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악
초등학교 1, 2 학년 쯤 되었을 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정집처럼 생겼는데 피아노 레슨 하는 곳이 있었다 "호루겔 피아노 교실"이라는 조그만 간판이 달린.
어느 날 집에 오다가 그곳에서 흘러 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한방 쾅~ 얻어맞고는 그 날부터 나도 피아노 배우고 싶어...피아노 배우고 싶어...소망이 생겼다. 그때 그 피아노 곡이 무엇이었냐 하면 바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조르고 졸라 드디어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피아노를 배울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원하다가 온 기회였기에 얼마나 신나게 피아노를 배웠는지 모른다.
지금도 누가 좋아하는 음악을 물으면 주섬주섬 여러 곡 이름을 대겠지만, 제일 좋아하는 곡을 묻는다면 누가 뭐래도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2. 시
며칠 전에 혜경님께서 올리신 시, 조 지훈님의 고풍의상을 읽다가 또 추억에 빠졌다.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 김 소월의 시를 배우고 있었던가. 국어책에 실린 시는 '진달래꽃'은 아니었고 시인의 다른 시였는데, 국어 선생님께서 '진달래꽃'이라는 시가 있다며 우리에게 읊어주셨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내게, 그 시는 너무나 곱고 슬프고 처연한 시였다. 또 마음을 한방 쾅~ 얻어맏은 것 같은 느낌, 감동에 감동.
윤미경 국어 선생님. 아직도 선생님 모습이 그대로 머리 속에 담겨 있다. 낭랑한 목소리. 우리반 담임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어느 날 수업 끝나고 나를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책을 한권 주시며 읽고 와서 느낌을 얘기해 보라고 하셨다 (오 천석님의 '노란 손수건'이었다). 다 읽으면 또 다른 책...이런 식으로.
보고 싶다 그 선생님.
이후로 시를 읽으며 받은 위로와 감동은 그때의 일기장, 또 시 노트 등에 남아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시를 쓰는 사람은 정말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다라는 것. 남보다 천배 쯤의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일거라는 생각.

3. 책
중학교 겨울방학때 읽은 생의 한가운데.
제목부터 내 눈길을 끌었다. 작은 문고판 책으로 읽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랑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알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이란 결코 달콤한 여정이 아님을 갑자기 알게 된 것 같았다.
이후로 루이제 린저의 책들을 마구 골라서 읽기도 했는데, 그 이후 비슷한 감동은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으면서였는데 생의 한가운데 만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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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0-17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제게 첫감동은 무엇이었나를 생ㄱ가해보게 되네요

hnine 2007-10-17 19:46   좋아요 0 | URL
감동의 순간을 떠올려보는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누려보세요~

조선인 2007-10-17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기억나는 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난 산울림과 Pink Floyd. *^^*

hnine 2007-10-17 21:29   좋아요 0 | URL
오~ 산울림. 그 당시 제 귀에도 산울림의 음악은 파격이었지요 ^^

세실 2007-10-1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중학교때 데미안 읽으며 나름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 했었답니다.
한동안 비틀즈의 Let it be 가사를 읇조리며 방관자적 입장을 취한적도 있었고요~

hnine 2007-10-17 23:06   좋아요 0 | URL
데미안은 지금 읽어도 참 진지하고 심각한 소설이지요. Let it be도 그렇고요. 그러고 보니 요즘 저의 철학 (?)을 한 문장으로 하자면 바로 Let it be인 것 같기도 하네요 ^ ^
세실님, 새로운 이미지가 참 마음에 드는데요?

미즈행복 2007-10-19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학교적 데미안을 읽어봤으나 무슨 소린지 도저히 이해가 안갔어요. 그 유명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는 말부터. 루이제 린저는 루이제 린저에 대한 관심보다도 전혜린의 번역이란 점에서 읽었었죠. 중학교적 전혜린을 알게 된 이후 그녀는 제 우상이었어요. 물론 '생의 한가운데' 는 매우 좋은 소설이지요. 나나처럼 강인하게 살고 싶었어요. 전혜린처럼 인식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삶도 동경했지요. 그러나 타고난 역량의 부족과 게으름으로 인해 그만... 그냥 아련한 소싯적 꿈이지요.

hnine 2007-10-21 00:39   좋아요 0 | URL
데미안, 전혜린, 강인하게 살고 싶은 열망...어느 한 시기를 떠올릴만한 말씀을 모조리 해주시네요 ^^ 주변을 서성거리지 않고 한가운데서 사는 주체적으로 사는 삶을 살고 있는지, 종종 생각해보게 됩니다.

비로그인 2007-10-2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만 달랐을 뿐 2,3번은 저와 비슷하시네요.
저도 위의 미즈행복님처럼 데미안을 충격을 받으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중학교때...
피아노는 어렸을 때 못쳐보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시작한 것이구요.
가을은 여러모로 추억을 헤쳐볼 수 있는 계절인듯해요.
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그 일들이 제게도 또 다른 분들께도 의미가 있습니다.

hnine 2007-10-23 13:47   좋아요 0 | URL
최근 일은 오히려 기억으로 자리잡지 않아서일까요.
아이 낳고서 그 이후로는 별로 감동적인 추억거리가 없네요 흑흑...
가을이라서 그런지 요즘 대체로 기분이 저조해요 말수도 더 적어지고.
처방좀 내려주세요 minseo님.

비로그인 2007-10-24 10:41   좋아요 0 | URL
일이 많으면 정신이 없어 기분이 업 된답니다.
일을 만들어 해보세요.
박물관을 다니시거나, 아이들과 뭔가를 배우시거나,
시험을 준비하신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