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창작된 희극적인 오페라. 종래의 오페라 막간에 상연되었던 음악희극 <인테르메초>에서 발전하여 독립한 것인데, 오페라 부파의 등장으로 종래의 오페라는 오페라 세리아라 불리게 되었다. 장면을 잇는 레시터티브나 앙상블에 의한 피날레가 중요시되며, 베이스 역이 추가되었다는 점 등에 큰 특징이 있다. 18세기 중엽 이후 G. 파이젤로·D. 치마로자 등의 활약으로 오페라 세리아를 능가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으며, 19세기 초의 G.A. 로시니의 여러 작품으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G. 도니체티 무렵부터 서정적인 요소가 강해지고, 19세기 중엽에는 부파적 요소가 오페라 세리아 속에 흡수되어 거의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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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 Le Barbier de Séville

P.A.C. 보마르셰의 4막 산문희극. 1775년 만들어진 작품으로 부제는 <쓸데없는 조심>이다. 알마비바백작은 양가(良家)의 처녀 로지나를 사랑하나, 그녀의 후견인인 나이 든 세빌랴의 의사 바르트로가 그녀와의 결혼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그래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던 백작은 전에는 자신의 하인이었지만 지금은 세빌랴에서 이발사를 하는 눈치빠른 피가로에게 도움을 청하여, 피가로의 술책으로 바르트로의 공증인을 속여 로지나와의 결혼계약서를 만든다. 이 작품 전편은 젊은 아가씨를 사랑하는 나이든 후견인이라는 전형적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교묘한 희극적 구성과 사회풍자가 뛰어난 작품이다. 속편 《피가로의 결혼》이 있다.

*오페라

보마르셰의 희극 《세빌랴의 이발사》에 바탕을 둔 오페라는 2개 있다. 하나는 G. 파이지옐로 작품으로 당시 유럽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는데, 지금은 C. 스테르비니의 대본에 의한 G.A. 로시니의 2막 오페라가 유명하다. 단독으로 자주 연주되는 서곡을 비롯해 피가로의 카바티나 <나는 마을의 제일인자>와 로지나의 아리아 <지금의 노랫소리는> 등 명곡이 많다. 전체가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이며 가수의 화려한 기교도 펴보일 수 있는 19세기 최고의 희가극이다. 1816년 로마에서 초연되었다.

*출처: 엥빠쓰 앙씨끌로뻬디


Barbier de Séville ou la Précaution inutile

Comédie en quatre actes et en prose de Pierre 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75).
   
Cette œuvre universellement connue a subi une gestation difficile: originellement rédigé sous la forme d'un opéra-comique puis sous celle d'une comédie en cinq actes, le Barbier de Séville a essuyé deux échecs consécutifs. Beaumarchais supprime alors le dernier acte et sa comédie connaît un succès retentissant.
  
Grand d'Espagne, le comte Almaviva a quitté Madrid et la cour royale. Il est à Séville par amour de la jeune Rosine, qu'il croit mariée à Bartholo, un vieil avare tyrannique qui la tient enfermée. Seul dans une rue déserte, à l'aube, il fait le guet sous les fenêtres de celle qu'il aime en silence. Arrive Figaro, son ancien valet fidèle et plein de malice, qui, après avoir exercé maints métiers, est désormais barbier et apothicaire. Figaro connaît la maison. Il révèle à son ancien maître que Bartholo n'est que le tuteur de Rosine mais qu'il doit l'épouser le lendemain. Almaviva le presse de l'aider pour que l'amour triomphe. Grâce au génie de Figaro, Almaviva, déguisé d'abord en soldat puis en sbire de Basile, le maître de chant, peut approcher Rosine et s'assurer de la réciprocité de son sentiment. Profitant de la vénalité de Basile et malgré la méfiance de Bartholo, Almaviva épouse Rosine sous son propre toit: le tuteur ne peut que s'incliner en découvrant la supercherie.
  
