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2월
구판절판


화가는 바늘처럼 가늘고 빳빳한 붓으로 터럭 한 올을 무려 수 천 번이나 거듭 그어 호랑이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이런 극사실 묘법을 썼으면서도 전체적으로 호랑이의 육중한 괴량감(塊量感,volume)이 느껴지고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민첩 유연한 생태까지 실감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 정말 경이롭다. 호랑이가 살아 있는 것이다 !

- 송하맹호도 - 단원 그림의 설명중에서-26~28쪽

표구는 원래 일본 말이다. 우리 옛말은 장황裝潢이었고 표구사는 배첩장褙貼匠이라 불렀다. 이제는 '표구'가 표준어가 되었으므로 그냥 쓰긴 쓰지만, 그래도 옛 그림의 '장황'에 담긴 뜻만은 간략히 짚어 보려고 한다. 옛 그림의 표구는 다섯가지로 대별된다. 족자, 두루마리, 화첩, 병풍, 그리고 부채가 그것인데, 이 다섯가지 그림은 다 펴고 접을 수 잇다. 붙박이 서양 그림과는 전혀 다른 특색이 여기에 있다. -55쪽

선비의 코 앞까지 드리워진 실가지 이파리들을 보라 . 마치 하늘에서 꽃비가 오고 있는 양, 가지도 없이 나부끼는 이파리로만 열을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옛 그림에서 이르는 바 '필단의연筆斷意連의 경계이니, 붓 선은 끊겼으되 속뜻이 절로 이어진다. 그린 이의 가슴속에 봄볕이 이미 가득한데 구태여 가지까지 일일이 그려 넣을 필요가 어디 있으랴! 여기선 오히려 가지를 그려 넣으면 큰일이 난다. 일부러 이파리만 툭툭 쳐 넣었기에 온화한 봄 기운이 애써 살아 났는데, 실가지 까지 애면글면 그렸다가는 그 예리한 선에 주인공의 봄 꿈이 베어져 여지없이 깨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 김홍도가 그린 마상청앵도 에서-63쪽

52세의 다산 선생이 시집간 어린 딸을 위해서 시를 짓고 쓰고 또 그림을 그렸다.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온갖 정성을 들여 이제 막 봉오리를 터트리는 매화꽃가지에에 앉은, 작은 새 한쌍을 채색까지 더하여 그렸다. 글과 그림의 바탕을 사용한 낡은 천 조각은 결혼한 지 사 십 년이 되어가는 부인, 그러나 벌써 십삼 년째 홀몸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애처로운 아내의 물 바랜 다홍치마 조각이었다. 이 조그만 화폭에서 우리는 대학자 정약용이 처했던 힘겨운 유배 현실과 그 역경의 와중에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한 조각 따뜻한 부정父情의 온기를 확인한다. -165쪽

조선은 성리학 국가로서 '민위천民爲天' 곧 '백성이 하늘이라'고 하는 왕도정치를 펼쳤으므로 세계사에 드믄 519년의 장수를 누렸다. 그 조선은 우리의 조국이었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고조할아버지는 물론, 거슬러 올라 17대 위로부터 줄곧 우리나라를 대표해온 떳떳한 이름이 조선이다. 동학농민군도 정조때의 정치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지 나라를 뒤 엎자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상을 대할 낯이 없게하는 저 '이조'라는 말을 절대로 쓰면 안 된다. -204쪽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한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 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렵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며,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핵을 가지면 어린애 칼 쥔 격이라 걱정되니 제 스스로 개발않겠다고 맹세하고, 미사일 연구는 발사 거리를 남의 허럭을 맡고 그만큼만 진행한다. 심지어 전력, 통신 등 기간산업까지 외국이 살 수없으면 선진국이 아니라하니, 이 모든 상황을 옛날과 비교해서 누가 조선을 사대주의 국가라 말 하는가? 나는 두렵다!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후손의 나라가 과연 백 년이나 가겠는가?-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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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가져갑니다.
 

 
                          봄 비

                                 - 이 석 현 -


                 비,
                 비 온다
                 소롯이
                 봄비 내린다

                 이런 날
                 비 오는 날이면
                 솜솜이 솟는 샘
                 솟아나는 생각이 있다

                 그 사람,
                 비 오는 날
                 담밑에서
                 울고 간 사람
                 말 없이 울고만 섰다가
                 훌쩍 떠나간 사람

                 그 사람 이름이 사물댄다
                 그 모습
                 그 모습이 호롱을 켠다

                 비 오는 날,
                 봄비 오는 날 오후 늦게
                 황혼 다가오면

                 가슴 속
                 가슴 뒤안길에도
                 차분히 비가 내린다.

