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경   림 -


 

길을 가다가
눈발치는 산길을 가다가
눈 속에 맺힌 새빨간 열매를 본다
잃어버린 옛 얘기를 듣는다
어릴 적 멀리 날아가버린
노래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갈대 서걱이는
빈 가지에 앉아 우는 하얀 새를 본다
헤어진 옛 친구를 본다
친구와 함께
잊혀진 꿈을 찾는다


길을 가다가
산길을 가다가
산길 강길 들길을 가다가
내 손에 가득 들린 빨간 열매를 본다
내 가슴 속에서 퍼덕이는 하얀 새
그 날개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과 어울어진 내
노래 소리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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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2-15 00:21   좋아요 0 | URL
신경림씨의 시.. 좋아하는데. 오랫만에 여기서 만나네요. ^-^ 요즘 날이 많이 춥고. 연말이라 참 분주하네요.. 수암님께서는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들렸습니다. 좋은 밤 되시고, 늘 따뜻하게 몸과 마음을 보호하시길 바라겠습니다..

水巖 2005-12-15 00:26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아직 방학은 멀었죠? 매우 바쁘겠어요.

가시장미 2005-12-15 00:37   좋아요 0 | URL
방학을 앞두고 매우 바쁘답니다. 방학에 특강이 있어서요. ^-^; 안주무세요? 좋은 꿈 꾸시길 바랄께요. 따뜻한 이불 덮고 주무세요.. 저도 지금 따뜻한 이불 덮고 있답니다. 으흐흐

水巖 2005-12-15 00:50   좋아요 0 | URL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됬군요. 전 지금 따뜻한 조끼를 입고 있어요. 허리와 배가 따뜻해지는 그런 조끼에요.

水巖 2005-12-15 07:16   좋아요 0 | URL
새벽별님, 늦도록 잠 못주무시면 학교에서 어떻게요?
 
풍경소리 2 - 한 생각 훌쩍 넘어 나를 깨우는 밝은 빛
풍경소리 글, 정병례 전각 / 샘터사 / 2004년 5월
절판


앞에 강물이 놓여 있습니다.
토끼는 물위를 그냥 헤엄쳐 갑니다.
말은 강바닥에 발이 닿는 둥 마는 둥 건넙니다.
코끼리는 바닥에 발을 확실하게 디디면서 철저히 건너갑니다.

갑자기 물살이 세차집니다.
토끼는 금방 떠내려가고
말은 허둥대다가 힘이 빠졌습니다.
코끼리만 무사하게 강을 건넜습니다.

당신은 지금 인생의 강을 어떻게 건너고 계십니까?

박경준 / 동국대 교수

옛날 한고조(寒苦鳥)라는 새가 있었습니다.
이 새는 둥지가 없어 밤이면 항상 추위에 떨며
"날이 새면 꼭 집을 지으리라"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날이 밝아 따뜻해지면 곧 생각이 바뀌어
"이렇게 따뜻한데 애써 집을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면서 빈둥빈둥 먹고 놀기만 합니다.
밤이 되면 또 후회하는것은 물론입니다.

우리와 한고조는 닮은꼴이 아닐런지요.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몸과 마음이 게으르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아가야 할 일입니다.

박경준 / 동국대 교수

중국 시인 소동파는 콧대 높고 거만하기로 이름났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고승을 찾아가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나는 칭(稱)가요."
칭이란 저울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소동파임을 알고 있는 고승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칭가라니요?"
소동파는 예의 그 거만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나는 내로라하는 고승들을 달아보는 저울이란 말이오."
그러자 고승은 갑자기 "어흥"하고 사자 울음을 내고는 물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자 울음은 몇 근이오?"
"............"

무슨 소리든 만 번을 반복하면
그것이 진언(眞言)이 되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반복하고 계십니까?
"미치겠어."
"미워 죽겠어."
"지긋지긋해."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그 소리들이
당신의 인생을 정말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것은 아닌지요.

장용철 / 시인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어 흐르고
깊은 강물은 소리없이 흐른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자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숫타니파타> 중에서

통(桶) 속 같은 아파트에서 자고
통 속 같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통 속 같은 지하철을 타고
통 속 같은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마침내 통 속 같은 관(棺)속에 들어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 궤적입니다.