Interdite pendant trois ans, cette comédie très vivante, d'une verve éblouissante, riche en quiproquos et en rebondissements, se déroule à un rythme endiablé. La suite de ces aventures cocasses se trouve dans le Mariage de Figaro (1784).
  
Inspiré de l'École des femmes de Molière (1662) et de quelques œuvres contemporaines, le thème du Barbier de Séville n'a rien de neuf en soi: il est présent dans le théâtre comique français du XVIIe et du XVIIIe siècle.

Le Barbier de Séville de Beaumarchais a inspiré de nombreux opéras, en particulier ceux de Giovanni Paisiello (1782) et de Gioacchino Rossini (1816).
 


Opéra bouffe en deux actes de Gioacchino Rossini (1816, Rome).

Chef-d'œuvre de verve et de vitalité, le Barbier de Séville est l'un des opéras les plus populaires du répertoire. Son ouverture, que Rossini emprunta à son Elisabetta, regina d'Inghliterra (1815), est l'une des pages les plus fameuses des salles de concert. Et que dire de la notoriété de certains airs comme l'entrée de Figaro, la cavatine de Rosine (Una voce poco fa), l'air «de la calomnie» de Basile?... D'un bout à l'autre de la partition, l'ouvrage de ce jeune compositeur âgé de vingt-trois ans est un florilège continu de féerie vocale et instrumentale.

Pourtant, le succès ne fut pas immédiat. Placée sous la direction du compositeur, la création à Rome fut en effet un échec retentissant, ce que Stendhal rapporta dans sa Vie de Rossini. Le chahut fut tout aussi violent lors de la première parisienne au Théâtre italien, jusqu'à ce que Ferdinando Paer (1771-1839), directeur de la salle Louvois (à qui Rossini devait bientôt succéder), ressorte de ses cartons l'œuvre éponyme de Giovanni Paisiello (1740-1816). Il avait voulu jouer un mauvais tour à son jeune confrère: il obtint un effet contraire à celui qu'il escomptait. Le Barbier de Séville (1782) de l'aîné fut jugé suranné, et Rossini triompha.
  
Inspirée du premier volet du triptyque que Beaumarchais consacra à Figaro et au comte Almaviva, l'action du Barbier de Séville se déroule à Séville au XVIIIe siècle. Elle conte l'histoire du vieux docteur Bartolo, qui s'est mis en tête d'épouser sa pupille Rosine, richement dotée. Mais cette dernière aime le comte Almaviva, qui, avec la complicité du barbier Figaro, se présente chez Bartolo sous divers déguisements. Un jésuite plutôt suspect, Basile, sert alternativement les intérêts de Bartolo et ceux d'Almaviva... Mais la morale est sauve, le comte épouse Rosine et abandonne la dot à Bartolo, qui se résigne, avec philosophie.
 

*Yahoo! Encyclopé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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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Le Mariage de Figaro

프랑스 극작가 P.A.C. 보마르셰의 희곡. 《미친 하루》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1780년 완성되고, 1784년 코메디프랑세즈에서 초연되었다. 5막 산문희극으로, 《세빌랴의 이발사》 속편이다. 무대는 하인 피가로의 도움을 받은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가 맺어진 《세빌랴의 이발사》에서 3년이 흐른 뒤이다. 로지나와의 결혼생활에 싫증난 알마비바 백작이 피가로의 애인이며 자기 부인의 시녀인 쉬잔을 유혹하려 하자 피가로가 교묘한 술책을 써서 물리치고 애인과 결혼한다는 이야기이다. 갈등희극 유형에 정치풍자와 심리묘사를 더한 시민극으로, 피가로는 프랑스혁명 직전의 서민답게 귀족계급의 횡포를 공격하며 구제도를 비판한다. 전편에 풍자와 해학이 넘쳐, 초연 이래 거듭 호평을 받았고, 오늘날에도 여러 나라에서 자주 상연된다. 극의 주제가 하인의 결혼이고, 주인인 귀족과 하인 사이의 경쟁에서 주인이 패한다는 도식은 매우 큰 사회풍자가 되었으며, 프랑스혁명의 전조를 알려준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음악 : Le Nozze di Figaro

