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외삼촌 즉 나의 막내 동생이자 하나뿐인 남동생은 나보다 다섯살 아래이다.
내가 아이를 낳던 2001년 5월. 예정일보다 2주나 빨리 낳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내 남동생 부부는 그들이 살고 있던 켄터키 주에서 내가 살고 있던 주까지, 자기들 일을 모두 뒤로 하고 열시간을 넘게 운전을 하여 달려 왔다. 아이를 낳은 바로 다음 날, 아직 병원에 있던 내게 보온병에 미역국을 담아서 가지고 입원실로 들어서던 그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 다음 날 집으로 퇴원을 하고, 그로부터 3주 동안 이들 부부는 나 대신 식사 준비를 하고 우리 집안 일을 도와 주었다. 나와 남편, 동생 내외 모두 아이 키우기에 대해서는 초보. 젖병 소독은 얼마나 자주 해야되는 것인지, 젖병에 분유를 타서 어떻게 먹이는 것인지, 아이 목욕 시키는 방법등, 우리 넷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여 해결해나가던 시간들.
한국에서 아직 직장 생활 중이시던 친정 엄마를 대신해 나의 산후 조리 기간을 도와준 동생 내외는 그 이후로도 내 아이에게 참으로 거리낌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고 있다. 둘다 사진을 전공하는 덕분에 아이의 이런 저런 모습을 캠코더로 찍어 편집해서 지금까지 세개의 비디오로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 집 보물 목록 1호이다. 그 해 겨울 또 우리 사는 곳에 와서 아이랑 놀아주고 가까운 곳에 함께 놀러도 가고, 좁디 좁은 학교 아파트인 우리집에서 다섯 사람이 복닥복닥 참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을 만들었었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사준 장난감과 놀이 기구로 좁은 우리 집은 마치 무슨 놀이방을 연상시켰다. 천장에는 각종 빤짝이, 카드, 별 모양 종이판 등이 주렁주렁, 마루에는 커다란 볼풀장, 옆집에서 잠시 위탁시켜놓은 미끄럼들이며, 남편이 주렁주렁 천장에 매달기 위한 받침목으로 마루 한가운데 세워 놓은 나무 가지, 벽에는 오래 된 내 청바지를 부욱~ 뜯어서 뒷주머니 부분을 메모 꽂이로 이용하게 걸어 놓았고, 벽돌과 나무판으로 만든 책꽂이 등, 정말 정신 없던 우리 집은 1층인 탓에 밖에서도 다 들여다보였는데 지나가던 꼬마들이 정말 무슨 놀이방인 줄 알고 그들 엄마가 잠깐 한눈 파는 틈에 우리 집에 아장아장 들어오곤 했었다.
나는 고작 아이 연령에 맞는 책이나 사주고 금방 금방 크는 아이, 옷과 신발도 동네 중고품 가게 가서 사주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나의 올케, 즉 아이의 외숙모는 친구들로부터 들은 정보에 근거, 정말 여러 가지 교육용 놀이 기구, 장난감, 옷 등 아낌없이 아이를 위해 베풀어 주곤 했다.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오던 해에도 우리 사는 곳으로 와서 garage sale등 여러 가지 뒷정리 하는 것을 도와 주었고, 우리가 한국으로 나오고 난 후에도 아이의 생일과 어린이날에는 어김없이 선물을 보내주고, 또 목소리가 듣고 싶은 때에는 전화도 걸어서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작년 여름에는 아이를 아예 두달 넘게 그들 집에서 데리고 있기도 했다. 그 동안 동네 유치원에도 등록해서 다니게 하고, 지금은 예전과 비교가 안되게 바쁜 그들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어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키고, 많이 힘 들었을텐데도 올해 또 보내라고 그런다.
고마운 그들 내외에게도 나의 조카가 생길 그날을 기다려본다. 내 아이는 자기 동생이 생겼다며 좋아하겠지. 나도 나의 둘째 아이가 생긴 것 처럼 기뻐하며 예뻐해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