장용철 / 시인

한 장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우주가 흔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뭇잎은 가지를 의하고 있으며
가지는 뿌리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뿌리는 대지를 의지하고 있으며
뿌리는 하늘과 땅을 순환하여
땅속을 흐르는 물을 흡수합니다.

문윤정 / 수필가

고암 정병례씨의 <풍경소리> 전각전을 보고 전시장에서 이 책을 샀다.
돌에다가 양각을, 혹은 음각을 하고 칠을 해서 찍은 작품들이다.
서울 법련사에서 13일까지 전시를 하고 15일부터 21일까지 대구 보현사에서 전시한다고 한다.

이 책은 인생의 지침이 될 짧은 글들과 함께 정병례씨의 전각 작품이 매 장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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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2-1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작품들이 넘 멋지군요! 그 옆에 글들은 작품과 함께 나오는건가 보죠?^^

水巖 2005-12-1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답니다. 한 페이지는 글, 또 한 페이지는 전각 작품, 138쪽이 그렇게 편집을 해 놓았군요.

꽃씨 2006-02-2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생각하게 하는 글들입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namu^^ 2006-06-1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갖고싶은 책을 또 한권 발견하고 갑니다. 감사~~
 


                                         묘지에서

                                                                - 마   종   기 -

 

1
동생이 죽어 묻힌 외국의 공원묘지,
일 년이 지나도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
한글로 이름 새긴 비석에 기대 앉으면
땅 밑의 너, 땅 위에는 낮은 하늘이 몇 개,
여기가 과연 느슨한 평생의 어디쯤인가.

2
네가 떠난 후에도 매일 날이 밝고 밤이 어두워졌다. 어쩌다 잘못 꺾어든 길에서 너는 끝이 났
지만 고맙다. 지난 수십 년, 착한 동생으로 내 옆에서 살아준, 가끔은 건방진 내 마음의 발길
에 차여 아파했을 너. 멍도 풀고 한도 풀고 하늘도 풀어서, 우리가 다시 만나 기뻐 뛰며 울 날
까지 - 건강해라. 깊고 깊은 숨 속에서 건강하거라.

3
묘지 근처의 모든 공기는 언제나 생각에 잠겨 있다.
묘지 근처의 공기는 언제나 먼 곳을 보고 있다.
조용하고 가득한 냄새만 사방에 번진다.
일 년이 지나도 갈색빛을 지키는 땅바닥에
나는 너무 아프다고 중얼거린다.
멀찍이서 울던 새 한 마리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다.
묘지의 공기가 힘 죽이고 땅 밑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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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5-10-13 21:28   좋아요 0 | URL
매년 가을만 되면 가슴을 앓고 있다는 그분에게 마음의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언젠가 여드레 살다간 조카를 애도한 저의 졸작을 읽고 통곡을 하셨다는 이 분을 생각하면 저도 눈물이 날것만 같군요.

물만두 2005-10-13 21:33   좋아요 0 | URL
정말 수암님께 많은 위로 받으셨으면 합니다...

숨은아이 2005-10-13 23:01   좋아요 0 | URL
음, 동생한테, 이제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2005-10-25 0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秋 夜 一 景

                                                        - 백          석  -



                     닭이  두  홰나  울었는데
                     안방  큰방은  홰즛하니  당등을  하고
                     인간들은  모두  웅성웅성  깨어  있어서들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강에  파에  청각에  마늘을  다지고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념  내음새가  싱싱도  하다.


                     밖에는  어디서  물새가  우는데
                     토방에선  햇콩두부가 고요히 숨이  들어  갔다.

 

  분위기가 순 토속이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글자 그대로 외부 정경 묘사로 돼 있다.  설명은 여기서도 철저히 배재돼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몇 개의 낱말이 별나게 돋 보인다.  "오가리"  "석박디"  "당등"등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독특한 미적 분위기를 빚는다. 낱말이 그대로 시 속에서 독보의 걸음마를 할 수 있다는 적절한 예가 된다. 풀이씨[用言]가 필요 없게 된다. 다음의 시는 그 극단적인 예다.

 

- 김춘수가 가려 뽑은 金春洙 四色詞華集 에서

 


      홰즛하니 :  어둑어둑한 가운데서 호젓한 느낌이 드는
         오가리 :  박이나 호박의살을 길게 오려 말린 것.
         석박디 :  섞박지. 김장할 때 절인 무우와 배추, 오이를 썰어 여러가지 고명에 젓국을 조금
                       쳐서 익힌 김치.

