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출간을 앞둔 책 때문에 인쇄소에 갔다.
인쇄소에서는 바로 옆사람과도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다. 기계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냥 순식간에 쌓여가는 인쇄된 페이지들을 하염없이 볼 뿐이다.

중간중간에 인쇄기사님이 인쇄 상태를 확인하느라 종이를 빼내는데, 그러다 종이가 걸린 적이 있었다.
부리나케 기계 중간 부분에 달려 갔다 오신 기사님은 하얀 가루를 잔뜩 뒤집어 쓰고 오셨다.
어디든 내려앉을 수 있는 곳이면 모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하얀 가루 먼지는 단 1시간 그곳에 있었는데도 목을 칼칼하게 만들었다.
에어 컴프레서로 먼지를 대강 털고 오신 기사님은 기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부분 여기서는 모두들 뛰어다닌다. 그리고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그렇게 기름과 화학재료에 절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책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나는 책의 내용, 그러니까 정신적 측면을 만들지만 저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거다.
지금까지 책을 정신적 산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인쇄소에 있어 보니 그런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거였는지 새삼 느꼈다. 
어쨌든 자기 자신이든 남에 의해서든 물리적 형태로 읽을 수 없다면 단순히 생각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인쇄소에서 문득 책이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각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노력과 땀과 아이디어가 서로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태어날 수 있는 것.
이런 의미에서도 책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라고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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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책도 하나의 완전한 세계.. 정신적산물이자 물리적산물이네요.
그래서 책은 책 이상의 무엇인가 봐요. 부엉이님,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는 모습이
엿보여요^^

부엉이 2007-03-1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람도 느끼고 좌절도 느끼지만 그래도 보람>좌절입니다 ^^
 

 

극도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참이다.
봐도봐도 또 나오는 오타, 띄어쓰기 오류.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 싶어
4교째 교정을 보고 있는데, 눈두덩에 바위가 들어 있는 듯 떠지질 않는다.
이럴 땐 정말 담배라도 한 대 피워 물고 싶다.
어쨌든 베란다로 나갔다.
오랜만에 날이 활짝 갰다.
새들도 좋은지 짹짹거린다.
맑은 날, 아침, 참새 소리.
정말 아름다운 조합이다.

지하철 44분, 셔틀 30분, 길고도 긴 출퇴근 길이지만
맑은 공기와 시골에 와 있는 듯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파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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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14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정 보는 일, 참 봐도 봐도 끝이 없더군요. 그러고 나도 또 오류가 보이구요.
허탈하게 말이에요. 님, 출퇴근길이 멀어서 피곤하시겠어요.
그래도 파주의 풍경이 꽤 좋아보이네요. 그것으로 위안 삼으셔야 할 듯해요.
바깥에 초록을 보며 눈도 좀 쉬어가면서 하세요.

부엉이 2006-12-1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홍삼 엑기스로 피로회복하고 있습니다. 동료들과 나눠먹지요 ^^
감사해요! 배혜경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랄게요!

N군 2006-12-2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주로 출근하면서 74분이면 할 만한걸
난 서울에서 서울로 출근하는데도 74분,8:46~10:00 ㅠㅠ

2007-01-18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례

머리말

프랑스 브르타뉴 어부의 일곱째 아들
시칠리아 페르디난데아 섬의 보물
알제리 바다 정령의 딸
에스파냐 페뉘스콜라의 마녀들
노르웨이 장작 세 더미
아이슬란드 바다표범
동인도제도 수란 왕의 여행
타히티 타아로아의 상어
일본 세월을 잃어버린 어부
그리스 글라우코스와 스킬라
리투아니아 발트 해의 여왕
앵글로노르만 군도 밀물과 썰물의 비밀
베트남 탄 비엔의 산신령
알바니아 나뭇잎을 낚은 어부
독일 착한 거지와 진주 요정
브라질 바다 밑의 사람들
아일랜드 바다의 백조
네덜란드 바다 밑 도시
시베리아 바다의 노인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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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에 내리려고 지하철 문에 다가서는데, 한 어여쁜 아가씨가 내 앞에 섰다.
만원 지하철이라 아가씨와 나 사이의 거리가 불과 15센티미터 정도 되었는데.
매력적인 까만 피부에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시키는 아이라인과 풍성한 속눈썹.
화장이 예술이네... 감탄하고 있었는데.

위 아래 옷이 한 벌이다.
그것은 교복...
얼룩말 무늬 가방에 얼룩말 무늬 운동화.
금방이라도 런웨이에서 워킹해도 될 듯...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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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군 2006-11-23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시켜줘-

부엉이 2006-11-2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언니한테 홍대역 가려면 여기서 타면 되냐고 물어봤으니까 그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야~
 

출근하려고 집에서 나오는데 한쌍의 남녀 고등학생들이 집앞에 있는  학교로 가댁질을 하며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가방이 색깔만 다른 같은 거라는 걸 보고 '음, 쟤네 연애하는구나...' 짐작했다.
전같으면 '한심하군...' 생각해 버렸을 건데. 웬일인지 예뻐보였다.
아침부터 저렇게 웃고 떠들 수 있으니 하루가 얼마나 즐거울까.
출근길 지하철에서 보는 졸음에 지쳐 죽상인 얼굴들보다 훨씬 보기 좋네...
웬만한 일에 후회를 잘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한 가지 후회막급인 일이 있다.
바로 고딩시절에 풋풋한 연애 한번 못해본 것. 미수 한 건, 튕긴 거 한 건, 짝사랑 댓 건.
지지리 궁상 떨며 공부할 거였으면 화끈하게 연애질이라도 했어야 하는 건데.
그 때 시작된 나의 '연애 지진아' 인생은 지금도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고딩 때 불어 실력에서 그다지 나아진 것 없는 지금의 불어 실력처럼. 

오늘도 지하철에서 앉기 실패. 그래도 김종광의 <야살쟁이록>이 아침 졸음을 조금 덜어준다.
2호선 갈아타려고 시청역 플랫폼을 걸어가는데, 한쌍의 남녀가 나누는 대화가 귓가를 스쳐간다.
아니, 여자가 하는 말만 들렸다.
여자 : 아니, 오늘은 어제보다 더 멋있어 보이세요!
남자 : (전날 마신 술탓인지, 부끄러워서인지 눈가가 금새 벌개졌다) .... ^_____________^

내 눈과 머리는 아직도 잠 속을 들락날락거리는데, 아침부터 저런 고단백 영양가 있는 멘트를 날리다니.
배워야한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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