W.A. 모차르트의 4막으로 된 오페라. P.A.C. 보마르셰의 희곡을 바탕으로 L. 다 폰테가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썼다. 1785년 만들어진 작품으로, 86년 빈의 부르크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다 폰테가 대본을 쓰는 대로 받아 작곡하여 6주일 동안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음악은 오페라부파의 형식을 취하여 경쾌하고 우아하며, 등장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전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이 한 사람 또는 여러 결합에 의해 차례로 무대에 나타나, 등장인물이 늘어나면서 극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앙상블 피날레형식을 확립하였다. 등장인물의 개성이 조역에 이르기까기 뚜렷이 드러나고, 대사를 포함한 음악의 움직임이 높은 예술성을 유지하여 원작을 한층 약동적으로 만들었다. 유명한 《서곡》 외에 오페라 전곡이 자주 연주되고 있다.

*출처 : 엥빠쓰 앙씨끌로뻬디


Mariage de Figaro ou la Folle Journée

Comédie en cinq actes et en prose de Beaumarchais (1784).
C'est du Mariage de Figaro que Mozart a tiré, presque immédiatement, un opéra (les Noces de Figaro , 1786), alors que le Barbier, plus volage, n'a donné, bien plus tard, qu'un brillant exercice de bel canto de Rossini (1816).
  
C'est une pièce rapide, une «folle journée» dit le sous-titre. Le rythme y est essentiel, et emporte facilement l'adhésion, quand les acteurs le tiennent. À tel point que le «tunnel» du IVe acte, le monologue de Figaro, est joué soit en contrepoint insistant sur l'isolement de l'acteur, soit en surenchère trépidante.

L'aspect critique de la pièce est savamment dosé. Il serait téméraire de faire du Mariage un brûlot prérévolutionnaire – encore que les censures auxquelles la pièce a été soumise après la Révolution, en particulier sous l'Empire, témoignent des lectures outrées des conformistes du temps –, mais également de sous-estimer son pouvoir corrosif: on joua le Barbier à la Comédie-Française entre 1939 et 1945, mais à la même époque le Mariage prit le maquis. Les attaques contre les privilèges sont en fait mesurées: le droit de cuissage, prétexte de l'action, est hors d'usage à l'époque. Celles qui eurent lieu contre les blocages de la société sont plus acerbes: Figaro hait l'immobilisme. En 1866, c'est un journal d'opposition, qui s'appelle alors le Figaro, qui trouva dans la pièce le principe fondateur du journalisme: «Sans la liberté de blâmer, il n'est pas d'éloge flatteur.» Figaro est bien la créature d'un ancien artisan devenu grand bourgeois. Et comme son créateur, une fois calmée la faim de l'ancien petit pauvre, il a une inextinguible soif de bonheur.