         당등 :  장등(長燈). 밤새도록 등불을 켜고 끄지 않음.
         숨이 들다 :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간수를 넣었을때 곧 두부가 엉겨드는 현상을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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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9-26 23:53   좋아요 0 | URL
크아, 이렇게 끄집어내니 또 운치 있습니다. 천년 전의 시인 포조가 되살아나 한국 땅 토속 언어로 답하였거니...

가을이 오니---이하

오동나무 잎에 부는 바람에 괴로운데
스러진 등불 아래 베짱이는 싸늘한 가을날 우는구나
푸른 대쪽에 쓴 나의 시를 읽어서
좀먹지 않게 해 줄 이 누구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이 밤 애간장 꼿꼿해지는데
차가운 빗발 사이로 옛 문인의 향혼香魂이 나를 위로하네
가을날 무덤 속에서 귀신이 되어 포조 시를 읊조리면
한 맺힌 피는 천 년 내내 땅속에서 푸르리라

2005-09-26 23:55   좋아요 0 | URL
음..끄덕끄덕..돌바람님 여서도 뵈오니 반갑구만유.

水巖 2005-09-27 00:05   좋아요 0 | URL
와, 돌바람님, 멋진 가을 시이군요. '차가운 빗발 사이로 옛 문인의 향혼香魂이 나를 위로하네' 이 구절 참 좋은데요.
chamna님, 밤이 깊어갑니다. 예전 국민학교 다닐때 그런 노래 있었죠.
- 깊어가는 가을 밤에 .... -

백석 시를 읽을때면 백석 시를 무지 좋아하던 알라디너 한 분이 생각납니다.
모두 안녕들 하겠지만....
 


                               비는  내리는데

                                          - 미도파 부근


                                                                   - 조   병   화 -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그대로  어둠이  되는  미도파  앞을  비는  내리는데
                        서울  시민들의  머리  위를  비는  내리는데


                        비에  젖은  그리운  얼굴들이
                        서울의  추녀  아래로  비를 멈추는데
                        진종일을  후줄근히  내  마음은  젖어내리는데


                        넓은  유리창으로  층층이  비는  흘러내리는데
                        아스팔트로  네거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는데
                        그대로  발들을  멈춘  채  밤은  내리는데


                        내  마음  속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내  마음  밖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막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가난한  방에  가난한  침대위에
                        가난한  시인의  애인아  .......  어두운  창을  닫고
                        쓸쓸한  인생을  그대로  비는  내리는데


                        아무런  기쁨도  없이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하루가  오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미도파  앞에  발을  멈춘  채  내  마음에  밤은  내리는데 

 

                                       - 제6시집-  「 서  울 」 (195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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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5-09-13 23:30   좋아요 0 | URL
어느 해 여름 이 시가 어떤 신문인지 기억엔 없지만 신문에 실린것을 보고 오려 두었었는데 뫃아 두었다가 군대에서 시집을 타이프로 찍고는 쪽지는 버렸었는데.

두심이 2005-09-14 01:34   좋아요 0 | URL
비는 내리는데.. 할아버지 보고파 왔습니다.^^

아..소식이 너무 뜸했지요? 이사하고 나서 짐정리가 정말로 많이 바빴어요.
집을 줄여서 나오다 보니 짐을 버리고 온 것이 꽤 많아요.
속 쓰리고 배아프지만 꾸욱 참았죠.ㅎㅎ

잘 지내시겠죠?
궁금했었어요, 많이요..

이제 곧 추석이라 성묘도 가야하고 음식 장만도 해야하고..
또 당분간은 뵙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풍성하고 넉넉한 추석되세요~

水巖 2005-09-14 01:50   좋아요 0 | URL
하도 소식이 없어 이사짐속에서 잊어버린줄 알었우. 내컴퓨터가 이상한지 다음에서도 접근이 안되고 무척 궁금했군요.
일은 시작했는지, 친구들하구는 잘 지내는지, 강남쪽으로는 안 나오는지, 전시회는 통 못다녔겠군요. 많이 바쁘더라도 가끔씩은 들려 지낸 이야기라도 하고 가시기를, 이제 명절은 가급적 줄여서 보내야지요. 그 쪽 동네 전시회 있으면 서재에다 알려 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