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에서

                                                                - 마   종   기 -

 

1
동생이 죽어 묻힌 외국의 공원묘지,
일 년이 지나도 풀이 잘 자라지 않는다.
한글로 이름 새긴 비석에 기대 앉으면
땅 밑의 너, 땅 위에는 낮은 하늘이 몇 개,
여기가 과연 느슨한 평생의 어디쯤인가.

2
네가 떠난 후에도 매일 날이 밝고 밤이 어두워졌다. 어쩌다 잘못 꺾어든 길에서 너는 끝이 났
지만 고맙다. 지난 수십 년, 착한 동생으로 내 옆에서 살아준, 가끔은 건방진 내 마음의 발길
에 차여 아파했을 너. 멍도 풀고 한도 풀고 하늘도 풀어서, 우리가 다시 만나 기뻐 뛰며 울 날
까지 - 건강해라. 깊고 깊은 숨 속에서 건강하거라.

3
묘지 근처의 모든 공기는 언제나 생각에 잠겨 있다.
묘지 근처의 공기는 언제나 먼 곳을 보고 있다.
조용하고 가득한 냄새만 사방에 번진다.
일 년이 지나도 갈색빛을 지키는 땅바닥에
나는 너무 아프다고 중얼거린다.
멀찍이서 울던 새 한 마리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다.
묘지의 공기가 힘 죽이고 땅 밑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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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5-10-13 21:28   좋아요 0 | URL
매년 가을만 되면 가슴을 앓고 있다는 그분에게 마음의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언젠가 여드레 살다간 조카를 애도한 저의 졸작을 읽고 통곡을 하셨다는 이 분을 생각하면 저도 눈물이 날것만 같군요.

물만두 2005-10-13 21:33   좋아요 0 | URL
정말 수암님께 많은 위로 받으셨으면 합니다...

숨은아이 2005-10-13 23:01   좋아요 0 | URL
음, 동생한테, 이제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2005-10-25 0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