*Yahoo! Encycolpé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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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적이든 환경의 작용에 의해서든 여러 인종 사이에는 우열의 차가 있고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는 사상 또는 이데올로기. 인종의 우열설에는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종주의는 아직도 뿌리깊게 신봉되고 있다. 인종주의는 동일 인종으로 구성되는 일부 부족사회에서 신체상의 특징(키나 피부색)을 이유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일부 사회에 각기 독립해서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나, 인종주의를 세계적 규모로 확대해서 정착시킨 것은 식민지주의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종주의는 인류사를 통하여 전지구상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사상은 아니다. 이에 반하여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자기집단중심주의)과 같이 어느 집단 또는 개인이 신체적·문화적 특징이 다른 집단이나 사람에게 위화감과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적·보편적 현상이다. 원래 인종이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구명되어 인간의 유별(類別)을 의미하게 된 것은 19세기이며, 서유럽에 발달한 인종사상과 결부되어 인종주의는 정치·경제상의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 과학적 인종주의라는 호칭도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생겨났다. 이렇게 형성된 인종주의는 사상 또는 이데올로기의 수준을 넘어서, 현실적인 관행이나 태도·인종차별 또는 인종상의 불이익을 낳는 여러 가지 요인을 내포한 복합체도 의미하게 되었다. 원래 인종주의는 어떤 사회에 다른 복수의 인종 또는 동일인종 안의 집단차가 있어서 그 신체적 특징의 집단차가 불평등한 사회적 지위나 문화적 차이와 결부될 때 생겨난다. 역사적으로는 군사정복, 식민지나 지배지역의 확대 및 강제적 이민이나 노예, 유색인에 대한 백인의 인종주의로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흑인에 대한 황색인의 인종주의도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인종주의를 대규모로 전개한 것이 주로 식민지주의 또는 제국주의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을 추진한 사상가는 프랑스의 J.A.C. 고비노와 영국의 H.S. 체임벌린이다. A. 히틀러·T. 루스벨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정책을 만들어 낸 H.F. 퍼부르트 등은 대중조작 이데올로기로서 인종주의를 이용한 전형적인 정치가이다. 최근 제 3 세계에서는 유색인은 백인보다 우수하다고 하는 대항인종주의가 대두하고 있다.

*출처 : 엥빠쓰 앙씨끌로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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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그리스 신화에는 3명의 엘렉트라가 등장한다. ①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타우마스의 아내가 되어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와 두 하르푸이아(아엘로와 오키페테)를 낳았다. ②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플레이아데스라고 하는 7명의 딸 가운데 하나로, 제우스와의 사이에 트로이의 시조(始祖)인 다르다노스를 낳고, 데메테르의 사랑을 받아 부(富)의 신 플루토스의 아버지가 된 이아시온을 낳았다. ③ 미케나이(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딸: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을 암살했을 때, 죽음을 면한 그녀는 어린 동생 오레스테스를 미케나이로부터 구출한다. 그러나 그녀는 복수를 두려워하는 아이기스토스에 의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의 농부와 결혼해서 오랫동안 고독하고 가난한 생활을 보낸다. 어느날 그녀가 아버지 무덤에 가서 참배를 하고 있을 때, 동생 오레스테스가 나타나 남매임을 확인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결심을 굳히고 있던 오레스테스는 사촌형제인 필라데스와 함께 궁전으로 가서 자신이 죽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다. 그 뒤 궁전에 있는 사람들이 안심해 있는 동안 내부로 침입해 들어가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인다. 복수를 끝내고 왕위를 되찾은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죽인 죄로 에리니스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나, 엘렉트라는 아테네여신의 도움으로 동생이 무죄가 될 때까지 보호했다. 한편, 오레스테스가 타우리스에서 아르테미스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소식을 엘렉트라의 자매인 이피게네이아로부터 듣고, 아이기스토스의 아들 알레테스는 미케나이의 왕위를 빼앗는다. 이에 화가 난 엘렉트라는 델포이에서 이피게네이아를 만나 그녀를 장님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그때 오레스테스가 나타나 모두가 잘못 전해진 것이라는 사실이 판명되고, 오레스테스는 왕위를 빼앗은 알레테스를 죽인다. 아테네여신의 도움으로 부모를 죽인 죄에서 해방된 오레스테스는 의혹이 풀려 미케나이의 왕이 되었으며, 숙부인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를 아내로 맞이한다. 한편 엘렉트라는 필라데스와 결혼하여 메돈과 스트로피오스를 낳는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3부작)》,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오레스테스》에 전해지고 있다.

*엘렉트라 컴플렉스Electra complex

딸이 어머니를 미워하고 아버지에게 애정을 가지는 정신분석학적 현상. C.G. 융이 정의하였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그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에게 살해되지만, 딸인 엘렉트라가 아버지를 위하여 남동생과 협력해서 어머니를 죽이고 복수한다는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하였다. 반대로 아들이 어머니에게 애정을 가지는 현상을 오이디푸스콤플렉스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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