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 夜 一 景

                                                        - 백          석  -



                     닭이  두  홰나  울었는데
                     안방  큰방은  홰즛하니  당등을  하고
                     인간들은  모두  웅성웅성  깨어  있어서들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강에  파에  청각에  마늘을  다지고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념  내음새가  싱싱도  하다.


                     밖에는  어디서  물새가  우는데
                     토방에선  햇콩두부가 고요히 숨이  들어  갔다.

 

  분위기가 순 토속이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글자 그대로 외부 정경 묘사로 돼 있다.  설명은 여기서도 철저히 배재돼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몇 개의 낱말이 별나게 돋 보인다.  "오가리"  "석박디"  "당등"등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독특한 미적 분위기를 빚는다. 낱말이 그대로 시 속에서 독보의 걸음마를 할 수 있다는 적절한 예가 된다. 풀이씨[用言]가 필요 없게 된다. 다음의 시는 그 극단적인 예다.

 

- 김춘수가 가려 뽑은 金春洙 四色詞華集 에서

 


      홰즛하니 :  어둑어둑한 가운데서 호젓한 느낌이 드는
         오가리 :  박이나 호박의살을 길게 오려 말린 것.
         석박디 :  섞박지. 김장할 때 절인 무우와 배추, 오이를 썰어 여러가지 고명에 젓국을 조금
                       쳐서 익힌 김치.

         당등 :  장등(長燈). 밤새도록 등불을 켜고 끄지 않음.
         숨이 들다 :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간수를 넣었을때 곧 두부가 엉겨드는 현상을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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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9-26 23:53   좋아요 0 | URL
크아, 이렇게 끄집어내니 또 운치 있습니다. 천년 전의 시인 포조가 되살아나 한국 땅 토속 언어로 답하였거니...

가을이 오니---이하

오동나무 잎에 부는 바람에 괴로운데
스러진 등불 아래 베짱이는 싸늘한 가을날 우는구나
푸른 대쪽에 쓴 나의 시를 읽어서
좀먹지 않게 해 줄 이 누구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이 밤 애간장 꼿꼿해지는데
차가운 빗발 사이로 옛 문인의 향혼香魂이 나를 위로하네
가을날 무덤 속에서 귀신이 되어 포조 시를 읊조리면
한 맺힌 피는 천 년 내내 땅속에서 푸르리라

2005-09-26 23:55   좋아요 0 | URL
음..끄덕끄덕..돌바람님 여서도 뵈오니 반갑구만유.

水巖 2005-09-27 00:05   좋아요 0 | URL
와, 돌바람님, 멋진 가을 시이군요. '차가운 빗발 사이로 옛 문인의 향혼香魂이 나를 위로하네' 이 구절 참 좋은데요.
chamna님, 밤이 깊어갑니다. 예전 국민학교 다닐때 그런 노래 있었죠.
- 깊어가는 가을 밤에 .... -

백석 시를 읽을때면 백석 시를 무지 좋아하던 알라디너 한 분이 생각납니다.
모두 안녕들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