘어서야 일어나는 저는 구제불능인 듯 ㅠㅠ

hnine 2009-02-21 04:47   좋아요 0 | URL
Kitty님, 제가 원래 아침형이기도 했지만, 아이 낳고 나서 이 시간 아니면 온전한 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새벽 3시에도 일어나고 4시에도 일어나고 그래요. 대신 일찍 자는 날이 많아요. 남들 한참 활동할 시간에요 ^^ 그러니 제가 부지런해서가 아니지요.

웽스북스 2009-02-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와 글쓰기는 저도 중독이에요 222
저희 팀장님 어머니께서는 팀장님 가지셨을 때 줄창 커피를 그렇게 드셨대요.
그래서 우리 팀장님은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신다는 ㅋ

hnine 2009-02-21 16:49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지기님들 중 많은 분들이 비슷한 중독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해요.
저도 아이 가진 동안 커피가 여전히 고팠다면 그냥 마셨을 것 같아요.

세실 2009-02-22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중독 좋은데요. 이 글 읽으면서 님도 열정적이시구나 생각했습니다.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것 참 멋진 일이죠. 커피, 편지, 사과라니~~~
한동안 임태경의 세상의 모든 음악 열심히 들었는데 직장 청주로 오면서 잊고 있었습니다. 님이랑도 맞을듯 하여 검색해보니 지금은 이루마가 진행합니다. 아쉬워라..

hnine 2009-02-22 08:20   좋아요 0 | URL
임태경님 늘 건강에 남다른 신경을 써야하는 분이시더군요. 그래서 방송 맡을 때 얼마나 갈까 좀 염려스럽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진행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이루마로 바뀐 다음에는 한번도 못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