  봄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이 詩,  1962년쯤, 아니면 더 이전에 어느 신문에 실린 이 시를 잘러서 보관하다가 군대에서 타이프 연습하느라고 타이프를 쳐서 모아 두었다가 만들은 시집 ㅡ

  요사이는 온전한 시를 신문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어져다 보면 하략이고 중략이고  전쟁끝나고 신문면이 고작 4면일때도 온전한 시가 실렸는데 지금은 거의 10배 가깝게 지면이 늘었는데도 눈 비비고 찾어도 시 찾기가 힘들다. 
  이 시는 알라딘 서재 초기에도 소개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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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삽화집 - 일상 풍경
커뮤니케이션즈와우 편집부 엮음 / 커뮤니케이션즈와우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양구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에 갔다가 산 박수근 화백 삽화집이다. 
  박수근 화백이 그린 삽화의 전부는 아니고 1959년 5/6월호에서 부터 1961년 9월호에 이르기까지 2년여에 걸친 대한화장품공업협회지 <장업계>에 실린 삽화 모음집이다.

  84점의 삽화와 기사와 함께 실린 삽화 37점이 전부이다. 하지만 박수근 화백의 일상적 생활에서 사물을 세밀하게 바라 본 삽화집이 만들어 졌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삽화에는 드로잉도 있고 목판화도 보인다. 또 박수근화백의 글도 있고 박화백의 부인과 장남, 서양화가 이대원씨 등이 쓴 박수근이야기 3토막이 간략하게 있는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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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개의 층계

                                                           - 박   인   환 -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하니
                    지난  하루  하루가  무서웠다。
                    무엇이나  꺼리낌없이  말했고
                    아무에게도  협의해  본  일이  없던
                    불행한  年代였다。


                    비가  줄  줄  내리는  새벽
                    바로  그때이다。
                    죽어  간  청춘이
                    땅  속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
                    그러나  나는  뛰어  들어
                    서슴없이  어깨를 거느리고
                    악수한  채  피  묻은  손목으로
                    우리는  암담한  일곱  개의  층계를  내려갔다。


                   「 인간의  조건 」의  앙드레 . 마르로
                   「 아름다운  地球 」의  아라공 
                    모두들  나와  허물없던  友人
                    황혼이면  피곤한  육체를
                    우리의  개념이  즐거이 이름  불렀던
                    < 정신과  관련의  호텔 >에서
                    마르로는  이  빠진  情婦와
                    아라공은  절름발이  사상과
                    나는 이들을 疑視하면서 .......
                    이러한  바람의  낮과  애욕의  밤이
                    회상의  사진처럼
                    부질하게  내  눈  앞에  오고  간다。


                    또  다른  그날  
                    가로수  그늘에서  울던  아이는
                    옛날  강가에  내가  버린  영아
                    쓰러지는  건물  아래
                    슬픔에  죽어  가던  소녀도
                    오늘  幻影처럼  살았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라를  애태우는지
                    분별할  의식조차  내게는 없다
                    시달림과  증오의  육지
                    패배의  폭풍을  뚫고
                    나의  영원한  작별의  노래가
                    안개속에  울리고
                    지낸  날의  무거운  回想을  더듬으며
                    벽에  귀를  기대면
                    머나  먼
                    운명의  도시  한복판
                    희미한  달을  바라
                    울며  울며  일곱개위  층계를  오르는
                    그  아이의  방향은
                    어데인가。


                                                                          『한국전후문제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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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15 00:51   좋아요 0 | URL
신구문화사의 한국전후문제시집인가요?
이 시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ㅎㅎ
수암님, <젠틀 매드니스> 오늘 출판사에 주문, 거기서 직접 보냈답니다.
내일이나 모레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水巖 2006-02-15 01:13   좋아요 0 | URL
원래는 세계전후문학전집 10권중에 하나죠. 7 권은 각국 전후문제작품전집 이고 세계문제시집, 한국전후문제시집, 그리고 씨나리오작품집 그렇게 있었죠.
<잰틀 매드니스> 잘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계곡에서

                                                                        - 김   관   식 -


물이  흐른다。
늙으신 어머니가  가늘은  눈웃음을  머금으실  때,  입가장자리,  눈섭기슭에  조용히  말렸다가  
살몃이  풀어지는  해설피듯  막막하고  그리고  잔조로운  사랑스런  주름살.  아니면,  흰  나븨
한  마리  가을  하늘에  가벼히  나래저어  날아가는  자리마다  보일락  말락  아슴프레히  일어
나는  자잘한  무늬를  지어가면서。

아니  이것은  피어  오르는  아즈랑이다。

나는  한나절  초록바탕의  언덕  위에  앉아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어린  누이들이  뒷골방에  숨어서  눈을  씻고  나즉히  흐느껴 우는  소리。

봉우리에서,  또는 골째기에서
사뭇  여기까지  굴러  내려온  조약돌  조약돌  조약돌이  만일,  그  숫한  혼령들의  조각이라면
서어러운  햇살  아래  빛나는  이맛박을  가즈런히  드러내고  지내간  옛날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물이  흐른다。
흐르는  물을  따라  나도  흘러가며는  죽은이들이  서로  도란거리며  의초롭게  모여서  사는
 바다와  같은  마을이야  없는가。

 

                                                                         『 한국전후문제시집 』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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